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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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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0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2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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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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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DUMMY

그 정체를 파악한 루드는 태연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가레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빛의 갑옷을 두른 기사였다.


“주군께 인사 올립니다.”


가레스는 루드를 향해 군주를 대하는 예를 올렸다. 지금 그에게 루드는 단순한 영주를 넘어선 존재였다.


“일어서라.”

“예.”


죽음의 기사로 다시 태어난 그는 루드의 부하가 되어있었다.

세토라를 탈출할 때 사용한 사령술로 만든 어설픈 병사와는 전혀 달랐다. 본질은 바뀌었을지언정, 지식과 판단력 등은 생전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가레스의 영혼을 불러내 마왕의 힘으로 직접 충성의 서약을 맺게 하여 그를 부하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서약을 맺은 것은 루드가 자신이 봉인되어있던 제단을 조사하던 때였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때, 덩그러니 놓인 그의 시체를 보며 크리스가 했던 말을 깨달은 것이다.

은색 갑옷의 기사.

흔한 색상이기 때문에 그 표현 자체로는 구분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덤벼들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 것이다.

비록 그의 입장에서 지금껏 만난 모든 인간이 똑같이 개미 같은 강함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녀석들과 비교해보니 자신에게 처음 덤벼들었던 이 은색 갑옷의 기사가 그나마 눈에 띄는 강함을 보여줬던 것이다.

그래서 가레스인 것을 확신하고 그의 영혼을 불러낸 것이다. 유용하게 부릴 곳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찰을 좀 했으면 한다. 너를 따라가는 것으로 해두지.”

“예.”


가레스는 주군의 명에 따라 앞장섰다. 타인의 눈에는 마치 루드가 가레스를 따르는 부하처럼 보일 것이다.

가레스가 그를 따르는 것은 단순히 서약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가레스가 서약을 맺게 된 것은 본질적으로 그 본인이 선택한 것이었다.

가레스는 루드의 본질, 아니 루드벨로트의 본질을 보았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있다면 바로 그였다. 자신의 존재에 물음을 갖게 될 정도로 너무나 강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다.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을까.

경외심.

가레스는 루드에 대한 그런 감정으로 그의 부하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의지로 말이다.

본청을 빠져나오자 성벽 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올라가보니 가레스를 알아본 사람들이 그에게 인사하며 길을 열었다. 그들은 대부분 린드버클의 병사나 행정을 맡고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다.

가레스와 루드가 완전히 성벽 위로 올라오자, 중년의 병사 하나가 다가와 가레스에게 이야기했다.


“가, 가레스님! 저놈들 하는 짓거리 좀 보십시오!”


남자는 화가 난 얼굴로 성벽 아래를 손가락질했다.

돌아보니 성벽과 원정군의 야영지 사이의 공터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중앙에는 기사 몇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그들의 앞에는 성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복장을 한 사람들 다수가 대열을 맞춰 서있었다.

그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본 루드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보내 가레스에게 물었다.


“요즘의 기사들에겐 소년들에게 계집의 옷을 입히는 게 유행인 것이냐?”


여성 하인들의 복장을 입은 사람들은 대략 1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소년들이었다. 그들은 그냥 여자 옷만을 입은 게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분칠 역시 하고 있었는데, 다분히 조롱의 의도가 담긴 것처럼 보였다.

가레스가 그들을 슬쩍 살피더니 이야기했다.


“저들은 린드버클의 견습기사들입니다.”


보아하니 다른 지역의 기사들이 그들을 불러내 모욕을 주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원정군의 기사들은 린드버클을 항복한 적국의 도시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본래라면 린드버클의 기사로서 그들에게 크게 분노했을 가레스였지만, 지금은 그저 무감정하게 보였다.

섬기는 자가 바뀌고 타락한 영혼이 된 탓이다. 지금의 그에겐 인간들 사이의 일 같은 건 숲속의 사슴이나 멧돼지가 겪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의자에 앉아있던 기사 하나가 소년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반역자 밑에서 자랐던 네놈들이 어디 기사가 될 수는 있을 것 같으냐?”


소년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어서 춤이나 춰 보거라. 누군가 네놈들 엉덩이를 대가로 종자로 받아줄지도 모르지 않겠느냐.”


그 희롱적인 발언에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성벽 위에서는 탄식과 욕설이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직접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아니 나설 수가 없었다. 애초에 기사에게 덤빌 수 있는 신분도 힘도 없었지만, 반역자의 성을 지키던 자들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원정군의 기사들을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반역자의 잔당으로 몰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본보기로 처형당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은 전부 가레스에게 향해있었다. 물론 이 도시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레스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나서긴 어려운 입장이었음에도 믿을 건 그밖에 없었으니까.


“인간은 이래서 재밌단 말이지.”


루드가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낮과 빛의 종족의 일원이라면서 마치 너희들이 악마라 부르는 존재들과 비슷한 짓을 하고 있지 않느냐.


