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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6,487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11 12:15
조회
329
추천
5
글자
11쪽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DUMMY

“그나저나 이제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군.”


루드가 중얼거리듯 이야기했다. 그는 좀 전까지 엔테에게서 그녀가 처한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다.

변방의 소국. 그곳의 예비 군주인가.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유한 정보량도 적당하면서 자신을 숨기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처한 ‘사소한 문제’ 역시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겠지.

뭐 그녀에 대한 건 이쯤 해두고, 이젠 질문을 바꿔보자.


“혹시 나를 봉인한 자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질문에 엔테의 눈빛이 흔들렸다.

경계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긴 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노골적이 되어 있었다.

이야기해줘도 괜찮은 걸지, 혹시라도 나쁜 마음을 갖고 물어보는 건 아닐지.

잠시 망설이다가 엔테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그녀가 가진 경계심과는 별개로, 모르겠다는 건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네 가족이 아닌 건가?”

“그것도 잘······.”

“흠······.”


봉인된 악마가 누군지도 모르고, 봉인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지키고 있었다는 건가.

그 사실이 이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러 숨기고 있거나 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혹시 내가 봉인되고서 얼마나 지났지?”

“음······, 20년? 아니 30년? 아니, 아니 100년? ······ 솔직히 잘 모르겠어.”


대충 던져봤지만 역시 본인도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는지 결국 모른다고 선언해버렸다.

봉인 시기조차도 모른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가 알고 있는 인간은 하등한 종족이기는 해도 다른 종족에 비하면 문화 수준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히 기록을 남기는 것에 관해선 상당한 수준으로, 자신들의 길지도 않은 역사를 일일이 기록해서 자랑할 정도니까.

그렇다는 건 역시.


“혹시 책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가? 책에는 훌륭한 지식들이 많이 들어있다만.”


발끈.


“누굴 바보 취급하는 거야! 내가 널 어떻게 소환했을 것 같아!? 악마에 관한 책이라면 지겹도록 읽었다구! 근데 말이야! 너 같은 하급 악마 따위에 대한 기록은 없어! 없다구!”


지금까지의 조심스러운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엔테는 갑자기 폭발해버렸다.

하급 악마······.

루드는 왠지 현기증이 느껴졌다.

아무리 화나서 하는 소리라지만, 마왕 루드벨로트가 이런 하등 종족의 미성숙한 개체에게 하급 악마 같은 소리를 들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이건 예상보다 타격이 좀 있었다.

이걸 확······.

하지만 루드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잡았다.

이곳에 마왕 루드벨로트는 없다. 계약 악마 루드가 있을 뿐이다.


“의미는 이해했어. 앞으로 차츰 알아가야겠지.”


딱히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중립적인 태도. 하지만 엔테는 영 못마땅했는지 ‘흥!’하고 콧소리를 냈다.

이런 별 것도 아닌 것에 감정소모를 하는 건가. 하여간 인간이란 것들은······. 그래도 묘하게 그녀의 경계심이 낮아진 듯 보이는 건 이득이라면 이득이었다.

어쨌거나 봉인된 지 최소한 수십 년은 지났다는 건가.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변화는 작지 않을 것이다. 대륙 전체가 자신이 있던 시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수도 있다.

자신을 봉인한 존재에게도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더욱 강력해졌을 수도, 혹은 이미 세상에서 없어졌을 수도.

처음의 예상보다 정보가 더욱 많이 필요해졌다. 그걸 위해서라도 인간들 사이에 더욱 더 깊이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겠지.

그렇다면 우선 인간들 사이에서의 자신을 정하자. 보통의 인간에게도 계약 악마 루드로 소개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너, 나를 어떻게 소개할 생각이지? 계획은 있어?”


엔테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설마 했지만 예상대로였나. 경황이 없었을 테니 무리도 아니긴 했다.


“그······, 그러니까······.”


엔테는 곤란한 시선을 루드에게 흘렸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기보단 그냥 버릇. 지금까진 항상 누군가를 의지해왔던 탓이겠지.

직접 물어본다면 그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다고 할 게 분명했다. 자신을 바보 취급 했으니까.

그래도 여기선 조금 도와주는 편이 좋았다. 조금이라도 신뢰를 더 얻어놓는 게 좋기도 했고, 무엇보다 루드 자신의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네 아버지는 자신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에 대비를 하려고 했지. 하지만 눈에 띄게 준비하면 반감을 살 수도 있으니 용병들을 몰래 고용해둔 거야.”

“용병?”

“그래. 나는 다양한 마법을 익힌 방랑 용병 루드. 중개인을 통해서 플리온 공국의 공녀가 무사히 공위를 물려받도록 보호하라는 ‘계약’을 맺었지.”


마치 실제 두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동료 몇 사람과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차에 결국 오늘 일이 벌어졌고, 우리는 계약대로 너를 탈출시키는 것엔 성공했지만 살아남은 건 나뿐이었다. 기본은 이렇게 정하고 나머지는 차츰 살을 붙여나간다는 걸로 어떨까. 물론 네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겠지.”


엔테는 솔직히 놀랐다.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 그래서 무심코 들었으면 자신도 별다른 의심 없이 지나쳤을 법한 그런 이야기.

어째서 인간이 아닌 그가, 이렇게나 인간처럼 자신을 꾸밀 수 있는 걸까.

