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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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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3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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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엔테가 해야할 일 (1)

DUMMY

엔테는 중앙 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바로 영주의 자리였다.

여러 영지로 부터 그녀를 따라 이곳에 도착한 수십 명의 기사들은 가운데 통로를 비우고 양 옆으로 늘어섰다.

곧 나이가 지긋한 행정관이 앞으로 나와 장문의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플리온 공국의 유구한 역사로 부터 시작해, 이번 내란의 부당성 및 내란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관념적인 이유를 줄줄이 읊은 뒤, 엔테와 이번 원정에 참여한 영지의 공적을 기리는 글이었다.

아직 16살 소녀인 엔테는 지루해 하품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나름 근엄한 표정을 유지한 채 행정관이 끝맺기를 기다렸다.

행정관은 마지막으로 엔테의 치세를 기리는 말을 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후 엔테가 자리에서 일어나 각 영지를 대표하는 기사들의 공적을 치하하고, 내란이 평정되었음을 선포하였고, 기사들이 충성의 언약을 다시 함으로써 레이몬드의 내란 사건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일은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는 각 영지를 대표하는 나이가 지긋한 기사들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공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행사가 끝나자마자 기사들이 몰려와 회담을 요청한 것이다. 그 주제는 엔테가 미뤄두었던 린드버클 영지에 대한 처우였다.


‘여기서부터 진짜 정치······.’


엔테도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기사들은 나라의 기강이라거나, 군주의 위엄이라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붙이고는 있었지만, 결국 정확히는 자신들이 속한 영지에 대한 보상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녀를 위해 수많은 병사를 보낸 것에 대한 대가.

그리고 앞으로 그녀에게 필요로 할 충성에 대한 대가.

이것은 플리온 공작으로서 필수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근본적으로는 플리온 공국의 문제점 중 하나였다. 공식적으로 다른 영주들은 플리온 공작에게서 봉토를 하사받은 신하였지만, 실질적인 관계는 그것보다는 훨씬 이익을 중심으로 한 계약 관계에 가까웠다.

플리온이 아직 왕국은커녕, 대공조차도 칭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약한 국력도 국력이었지만, 중앙집권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듯 각 영주들이 한 번 움직이기만 해도 그에 대한 보상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 플리온 공작에게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그 방법이 잘못되었을지언정, 레이몬드가 원했던 왕국화는 이런 배경도 분명히 존재했다. 약소국이 더욱 약소하게 빠지는 굴레였던 것이다.

보나마나 각 영지의 기사들은 대단히 노골적으로 이권을 요구할 것이다.

엔테가 처한 상황이나 그녀가 정치 자체에 어둡다는 점도 있었지만, 원래대로라면 가장 많은 보상이 돌아갔어야 할 노먼이 자리를 비운 탓도 있었다.

정말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자신들의 영주에게 가장 큰 공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정말 어쩌면 린드버클 영지 자체를 속령으로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최측근인 자신들에게도 큰 이득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품은 기사들이 많았다.

엔테가 그런 속내를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어느 정도 읽고 있었다.


‘쉽게 결정을 내려서는 안 돼······.’


그렇게 판단한 그녀는 원정에 따른 피로를 핑계로 판단을 잠시 보류했다. 차라리 이럴 때는 16살 어린 소녀라는 점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들이 섣불리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긴 시간을 번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그 자리에서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루드가 없는 자리였고, 있었다고 해도 나설 수 없는 자리였을 테니까.

따로 시간을 마련해서 그와 상의해야했다. 악마와 국사(國事)를 논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믿을 만한 상대였다.

그러나 홀 밖에서는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 루드 못 봤어?”


엔테는 조금 초조한 기색으로 자신의 뒤를 따르던 크리스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대체 어딜 간 거지?’


어디에서 보자고 정해둔 건 없었다.

다만 성문 앞에서도 자신이 곤란할 때 알아서 와줬기 때문에, 이번에도 알아서 와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도 알아서 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크리스, 루드를 좀 찾아줘. 만나게 되면 집무실 앞으로 데리고 와.”

“네, 바로 찾아볼게요.”


크리스는 곧장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엉뚱한 사건에 휘말렸다거나······.

설마, 떠난 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불안이 엄습했다.

말이 안 된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직 계약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니까.

계약자인 그녀의 입장에서가 아니다. 악마인 루드쪽에서 충족되지 않은 것이다.

상식적으로 계약 악마가 아무런 대가도 받지도 않고 돌아간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물론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기뻐해야할 일이겠지만, 지금의 엔테에게는 조금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일단은 그 녀석이 꼭 필요해······.’


