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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6,480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18 04:30
조회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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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반역자에게 심판을 (3)

DUMMY

“서, 설마 안센이 당한 건가!?”


성벽에 서서 중앙 광장을 바라보던 레이몬드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멀어서 자세한 전투 과정은 볼 수 없었지만 결과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성수가 나타났고, 곧 쓰러져버렸으니까.

그것도 예상 외로 너무 순식간에.

남아있던 사제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지는 자명했다.

저건 대체 무슨 힘이란 말인가.

안센이 악마를 잡아야만 했다. 하다못해 사람들 앞에서 악마의 정체를 드러내기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해내지 못했다.

레이몬드는 아직까지도 허망한 눈을 중앙 광장으로 보내고 있었다. 지금 일어난 일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안센이지 않습니까.”


프라우스가 옆으로 다가와 그를 위로했다.

믿고 싶은 것은 레이몬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라도 안센이 빌어먹을 악마를 가둬서 돌아온다면······.

아니, 그래야만 했다. 지금에 와선 단순한 실패가 아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이라도 쳤으면 목숨은 부지했으리라.

하지만 이젠 정치적인 생명이 아니라 물리적인 생명이 위험하게 생겼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보다 못한 프라우스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제야 레이몬드는 성벽에서 물러나려고 움직였는데,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는 다시 홀린 것처럼 광장으로 시선을 보냈다.


“백작님?”


프라우스가 불렀지만 레이몬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갑자기 레이몬드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으, 으아아!”


그가 소리를 지르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다.

프라우스를 비롯해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를 부축하려고 다가가자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도, 도망쳐야해······.”


봤다.


“아, 악마가, 나,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나를 노려보고 있어······.”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낮이라고 해도 이 정도 거리에서는 사람의 형체도 겨우 알아볼 정도다.

그런데 이 어둠속에서 눈이 마주친다고?

아니 상대가 악마니까 눈이 좋다고 쳐도 대체 어떻게 레이몬드가 그것을 느낀단 말인가.

하지만 레이몬드는 분명한 감각이었다.

그냥 시선을 느낀 정도가 아니라,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것이 진짜인지 망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공포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죽음이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애초에 그 정도쯤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 게 두려울 정도로 나약했다면 역모는 일으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미칠 것 같은 감각이었다.

어째서라고 이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그 존재 자체였다.

그가 시선에 담아 날린 어떤 기운에, 숨조차 쉬기 힘들만큼 짓눌리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꼴사납게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프라우스가 그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었다.


“백작님, 진정하십시오!”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그러나 레이몬드는 프라우스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외쳤다.


“그럼 당장 놈을 막아! 나한테 오지 못하게 막으란 말이다!”

“······.”


거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악마의 힘이 엄청나리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이미 깨달았다.

악마를 상대하는 것에 특화된 안센과 그 제자들이 당했을 정도면 수백의 군대에 필적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뒤에는 공녀를 따르는 수천의 병사들이 더 남아있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페로난, 페로난으로 가야한다.”


레이몬드는 편집증 환자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영지를 버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레이몬드님, 그것만큼은 안됩니다!”


아르곤이 그를 말렸다.

도망을 치려고 했다면 진작 그렇게 했어야했다. 그들이 진군해오는 사이에 영지에서 챙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챙겨 달아나야했다.

그래야 페로난 왕국에서도 레이몬드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최소한의 의리라는 것을 보였을 것이다.

지금 도망친다면 그야말로 목숨뿐이다. 병사도, 보물도, 아무 것도 챙길 수 없었다. 공국 최고의 정예들이라고 할 수 있는 헤이우드의 기병대가 뒤를 쫓아올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맨몸으로 도망친 레이몬드의 가치는 페로난 왕국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었다.

분명 그는 능력 있는 영주였고, 따르는 자들 중에서도 유능한 자가 많았다.

그러나 레이몬드는 반역자다. 그를 받아들였다간 반역의 대상이 되었던 플리온과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주변국들과도 크고 작은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는 점이 확실한 실(失)이었다.

최악의 경우 페로난 왕국은 레이몬드와 그 추종자들의 목을 베어 외교적인 선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현재 유일한 희망이라면 성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는 것뿐이다. 그리고 페로난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다.’


아직 레이몬드의 휘하에는 공국에서 명장으로 드높은 자신과, 프라우스를 비롯한 여러 기사들이 있었다. 병사도 아직 충분했다.

