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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님의 서재입니다.

폐하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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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작품등록일 :
2021.02.14 17:49
최근연재일 :
2021.08.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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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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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방주 전투 (5)

DUMMY

산발적인 사격이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나뭇잎이 떨어져 전장에 나부꼈다. 나무를 닮은 덩어리가 가지를 흩날렸고 그처럼 병사의 사지도 찢겨나갔다.


“장전보다 거리를 유지해!”


세하라는 달려오는 제국군 앞에서 총구에 탄환을 쑤셔 넣던 동료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녀의 명령을 뒤늦게 알아들은 숲지기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세하라를 노리고 달려들던 제국군은 화살에 목을 맞고 고꾸라졌다.


제국군은 치밀하게 반란군을 밀어붙였다. 선봉은 효과적으로 격퇴할 수 있었지만 반란군의 약점은 명확했다. 적은 수와 장전 시간. 활이 그 틈새를 메꾸고 있었지만 방패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기 시작한 제국군 상대로는 시간벌기밖에 되지 않았다.


제국군과 적극적으로 맞부딪치는 것은 전략적인 선택이 아니다. 페이가 당부한 사항이었고 일선의 지휘관들이 따랐다. 세하라는 조금씩 부대를 물리면서 최대한 제국군에게 피해를 강요했다.


“세하라! 후퇴한다!”


멀리서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제국군의 다른 진입로를 막고 있던 부대의 간부였다. 세하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신호를 보냈다. 포수들이 일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추격을 저지하기 위한 사격이 나무 위에서 쏟아졌다.


한쪽 진입로를 허용하고 말았으니 다른 부대들의 측면이 위험하다. 모든 부대가 일시에 후퇴해야만 한다. 세하라는 나무 위에서 바삐 오고 가는 음성신호를 해석하며 상황을 파악했다. 모든 부대는 배가 있는 언덕으로 무사히 후퇴 중이다. 그러나 아직 페이가 돌아왔다는 신호는 들려오지 않았다.


후방은 지연전으로 제국군의 뒷덜미를 길게 잡아끌었다. 놈들은 숲에 녹아든 숲지기들을 금방 알아채지 못했다. 세하라는 뒤처지는 동료들을 다그치며 물러났다. 페이가 직접 길러낸 숲지기들은 후퇴하는 도중에도 침착했다. 낭패나 두려움 섞인 감정을 내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언덕으로!”


포수대가 전선에서 이탈하자 세하라가 나무 위를 향해 외쳤다. 몇몇이 빠져나오려다가 제국군의 화살에 맞아 땅에 떨어졌다. 세하라는 이를 악물었다. 떨어진 숲지기는 곧 학살당했다. 애써 발을 떼야만 했다.


언덕을 향해 내몰린 반란군은 곧 배를 에워싸고 진을 쳤다. 대부분이 벌목된 언덕에서는 시야가 탁 트였다. 숲을 빼앗겼으나 아직은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그러나 생각보다 빠른 흐름이었다. 세하라는 문득 영문 모를 위기감을 느꼈다. 속도를 강요하는 무언가가 숲속에서 도사리는 것 같았다.


제국군은 숲에서 진격해오지 않았다. 성급한 누군가가 총을 쏘아대자 어설프게 숲 밖으로 나선 부대가 황급히 물러섰다. 상당한 피해를 보았으므로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원거리 전투에 특화한 반란군이 언덕을 점거한 이상 더 큰 출혈이 있을 테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좋아.”


세하라는 귀환한 부대들을 헤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띄는 피해는 적었다. 숫자는 다소 줄었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시간에 장애물을 정비하고 수비를 위한 작전을 실행해야 했다.


작전을 논의할 간부들이 몇몇 보이지 않았다. 세하라는 소집령을 내리며 혼란스러운 숲지기 틈을 파고들었다.


“세하라!”


