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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6,474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1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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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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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반역자에게 심판을 (2)

DUMMY

사실 루드가 엔테 앞에서 보여준 확신은 거짓이었다.

루드는 그들이 준비한 함정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아니, 그가 느낀 게 애초에 함정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다.

가장 큰 것은 육감. 거기에 지금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를 조합해 ‘그럴 확률이 높다’라고 유추했던 것뿐이었다.

그렇게 정보가 부족함에도 그가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한 가지는 그들이 준비한 것이 있다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이 더 좋게 흘러가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판단.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아무리 그들이 함정을 준비했다고 해도 아무 문제없으리라는 확신을 내렸던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인가.’


다행히 예상은 적중한 모양이었다.

린드버클 성을 품고 있는 도시, 아인버겐에 들어서면서부터 루드가 맡았던 불쾌한 냄새가 급속도로 짙어지고 있었다.

그가 맡은 냄새는 분명 신성력에서 파생된 무언가다.

신성력은 밤과 어둠의 종족들에게는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약한 인간이 밤과 어둠의 군세에 대항하기에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이렇게 냄새를 풍겨서는 함정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좀 더 철저히 숨겼어야했다.


‘못 숨기는 것인가, 안 숨기는 것인가.’


지금까지 확보한 정보들을 조립해보면 아무래도 전자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설령 후자라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으리라.

노골적으로 힘을 드러내고, 전력을 다해도 꺾을 수 없었던 존재가 루드벨로트였다. 고작 함정 따위가 어찌할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루드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자신을 봉인한 무언가 뿐이었다. 아무리 그 정체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한들, 적어도 이런 조그마한 변방 국가의 일개 영지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건 분명했다.


‘그나저나······.’


크리스라는 대역까지 세워가며 나름 티 안 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심받은 것은 조금 의외였다.


‘좀 더 철저했어야하나. 아니면 처음부터 역시 헤이우드로 갔어야했을지도.’


······.


‘아니, 그래도 역시 그건 아니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헤이우드는 확실히 갈만한 곳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신의 시종이라는 것도 문제였는데, 헤이우드로 갔다면 더욱 노골적으로 루드를 쫓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세토라에서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때는 앞서처럼 엔테가 나서서 루드를 챙기진 못했으리라.

물론 그녀가 챙기지 못해도 루드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했으리라. 여차하면 전멸시켜버려도 무방하니까.

하지만 새로운 술수를 준비해야한다는 것에서 이미 부담이 커진다. 그는 같은 결론이라면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쪽으로 행동할 생각이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루드는 어느새 중앙광장에 도착했다.

걸음을 멈춘 루드는 주변을 돌아봤다.

린드버클을 공격하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이 움직인다면 반드시 지나가게 되는 광장이었다.

그리고 냄새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곧 사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병사들 가운데 사제의 복장을 한 자들이 여럿이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악마가 있었을 줄이야.”


앞쪽에서 나타난 중년의 남자-안센이 기쁨과 놀람의 목소리로 루드를 맞이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루드는 모른 척하며 그렇게 대답했지만 정말로 속일 생각으로 던진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려던 것뿐.


“시치미 떼도 소용없다. 네놈에게서 풍기는 악취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하니까. 어서 인간 연기는 그만두고 네 추악한 본모습을 보여라 악마!”


안센의 말과 함께 광장 거의 전체에서 밝은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법진의 작동이었다.

그것에 반응해 루드는 몸에서 마력이 새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처음의 예상이 맞았군. 예상대로 악마를 감지해내려는 술식이었나.

이런 곳에서 만약 공녀와 계약한 계약 악마가 그 이형의 모습을 드러냈으면 좋은 볼거리가 됐을 것이다.

물론 루드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지만.


“뭐, 뭐냐. 이 녀석 모습이 안 바뀌잖느냐?”


루드의 모습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자 안센이 당황하며 주변의 사제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 중에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안센이 분한 듯 다시 외쳤다.


“칫! 모습은 상관없다! 이 놈을 붙잡아라! 신성한 우리에 가둬서 놈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매달아 두고 공녀와의 관계만 증명하면 된다!”



“네놈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실수라는 걸 알아둬라.”

“과연 실수일까?”


루드는 씨익 웃었다.


“너희들은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나?”

“곧 세상에서 사라질 녀석의 이름 따위 관심 없다.”

“본인의 소개는 생략하겠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듣지. 물론 네놈 같은 하등 종족의 소개 따위는 관심 없긴 하다만.”


안센은 쯧하고 혀를 찼다. 악마 따위와 농담을 주고받을 생각은 없었다.


“네놈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뒀지.”


바닥의 마법진이 더욱 격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과연.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술식만 깔아둔 건 아니라는 건가. 준비성은 칭찬해주지.”


이윽고 광장 중앙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치솟음과 동시에 거대한 무언가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커다란 입과 날개를 가진 네 발 달린 짐승의 모습이었다. 마치 갑옷을 두른 것 같은 몸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성수(聖獸)인가.’


사람과 비슷한 안면부와 기괴하게 거대한 입. 거기에 달린 날카로운 이빨 등, 차라리 괴물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은 외형이었지만 분명 성수라고 부르는 것들이었다.

다만 처음 보는 형태였다.

