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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님의 서재입니다.

폐하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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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작품등록일 :
2021.02.14 17:49
최근연재일 :
2021.08.31 23:59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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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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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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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2.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7)

DUMMY

“흐음.”


마고가 목덜미를 뚫고 가슴께로 튀어나온 칼날을 내려다보았다. 흐르는 피는 적다. 상처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마고는 칼을 뽑아 바닥에 내던졌다. 상처는 순식간에 복원되었으나 마고는 비틀거렸다. 설령 몸이 찢긴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마고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고 할매!”


디나가 달려와 마고를 부축했다. 마고는 디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꼿꼿이 섰다. 몸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류를 탐색하고자 눈은 지그시 감겼다.


“독성을 내게 심었구나, 법우.”

“그렇다.”


법우의 상처도 얕지 않았다. 새빨간 선혈이 그의 목덜미에서 울컥거리고 있었다. 마고는 자신의 몸에 침범하는 가장 짙고 독한 피를 느꼈다. 그것이 법우의 의도였다면 그는 훌륭하게 완수했다. 마고는 당장이라도 날뛰려는 디나의 어깨를 지그시 억눌렀다.


“허튼짓이란 걸 모르느냐. 도시는 이미 움직이고 있거늘, 이 정도로는 그 어떤 계획도 바뀌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법우는 자신의 목덜미를 손으로 눌렀다. 그의 눈은 쉬지 않고 깜빡였다. 몸에서 돌고 있는 독액의 기운과 빠져나가는 피로 어우러진 충격 역시 그를 덮쳤다. 그러나 법우는 창백해진 얼굴이면서도 열의로 번뜩였다.


“내가 몇십 년에 걸쳐 제조해낸 독이다. 오로지 너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긴 그렇군.”


마고의 몸은 독을 분석하려 들었다. 그러나 마고는 이제까지 축적된 모든 정보에서 벗어난 성분 앞에서 망설였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독한 물질들이 배합되어 새로이 만들어진 생체병기는 마고의 온몸을 돌며 두들겨댔다.


“그래서 이런 번거로운 방법으로 네 피를 내게 넣으려 한 것이로구나.”


당장 분석되지 않는 물질 앞에서 마고는 판단을 유보했다. 법우가 택한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법우.”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법우는 호흡하며 피를 내뿜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마고의 눈은 어디까지나 냉정했다. 이미 법우가 행동했을 때부터 마고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논리였다. 마고는 근본적인 원리를 묻고 있었다. 오로지 옛 인류를 보전하고 부활시킬 임무를 띠고 있는 관리자들에게 이러한 행동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도시를 지키는 것이 기사단의 임무이지 않으냐.”

“기사단이라. 네 근본이 그곳에 있더냐.”

“내 근본은 언제나 이 도시에 있었다. 옛 인류가 아무리 고고한들, 그것이 현재를 파괴할 이유는 아니다. 파멸한 과거의 망령은 잠자코 있어야 하는 법.”

“······과거는 오로지 이야기될 뿐이라는 게로군. 이것도 그 아이의 뜻인가.”

“폐하께서도 내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법우의 시선이 언뜻 나리아를 향했다. 마고는 그 시선을 눈치챘다. 영문 모를 상황에 두 눈만 크게 뜨고 있는 소녀가, 법우에게는 방아쇠가 되었을 것이다. 마고는 그 짧은 시선만으로도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그렇군.”

“너와 같은 중앙장치라도 침묵할 독이다. 잠자코 지켜보아야 할 것이야.”

“어디 두고 보도록 하지.”


마고는 법우를 뒤로하고 걸음을 돌렸다. 디나가 마고의 팔을 붙잡고 걱정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마고는 디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걱정하지 말려무나. 마저 다나에게 가자꾸나. 내 몸에 벌어지는 문제는 그 아이에게 던져졌다.”

“안 죽여도 돼?”


디나가 법우를 돌아보았다. 마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다.”


마고는 법우와 나리아를 번갈아 일별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사방에 널브러진 후보생들이 마구잡이로 부러진 팔다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마고는 그들 사이를 거닐며 현장에서 빠져나갔다.


“지나치게 사람답게 되었구나. 어쩌면 이런 몸을 택한 나조차.”


마고의 혼잣말은 아무에게 들리지 않았다. 다만 발걸음을 바삐 움직일 따름이었다.



마고와 디나가 물러난 곳에서는 신음이 난무했다. 나리아는 그런 상황에서 누구 하나에게도 시선을 고정하지 않았다.


“나리아님. 물러나셔야 합니다.”


베니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지금 이 자리에 쓰러져있는 동료들보다 나리아의 안위가 문제였다. 그러나 나리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허공을 노려볼 뿐이었다.


“······베니, 방금 법우가 카얄란을 만들어냈다고 했어요?”

“······.”


베니로서는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두 노인이 주고받은 대화는 일개 후보생으로서 감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독이 카얄란을 뜻한다면, 그것은 법우가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자백한 것과 다름없었다.


“법우, 그 말이 사실이에요?”


베니가 침묵하자 나리아가 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침내 고정된 시선 끝에는 분노가 따라 나왔다. 법우는 그 분노를 온전히 느끼면서 대꾸했다.


“그렇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죠?”