부대들을 돌아보던 세하라를 동료가 불렀다. 숲의 남서쪽을 담당하던 숲지기였다. 세하라는 곧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의 표정에서 다급함을 읽은 탓이었다.


부상자들을 모아놓은 공간에는 세하라에게도 낯익은 숲지기가 누워있었다.


“······유미.”


오랜 동료이자 같은 날부터 페이를 따랐던 유미가 배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있다. 부상자는 주변에 널렸지만 상처가 유독 컸다. 곧 전사자들 틈에 눕혀야 할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세하라.”


유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거렸다. 그녀는 동쪽의 진입로를 담당한 간부 중 한 명이었다. 세하라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숲에서, 큰 톱을 지닌 자가 간부들만을 노리고 있어. 누군지는 모르겠어. 화살을, 피하면서······.”


유미는 말을 더듬거렸다. 창백한 얼굴로도 필사적으로 말을 쥐어짰다.


“병사의 움직임이 아니야, 마치 기사처럼······.”

“괜찮아. 더 말하지 않아도 돼.”


세하라가 유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간신히 진정한 유미가 세하라의 손을 맞잡았다.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지?”

“그럼. 물론이지.”


그녀의 숨이 차츰 잦아들고 있었다.


“우리 땅, 우리 나라에서, 이 감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쉿, 이제 잘 시간이야.”

“세하라······.”


가빠지는가 싶던 숨이 돌연 멈추었다. 세하라는 유미의 굳게 쥔 손을 가지런히 모아주었다. 눈을 감겨주자 다급했던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세하라는 잠시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세하라.”


간부들이 조용히 그녀를 일깨웠다. 세하라는 잠시 눈가를 훔치고 태연하게 일어섰다. 쉽사리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세하라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애도의 때는 오지 않았다.


“제3의 기사가 참전한 모양이다.”


세하라의 말에 간부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가 조심스럽게 일부에게만 알려주었던 기사의 존재였다. 각오해야 하는 바였다. 기사는 기사만이 상대할 수 있으나, 적에게 기사는 둘이다. 페이가 하나를 상대한다면 그들이 다른 하나를 상대해야만 한다. 각오했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에 그들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달라지는 건 없다. 각자 지휘관을 잃은 부대를 알아서 인계해. 여기서 진을 펼치고 페이의 명령을 기다린다.”

“페이는 언제 오는 거지?”

“필요하면 올 거다. 시암 할아버지, 배는 준비됐어?”


간부회의 한편에는 시암이 망치를 어깨에 걸친 채 서 있었다. 그는 죽은 유미에게 시선을 두고 있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나야 페이께서 시키신 일을 해왔을 뿐이지만, 준비됐다. 도면대로는.”


배를 건조하는 일은 그들의 이해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저 손이 되어 머리인 페이의 명령을 실현할 뿐이었다. 가까스로 끝마치기는 했지만 시암은 확신하지 못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페이가 지적했고, 앞뒤 모르고 건조하기를 몇 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구조물의 내부조차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핵심은 페이가 알아서 했을 테니, 지금은 여기서 버티는 것만 생각하자.”


세하라의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총도, 배도 페이의 머리에서 나왔다. 페이는 늘 바친 만큼 돌려주었으므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놈들이 옵니다!”


언덕 아래에서 제국군을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세하라는 간부들을 각 방향에 퍼트리고 활을 들었다. 비축된 탄약을 셈해보았다. 기사를 상대해야 한다면 아껴두어야 했다.


“시암 할아버지, 비전투요원들은 배에 태워.”

“비전투요원이 어디 있다는 게냐. 여기 선 놈들은 죄다 전투요원이다.”


세하라는 시암을 응시했다. 그는 배를 두들기던 망치를 기세 좋게 들어 보였다.


“애들이랑 장애가 있는 자들은 이미 태웠다. 마음대로 부려먹어라.”


배를 지어 올리던 인부들이 몰려들었다. 대부분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건조작업에 투입된 노인들이었다. 세하라는 잠시 그들을 돌아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얼마든지 부려주지.”