버티기만 한다면 페로난 왕국의 군대가 헤이우드를 공격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는 최소한 노먼과 그의 군대를 전장에서 이탈시킬 수 있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공녀를 따르고 있는 부대의 힘은 물론이고 사기도 크게 꺾일 것이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원정군이 되돌아가게만 만들어도 상황은 지금보다 몇 배는 좋아질 수 있었다.

아르곤은 침착한 목소리로 남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프라우스! 레이몬드님을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백작님 가시죠.”

“다른 자들은 내 명령에 따라 성을 지킬 것이다!”

“예!”


아르곤은 레이몬드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당장에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어차피 병사의 지휘는 처음부터 자신이 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


‘우선은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줘야겠군. 공세는 해가 뜬 후에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르곤의 판단과는 달리, 상황의 변화는 여전히 깊은 밤중에 일어났다.


“아르곤니이이임!”

병사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는 성문을 감시하고 있던 병사 중 하나였다.


“무슨 일인가.”

“잠깐 아래로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사의 표정에는 놀람, 기쁨 그 외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어려 있었다.

좋은 일이 일어난 건가?

자초지종을 들으며 성문 쪽으로 내려가자, 기사 한 명과 한 무리의 병사들이 그곳에 있었다.

맨 앞에 선 기사는 어째선지 갑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투구를 쓰고 있었다. 마치 급한 대로 남의 투구를 쓴 것만 같은 조금은 어색한 모양새였다.

그 뒤로 늘어선 십 수 명의 병사들 역시 전신을 갑옷으로 완전 무장하고 있었다.

주변의 병사들이 그들에게 경계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그들의 복장과 장비가 같은 편임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기사의 갑옷은 무척 익숙한 물건이었다.

화려함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했던 남자가 선택한 은빛의 투박한 갑옷.

가레스.

그가 돌아온 것이다.


◇◇◇


“루드!”


천막으로 들어오는 루드의 모습을 보자 엔테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하마터면 그의 손을 붙잡을 뻔했다. 만약 이성이 그의 정체가 자신의 계약 악마라는 사실을 재빨리 깨우쳐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깨닫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그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도록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미 의자를 박찬 것만으로도 충분히 과한 행동이었고, 그게 부끄러워진 탓이었다.


“무, 무사한 거야?”

“보시다시피.”


루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일 아니란 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보초를 서던 병사들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엔테는 돌아선 채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시 의자 쪽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새침한 목소리로 묻는다.


“광장 쪽에서 엄청난 빛을 봤다는 이야길 들었어. 그건 대체 뭐였던 거야?”


성수가 낸 빛일 터였다. 이런 한밤중에는 멀리서도 보일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그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준비한 사람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건 함정이 해제된 신호지.”


그의 아무렇지 않은 말투에 엔테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그런 태도지.

대체 내가 뭘 기대한 거람?

다시 의자에 앉은 엔테는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루드에게 물었다.


“그럼, 내일 진군해도 괜찮은 거야?”

“물론이지. 함정은 치워버렸으니까.”


그리고 약간의 여흥도 준비해뒀지.


작가의말

가레스의 갑옷 세트 중 투구는 머리와 함께 증발했습니다.

보통 점심 시간에 올라가던 게 왜 뜬금 없이 새벽에 올라갔냐 하면...

이제 일반 연재로 신청하기 위함입니다! 흑흑...


추천과 덧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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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2 19.04.25 90 3 10쪽
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0 2 11쪽
26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8 3 9쪽
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6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4 3 8쪽
20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0 4 10쪽
19 반역자에게 심판을 (4) 19.04.18 192 4 9쪽
»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2 3 9쪽
17 반역자에게 심판을 (2) 19.04.17 190 2 11쪽
16 반역자에게 심판을 (1) 19.04.17 170 3 9쪽
15 반역자의 준비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16 169 3 10쪽
14 욕망의 신하 19.04.16 257 3 9쪽
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8 3 10쪽
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11 세토라 탈환 (2) 19.04.14 168 3 10쪽
10 세토라 탈환 (1) 19.04.14 195 2 10쪽
9 엔테의 결심 (2) 19.04.13 194 3 8쪽
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2 3 7쪽
7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2) 19.04.12 241 3 9쪽
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5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2 4 10쪽
4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2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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