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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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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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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0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1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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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반역자의 준비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DUMMY

하루를 꼬박 세워 자신의 영지, 린드버클로 돌아온 레이몬드는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즉시 회의를 소집했다.

피로로 찌들어있음에도 그 소집에 불만을 갖는 이는 없었다. 현재 그들에게 닥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집무실에 들어선 레이몬드는 힘없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절대로 질 수 없다고 생각한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레이몬드는 허공을 응시한 채 아르곤을 향해 물었다. 아르곤은 거의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하며 무릎을 꿇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그런 소리 마시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를 탓하긴 했으나, 그대의 실력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오. 그대의 계획은 완벽했소.”


레이몬드의 너그러운 반응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 후 아르곤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덮거나, 경쟁자를 끌어내리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이번 일에 대한 냉정한 분석.

레이몬드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굳이 아르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했어도 순순히 받아들였을 터였다.

그것 밖에 없었으니까.


“가레스······.”


레이몬드는 신음처럼 그 이름을 흘렸다.

자신의 부하들 중에서 가장 강한 기사이자, 공국 전체에서도 그와 비교되는 자는 겨우 몇 명뿐일 강자였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들 몇 명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배신을 했다면 어떨까.

만약 시체를 확인하지 못한 모든 기사들이 공녀의 편에 붙은 것이라면 이번의 실패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체 왜?’


그녀가 가진 것은 오직 정통성 뿐, 오히려 대의는 이쪽에 더 있었는데······.

공국에는 정통성을 갖춘 어린 소녀보다, 힘 있고 유능한 자가 더 필요했다.

계기는 개인의 욕심이었을지언정, 공국을 부강하게 만들고자 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주변의 눈치만 보고 있는 약소국에서 벗어나, 자신의 대에선 왕국으로 격상 시킬 예정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틀어졌다.


“일단은 페로난에 의지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아르곤이 조심스럽게 권했다. 반성도 좋지만 이제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할 때였다.


“알겠소······.”


레이몬드는 힘없이 대답했다.

페로난 왕국. 플리온 공국의 바로 옆에 위치한 왕국으로, 공국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다만 레이몬드만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곳으로, 이번 반역에서도 최악의 상황에서는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페로난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 실패는 단순히 반역의 실패가 아니었다.

재기의 발판이 무너진 최악의 패배였다.


‘이제 곧 오늘의 일이 각 영지에 퍼질 것이다.’


린드버클 백작이 공위를 노리고 비열한 기습과 함께 역모를 일으켰으나, 공녀가 힘과 지혜를 발휘해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노라고.

그러면 공녀를 다시 보게 되건, 린드버클 백작을 다시 보게 되건, 둘 사이의 평가는 완전히 역전될 것이다.

정통성은 물론, 이제는 대의조차 사라진 것이다.

처음부터 다른 영주의 도움까지는 크게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누가 더 적합한 군주인지를 저울질하고 있는 자들이 많을 테니.

그러나 이제는 침묵을 지키던 다른 영주들도 공녀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반역자의 목을 새로운 군주에게 바치기 위해 앞 다퉈 나설 게 불 보듯 뻔했다.

공국 내에서는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어진 셈이었다.


“백작님, 한 말씀 올리려고 합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에스테레스 교단의 사제 복장을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이야기했다.

안센이라는 남자였다.


“말해보게.”

“이번 일, 내부의 배신이 아닌 게 아닐까요?”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당황하는 레이몬드와 달리, 아르곤은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고 되물었다.


“무언가 짚이는 거라도 있는 겝니까?”

“네. 악마의 소행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악마?”


집무실 내의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르곤만은 진지한 표정으로 안센의 이야기를 받았다.


“설마 마족이 개입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워낙 평소에는 거론되지 않는 존재라서 잊고 있었습니다만, 세토라 성의 지하에는 강력한 악마가 봉인되어있습니다.”


그제야 노기사들 몇 명의 표정에 동요가 일었다.

맞아, 그런 게 있었지······. 라고.


“플리온 공가와 고위 사제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인데다, 그것도 최근에는 오랜 시간 드나든 적이 없다보니 대신들 중에서도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나도 희미하지만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군. 그 악마의 소행이라는 건가?”

“네, 아마도. 이번 일의 실패에 대한 모든 조각이 맞아 들어가니까요. 가레스 경이 배신했다는 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일이죠.”

“하지만 악마를 다루려면 특별한 의식을 통해서 계약을 맺어야만 할 텐데, 공녀가 그런 것을 배웠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안센은 단호하게 말했다.


