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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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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9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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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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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세토라 탈환 (3)

DUMMY

엔테와 크리스는 2층의 집무실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생존자들이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루드의 판단에는 두 사람도 동의하는 바였다.

집무실은 군주를 위한 장소. 성 내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단단한 문을 가진 곳으로, 물리적인 충격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마법조차 튕겨낼 정도로 견고했다.

이 혼란 속에서 무사하길 바란다면 그만한 선택지는 없겠지.

애초에 그런 게 없었다면 이 시간까지 생존자가 남아있을 것이라는 판단은 전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크리스는 루드에 대해 감탄했다.


‘대단한 분이야.’


물론 그의 생각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성에 생존자들이 남아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어디에 모여 있으리라는 것은, 차분히 고민해봤다면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엔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실제로 떠올리지 못했고, 그녀로선 다시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고 해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 일을 지휘하고 있을 아르곤 정도일까.


‘심지어 용병이라고 하셨지.’


그렇다면 성에 머문 시간은 극히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고려하면 그것은 충분히 특별한 판단력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집무실 앞에는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레이몬드의 병사들인 것 같았다. 안에 공왕파의 사람들이 있다는 게 확실시 되었다.


쾅!


여러 명의 병사들이 커다란 나무 기둥을 들고 집무실의 문에 부딪쳤다. 문을 부술 셈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집무실의 문이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해도 무적은 아니었다. 벌써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아마 곧 부서지고 말 것이다.

물론 크리스는 가만 놔둘 생각이 없었다.


“세토라의 기사 크리스, 그대들을 처단하러 왔습니다.”

“세토라의 기사!?”


병사들을 지휘하던 기사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놀란 목소리를 냈다. 설마 지원군이 도착한 건가? 보고를 전혀 받지 못했는데?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크리스와 그 뒤에 선 한 사람의 소녀뿐이었다.

그저 숨어들어온 건가.

안심한 기사는 피식 웃으며 과장된 몸짓을 보였다.


“이야, 이거 누군가 했더니 유명 인사로군.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래, 크리스라고? 그러고 보니 그런 이름을 들어봤던 것 같기도 하네. 계집애 같이 생긴 걸로 유명한 애송이 기사가 공녀랑 소꿉놀이를 한다는 이야기를.”


크리스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거기까지 듣겠습니다. 싸울 생각이라면 어서 검을 드시죠. 그게 아니라면 어서 공녀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크리스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듣는 쪽에서는 조금도 들을 마음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말에서 엔테가 함께 있다는 걸 깨달은 정도뿐이었다.


“허허, 설마 뒤에 계신 건 공녀님이신가! 불나방들이 뛰어들 수도 있으니 잘 지키란 소리는 들었지만, 설마 불나방이 공녀님이실 줄은. 이런 공을 또 벌게 되었군.”


기사는 이미 엔테를 붙잡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기뻐했다.

자신이 패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야기는 끝입니까?”

“뭐냐. 그 태도는. 그렇게 자신 있으면 먼저 들어와 보라고.”

“좋습니다. 먼저 가죠.”


크리스가 기사를 향해 뛰어들었다.

기사도 단순히 입만 살았던 자는 아니었다.

그는 과거 도적 출신이었던 자로, 상대의 성급한 공격을 받아치는 데는 누구보다 능숙한 자였다.

그도 그럴게, 그는 상대를 이기는 방법에 제약을 두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실전에서는 기사들 간의 정정당당함 따위 조금도 관심이 없는 남자였다.

기사는 크리스의 움직임을 눈치 채자마자 소매에 감춰뒀던 단검을 꺼냈다. 이것으로 먼저 가볍게 한 방. 그 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녀석에게 큰 거 한 방.

그렇게 하려고 했다.


“큭······!”

“더 할 생각인가?”


하지만 단검조차 제대로 던지기 전에, 크리스의 검이 이미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애송이라며!? 조금 실력이 있는 정도일 뿐인 녀석이라며!?

그런데 이렇게나 빠르다고? 검술만 보면 가레스라고 해도 믿을 정도지 않나?


“어서 무릎을 꿇어라. 그렇지 않으면 베겠다.”

“후우, 어쩔 수 없군······.”


기사가 패배를 인정하며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같이 있던 병사들도 조심스럽게 그를 따랐다.

하지만 어차피 여기서 항복해봐야 반역의 결과는 한 가지 뿐이지 않나······.

설령 레이몬드가 극적으로 승리한다고 해도 세토라를 빼앗긴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할 건 뻔했다.

도적 출신이었던 자신에게 과연 자비가 있을까?

애초에 여기서 세토라가 함락 당한다면 승산조차 없겠지. 기사에게도 그 정도 판단력은 있었다.

그럼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얼마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자아아아아앙!


“네놈들이라도 데리고 가야겠다!”


