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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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균 선배는 다음 날 부터 도서관의 죽돌이가 되었다. 준비하고 있던 광고 공모전을 때려치우고, 우리 까페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주연선배도 형균선배를 거들긴 했지만, 자료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그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미친 놈이야.. 아주.."
말은 거칠게 하지만, 형균 선배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것 같다. 여기도 풋풋한 애정 전선이 넘실거리는 것 같다.
경험이 없을 때, 일단 자료 조사에서 시작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다. 한 1주일 동안 자료에 매진한 형균 선배는, 다음 기획회의 때 산더미 같은 자료를 취합하여 한 페이지 분량의 기획서를 만들어왔다. 그 자료를 갖고 우리는 학교 창업동아리, 동방에서 만났다.
3개의 노트북, 듬뿍 쌓여있는 자료. 종이컵에 담긴 인스턴트 커피와 지저분한 방은 전형적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쓰는 사무실이었다.
형균선배의 기획서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 누구와 함께 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가 6하원칙에 의거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경험도 없이 이 정도로 뽑아내다니.. 역시 상당한 사람이구나..'
하지만 형균선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덜거렸다.
"내가 까페를 해본 적이 없어서, 허공에 그림 그리는 기분이네."
형균 선배가 심퉁한 표정을 짓자 주연선배가 대답한다.
"나 고등학교 선배가 까페 하는데 사람 구한다더라. 한 2주만이라도 해볼래?"
"아.. 아니. 운영계획은 내가 할 건 아니고. 이제 상권분석하러 다녀야해."
"상권분석? 어떻게 할 건데?"
"일단 유동인구를 조사하고, 주위에 있는 유사업종을 분석해야지."
정답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 소상공인 진흥공단에 가시면, 유동인구 조사표가 있어요. 보셨나요?"
"그래? 그건 아직 못봤는데?"
"제가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소상공인 지원센터 자료는 조사 범위가 넓으니까, 구체적인 입지 조사는 개별적으로 따로 해야 해요."
"개별적인 입지조사는 어떻게 하지?"
형균이 형이 머리를 긁적인다.
"형. 혹시 로진이라는 컨설팅 회사에 아는 선배 없으신가요?"
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꽤 유명한 컨설팅 회사다. 내가 이 회사를 알고 있는 이유는, 세븐 일레븐 등 미국 편의점이 일본에 진출할 때 주요 전략을 세운 회사가 바로 로진 컨설팅이었기 때문이다.
"로진? 거긴 아는 사람 없는데? 근데 왜?"
"거기 주요 산업이 프렌차이즈 전략 컨설팅이에요. 상권분석 방법론은 그렇게까지 주요 기밀자료는 아니니까, 형식만 빌리려면 빌리실 수 있을거에요."
"그래? 흠.."
주연선배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무릎을 딱! 하고 친다.
"아. 오빠. 수연 언니! 로진 갔잖아요. 한국에 있기 싫다고."
"아. 그런가? 수연누나가 있었구나. 근데 나 안 친한데?"
"내가 친해요."
"그럼 누나가 상권분석 방법론 관련 자료 좀 요청 드릴 수 있나요?"
"응. 한 번 해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려, 내가 찾은 자료를 두 사람의 이메일로 넘겼다.
"로진에서 방법론 자료 못받으면, 이 자료를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국내 자료는 거의 쓸게 없고, 영어 자료에서 제일 최근에 정리된 프랜차이즈 상권분석 방법론 자료에요."
내가 토닥 토닥 자료를 넘겨 보내자, 형균이 급하게 노트북을 열어 들어온 자료를 확인한다. 1999년, 예일대학 MBA에서 만든 상권분석 방법론 자료다.
"어랏. 오빠, 이거 괜찮은데요?"
"야. 이게 뭐가 괜찮. 지나가는 사람들 하나하나 기록하는.. 완전 노가다잖아. 그리고 이걸 한 달 동안이나 한다고?"
"요일 별로 유동인구 변화를 보려면 그렇게 해야 하잖아요."
"과한데.."
대학에서 나온 자료는 아무래도 포괄적이기 때문에 실용성이 떨어진다. 형균이 형은 그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형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팬으로 종이에 혼자 복잡한 도식과 수식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다정아. 이런 자료를 만들려면, 전문 컨설턴트가 붙어야 할 것 같은데?"
"네. 두 분 하실 수 있잖아요."
"할 수는 있지. 그런데 문제는 비용이야. 우리 두 사람 만으론 안되고, 서베이를 전공하는 사람 2명 정도는 더 필요할 것 같아."
형균이 형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400만원을 추가로 드릴게요. 다른 것 보다 시장조사는 비용이 들어가니까, 실비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너 괜찮겠냐? 운영비 얼마 안남은 것 같은데?"
"괜찮아요. 아직 과외도 하고 있고.. 여유 좀 있어요."
"흐음.."
형균이 형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근데 만약, 도저히 운영이 버거우면, 내가 알아서 수위 조절 할 거야."
"네. 이야기 해주세요."
"주연아, 너는 수연누나한테 부탁해봐. 기업 쪽 자료가 훨씬 실용적일거야."
"알았어. 잠시만."
주연선배는 그 자리에서 바로 수연누나에게 메일을 쓰고, 문자를 하나 보냈다.
"내일까지 연락할게."
"그래. 나는 시장 조사 같이 할 사람을 알아봐야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형균 선배가 능숙하게 회의를 마무리 한다. 아직 대학생다운 치기어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학습능력이 빠르고 일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
'좀 욕심 나는데?'
욕심나는 사람이다. 아마 저 사람은 대기업에 들어가서 A급 인재냐, S급 인재냐를 놓고 힘든 경쟁을 할 것이다. 내 사업체로 끌어오고 싶은데, 우리를 선택 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일단 프렌차이즈가 자리 잡히고, 사업 규모가 커지면 좀 생각을 해봐야겠구나.'
나는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진 사업 아이템은 프렌차이즈 하나 만이 아니다. 어딘가에서 만날 자리가 있을 것이다.
"자. 우리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자."
회의를 마친 형균 선배가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학교 앞에 있는, 작고 오래된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형균 선배가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다정이, 너 이새끼.."
형이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너 21살 맞냐?"
"네. 맞아요."
아니다. 사실은 60이 넘은 노회한 사람이다.
"너 이 새끼, 완전 괴물아냐?"
"읔.."
술을 뿜을 뻔 했다. 주연누나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와. 오빠. 얘 완전, 나 전에 인턴했던 회사 팀장보다 더 독해."
"그러니까. 나도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놈은 어디서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네."
"어렸을 때 부터 사업 준비를 해와서 그래요.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기도 하셨구요."
나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완전 범생이로 봤는데.. 사장 포스 팍팍 풍기고 있느니 좀 당황스럽네."
"에이.. 뭘요. 선배가 거의 다 하시는 거고, 저는 옆에서 거드는 것 뿐인데요.."
"자식이.. 넉살도 좋아."
형석 선배가 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킨다.
"솔직히 장사 하는 거면, 이런 조사니 뭐니 다 필요없는데. 그런 장사는 너 혼자도 할 수 있다는 거고.. 우리를 부른 건, 그걸 체계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겠지? 너가 제일 처음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알아주셔서 고마워요."
"나도 재미있네. 배우는 것도 많고, 이거 잘 해보자. 꼭 성공시켜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술은 내가 사려 했지만, 형균선배가 자신이 선배라면서 억지러 내 지갑을 닫고 자기가 계산을 해버렸다.
딱 생각했던 만큼 일이 순조롭게 흘러간다. 이번 사업은 잘 될 것 같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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