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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님의 서재입니다.

폐하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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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작품등록일 :
2021.02.14 17:49
최근연재일 :
2021.08.31 23:59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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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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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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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99. 폐기물 (4)

DUMMY

선봉을 맡은 병사들이 퍼져 빌딩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입구 정면에서 헌진은 팔짱을 낀 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검은 건물은 2구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헌진은 그 안에서 도사리는 기척 여럿을 느낄 수 있었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헌진의 감각은 그 어느 어둠 속일지라도 꿰뚫어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저곳은 장막에 가려진 듯 막막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심장 하나를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장애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헌진은 전장의 상황에 의아함을 느꼈다.


“전설적인 분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헌진이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헌진을 보좌할 후보생 한 명이 다소 머쓱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뒤로 서너 명의 후보생이 눈을 빛내며 헌진을 보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헌진 경을 모르는 후보생은 없습니다. 훈련소가 있던 시절에, 저희는 모두 경의 행적에 대해 배웠습니다.”

“모든 행적을 배운 모양은 아니로군.”

“예?”


헌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사가 되지 못한 자들에게 미련은 없다. 헌진이 황제에게 칼을 휘두른 사실을 모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가 도시를 떠난 공백기에 기사단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알 바가 아니다. 헌진은 2구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황궁에 들어서는 것만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헌진은 건물을 둘러싸는 움직임이 끝나자 곁에 선 장교를 향해 명령했다.


“진입준비. 각 출입구를 확보하고 후발대는 뒤따를 채비를 하도록.”

“예!”


선봉에 배치된 병사들은 그나마 군대라고 불릴 만한 태도를 갖추었다. 헌진은 2구역의 군대가 불만스러웠지만, 그 또한 구역의 특색인지라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2구역에 들어설 때 헌진을 막아선 문지기의 용맹함이 특이할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역시 선봉에 배치되었고, 헌진을 보고 사색이 된 얼굴로 경례를 바치고는 물러섰다.


군대를 부리는 것은 기사단을 이끄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일이다. 헌진은 낯선 현장감을 갈무리하며 병사들의 돌입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헌진 경, 그것이 사실입니까?”


후보생이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헌진은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그가 기사였다면 주저 없이 꾸짖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에게 후보생이란 부화조차 되지 않은 알일 뿐이다. 움직이는 사물에 불과한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헌진은 알지 못했다.


“무엇인가.”

“기계의 반란 당시에 단신으로 거신 여섯과 기계 병기 다수를 처치하신 기록 말입니다.”

“시답잖은 질문이군.”


그들은 과거를 모른다. 반란을 겪어보지도 못했고, 고대가 남긴 파괴적인 병기의 강력함은 상상만 해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정신감정을 받지도, 기사로서 본격적인 훈련조차 받아보지 못했다. 헌진은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을 무시하며 오른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돌입 개시.”


헌진의 신호와 함께 선두의 병사들이 건물 안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헌진은 톱니칼을 뽑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법우가 전기를 제공하고 자잘한 손질을 마친 병기는 최상의 상태였다. 후보생들이 헌진이 손에 든 고유무기를 들고 감탄어린 소리를 내질렀다.


‘이게 무슨 어린애 장난인지 모르겠군.’


차라리 나리아가 전쟁에서 더 든든했을 것이다. 헌진은 귓가에 손을 얹었다.


“나리아, 지금부터 작전을 시작한다.”

[네, 넵!]


뜬금없이 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진은 그녀가 당황하는 소리 너머로 나리아의 웃음을 들을 수 있었다.


베니에게 나리아의 호위를 맡긴 것은 정답이었다. 헌진은 후보생들과 짧은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습성을 파악했다. 기사를 앞에 둔 후보생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으나, 대부분 경외감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베니만이 헌진에게 존경을 표하지도, 기사에게 두려움을 품지도 않았다.


그녀는 헌진에게 아무런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듯이 무심하게 눈을 끔뻑일 따름이었다. 아무런 사리사욕도 보이지 않았다. 베니가 린첸을 오랫동안 동경해왔다는 사실을 나리아에게 들었을 때, 의외이기는 했지만 누구에게나 목표는 필요했다. 린첸이 어떻게 기록되어 내려왔기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보생 내에서는 그녀가 가장 기사단의 덕목을 함유하고 있었다.


[어, 헌진?]


얼마간의 잡담 후, 나리아가 어딘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슨 일이냐.”

[몸조심해요.]

“걱정하지 마라.”


불필요한 걱정이다. 헌진은 여느 때처럼 태연하게 대답하고 통신을 끊었다. 입구의 어둠이 걷히고 유리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지점에 도착할 때였다.


겉모습뿐인 빌딩 안에는 계단도 없고, 따라서 장식도 없다. 순전히 관상용인 건물 안은 그저 넓은 공터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공터 속에서, 둥글게 둘러앉은 한 집단이 있었다.


일부는 병사의 차림새였고 대다수는 여느 구역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핥고 있는 기묘하게 뒤틀린 풀뿌리뿐이었다.


‘카얄란의 원료로군.’


