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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님의 서재입니다.

폐하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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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작품등록일 :
2021.02.14 17:49
최근연재일 :
2021.08.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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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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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마고 (2)

DUMMY

베니는 바닥에 귀를 댄 채 눈을 감았다. 주먹을 들어 가볍게 내리치자 소리가 퍼져나갔다. 이번에도 바닥이 얇았다. 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베니는 바닥 아래를 통해 퍼지는 소리가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베니가 고개를 들어 나리아에게 고개를 저었다. 땀을 닦으며 바닥에 앉아있던 나리아가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깊던가요?”

“점점 깊어집니다. 아마도 외곽이 아닌 중심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지하라면 얕아지는 곳이 없을 리 없죠. 남부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점점 깊어진다면, 힌트가 있다면 북부밖에 없겠네요. 음, 코끼리를 삼킨 뱀이 뒤집어진 형태일까요?”


나리아가 단말기를 들여다보며 구상을 수정했다. 베니는 곁에 선 채로 흥미로운 듯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침부터 남부를 뒤진 나리아는 온갖 건물을 돌아다녔다. 첫 번째 특징은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저 세워져 있을 뿐인 빌딩을 따라가듯 지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언뜻 무용해 보이던 빌딩의 용도는 확실했다. 일종의 표시였다. 지하의 큼직한 공간 위에는 빌딩이 있었다. 지하를 대변하는 듯 높이 세워진 빌딩을 보며 나리아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설계도부터 지하를 염두에 두고 세워졌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의도를 알지 못했다.


“대체 왜 이딴 짓을 한 걸까요? 고인돌이라도 세우고 싶었던 걸까요?”

“돌 말입니까?”


베니가 바닥에 있는 돌을 발끝으로 건드렸다. 나리아는 베니의 발짓에 굴러다니는 돌을 보며 웃었다.


“이런 빌딩이 상징이고 지하에 공간이 있다면, 저는 그런 것밖에 떠올릴 수 없네요. 그렇다면 이 아래에는 무덤이 있다는 소리겠지만.”

“시체란 태워지거나 회수되기 마련입니다. 시체를 매장하는 것은 제국령으로 금지되었습니다.”

“맞아요. 매장은 지금 것이 아니죠. 고대의 관습일 뿐. 그렇다면, 저 아래에는 대체 누가 묻혀있다는 걸까요?”


나리아는 베니를 고려하지 않고 혼자서 중얼거리는 듯했다. 망상과도 같은 생각이 지하를 떠올리게 했다. 고대 그 자체가 묻혀있다면, 나리아는 그곳을 찾아가려고 하는 셈이다. 인류가 비롯된 근원 속에서 나리아가 찾아야 할 답은 없다. 나리아는 자신이 오로지 현재를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헌진이 저 아래에 있지만 않았더라면, 저는 그런 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거예요. 옛날이야기는 좋아하지만, 때로는 불타고 때로는 물에 잠기는 그런 미친 세상을 경험하고는 싶지 않으니까요. 지금도 그런 세상과 다를 바 없겠지만요.”

“그렇습니까?”


베니는 지루해졌는지 입구를 향해 뒷짐을 지고 섰다. 나리아의 이야기를 쫓아가지 못할 때 그녀는 경계태세에 몰두했다. 나리아는 미안함을 느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럼 다음 건물로 가볼까요? 충분히 내려갈 만한 높이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나리아가 가방을 들쳐메고 건물을 나섰다. 아무것도 없는 빌딩에서 사람이 나오자, 길거리를 걷던 사람들이 기이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리아야말로 그들을 괴상하게 바라보았다. 격한 전투가 벌어지고 마약이 유통되고 있는 구역인데, 그들은 남의 일이라는 듯 평온해 보였다.


“여기서 북쪽으로 가실 겁니까?”

“네? 그럼요. 당연하죠. 왜요?”


나리아가 되묻자 베니가 다소 긴장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이 이상은 위험구역에 해당합니다. 무장장님의 허가와 호위병력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요? 주변은 평화로워 보이는데요?”

“그야 물론 그것이 저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리아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기울였다.


“베니만으로는 부족한가요?”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


나리아가 자존심을 자극하자 베니는 다소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마, 만에 하나라도 나리아님에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다못해 병사라도 일부 지원 받을 수 있다면······.”


허둥지둥 변명하던 베니의 말이 뚝 끊겼다. 나리아가 의아한 눈길로 베니를 돌아보았다. 베니는 어느새 허리춤에 있는 칼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진지했다. 베니의 시선을 따라간 나리아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베니의 시선 끝, 남부와 북부의 접경지대에서 몇몇 사람들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정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리아는 기이하게 번뜩이는 그들의 눈을 보았다.


“······카얄란.”

“나리아님.”