기사는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르며 옷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크리스와 엔테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가 꺼낸 것은 주문을 담은 폭탄. 크리스도 그것의 의미를 모르진 않았다.

기사가 선택한 것은 자폭이었던 것이다.

운 좋게 공녀가 폭사하기라도 하면 가족들이라도 먹고살 수 있겠지! 하다못해 크리스 놈만 데리고 가도!

크리스가 재빨리 움직여 달려오는 기사의 목을 찌르자 그의 손에서 폭탄이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폭탄은 바닥을 굴러 엔테와 크리스 사이에 떨어졌다. 그리곤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너무 가깝다.


“엔테님!”


크리스는 그대로 몸을 날려 엔테에게 뛰어들었다.

이미 늦었다면 제발 엔테님 만이라도!

자신은 몰라도 엔테는 폭발을 벗어날 재간이 없던 것이다.

크리스는 엔테를 몸으로 감싸 안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콰아앙!


이윽고 폭탄이 큰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

크리스는 귀의 먹먹함이 잦아들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깜짝 놀란 얼굴의 엔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으, 으응. 괜찮아······.”


바닥에 부딪친 아픔에 다소 놀라긴 했지만, 엔테는 다행히 멀쩡했던 것이다.


“그보다! 크리스는 괜찮은 거야!?”

“그게······.”


크리스가 고개를 슬쩍 돌려 뒤를 바라보자, 엔테도 따라서 그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두 사람을 마법으로 생성된 방패가, 다시 말해 보호막이 감싸고 있었다.

크리스가 손가락에 낀 반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루드가 준 마법도구가 발동했던 것이다.

사방에는 ‘조금 전까지 기사였던 것’과 ‘그를 따르던 병사였던 것’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우웁······.”


또래 소녀들답지 않게 잘 참아온 엔테였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속이 좋지 않았다.

하마터면 토할 뻔 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기사의 자폭까지 먹혀들지 않자 살아남은 병사들은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한 사람이 무기를 버리고 머리를 조아리자, 다른 병사들도 덩달아 항복했다.

크리스는 그들을 복도 양 옆으로 비키게 한 뒤, 그들이 부수려고 했던 문을 두드렸다.


“크리스입니다! 모두 무사한가요?”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의심받고 있는 것 같았다.

공왕파의 사람들도 아무도 믿을 수 없던 건 마찬가지였다.


“공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문을 열어주시죠!”

“그, 그래. 나, 나는 여기에 있어!”


엔테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까와는 달리 안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천천히 문이 열리고 한 병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반신반의하던 표정의 병사는 엔테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있다가 뒤늦게 입으로 놀람을 내뱉었다.


“고, 공녀님!? 지, 진짜로 공녀님!? 공녀님께서 어째서 여기에!?”


병사의 그 목소리에 사람들이 문으로 몰려들었다.


“진짜네!?”

“고, 공녀님께서 돌아오셨다!”

“우린 이제 살았어!”


엔테의 얼굴을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녀는 어색한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가만 보니 그들 대부분이 병사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하녀들, 심부름꾼 소년들, 나이든 문관들.

이런 상황에선 그저 숨을 수밖에 없는 약자들이었다.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면 이 사람들도 모두 죽었겠구나······.

의도는 달랐지만 오길 잘했다, 엔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엔테님,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으, 으응······.”


엔테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크리스도 뭔가 눈치 채긴 했지만 우선은 지휘가 급선무였다.


“곧 지원군이 도착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모두들 시간을 벌 수 있게 좀 도와줬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공녀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크리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해야 할 일들을 차례차례 전달했다.


“우선 여기 항복한 병사들을 포박하겠습니다. 묶을 수 있는 밧줄을 가지고 와주십시오. 그 후에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저와 위로 올라가 적들을 소탕하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아래로 내려가 성 안으로 통하는 모든 문을 걸어 잠가주세요.”


크리스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

평소 기사다운 모습을 보지 못했던 터라 엔테에게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의지가 된다고나 할까.


“엔테님은 여기에 머물러주세요.”

“······ 응.”


석연찮은 대답.

바로 얼마 전까지는 의지가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역시 믿음직한 기사라며 가벼운 농담을 던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

그것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크리스도 그런 엔테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엔테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했다.


“다친 사람을 보면 이쪽으로 보내겠습니다. 엔테님이 다친 사람들을 보살펴 주시지 않겠습니까? 엔테님이 옆에 계셔주신다면 분명 그들도 더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겁니다.”

“응, 알겠어.”


엔테의 대답에는 여전히 석연찮은 감정이 묻어났지만 좀 전보다는 한결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크리스는 가벼운 미소로 화답하곤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자, 움직이죠!”


작가의말

두 명의 소녀가 으쌰으쌰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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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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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8 3 10쪽
»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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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2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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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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