엔테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곤, 자신 역시 루드를 찾기 위해 크리스가 향한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갑자기 등 뒤쪽에서 절그럭하는 소리가 울렸다.

소리의 원인을 찾아 시선을 그쪽으로 옮긴 엔테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크리스!?”


크리스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엔테는 황급하게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크, 크리스! 괘, 괜찮은 거야!?”

“으······, 엔테님, 죄송해요······. 갑자기, 너무 피곤······ 해서······.”


기절했다. 갑자기.


“자, 잠깐만! 정신 좀 차려봐!”


엔테가 힘껏 흔들어봤지만 깨어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가 바닥에 부딪치며, 청량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루드가 준······?”


바닥에 부서진 팔찌가 나뒹굴었다. 분명 루드가 줬던 사용자의 잠재력을 끌어올려준다는 물건이었다.

엔테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악마의 물건이라서?

그러다 문득 엔테는 루드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주 조금은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어. 아무리 잠재력이라고 해도 원래보다 훨씬 큰 힘을 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후유증.

그런 게 있을 거라는 이야길 루드가 했었다. 며칠쯤 잠들어있을 거라곤 했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눈앞에 직접 죽은 듯이 쓰러져있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루드의 부재가 겹쳐 더욱 불안감이 증폭됐다.


‘우, 우선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겠지?’


엔테는 크리스를 부축하기 하기 위해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체격이 작다한들, 갑옷을 입은 기사의 무게는 평범한 소녀가 감당할만한 게 아니었다.

엔테는 크리스를 일으켜 세우지도 못한 채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포기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하아······.”


엔테는 왠지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신은 혼자선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구나라고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책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주변에 도움이라도 청해야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게 맞았을 거다.

엔테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이어서 큰 소리로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거기 아무도 없느냐! 여기 사람이 쓰러졌느니라!”


평소의 엔테라면 거의 평대에 가깝게 말했을 것이다. 여전히 그녀에게는 그것이 편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실질적인 플리온 공작이었다. 말 한 마디에도 위엄을 갖춰야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대하여 사람을 부를만한 사람이 이 성에 한 사람밖에 남지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엔테의 목소리에 병사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공녀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 이건, 크리스님!?”

“적습, 적습인가!?”


병사들은 쓰러진 크리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칫하면 큰 사고로 보일 수도 있었다.

겨우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는데 일이 커지는 건 질색이었다.

엔테는 병사들이 더 큰 소란을 피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소란피우지 말거라. 적들의 소행은 아니다.”

“그, 그럼 대체?”

“크리스 경이 그간 밤낮으로 무리를 한 탓인지 좀 피곤했던 모양이다. 방까지 좀 데려다주지 않겠느냐?”


그제야 병사들의 얼굴에서도 걱정스러움이 크게 줄어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한 병사가 씩씩하게 대답하며 크리스를 업으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 남자가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제가 하죠.”

“루드!?”


엔테가 찾고 있던 남자였다.

병사는 그가 엔테의 측근이라는 걸 알아채곤 순순히 양보했다.

루드가 크리스를 번쩍 안아 올렸고, 엔테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를 지켜봤다.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나서는?


“가시죠, 공녀님.”

“······, 그, 그래. 그대들은 물러가도록.”

“아······,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허겁지겁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엔테는 따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앞장섰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작가의말

전편에 언급된 이야기지만 엔테는 금발 벽안입니다.


새벽에 예약을 걸어둘 건데 자고 일어났더니 떡상! 같은 거면 좋겠네요.

다시 회사 다니기가 너무 싫네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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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결국에는 원하는 대로 되었다 +2 19.04.26 98 3 11쪽
29 용기를 내는 방법 +2 19.04.25 103 2 10쪽
28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2 19.04.25 90 3 10쪽
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0 2 11쪽
26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9 3 9쪽
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7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4 3 8쪽
20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1 4 10쪽
19 반역자에게 심판을 (4) 19.04.18 193 4 9쪽
18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2 3 9쪽
17 반역자에게 심판을 (2) 19.04.17 190 2 11쪽
16 반역자에게 심판을 (1) 19.04.17 170 3 9쪽
15 반역자의 준비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16 170 3 10쪽
14 욕망의 신하 19.04.16 257 3 9쪽
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9 3 10쪽
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11 세토라 탈환 (2) 19.04.14 16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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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엔테의 결심 (2) 19.04.13 195 3 8쪽
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3 3 7쪽
7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2) 19.04.12 241 3 9쪽
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5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2 4 10쪽
4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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