베니가 나리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리아는 가방끈을 꽉 쥐며 몇 걸음 물러섰다. 중독자들이 깨문 입술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기괴하게 뒤틀린 근육으로 몸이 꿈틀거렸다. 그들의 중독증상은 심각했다. 나리아는 저렇게까지 진행된 중독자들이 벌일 행동을 알고 있었다.


“베니!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옵니다.”


중독자들이 흩어졌다. 일부는 정면에 있는 베니를 향해, 일부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였다. 베니가 중독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리아는 주변 벤치에 멀뚱히 앉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뭘 보고만 있어요! 피하세요!”

“그게 무슨 말이니?”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노부부였다. 그들은 나리아의 다급함을 듣고도 차분한 기색이었다.


“피하라니, 무엇에게서 말이냐?”

“저 사람들은······.”


중독자 한 명이 길거리를 걷던 사람을 덮쳤다. 나리아는 비명을 삼켰다. 중독자는 먹이의 목을 물어뜯고 손으로 내장을 헤집었다. 목에 입을 박은 채 피를 빨아대는 모습은 갈증을 축이려는 절실함마저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나저나, 요 며칠 날씨가 좋구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네? 그게 무슨······.”


나리아가 살육으로부터 눈을 돌려 노부부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옅은 미소를 띠고 삶의 여유를 즐기는 듯, 찻잔의 향기를 음미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상이 아니다. 나리아는 그 기묘했던 불안감을 마침내 확인했다. 살육이 벌어지는 광경을 눈앞에 두고 그들은 어디까지나 평온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래왔고 그것만이 목적이라는 듯했다.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광경이 아니다. 그들의 시선은 명확히 살육을 목격했고, 풍경을 살피듯 시선이 머무르고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나 하늘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당신들은 저게······.”

“나리아님!”


나리아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크게 벌어진 아가리를 보았다. 피에 물들 이빨과 사이에 낀 살점이 보였다. 나리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충격은 덮쳐오지 않았다. 나리아는 무언가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를 들었다.


“괜찮으십니까?”


나리아는 눈을 떴고, 목 없는 몸이 내뿜는 핏물을 보았다. 천천히 쓰러지는 몸 뒤로는 칼을 들고 있는 베니의 모습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눈앞의 적을 쫓느라 소홀히······.”


나리아는 몸에 튀는 핏물의 감촉을 느꼈다. 베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불안하게 요동치는 심장소리만을 들으면서, 나리아는 노부부를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피에 물들어 있었다. 구르던 머리가 그들의 발에 닿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핏물이 튄 찻잔을 한가롭게 입술에 대고 있었다.


“멋진 날씨로구나.”


나리아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지금까지 그랬듯 하염없이 흐렸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베니가 수건을 꺼내 나리아의 얼굴을 닦았다. 피비린내가 콧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나리아는 황망한 얼굴로 그 손에 얼굴을 내맡겼다.


“베니.”

“네, 네?”

“저 사람들은, 뭐죠?”


길거리에는 다섯 명이 널브러져 있었다. 피해자는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넷은 베니가 순식간에 베어 넘겼다. 풍경 속에서 변한 점이라고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 여유롭게 앉아 바람을 쐬는 사람, 찻잔을 들이키는 노부부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나리아님?”


나리아의 의문에 베니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저것이 저들의 생활입니다. 2구역은 오직 그것만을 위해 존재합니다.”


나리아는 현기증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2구역의 사람들은 마치 생활의 한 단면에서 박제된 듯이 보였다. 사람의 목이 발아래를 굴러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사람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나리아는 부정하고 싶었다.


“도대체, 도대체 그게 어떻게 사람일 수가 있다는 거죠? 그게 무슨 소리에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거예요?”

“하지만, 본래 그러한 것입니다.”

“베니, 저는, 저는······.”

“죄송합니다. 두 번 다시 나리아님의 반경에서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그게 아니에요. 저는 단지······.”


나리아는 눈가를 닦았다. 눈물이 흘러서가 아니다. 눈에 들어간 핏물 때문인지 시야가 일그러졌다.


“대체 저는 어떤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죠?”


느닷없이 솟아오른 의문에, 베니로서는 대답할 도리가 없었다.


나리아가 진정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공격을 받을 뻔했다는 사실보다 구역민들이 보인 기괴한 행태가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리아는 이해해보려고도 했고 부정하려고도 해보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되지 않았다. 살아 움직이는 동상에 불과한 존재들과, 그런 존재들을 품고 도시라고 주장하는 이 공간 자체가 두려울 정도였다.


어느덧 해가 지려 했다. 베니는 넋을 잃은 나리아를 앞에 두고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오자, 베니는 자기도 의아한 기세로 나리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떻게든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벌어진 행동이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운터에는 늙은 할머니가 한 명 서 있을 뿐이었다.


“어서 와요.”


노인은 나리아의 몰골에 잠시 놀란 눈치였다. 베니가 채 닦아내지 못한 핏물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일단 들어오겠어요?”


노인이 화사한 미소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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