세하라는 전장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에 섰다. 사정거리 바깥에서 진형을 갖춘 제국군이 차츰 진격해오고 있다. 무차별적으로 칠해진 색채에 시선이 어지러웠다. 저 사이 어딘가에 또 다른 기사가 있을 것이다.


기사라면 얼마든지 홀로 반란군을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숨어서 나오지를 않고 있다. 세하라는 그의 노림수가 궁금했다. 간부들만 노려 죽였다는 것은 이미 적극적인 참전 의지인데 지금은 잠잠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덕이 소란스럽다. 기사가 있다는 소문은 금세 퍼져나간 모양이었다. 세하라는 그들을 다그치며 윽박질렀다.


“전투준비! 보급대는 위치로, 사수와 포수는 뒤섞이지 마라! 정신 똑바로 차려!”


우왕좌왕하던 숲지기들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갔다. 세하라는 그들 사이를 거닐며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새삼스럽게 두려워 마라. 개처럼 굶주리고 벌레처럼 짓밟혀봤으면서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감옥에서 죽은 할아비의 살점을 씹으며 살아남았다. 너희들이, 너희들의 부모가 겪은 것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감옥에서 해방을 꿈꿔라. 그것이 페이가 우리에게 바란 단 한 가지다!”


숲지기들이 세하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까지 밤이면 모닥불에 둘러앉아 서로에게 속삭이던 말이었다. 해방을 꿈꿔라. 그것은 장벽 너머를 가르쳐준 페이의 가르침이었다.


“우리는 반란군이 아니다. 스스로 자유롭게 할 해방군이다!”


시암이 세하라에게 총기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 다른 포수들의 것보다 긴 총이었다. 페이가 직접 제조한 총기 중에서도 가장 특출난 것이었다. 페이는 세하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며 그것에 결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국군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세하라는 모두에게 보이도록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작은 감옥을 나왔으니, 더 큰 감옥을 나갈 차례다.”


사수들이 일제히 활을 치켜들었다. 포수들이 어깨에 고정한 총기를 앞으로 향했다. 그들의 조준은 명확했다.


제국군의 마디마다 선 기수들이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제국군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색채의 물결이 언덕을 오르며 함성을 내질렀다. 녹색을 닮아 숲을 이룬 듯한 해방군의 함성도 곧 그들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제국군의 흐름이 가장 두꺼운 곳에 무언가가 느닷없이 떨어진 것은 그때였다. 그곳의 함성만이 소리를 죽였다.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그곳에는 작은 그림자가 큰 그림자를 짊어진 채 서 있었다. 세하라는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그 안에 있는 사람을 깨달았다.


“얘기 잘 들었네, 세하라.”


먼지를 가르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페이였다. 페이는 제국군을 뒤로하고 늘 그랬듯 느긋하게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멈칫한 제국군은 감히 페이를 뒤쫓을 생각도 못 하고 머뭇거렸다. 다른 곳에서는 이미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페이가 있는 곳만큼은 잠잠했다.


“그러나 마치 죽음을 각오한 말처럼 들리더군.”


몇 걸음 만에 언덕을 다 오른 페이가 짊어지고 있던 집정관과 병사를 시암에게 넘겨주었다. 시암은 곧 그 의미를 깨닫고 인부들과 함께 인질들을 배로 날랐다.


“죽음을 각오하지 말게. 해방은 죽음의 다른 말이 아니라네.”


페이가 세하라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세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기사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넘쳐날 뻔했지만 애써 냉정을 유지했다.


페이는 잠시 사망자들이 모여있는 구석을 보고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힘껏 발을 굴러 경갑의 건재함을 과시한 페이는 동료들이 듣도록 소리쳤다.


“자, 출항할 시간이로다!”


작가의말

월요일입니다. 5월병이라고... 저번 주 이틀밖에 출근을 안 해서 죽갔습니다 아주. 모두 좋은 한 주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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