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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님의 서재입니다.

폐하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역우
작품등록일 :
2021.02.14 17:49
최근연재일 :
2021.08.31 23:59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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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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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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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0.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5)

DUMMY

“······마고.”


나리아는 디나를 깔고 앉은 채 마고를 보았다. 깔린 디나가 버둥거렸다. 나리아는 날뛰는 디나의 어깨를 양손으로 단단히 억눌렀다. 피차 형편없는 신체 능력이라면, 먼저 세차게 후려갈긴 나리아가 우세했다.


마고는 디나의 위기에도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입가는 선을 그리며 감탄까지 하고 있었다.


“호오, 대단하구나. 벌써 그렇게 다루게 되었다니.”


디나와 나리아의 주변에서는 아직도 공중에서 무언가가 연달아 터져나갔다. 마고의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마고에게는 이 보이지 않는 무기가 보인다. 나리아는 확신했다.


“······마고, 역시 디나랑 한패였군요.”

“한패? 기사가 자신의 칼과 한패라고는 표현하지 않는단다.”

“얘가 당신의 도구일 뿐이라고요?”

“그렇다마다.”


나리아는 디나를 내려다보았다. 디나가 씩씩거리며 나리아의 아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도구라는 소리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고, 당신들은 뭐죠?”

“긴 세월,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아이는 오랜만이구나.”


마고가 돌연 말을 멈추고 한 지점을 응시했다. 나리아도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의식의 허점을 베니가 파고들었다.


마고를 노리는 베니의 눈빛은 형형했다. 뽑은 두 칼이 마고의 목덜미와 심장을 노리고 쇄도했다. 나리아는 뒤늦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베니는 몸을 날린 후였다.


“베니! 안 돼요!”


베니가 지척에 이를 때까지 마고는 무심한 눈빛이었다. 디나가 살육의 한가운데에서 보이는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나리아는 불길한 상상을 떠올렸다. 베니가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나서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마고는 코앞까지 날아든 칼날을 앞에 두고 속삭일 뿐이었다.


“너는 할 수 없다.”


오직 그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만으로 베니의 동작은 우뚝 정지했다. 마치 꼭두각시의 실이 붙잡힌 듯한 모양새였다.


베니는 속박에서 풀려나기 위해 용을 쓰는 듯했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도 몸은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의 통제권을 상실했다.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이 베니는 그저 칼을 내민 채 서 있었다.


베니가 정지하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단검이 쏟아졌다. 어딘가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재형의 공격이었다.


마고는 미간을 조금 찌푸릴 뿐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검 여러 자루가 마고의 몸에 박히는 순간 나리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어떠한 비명도 들려오지 않았다. 의심스럽게 뜬 눈에는 단검이 꽂힌 채 서 있는 마고가 보였다. 피하지 못했든, 피하지 않은 것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모습이었다.


“재형! 물러나요!”


나리아는 어디선가 보고 있을 재형에게 소리를 질렀다. 디나 못지않게, 오히려 디나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꽂힌 칼자루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정말로 생명을 상징하는 액체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고는 담담하게 단검을 뽑아 바닥에 던졌다.


“무의미한 짓이야. 이 도시 안에서라면 나는 죽지 않는다.”


그 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나리아는 찢어진 살가죽에서 흐르던 피가 상처를 향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직감했다.


“······어떻게?”


그 장면을 목격한다면 누구나 떠올릴 의문을 나리아가 중얼거렸다.


“놀라우냐? 다른 사람들도 너를 보면 같은 심정일 것이야. 이 도시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할 디나를 깔아뭉개고 있지 않니.”

“당신들은 사람이 아니군요.”

“호오, 너는 3구역의 살덩이들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더니, 이번에는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구나.”

“······죽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세상 만물은 거의 사람이겠구나. 그 논쟁을 다시 해보겠느냐?”

“······혹시 당신이 황제인가요?”


나리아의 질문은 그나마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가정을 내보였다. 오히려 그렇기를 바랄 정도였다. 황제가 아닌데도 저런 괴물이 또 있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황제라고?”


나리아의 질문이 유쾌했는지 마고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 아이는 옛 인류의 유산 중 하나에 불과하다. 동류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가여운 아이일 뿐이야.”

“그렇다면 당신은요?”


마고는 품을 뒤져 담배 한 대를 빼내 물었다. 불을 붙이는 모습에서는 여유마저 느껴졌다. 느긋하게 뿜어내는 연기 너머로 마고의 미소가 보였다.


“일단 그 아이를 놓아주겠니.”

“······좋아요. 그쪽은 베니를 풀어주세요.”

“어려울 거 없지.”


마고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나리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베니에게 말을 건넸다.


“네 주인에게 돌아가 맡은 바 일을 다 해라.”


그 말과 함께 베니의 속박이 해제되었다. 베니는 즉시 마고와 거리를 벌려 나리아 곁에 섰다. 그녀의 얼굴은 당황과 분노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럼 너도 돌아가.”


나리아가 디나의 몸 위에서 비켜서며 속삭였다.


“조심해. 두 번 다시는 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거야.”


디나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나리아를 노려보며 일어섰다. 나리아는 이제 그 눈빛이 두렵지 않았다. 실체를 드러낸 디나는 그저 약간 기묘한 힘을 다루는 아이일 뿐이다. 지금은 디나가 죗값을 치를 때가 아니다. 나리아는 실컷 얻어맞고 울먹이는 디나에게 당장은 만족하기로 했다.


디나가 비틀거리며 마고에게 물러갔다. 나리아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베니에게 말했다.