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밤과 어둠의 종족들 중에서도 특히 악마들은 지독하리만치 동족에게도 가차 없는 편이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틈만 나면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하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 싫어한다. 하지만 낮과 빛의 종족들이 즐겨 쓰는 정의나 평화 같은 단어 따위의 이유는 아니다. 그런 건 내게 무가치하지. 단지 저런 행동이 집단의 결속을 해치는 것이 문제다. 그토록 우월한 밤과 어둠의 종족들이 여태껏 대륙을 지배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이 뭉치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지는 내가 몸소 증명해보였지.”


실제로 대륙을 손아귀에 넣을 뻔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루드벨로트를 중심으로 한 확실한 지배체계가 마련된 덕분이 대단히 컸다.

루드는 명령했다.


“가서 저들을 도와주어라. 자세한 것은 계속 지시하겠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이어서 가레스는 마치 주변의 청을 들어서 움직인 것처럼 공터를 향해 나아갔다.


“어라? 저건 설마?”


가레스가 즐겨 입는 특유의 수수한 갑옷 때문에 단번에 이목이 집중되진 않았다. 하지만 앞서 원정군이 입성할 때 모두가 지켜봤던 적이 있어서인지 순식간에 좌중이 술렁였다.


“가, 가레스님!”


견습기사들이 기쁨과 민망함이 섞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린드버클의 소년들 대부분에게 그는 우상이었다.


“가, 가레스······.”


의자에 앉아있던 기사도 그를 보고 깜짝 놀라 신음하듯 목소리를 흘렸다.

설마 그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린드버클의 처우 때문에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기사에게 가장 껄끄러운 상대 중 하나가 바로 가레스였다.


“무슨 짓이지 이게.”


가레스는 같은 기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마치 적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로 말을 걸었다. 그것이 주는 위기감은 상당했기에 주변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그의 기세에 기가 죽은 것이다.

공국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가레스의 입지란 그 정도였다.

실제로 의자에 앉아있던 기사 역시 기가 눌릴 지경이었다. 아무리 기사들에게 자존심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지만, 그는 가레스를 상대할 만큼의 충분한 기량도 경험도 보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반역자의 영지에서 기사서임을 받은 자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게다가 아무리 가레스가 강하다 한들 우리는 다수다. 기사들만 있는가. 이 야영지에 모인 수천의 군대가 모두 우리편인 것이다.

그래서 기사는 의자에서 일어나 당당한 자세로 가레스를 마주했다.


“헬드의 마테오다.”


그가 자신의 소속을 밝히는 이유는 자신의 뒤에 누가 있는 지를 밝히기 위함이 컸다.

헬드는 린드버클에서 가까운 영지로, 이번 원정에 가장 많은 병사들을 파견한 영지였다.

헬드 백작 또한 레이몬드가 제거된 지금 헤이우드 후작 다음으로 강한 영주였기에, 현재 린드버클에선 가장 입김이 강한 뒷배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레스는 소개에 응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를 모르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본래대로라면 밝히는 것이 예의.

가레스는 의도적으로 마테오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강하게 질문했다.


“무슨 짓을 하고 있었냐고 물었다.”

“여흥이다. 이 먼 길을 왔으니 조금 즐길 수도 있지 않겠나.”

“헬드에서 이런 풍습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군. 먼저 한 수 배워보고 싶은데 여기서 춤 한 번 춰보실 텐가?”

“우리 영지를 모욕하지 마라 반역자를 섬기던 놈아! 멍청한 너희 영주놈 때문에 이 먼 길을 왔으니 당연히 네놈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

“말조심해라.”


그 한 마디를 뱉는 목소리가 어찌나 차가웠던지, 그 한 마디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더욱 서늘해졌다.


“레이몬드 그 자는 내 영주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손으로 놈의 머리를 베었다.”


보고 있던 병사들 중에선 무심코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는 자들도 있었다. 그가 레이몬드의 목을 엔테에게 바쳤던 모습을 직접 본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테오는 마치 목이 수십 개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도 물러나는 기색이 없이 가레스에게 덤볐다.


“퉷! 네놈이 천한 출신이라 못된 것만 배웠나보구나! 박쥐같은 짓도 모자라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게냐!”

“고작 이런 것을 협박으로 여긴다니, 네놈은 도대체 얼마나 겁쟁이인 거냐.”

“이 더러운 배신자놈이!”


마테오가 검을 뽑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견습기사들을 조롱하던 기사들 모두가 검을 뽑은 것이다.


“주변에서 떠받들어주니 네놈이 기고만장해진 모양이구나!”

“오늘 버릇을 고쳐주마!”


가레스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름 모를 기사들이 자신에게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니.

혹시 자신의 검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뿜어내는 기세라는 것이 있다. 특히 루드에게 서약한 후로 가레스는 더욱 강해졌고, 그만큼 더 강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지금의 그에게 주눅 들지 않으려면 적어도 핸슨이나 프라우스에 준하는 실력을 갖고 있어야할 것이다.

이 자들이 그에 비견할 실력을 갖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아니면 정말로 그저 멍청하게 머릿수만 믿고 덤벼들 계획을 세웠단 말인가.

하지만 차라리 싸우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더 쉬웠다.


“무사할 생각은 버려라.”


가레스도 자신의 검을 뽑았다.


작가의말

사회에 악폐습 참 많죠.

싹 쓸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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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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