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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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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464

작성
19.04.2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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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DUMMY

집무실에는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플리온 공국의 주축이 되는 여섯 영지 중 린드버클을 제외한 세토라, 헤이우드, 헬드, 가드런, 엔트로스, 그리고 그 외의 자그마한 영지를 대표하는 자들이었다.

엔테가 린드버클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는 회의를 소집한 탓이었다.


‘의외로군. 이렇게 빨리 고민을 마칠 줄이야.’


헬드를 대표하여 온 알버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엔테가 회의를 다시 소집한 것은 홀에서 해산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굳이 고민을 해보겠다며 뒤로 미뤄놓은 것치고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 다른 영지의 기사라도 만날 줄 알았더니······.’


그녀 자신은 정치 경험이 사실상 전무한데다, 세토라의 노련한 기사와 행정관들이 레이몬드의 반역으로 인해 거의 다 목숨을 잃은 탓이었다. 괜히 지금 이 자리에 세토라의 기사가 아무도 없는 게 아니었다. 겨우 오늘 회의를 기록으로 남길 뜨내기 행정관 정도일까.

그래서 알버스는 세토라와 가까운 영지인 가드런의 기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드런은커녕 다른 어떤 영지의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녀는 그 시간 내내 영주의 방 안에만 틀어박혀있던 것이다.

그럼 그녀가 만난 사람이라고는 과로로 쓰러졌다던 세토라의 애송이 기사정도.

그녀에게 고용되었다는 용병이 크리스를 옮기느라 몇 분 정도 엔테와 함께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고민이 짧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저 잠시 도망쳤을 뿐이었나. 역시 어린애인 걸지도.’


아니, 잠깐.

알버스는 문득 다른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냈다.

성에 들어오면서 노먼이 그녀에게 권했던 것이 있다. 바로 뒤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내용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는 뻔하지. 린드버클을 자신의 영역에 두려고 했을 것이다.


‘혹시 그것을 그대로 읊을 생각인 건가.’


노먼과 엔테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가장 그럴싸한 판단이었다.

심지어 이번 일에 대해 어쨌거나 영주들에게 공을 돌리자면 아슬아슬하게 그가 1번이다. 가장 많은 병력은 자신이 끌고 왔다고 해도, 후작쯤 되는 자가 직접 병력을 끌고 가장 빨리 도착했으니까.

하지만 노먼 본인이 같이 있는 자리라면 모를까, 이곳에 남아있는 헤이우드의 기사들은 노먼을 대신할 정도의 실력과 영향력이 없다.

그들은 사실상 회의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노먼에게 전달하는 게 주 목적인 자들.

그에 비해 알버스 자신은 이 자리에 모인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기사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기회는 충분히 있으리라.


‘이거 어쩌면 이야기가 잘 풀릴 수도 있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알버스는 마음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곧 엔테가 집무실의 안으로 들어왔다.

알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엔테에게 플리온 공작에게 보내는 것과 거의 동일한 예우를 보였다.

아직 대관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주변의 다른 노련한 기사들 역시 그것을 지적하기는커녕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동일한 예우를 보였다.

조금 당황한 듯 떨떠름하게 있던 상대적으로 경험이 짧은 기사들도 뒤늦게 그들과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그녀가 플리온 공작이 되는 것은 이미 확정이었으니까. 그것도 겨우 수일 내로 말이다.

예전의 엔테였다면 크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으리라.

물론 지금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고 부담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고 태연히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그 이면에 정치적인 제스쳐가 숨어있다는 것 역시 이젠 조금 눈치 챌 수 있었으니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그것은 루드가 마지막까지 가장 강조한 사실이었다. 그것을 엔테는 몇 번이고 되뇌고 있었다.

처음 홀에 모였을 때처럼 여전히 이곳에는 루드가 없다.

크리스 역시 없다. 물론 그녀가 어떤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는 않았겠지만 곁에 있었으면 긴장이라도 덜 했겠지.

하지만 없다. 이번 일은 온전히 엔테가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상대는 얕든 깊든 정치에 적어도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씩 발을 담근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노먼 정도로 거물급은 아무도 없었고, 적어도 주도권 자체는 그녀에게 있다는 점이었을까.

엔테는 긴장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는 것도 참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리고 그녀의 결정은, 알버스를 비롯한 다른 기사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


“린드버클은 내가 직접 관리하겠어요.”


기사들이 술렁였다.

당연히 노먼에게 공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당황스러움과는 별개로, 이것은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다른 영지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헬드의 알버스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알버스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번 일에서 공녀님께서 보여주신 용기와 지혜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공위에 오르셔서 펼칠 치세가 기대되는 바, 두 곳의 영지는 물론이고 공국 전체를 다스리시기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버스는 그녀를 높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주도권을 지닌 것은 엔테니까.

