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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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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6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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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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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DUMMY

같은 시각, 루드와 엔테는 세토리온-플리온 공국의 수도이자 세토라가 위치한 도시-외곽에 놓인 한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루드는 당연히 도망치기엔 민가의 골목길을 경유하는 편이 낫다고 권했지만,


“크리스를 만나야 해. 믿을만한 기사란 말이야.”


라고, 엔테가 고집을 부렸던 탓이었다.


‘뭐, 큰 상관은 없나.’


어차피 숨어서 이동하는 것도 그저 정론일 뿐이었다. 루드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광장을 걸으면서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냥 따르기로 했다.

광장은 고요했다.

깊은 밤인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불길한 징조를 알아챈 주민들이 문을 걸어 잠근 탓이 분명 있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의 인기척이 나타났다.

성 쪽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니 추적자일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한 사람.


‘이 계집이 기다리고 있던 녀석인가.’


루드가 그런 것을 파악하는 사이, 엔테는 환하게 웃으며 새로운 얼굴을 향해 뛰쳐나갔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이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그녀가 가장 믿고 있던 기사였다.


“크리스! 역시 와줬구나!”

“엔테님! 무사하셨군요!”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앳된 얼굴의 기사였다.

엔테보다 조금 밖에 크지 않은 키. 갑옷을 입고 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체구도 왜소한 편인 게 분명했다.


‘이쪽도 미성숙한 개체인가.’


전혀 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루드가 생각하는 강함의 기준이 적어도 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 수준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사리 분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당장 앞서 머리통을 날려버린 기사에 비해서도 현저히 떨어지는 기량이었던 것이다.


‘믿을만하다는 건 순수하게 충성심에 대한 거였나.’


루드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천천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크리스라는 기사가 그를 경계했다.


“웬 놈이냐!”


검을 뽑아들어 그에게 겨눈 것이다.

그것은 본능적인 위협이었다. 마치 가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크리스 역시 그에게서 무시하지 못할 기운을 느낀 것이다.


‘감각은 날카로운 녀석이군.’


왜소한 겉모습에 비해 눈빛은 살아있다. 아마도 정신력은 강한 편이리라.

엔테는 크리스의 경계에 깜짝 놀라며 팔을 휘저었다.


“크, 크리스! 내가 성 밖으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야!”

“윽! 실례했습니다!”


다행히 크리스 역시 단번에 상황 파악을 마쳤다.


“엔테님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스라고 합니다.”

“용병인 루드라고 합니다.”


루드는 크리스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마치 인간의 예절을 배운 것 같은 그 모습을 보며 엔테는 조금 놀랐다.

그녀에게 어떻게 자신을 소개할 지 알려준 것도 그렇고, 루드는 인간 사회의 파악이 대단히 빠른 것처럼 보였다.


‘오래 봉인된 악마 주제에 제법이네.’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훨씬 중요한 일이 그들에게 닥쳐 있던 것이다.


“근데, 크리스. 혼자야?”


엔테는 주변을 돌아봤다. 여전히 광장은 고요했다.

그녀가 던진 질문의 진의를 파악한 크리스는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도저히 병사들을 모아올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주눅 든 크리스를 걱정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불안감은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두 사람의 힘만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일단은 움직이시죠. 제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계획은 있어?”

“헤이우드에 일단 의지하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윽······. 헤이우드 후작······.”


엔테가 노골적인 거부감을 내비쳤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루드에게 인간의 사정 따위 아무래도 좋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에는 엔테를 이용해야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엔테에게 질문한다.


“그분에게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야. 그래······. 헤이우드에 가, 가자!”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한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이전까지 엔테와의 대화에서는 알 수 없던 인물이었다.

그래도 후작. 인간들의 사회에서는 제법 위세가 좋은 존재인 게 분명하다. 심지어 이 자그마한 공국에서의 후작이다.

정세는 조금 파악해두는 게 좋겠지.


“헤이우드 후작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루드가 크리스를 향해 묻자 그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플리온 공국에서 그를 모른다는 사실은 제법 이상한 일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루드가 용병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일까. 크리스는 나름 납득한 것처럼 표정을 돌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공국 최고의 명장이자, 엔테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신 분입니다. 특히 헤이우드는 이곳 세토라와 거리가 가까워 지금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주실 분이시죠.”

“나, 나도 그 정도는 알아! 하지만······.”


곤란한 눈으로 루드를 바라봤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크리스의 설명대로라면 무엇이 문제일까 싶을 정도였다.


“뭔가 문제라도?”

“나랑······.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대가로 결혼을 요구하는 건가요?”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거절하면 큰 결례가 될 것입니다.”


크리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결례라니. 인간들은 정말 쓸데없는 것을 신경 쓰면서 살아간단 말이지.


“그건······, 아는데······.”


엔테가 말을 질질 끌었다. 보다 못한 루드가 직접적인 질문에 나섰다.


