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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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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글자수 :
134,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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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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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용기를 내는 방법

DUMMY

상대는 총 여덟. 그것도 일단은 전원 기사다.

물론 20대 초반 전후의 젊은 하급 기사들. 그만큼 경험은 부족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정잡배나 도적 따위와는 비교도 어려울 만큼의 실력은 갖고 있으리라.

어지간히 노련하고 실력 있는 기사도 여덟이나 되는 기사를 상대로 확고하게 승리를 점칠 수는 없다.

그것은 가레스 같은 공국 최고로 인정받는 경우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이 정말로 전력으로 덤벼든다면 적어도 큰 부상은 각오해야할 수준.

그러나 가레스는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기사도는 버린 놈들인가.’


실력은 시정잡배를 뛰어넘었을지 몰라도, 하는 짓은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사쯤 되는 자들이 전쟁터도 아니고, 마물을 처치하는 것도 아닌데 여럿이서 검을 뽑는다니. 그것도 이렇게나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말이다.

과거 용병 출신이었던 가레스조차도 이게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특별한 감정은 없다. 자신은 주어진 명령에 최선을 다할 뿐.

질 것이라는 생각 같은 건 조금도 하지 않았다. 과거의 자신보다 훨씬 강해졌으니까.

하지만 주변의 기사들은 섣불리 덤벼들지 않고 서로 눈빛만 교환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갑자기 겁을 집어먹기라도 한 걸까.

좋게 보자면 어차피 여덟 명이 동시에 덤벼들 수는 없으니 즉석에서 작전을 짜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태도를 보면 확실히 머뭇거림에 가까웠다.


“왜 그러지? 내 버릇을 고쳐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칫! 우쭐거리긴!”


가레스가 도발적으로 이야기하자 결국 리더격인 마테오가 덤벼들었다.


‘너무 티를 내는군.’


먼저 덤벼드는 것치고 마테오의 검은 지극히 방어적이었다. 단지 가레스의 검을 유도하고 그것을 봉쇄하기만 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진짜 공격은 주변의 다른 기사들. 공격조만 총 세 명이다. 전문적으로 전투 훈련을 받은 자들답게 협공에도 어느 정도 합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느리지.’


가레스는 재빨리 돌아서서 등 뒤의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쪽은 가레스의 공격을 예상조차 못한 건지 완전히 허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목을 베려면 목을 벨 수 있고, 심장을 꿰뚫고자 하면 심장을 꿰뚫을 수 있었다.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도 그의 생명을 취할 수 있었지만,


‘주군이 원하는 바는 그게 아니니······.’


가레스는 번개처럼 검을 뻗어 기사의 어깨를 꿰뚫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라도 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방향을 선회하여 다른 방향에서 덤벼들던 기사의 팔까지 깊숙하게 베었다.

이어서 재빨리 처음의 위치로 돌아온 그는 어설프게 휘둘러진 마테오의 검과, 또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던 기사의 검을 마치 한 번의 움직임처럼 쳐냈고, 이어서 그 기사의 허벅지에 검을 찔러넣었다.


“크아악!”

“크윽!”

“으아악!”


세 기사의 비명은 마치 동시에 내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짧은 틈을 두고 터져 나왔다.

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검을 뻗은 채 그저 한 바퀴 돈 것처럼 보였으리라.

하지만 세 사람의 기사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네 사람의 기사가 동시에 덤벼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젠장······.”


마테오가 수비적으로 검을 들며 한 걸음 물러났다.


‘빠르다고는 들었지만 대체 이건······.’


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예 보이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만약 그가 방어적인 검술로 시작한 게 아니었으면 저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같은 인간이 이렇게나 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남자에게 자신은 싸움을 걸려고 했단 말인가.


“다음은 누가 쓰러질 테냐.”


다시 가레스가 도발했지만 마테오는 더 이상 자신 있게 나서지 못했다. 남은 기사들을 수습해서 덤벼봐야 똑같은 꼴이 되리라는 건 그 역시 검을 오래 다룬 자이기 때문에 충분히 안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는 편이 좋을까.

그래도 기사라는 자존심만은 남아있었기에 겨우 검이라도 들고 있는 게 가능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아니, 도망칠 수 없을 테니 자의든 타의든 무릎을 꿇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가 먼저 덤벼든다면 어차피 똑같을 테니까. 그렇다면 최소한 싸우다가 쓰러지자.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건 고작 그 정도였다.

그리고 마테오가 그런 고심을 하고 있을 때, 헬드 영지의 기사 알버스가 성문 밖으로 나와 그 광경을 목격했다.

자신이 데리고 온 기사들이 가레스를 둘러싼 모습을 말이다.

알버스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기사라는 놈들이 여럿이서 한 명과 싸웠다는 사실도 부끄러운데 그마저 이기지도 못했다. 명예도 자존심도 모두 실추된 것이다.

알버스는 분노와 창피함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대체 지금 무슨······!”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목소리는 더 큰 호령에 묻혔다.