묘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가 내놓은 해답이 무척 그럴싸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


“응, 그렇게 해.”


어차피 그와의 관계는 실제로도 계약 관계.

이번 일만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세토라의 중앙문 앞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한 가운데에는 그 무리를 이끄는 자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말 위에 앉아있었다.

화려한 갑옷을 둘러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남자는 레이몬드였다.

플리온 공국의 권신이자 플리온 공작가의 혈통을 갖고 있는 자로, 공국의 새로운 군주를 노리고 있는 남자였다.

레이몬드는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참기 힘든 초조함이 숨어있었다.


‘가레스가 돌아올 시간이 한참이 지났다.’


엔테의 시체를 들고 오든, 빈손으로 오든, 진작에 돌아왔어야만 했다. 설마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그의 실력을 생각하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상황이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잠시 후, 성 쪽에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백작니이이임!”


백작은 레이몬드를 일컫는 말이었다.

돌아온 것은 가레스가 아닌 성 안으로 돌입했던 병사 중 한 사람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페, 페르디언님의 부대가 전멸했습니다!”

“뭐라고!?”

“누, 누구에게 말이냐!”


깜짝 놀라며 되묻는 것은 레이몬드의 옆에서 나란히 말을 타고 있던 기사였다. 벌써 흰머리가 희끗희끗했지만 두 눈만은 생기가 가득한 남자였다.

레이몬드의 오른팔이자 오랜 친우인 아르곤이었다.

공국에서 손꼽히는 장군이자 지략가로 이번 사건의 전반적인 계획을 수립한 사람이었다. 거사의 날을 정한 것도, 실제 병력의 배치를 정한 것도 그였다.

그런데 자신이 계획이 틀어졌으니 가장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근위병들의 저항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일단은 프란시스님이 부대를 갈라서 다시 수비를 하시기로 하셨습니다만······.”


아르곤은 소리 없이 신음했다.

이럴 수가. 내 예측이 틀렸단 말인가······.

그는 세토라를 벌써 30년이나 지켜봤다. 성 내부의 사정쯤은 훤했다.

어떤 기사들이 성을 지키고 있고, 어느 곳에 대략 몇 명의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는지 모두 꿰고 있었다.

그리고 그 3배에 달하는 병사를 동원했다. 가레스를 비롯한 공국에서 쟁쟁하다는 기사도 몇 명이나 투입됐다.

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난을 떤 것은 일의 중요함 때문이었다. 모든 변수를 차단해야만 했으니까.

어느 정도 예상을 넘어서는 저항까지 계산에 뒀다. 결사대가 생각 외로 선전할 수도 있었고, 예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는 공왕파의 기사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일어나봐야 페르디언을 비롯한 포위 병력에 막혔어야만 했다. 헌데 전멸이라니······.


“공녀는! 엔테는 어떻게 됐지!?”


레이몬드가 흥분해 소리 질렀다.


“그, 그건 아직 확인이······.”

“당장 성안을 샅샅이 뒤져! 어서 내 앞에 공녀의 목을 갖고 오란 말이다!”

“아마도 이미 빠져나갔을 겁니다. 그걸 위한 혈로겠죠.”


분노한 레이몬드를 말리듯, 다른 기사가 하나 끼어들었다.

기사의 이름은 핸슨. 보통 사람보다 머리 두 개쯤은 더 클 정도인 거구의 남자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공녀를 놓쳤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아르곤!”

“면목 없습니다······.”

“백작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번 일의 책임은 아르곤님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르곤님이 어떤 분이신데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그자들이 일을 그르친 게 분명하죠.”


깊은 혼란에 빠진 아르곤에게 핸슨이 손을 내밀었다. 그는 지금 일어난 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머금은 채 이야기했다.


“페르디언 그 자는 항상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자입니다. 그리고 가레스 그 놈은 본질이 천한 녀석이죠. 어쩌면 공녀에게 매수당해 탈출을 도왔을지도 모를 일 아니겠습니까.”


평소의 레이몬드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그의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성격에 대해 한 소리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일어나버렸고, 핸슨은 자신에게 남은 몇 안 되는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방법이 있겠나?”

“제 부하 중에 추적술이 뛰어난 녀석들이 몇 있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시면 꼭 공녀의 목을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가레스 그 놈이 공녀의 탈출을 도왔다면 그 녀석의 목도 베어오겠습니다.”


그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태도는 이미 모든 일이 해결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필요한 곳에 줄을 대고, 경쟁자는 비방하며, 자신의 공은 티나게 만든다.

지극히 정치적인 제스처이긴 했지만, 단지 말뿐인 것은 아니었다. 특유의 거만하고 타인을 헐뜯는 태도 때문에 저평가 되었을 뿐, 실력만큼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강자였다.

그의 존재는 지금의 레이몬드에게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하마터면 어린아이처럼 환호할 뻔 했다.

레이몬드는 애써 근엄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핸슨에게 명했다.


“알겠네. 가서 공녀를 붙잡아 오게. 나는 아르곤 경과 함께 성 안의 문제를 먼저 끝내도록 하지.”

“예! 맡겨 주십시오!”


핸슨은 그대로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말을 몰았다.


작가의말

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머리도 잘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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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2 19.04.25 90 3 10쪽
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0 2 11쪽
26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9 3 9쪽
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6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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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욕망의 신하 19.04.16 25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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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5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2 4 10쪽
»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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