하지만 목적 또한 분명하게 드러냈다.


“허나 공녀님께선 이번 일로 혼란에 빠진 수도를 안정시키시는 것이 가장 우선하셔야 함이 옳으실 터이니, 이곳의 일은 다른 영주에게 맡기시는 게 어떠실까 합니다.”

“그래서 린드버클을 헬드 백작님께 맡기라는 겁니까?”


알버스를 향해 그렇게 비꼬듯 묻는 자는 그가 원래 견제하고 있던 가드런의 기사였다.

기사의 말에 알버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다른 녀석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군.

하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차분히 반문했다.


“물론이지요. 헬드는 린드버클에서 가장 가까운 땅이고, 군사들 또한 잘 훈련되어있지요. 게다가 백작님은 공녀님도 아시는 바와 같이 높은 명망을 지닌 분입니다. 이런 일에는 당연히 헬드 백작님이 적격이지요.”

“그렇게 말씀하시기에 헬드 백작님은 군사를 다루는 것에 너무 과하게 신중하신 게 아닐까 우려됩니다. 말씀하신대로 헬드는 린드버클에서 가장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에 가장 소극적이지 않았습니까? 레이몬드의 반역 소식을 들었다면 곧장 린드버클을 함락시켰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헬드 백작님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거요!? 수도를 지키고 공녀님을 지키는 게 당연히 우선 아니오! 오히려 가드런이야말로 세토라에서 가까운 주제에 헤이우드보다도 훨씬 늦게 도착하지 않았소!”


알버스의 격한 발언을 시작으로 각 영지의 기사들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가장 큰 축은 헬드와 가드런이었지만, 다른 영지의 기사들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의 기사들이 싸움을 말리려 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려는 그때, 엔테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큰소리로 기사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그래서 경들의 생각은 내가 린드버클을 통치하는 것에 반대하는 건가요?”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는 직설적인 질문.

엔테가 이어서 이야기했다.


“레이몬드의 반역에서 세토라를, 그리고 공위계승자의 자리를 지켜낸 것으로는 부족한가요?”

“아, 아니 그런 뜻이라기 보단······.”

“후일 공녀님께서 안정적으로 기반을 잡으신 후가 어떠실까하고······.”


많은 기사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알버스만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공녀님께서 보여주신 용기와 지혜에 대해서는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실로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통치와는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는 바입니다. 레이몬드의 역모로 세토라의 많은 기사들과 행정관들이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까? 우선은 그 빈자리부터 채우시는 게 어떠신지요.”


알버스가 지적한 부분만큼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나섰다가 최고 권력자인 엔테의 눈 밖에 나거나 다른 영지의 견제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럼 이제 선택을 할 차례였다. 알버스를 비난하여 헬드를 견제하거나, 그에게 동조하여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리거나.

재빨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알버스와 가장 심하게 논쟁을 벌였던 가드런의 기사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겠습니까. 다른 영지들은 군사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여유가 조금 있으니 각 영지에서 일단은 분할해서 통치하는 것이지요.”


사실상 알버스에게 동조하는 방향이었다. 어차피 그를 견제해봐야 결과적으로는 엔테에게 무게만 실리고, 그러면 정말로 린드버클 영지 전체가 그녀의 직할령이 된다. 그러면 얻을 게 별로 없어지는 것이다.

알버스가 처음에 너무 큰 욕심을 보여서 그렇지, 사실상 각 영지들에겐 이게 가장 좋은 방향이리라.

가드런까지 그렇게 선회하자 다른 지역들 역시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이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엔테에게 쏠렸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


엔테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같은 흐름은 이미 예상하기도 했던 부분이고, 그에 대응할 것도 생각해온 참이었다.

다만 분위기에 조금 기가 눌린 것이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겨우 얼마동안 조언을 들은 것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기사 하나가 집무실의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할 것이 있다고 소리친 것이다.

엔테가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자 기사는 자신을 짤막하게 소개한 뒤 이야기했다.


“지금 기사들 사이에 큰 시비가 붙은 것 같습니다.”


작가의말

칼보다 말이 빠른 기사들도 있습니다.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을 올렸기 때문에 저녁 7시에 한 편 더 올리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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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결국에는 원하는 대로 되었다 +2 19.04.26 98 3 11쪽
29 용기를 내는 방법 +2 19.04.25 103 2 10쪽
»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2 19.04.25 91 3 10쪽
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0 2 11쪽
26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9 3 9쪽
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7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4 3 8쪽
20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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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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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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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토라 탈환 (1) 19.04.14 196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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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3 3 7쪽
7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2) 19.04.12 241 3 9쪽
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5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3 4 10쪽
4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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