엔테였다. 그녀는 다른 기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직접 상황을 확인하겠다며 기사들과 함께 이곳으로 온 참이었다.

엔테의 모습을 확인한 주위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서로 으르렁거리던 가레스와 헬드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엔테는 씩씩대며 그들의 앞까지 걸어가 외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목소리 자체는 16살 소녀답게 조금 가벼울지언정, 그 안에 실린 무게까지 그리 가볍지는 않았다.

특히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자들에게는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테오와 그를 따라 검을 뽑았던 기사들은 깊은 후회를 했다. 차라리 가레스의 검에 목이 날아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앞으로 있을 일들이 너무 두려운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가운데 가레스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송구스럽습니다. 공녀님께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어찌하여 같은 플리온의 기사들끼리 검을 휘두른단 말입니까.”


가레스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견습기사 하나가 재빨리 뛰쳐나와 그녀 앞에 두 무릎을 꿇으며 이야기했다.


“공녀님께 아룁니다! 저들이 저희에게 이런 수치스러운 꼴을 시키고 몸 파는 자들처럼 행동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엔테는 그제야 소년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말이 사실입니까?”


헬드의 기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마테오가 겨우 변명 섞인 말을 뱉었다.


“그, 그게, 별로,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만······.”


엔테는 여전히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녀의 의도야 어쨌든 헬드의 기사들에겐 절망적인 반응이었다.


“요, 용서 하십시오!”


넙죽 엎드려 용서를 빌었지만, 그들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엔테는 뒤돌아서서 이야기했다.


“네이슨 경.”

“예, 공녀님.”


호명된 노기사가 앞으로 나왔다. 성문 앞에서 가레스를 심문했던 기사였다.


“그대에게 이 일에 대한 조사를 맡겨도 되겠습니까?”

“맡겨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원정군 전체를 확인하세요. 주민들을 상대로도 무례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삼가 받들겠습니다.”


다른 지역의 기사들은 이 결정에 마음속으로 신음했다.

엔테의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각 영지에 대한 자주권 보장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어렵게 생긴 것이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네이슨이 그 역할을 맡은 점이었다.

그는 플리온의 주요 영지 중 린드버클과 가장 멀리 떨어진 영지인 엔트로스의 대표로 온 기사였다.

엔트로스는 멀었던 만큼 적은 병력밖에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도착 또한 굉장히 늦었다.

말하자면 이번 린드버클을 둘러싼 이권 경쟁에서 굉장히 순위가 떨어지는 영지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영지에 대한 감사를 맡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차 없겠는가.

그를 회유한다면야 편하겠지만, 안 그래도 각 영지들이 서로 견제하는 마당인데 네이슨 본인도 상당히 강직한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설마 공녀는 그 사실을 알고 맡긴 걸까? 어쨌거나 다른 영지의 대표들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린드버클의 처우에 대해서 이제 과연 얼마나 주장할 수 있을까?


사건이 일단락되고 가레스는 루드에게 돌아갔다.

루드는 즐겁다는 듯 얼굴에 미소를 걸고 있었다.


“인간은 참 재미있단 말이지. 이렇게 마음을 살짝만 밀어도 알아서 움직여주니.”

“혹시 주군께서 저들을 지배한 것입니까?”


가레스는 루드의 말에 흠칫 놀라더니 그렇게 물었다.

앞서 이상함을 느끼긴 했던 것이다.

고작 삼류 기사의 실력을 갖고 자신에게 주눅 들지 않은 점이나, 이렇게나 많은 이들 앞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시정잡배처럼 굴었던 점 등이.

하지만 루드의 설명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육체의 제어권을 빼앗는 정도면 모를까,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마음대로 세뇌를 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놈들에게 용기를 줬지. 자신이 상대해야할 존재의 강함을 잊어버릴 만큼. 그리고 분노를 줬지. 본인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를 만큼. 금방 꺼뜨렸지만.”


그런 거였나······. 가레스의 궁금증이 그제야 풀렸다.


“그럼 역시 공녀에게도?”


조금 전 그녀가 보인 모습은 가레스가 예상했던 점이랑 많이 달랐다. 그녀에게도 만약 용기를 불어넣었다면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긴 했다.


“그 녀석에게도 걸어줬었지. 아주 조금 용감해지는 마법을.”

“과연, 그랬군요.”

“물론 그 주문은 진작 효과가 끝났다. 아마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끝났을 것이다.”

“······ 그렇다는 것은?”


루드가 피식 웃었다.


“제법 용기가 생긴 모양이로군.”


작가의말

주인공 곁에서 히로인도 성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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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0 2 11쪽
26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9 3 9쪽
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6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4 3 8쪽
20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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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2 3 9쪽
17 반역자에게 심판을 (2) 19.04.17 19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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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9 3 10쪽
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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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엔테의 결심 (2) 19.04.13 195 3 8쪽
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3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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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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