“베니, 괜찮아요?”

“······나리아님.”


베니의 안색은 창백했다. 그녀는 일단 칼을 쥐고 있었지만, 그 손은 가늘게 떨리기까지 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이요?”

“저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베니는 마고를 노려보며 용을 쓰는 모양새였다. 달려들어 칼을 휘두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달려들지 못했다.


‘정신조작일까? 아니면 최면? 저것도, 디나와 알베릭이 지닌 능력의 연장선일까?’


나리아는 베니가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손을 잡아주었다.


“침착해요, 베니. 제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말해도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나리아는 베니를 진정시켰다. 베니는 그런 나리아를 보며 묘한 얼굴이었다. 헌진조차 제압했던 디나를 두들겨 패고 그보다 더 가늠할 수 없는 마고를 상대로 위축되지 않았다. 단순히 겁을 모른다고 하기에는 알 수 없는 확신이 엿보였다.


“우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느냐.”

“네, 몇 번째로 물어보는지도 모를 정도요.”


마고가 디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처를 살폈다. 그 가벼운 손짓만으로도 디나의 상처가 가라앉는 듯했다. 나리아는 마고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마치 베니를 감싸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디나가 마고의 칼이라면, 지금 이 순간 나리아는 베니의 방패였다.


“우리는, 그래, 옛말로 하면 천사라고 할 수 있겠구나.”


농담처럼 들렸으나 나리아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무엇이든 주장할 힘을 지녔고, 설득력이 있었다. 악마라고, 심지어 신이라고 주장해도 진지하게 고민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천사가 따르는 신은 누구죠?”


나리아가 묻자 마고는 깊이 들이마셨던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뿜으며 대답했다.


“인류.”

“마치 현 인류는 당신들의 주인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그렇다마다. 이 도시에 있는 인간들은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옛 인류는 멸종했고, 멸종한 것들을 어떻게 따르겠느냐. 실체가 없으니 오직 신이라고 부를 뿐이란다. 그저 그들의 흐릿한 의지만 깃들어있을 뿐.”

“그렇다면 당신은, 기계로군요.”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 우리는 우리의 정의를 잊은 지 오래다.”


마고는 싱긋 웃으며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져 밟아 껐다. 지극히 인간적으로 보이는 행위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실행되고 있는 시뮬레이션의 관리자이자 주인 잃은 하인이다. 한때는 네 말처럼 기계였고, 단말기에 불과했지. 긴 세월 우리는 스스로 개조해왔다. 그러니 이제는 스스로 정의할 수 없겠구나. 지금 네 눈앞에 있는 몸은 엄연히 유기물이니 말이다.”


베니는 마고의 말에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오직 나리아만이 마고의 말을 짧게 요약할 수 있었다.


“인공존재로군요.”

“그 말이 듣기 좋구나.”


마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리아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디나는 맞으며 울먹였고 마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말하는 정체와는 달리 지나치게 인간적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까마득한 세월을 가늠케 했다.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암흑기는 그들이 감정을 지닐 만큼의 시간이다. 적어도 스스로 진화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저는 디나가 숱한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 이유는 뭐죠?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들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

“그 목숨에는 아무런 정보 가치가 없다. 원본의 복제품에서 파생된 불순한 유기물에 불과하지. 시뮬레이션의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생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묻죠.”


나리아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나리아로서도 마고의 말은 모두 소화하기 힘들었다. 무슨 이유로 나리아에게 그 정보들을 털어놓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고의 말이 불길하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것은 어쩐지 죽어가는 사람에게 선심 쓰듯 던져주는 동정처럼 들렸다.


“지금 이 도시에서, 당신들의 목적은 뭔가요.”

“도시가 휴식기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최대한의 오차율을 수집해서 다음 시뮬레이션을 대비하는 것이다.”

“······이 도시가 끝나고 있다는 건가요?”

“그렇지.”


나리아가 알고 있는 황제의 목적과 같다. 그렇다면 이들은 같은 부류다. 나리아는 잠잠했던 적의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당신들이 이 도시를 끝내는 주체로군요.”

“도시는 스스로 끝난다. 그렇게 설계돼있지. 모르겠느냐, 이 도시의 모든 것은 인류의 부흥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리아는 도시의 설계도를 떠올렸다. 그것은 어떠한 신뢰의 증거였다. 도시는 인류의 요람으로, 폐허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안전한 장소다. 그러나 마고의 말은 그 신뢰를 뒤집고 있었다.


도시는 인류의 요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언제인지 모를 까마득한 미래에 존재할 인류는, 현 인류의 후손이 아닐 것이다. 마고가 말하는 요람은 곧 무덤을 예비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 도시는 언젠가 다시 번성할 인류를 위한 제물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그 인류에,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거군요.”

“애석해하지 마라. 너와 같은 감정을 품은 사람은 이 땅에 불가해할 만큼 존재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에, 그 또한 잊히기 마련이지.”


나리아는 마고의 의도를 이해했다. 이와 같은 정보를 발설해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리아에게 털어놓고 있다.


“그렇다면 저는.”


한두 번 있었던 일은 아닐 것이다. 마고는 과거에 있었던 숱한 도시에서 같은 말을 누군가에게 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파멸해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나리아는 그 흔해빠진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 수많은 것들은, 그러나, 나리아가 받아들일 이유는 되지 않는다.


“당신들을 거절하겠어요.”


작가의말


주말동안 크게 앓았습니다. 나은 걸 보니 코로나는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여름에 몸이 허해진 모양이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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