그는 과거 정복 전쟁을 통해 수없이 많은 성수들을 상대해봤다.

성수 소환의 기초가 되는 녀석들부터 교황의 이름으로만 소환되는 최상위 성수까지, 심지어 다수의 사제들이 순교까지 해가면서 소환한 금단의 성수까지도.

그럼에도 처음 보는 녀석이 있다는 건 조금 흥미가 생기는 부분이었다.

루드는 생각해볼 수 있는 최악의 가정까지 떠올렸다.

혹시 지금의 시대가 그때보다 신성주문만이 파격적으로 발전해서 더욱 상위의 성수를 소환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건 아닐까 같은.


“가라 마프리스! 악마를 네 먹잇감으로 만들어라!”


안센의 명령에 맞춰 성수 마프리스가 거대한 입을 통해 빛을 토해냈다.

브레스인가.

정보가 없는 만큼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드는 쏘아진 브레스를 크게 움직여 피했다.

이어서 손끝에 모은 마력을 탄환처럼 성수를 향해 쏘아 날렸다.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둔한 건지, 마프리스는 루드가 쏜 마력탄에 피하려는 동작조차 없이 그대로 명중했다.

그러나 마프리스는 조금도 타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버틴 건가?”


아무리 가볍게 쐈다지만 공국 최고 중 하나라고 칭송받던 가레스의 머리통을 한 방에 날렸던 위력이었다.

분명 성수 같은 것들이 밤과 어둠의 종족들을 상대로 우세한 상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예상 밖이었다.

정말로 더 상위의 존재인가?


“와하하하하핫! 보았느냐, 마프리스의 힘을! 너희 같은 놈들을 상대로는 무적이다!”


안센은 큰소리로 웃어젖혔다.

루드가 크게 당황하고 있을 거라고, 성수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절망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런 생각이었다.

루드는 그런 안센을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딱히 놀란 건 아니다만.”


그 태도가 못마땅한 안센이 더욱 큰소리로 외쳤다.


“허세 부리지 마라!”

“과연 그럴까?”


루드는 손 안에 검은 구체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며 주변에 사악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것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완성시키면 안 되리라는 것은 안센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고, 공격해! 놈이 주문을 완성시키지 못하도록 막으란 말이다!


그의 신경질적인 명령에 따라 그를 에워싸고 있던 사제들도 일제히 신성주문을 준비했다. 짧게 준비할 수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공격들로.

곧 수십 개의 빛의 탄환들이 어지럽게 그를 향해 날아갔다.

안센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루드가 설령 예상 밖의 대악마라고 이 정도의 공격을 정면에서 버티는 건 쉽지 않았으니까. 최소한 놈이 준비하는 주문이 붕괴될 것이고, 그 후에는 마프리스가 상대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빛의 탄환들은 그에게 닿지도 못했다.

안센이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루드의 몸 주변에 반투명한 막이 생성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가 먼저 준비하고 있던 마법은 아직도 영창 중이었다.


“이, 이게 대체!?”


안센은 기절할 지경이었다.

모든 신성 탄환을 막아낸 것을 보면, 그가 지금 사용한 보호막만 봐도 예측컨대 3성 수준의 마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무영창으로 사용된 것이다.

심지어 다른 마법을 영창 중에 말이다.

다시 말해 이중 영창.

마법이라는 건 대단히 복잡하고 예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중 영창의 난이도는 단순히 마법을 두 번 사용한다는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1성 마법 두 개를 이중 영창하는 것은 최소 3성 마법을 영창하는 것에 비교될 정도다.

3성 마법 두 개를 이중 영창하는 것은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난이도였다.

아무리 악마들이 태생적으로 마법에 더 가깝다지만, 이것은 그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 버린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아직도 영창이 이어지고 있는 저것은 3성 마법이 맞기는 한 것인가?

이윽고 루드의 손에 모인 사람 머리만한 검은 구체가 마프리스를 향해 쏘아졌다.

금단의 성수마저 단숨에 집어삼켰던 10성의 마법인 ‘파멸의 구’였다.

마프리스가 구체를 향해 커다란 입을 벌려 광선을 토해냈지만, 끝 모를 구덩이 속으로 물을 흘린 것처럼 아무런 저항현상조차 없이 삼켜질 뿐이었다.


“아, 안 돼······!”


안센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구체는 그의 자신감이었던 성수에게 꽂혔다.


!!!!


마프리스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관통 당했고, 이윽고 발생한 폭발적인 마력에 의해 몸이 소멸되어버렸다.

빛 한 점조차 남기지 않고 마치 이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성수가 내뿜던 빛이 사라지며 중앙광장은 다시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것은 이곳에 모인 인간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안센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루드가 천천히 안센에게 다가갔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인지 안센은 도망치려는 기색도 없이 그를 텅 빈 눈으로 응시했다.


“대, 대체 네놈은, 네놈은 누구냐······.”

“루드벨로트.”


안센은 당황스러운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주위의 사제들 역시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모르는 모양이군.”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건가, 지금의 시대는.


“그럼 저승에서는 꼭 기억해두도록 해라.”


루드에게서 쏟아져 나온 선혈의 마력이, 사제들을 죽음으로 인도했다.


작가의말

조금 늦었습니다.

내일은 최대한 제때 올리는 걸 목표로...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과 덧글도 살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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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2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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