주변에 진형을 펼친 병사들이 헌진에게 시선을 보내왔다. 헌진은 주저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체포해라. 저항하는 자는 사살해도 문제없다.”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적의 반응은 둔했다. 무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병사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침을 흘렸고 흐릿한 눈빛이었지만, 몸가짐만큼은 또렷했다. 헌진은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카얄란이라는 요소가 추가된 전투의 양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사방을 포위하고 달려드는 병사들을 향해, 적들도 달려들기 시작했다. 적들의 무장은 변변찮았다. 대다수는 맨손이었고 일부가 단검이나 일반적인 칼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헌진은 기괴한 광경을 목격했다.


적들은 괴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는데, 그들이 붙잡은 병사들의 팔다리가 뜯겨나갔다. 이빨로 물어뜯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왔고, 주먹이 꽂히면 뼈가 함몰되었다.


“아아아악!”


비무장에 가까운 적들에게 달려들 뿐이었던 병사들이 비명을 터트렸다. 동시에 상황은 급하게 돌아갔다.


헌진은 자신이 감지한 적들의 기색을 다시 읽어냈다. 그들은 심장이 엇박자로 거세게 뛸 뿐, 근육량이나 골격은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힘이 나올 리가 없었다.


헌진은 즉시 그들의 괴력에 대해서 깨달았다. 그들은 상대방의 뼈를 부수었지만, 그 대가로 자신의 주먹도 으깨졌다. 살을 씹고 뜯어내는 대가로 턱 근육이 찢어졌다. 손으로 할퀼 때마다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손톱이 뽑혀나갔다.


그들의 괴력은 신체 능력이 향상됐기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광란에서 비롯된 불가사의한 폭력성이 그들 신체의 가동범위를 넓혔을 뿐이다.


‘위험하군.’


자해에 가까운 공격성일 뿐이다. 헌진은 이변이 발생하고 동시에 가까운 속도로 판단을 내리고 후보생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바꾼다. 적을 모두 사살하도록.”


헌진의 명령과 함께 주춤하던 후보생들이 앞을 달려나갔다. 그들이 가세하자 당황했던 제국군도 대처하기 시작했다. 진형을 갖추고 창칼을 내뻗자 적들은 쉽게 꿰뚫렸다. 그러나 팔다리 하나를 잃은 정도로는 멈추지 않았다. 옆구리에서 내장을 흘리면서도 비명을 지르며 덮쳐들었다. 몇몇이 방패를 으깨고 병사들에게 몸을 들이밀었지만, 목이 베이자 잠잠해졌다.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창수들이 찌르고 방패수들은 보호해라! 가까이 오는 자들에게만 칼을 휘둘러!”


후보생 하나가 침착한 판단을 내리자 제국군은 행동을 맞춰갔다. 초반에는 큰 피해를 보았지만, 상황은 서서히 안정적으로 변화했다.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광인들은 조직적인 움직임에 대처하지 못하고 찔리거나 썰려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


헌진은 톱니칼을 바닥에 늘어뜨린 채 자세를 낮추었다. 그가 현장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기사의 직감이 헌진을 자제시키고 있었다. 위협의 근본은 사라지지 않았다. 헌진은 자신이 읽어낼 수 없는 기척을 읽어내려 노력했다. 그 어느 기사를 상대할 때도 느끼지 못한 기척이다. 그것이 이곳 어딘가에 있었다. 헌진은 시선으로도 찾아볼 수 없는 위협을 대비해야 했다.


“헌진 경! 제압이 완료되었습니다!”


후보생들이 진압에 참여하자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그들은 각자 피에 물든 얼굴이었지만 상처는 없었다. 후보생을 상대로 카얄란에 홀린 광인들조차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그러나 헌진은 고조되는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아직 경계를 풀지 마라. 사방을 살펴······.”


헌진의 경고는 채 끝나지 않았다. 임무완수를 선언하려던 후보생의 목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목이 떨어지는 도중, 모든 상황이 벌어졌다. 후보생들은 갑작스러운 동료의 죽음을 깨닫지도 못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순서대로 베여갔다. 두 후보생이 허리가 잘리고 가슴이 베이는 도중에 생존한 후보생들은 가까스로 무기를 쳐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늦었다. 헌진이 후보생 한 명을 향해 엄습하는 기척에 쏘아졌다. 그제야 첫 번째로 베인 후보생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누구냐.”


헌진은 허공에 부딪혀 정지한 톱니칼 너머로 적을 응시했다.


적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헌진은 순간적으로 나리아를 떠올렸다. 어리석은 일이다. 나리아와는 풍기는 기색도, 얼굴도, 심장 소리도 다르다. 헌진은 머릿속에서 나리아를 지우고 적을 응시했다.


“허, 헌진 경!”

“물러서라!”


후보생 몇이 뒤늦게 반응하며 헌진을 돕기 위해 달려들었다. 헌진은 일갈하며 아군을 물렸다. 머릿속을 강타하는 헌진의 목소리에 후보생들이 멈칫했다.


“기사 후보생도 아니고, 기사단도 아니다.”


소녀는 칼날 너머로 헌진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무기를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헌진의 칼은 허공에서 불을 내뿜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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