“특별히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신지? 혹시 추한 외모를 갖고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이실 뿐 아니라, 기사도에 입각한 매너로 수없이 많은 여성분들의 구애를 받으셨던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10년, 일편단심으로 엔테님이 성년이 되시기만을 기다리신 분이죠.”


눈치를 봐서 크리스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잘 생기고, 매너 좋고, 일편단심이기 까지 하다는데, 정략결혼이라는 것 치고는 대단히 매력적인 조건이 아닌가? 인간이 아닌 루드조차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엔테에게도 명확한 이유는 있었다.


“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멋졌던 건 30년 전 이야기잖아! 그때 난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엔테는 마치 말려달라는 듯 루드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헤이우드 후작은 말이야, 벌써 50살이나 먹은 아저씨라구! 아저씨!”


50살? 어린애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인간의 수명이 어느 정도였지? 100년이 채 안되던가? 음? 엔테의 나이가······?

······.

과연······.

그렇단 말인가. 이해가 되는군······.

6살짜리, 미성숙한 수준을 넘어선 여자를 보고 40대의, 인간으로서 중년인 남자가 첫눈에 반해서 10년을 기다렸다는 소린가······.

악마와 인간의 감성에서 느끼는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에 대해서 잘 아는 그였던 만큼 뭐가 잘못된 건지는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엔테님의 조부이신 엘로인 3세께서도 그 정도 연세에 공비 전하를 만나 노티어스님을 자녀로 두셨습니다.”


크리스는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았다.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실 루드 입장에서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권할만한 부분도 있었다.


“어차피 군주는 후계를 위해 자식을 낳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자, 자식!? 그 아저씨랑!?”

“아직 한창이십니다.”


엔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결혼에 찬성하는 것도 충격적인데 자식이라니······. 16살의 꽃다운 소녀에게 50살 할아버지와 자식이라니!

거의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루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네. 누군가와 혼사를 치러야한다면 그 정도로 좋은 조건도 보기 드물 것 같습니다만. 이러한 시기에도 그런 유력 가문이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경우는 흔치 않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녀의 입지는 안정적이게 된다. 그러면 그녀를 위해서 루드가 힘껏 신경 쓸 일도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루드로서도 이 세상에 대해 조사하는 것도 편해질 것이다.

물론 그녀의 결혼에서 딸려오는 정치적인 문제가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신경써야할 이유 따위 그에게는 그다지 없었다.


“······.”


엔테는 입을 벌린 채 굳어버렸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

그래.

목숨과 가문을 보전하기 위해 악마와도 계약했는데 겨우 아저씨와의 결혼이 대수란 말인가.

애정도 무엇도 없이 정략결혼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그래도 그 아저씨는 진심이다. 원한다면 옆 나라와 전쟁이라도 해줄 정도였다.


“엔테님과 나이차가 다소 있으신 건 맞지만, 그래도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게다가 귀족분들 중에 그렇게나 독실하게 신을 섬기는 분도 드물죠.”


잠깐, 신이라고?

크리스는 헤이우드를 좋게 꾸미기 위해 덧붙인 말이겠지만, 루드에게는 완벽하게 역 효과를 낳았다.


“헤이우드 후작님이 독실한 신자십니까?”

“네, 무슨 문제라도?”

“아뇨, 그럴 리가요.”


아니, 문제가 많다.

독실하게 신을 섬기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신의 시종들과 접점이 커진다.

그런 녀석들 한둘 따위에 어떻게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봉인시킨 인물과 접점에 대해선 의심해야만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선 언제가 조사해야할 부분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쪽에서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생리적인 거부감이······.


‘이 결혼, 나는 반대다.’


작가의말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확인해보니 다음에 올릴 편이랑 착각했네요.

확인 안했으면 큰일 날 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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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잠시 헤어져 있어야할 때 +3 19.04.30 89 2 9쪽
31 소녀는 악마에게 기대어 선다 +4 19.04.29 94 4 11쪽
30 결국에는 원하는 대로 되었다 +2 19.04.26 98 3 11쪽
29 용기를 내는 방법 +2 19.04.25 103 2 10쪽
28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2 19.04.25 90 3 10쪽
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0 2 11쪽
26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9 3 9쪽
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7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4 3 8쪽
20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1 4 10쪽
19 반역자에게 심판을 (4) 19.04.18 193 4 9쪽
18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2 3 9쪽
17 반역자에게 심판을 (2) 19.04.17 190 2 11쪽
16 반역자에게 심판을 (1) 19.04.17 170 3 9쪽
15 반역자의 준비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16 170 3 10쪽
14 욕망의 신하 19.04.16 258 3 9쪽
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9 3 10쪽
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11 세토라 탈환 (2) 19.04.14 168 3 10쪽
10 세토라 탈환 (1) 19.04.14 196 2 10쪽
9 엔테의 결심 (2) 19.04.13 195 3 8쪽
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3 3 7쪽
7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2) 19.04.12 241 3 9쪽
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3 4 10쪽
4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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