“공녀가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 금서고에 공녀가 드나드는 걸 봤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그 금서고에는 악마에 관한 지식들이 가득합니다.”

“공녀가 금서고에?”

“네. 지나가던 수준의 소문이었기에 금방 수그러들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의도적으로 덮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면 계약 의식을 익혔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프라우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게 설령 악마의 농간임을 알았다 한들,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찌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는 있습니다.”

“새로운 기회?”


안센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강한 어조로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공녀가 어린 시절부터 악마에 심취해 결국 마녀가 되었고, 세상에 악을 다시 불러들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아버지에게 병을 심어 살해하는 패륜을 저질렀으며, 끝내 공작가의 규율을 어겨 지하실의 악마를 해방시키고 이 나라 백성들을 팔아 계약을 맺었다.”

“흐음.”

“린드버클 백작은 선대 플리온 공작의 유언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따르는 가신들과 함께 마녀가 된 공녀와 악마를 막기 위해 세토라로 병력을 파견했던 것이다. 라고 말이죠.”


결코 사제라는 자가 입에 담을만한 계획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세속의 가치를 쫓는 자로서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전혀 느끼고 있지 않았다.

안센은 이어서 설명했다.


“설령 악마를 붙잡지 못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공녀가 악마와 계약했다는 증거만 잡을 수 있다면 우리의 승리로 끝날 것은 자명합니다. 아직도 저울질 중인 다른 영주들은 더 이상 공녀를 지원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좋군.”


레이몬드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 역시 악마랑 계약해도 모자랄 판에, 상당히 현실성 있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오히려 처음보다도 더 상황이 좋을 터였다. 거의 모든 영주들을 자기편으로 돌릴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안센의 말대로 증명만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는 아르곤이 안센에게 물었다.


“하지만 조만간 이곳으로 대군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 와중에 악마를 잡을 방도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이곳에 올 때 공녀도 오겠지요?”

“물론, 그렇겠지요.”

“그럼 악마도 올 것입니다. 계약자의 마력을 매개로 쓰는 악마는 계약자의 곁에서 멀어질 수 없으니까요.”


안센은 다시 레이몬드를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저와 제 제자들이 악마를 드러내는 술식을 이곳에 준비할 것입니다. 그럼 모두의 앞에서 악마의 정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공녀의 군대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백작님께서는 군대와 함께 피신해 계시다가 저희가 일을 마치거든 돌아오셔서 정리를 하시면 될 것입니다.”


레이몬드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아르곤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 즉시 모든 영주들이 바로 우리의 편으로 돌아서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 사이 악마가 발악하면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그대의 말대로라면 그 악마는 가레스조차 패배시켰을 뿐 아니라, 세토라를 다시 점령할 정도로 강한 악마지 않습니까.”


안센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듯 웃었다.


“아무리 경험이 많더라도 가레스는 어디까지나 검사입니다.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죠. 악마를 상대하는 전문가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을 테니 당황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희는 적이 누군지를 알았습니다. 준비만 확실히 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할 수 있겠는가?”


안센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정중히 인사의 자세를 취했다.


“이 안센, 악마에 관해서라면 교단 최고임을 자부합니다. 제 제자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악마라도 봉인할 수 있지요.”

“알겠네. 자네에게 맡기지.”

“감사합니다. 반드시 레이몬드님이 플리온 공작에 오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수심으로 가득했던 레이몬드의 집무실에 다시 생기가 돌아왔다.


작가의말

주인공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대단히 중요한 정보가 오가지도 않습니다.

스킵하셔도 아마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는 무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왜 썼냐고 하면, 개인적인 취향일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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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결국에는 원하는 대로 되었다 +2 19.04.26 98 3 11쪽
29 용기를 내는 방법 +2 19.04.25 103 2 10쪽
28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2 19.04.25 90 3 10쪽
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0 2 11쪽
26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9 3 9쪽
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6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4 3 8쪽
20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1 4 10쪽
19 반역자에게 심판을 (4) 19.04.18 193 4 9쪽
18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2 3 9쪽
17 반역자에게 심판을 (2) 19.04.17 190 2 11쪽
16 반역자에게 심판을 (1) 19.04.17 170 3 9쪽
» 반역자의 준비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16 170 3 10쪽
14 욕망의 신하 19.04.16 257 3 9쪽
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9 3 10쪽
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11 세토라 탈환 (2) 19.04.14 168 3 10쪽
10 세토라 탈환 (1) 19.04.14 196 2 10쪽
9 엔테의 결심 (2) 19.04.13 195 3 8쪽
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3 3 7쪽
7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2) 19.04.12 241 3 9쪽
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5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2 4 10쪽
4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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