“내가 기사단의 무장장이라는 사실을 잊었느냐. 이 도시 밖에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는 물질들로 넘쳐난다. 그것을 수집하는 것 또한 기사단의 할 일이었지. 재료는 넘쳐나고, 시간 역시 썩어 흘렀다. 필요한 건 오직 의지뿐이었어.”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목에 뚫린 구멍으로 피를 흘리는 사람에게 취할 태도가 아니다. 그러나 나리아는 그것을 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째서 그딴 물건을 만든 거죠? 그 물건이 마약으로 유통되면서 숱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도시를 지킨다는 사람이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요!”

“애초에 최대한 퍼트려서 이 도시에 기록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기록······이라고요?”


법우의 담담한 말에 나리아는 멍청히 반문했다.


“이 도시는 자신의 품에서 벌어진 모든 것을 기록한다. 그렇게 되어있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변수를 일으킬수록 기록의 양은 늘고 그만큼 활동시간은 연장되지. 도시의 기억에서 뻔하게 기록된 사건은 소용이 없다. 이제까지 없던 사건들이 필요했지.”

“그것이, 카얄란이라는 마약인가요?”

“수많은 변종이 있다. 개중에는 스스로 변화하고 결합하는 것들도 있지. 네가 말하는 카얄란이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웃기지 마요!”


나리아가 성난 걸음으로 법우에게 다가가 멱살을 쥐었다. 베니는 미처 말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나리아는 분노로 눈앞이 새하얘질 지경이었다.


“그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고요! 도시를 연장해요? 그게 사방에 퍼져 모든 사람이 죽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나리아의 머리 한편에서는 상황을 냉정하게 이해하려 했다. 마고와 법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고 싸움을 벌였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마고는 도시를 초기화하려 하고, 법우는 그것을 막으려 한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법우가 선택한 방법은 오랜 세월 속에서 도출해낸 결론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동시에 나리아는 그 방법을 부정했다. 도시가 병든 채 유지되는 것은 하염없이 금이 간 유리잔에 불과하다. 그 상태로 살아남는 것은 어쩌면 죽느니만도 못할 수도 있다. 나리아는 카얄란에게서 지독한 파멸의 냄새를 맡았다. 병자와 광인들로 넘쳐나는 도시라면, 결코 긍정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멱살을 잡힌 채 법우는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말투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도시가 조금이라도 더 연장된다면, 그건 옳은 일이 아니더냐.”

“그게 어떻게 옳을 수가······!”


나리아는 흥분으로 말문이 막혔다. 옳지 않은 일이라고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는 없었다. 법우와 마고는 까마득히 먼 곳에서 자신들만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나리아는 관리자라는 그들의 역할만 알 뿐, 무슨 지식과 바탕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도시에 사는 삶으로서 따져야 할 부분은 명백했다. 그들 중 어느 한쪽이라도 긍정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루어질 도시의 파멸을 긍정하는 셈이다.


“꼬마야.”


법우의 동공이 축소되었다. 채 빠져나가지 못한 독이 그의 몸 안에 돌고 있다. 그 순간 나리아의 뒤에 있던 베니는 법우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지키기로 맹세한 것은 이 도시다. 멸종한 것들의 법칙이나 낡아빠진 논리회로가 아니란 말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이해도, 설득도 불필요하다. 긴 세월이 나에게 이미 물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 대답이다.”

“나리아님!”


베니가 느닷없이 나리아의 몸을 잡아당겼다. 나리아는 속절없이 법우의 멱살을 놓치고 물러섰다.


“그래, 이 느낌이 그러한 것이로구나.”


법우가 몸을 일으켰다. 마치 사지가 따로 움직이는 듯한 기괴한 움직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각기 쓰러져있던 후보생들도 일어서고 있었다. 법우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예비중독자들, 그리고 법우. 카얄란에 중독된 자들의 몸에서 증상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걱정하지 마라, 꼬마야. 너는 죽지 않는다.”


법우의 눈빛에서 서서히 이성이 사라졌다. 나리아는 베니에게 이끌려 물러가면서도 혹시나 했던 생각을 철회했다. 중독의 대상에서 법우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법우가 마고에게 자신의 독을 퍼트린 이유일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일으킬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일으키련다.”


법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광증과 달리 매끄러웠다. 나리아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베니가 칼을 빼 들었다. 달려들려는 중독자들 앞을 베니가 가로막았다. 그러나 사람의 신체능력 또한 강화시키는 카얄란의 광증이 법우와 후보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베니도 당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리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포위된 지금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법우는 베니와 나리아에게 달려들 자세를 취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을 맺었다.


“그것은 도시의 단말이었던 내가 수호자에게 목숨을 잃는 것이지.”


법우가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나리아는 시야 끝자락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았다. 지붕 위에서 뛰어내린 그림자가 그들을 감쌌다. 곧 땅을 뒤흔드는 충격이 울려 퍼졌다.


나리아는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바닥에 깔린 후보생 한 명과 그를 짓누르는 그림자를 보았다. 바닥에 꽂힌 톱니칼 아래에서 중독자는 꿈틀댔다.


“······헌진?”


나리아가 흙먼지 사이로 헌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헌진은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나리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만으로도 나리아는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헌진은 바닥에 꽂은 톱니칼을 뽑아 들었다. 톱니칼이 꽂힌 채 움찔거리던 몸이 정지했다.


“지금은 이들이 적이라는 사실만은 명백하군.”


헌진이 칼을 뽑고 법우를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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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7) 21.07.27 34 1 11쪽
112 111.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6) 21.07.21 21 1 11쪽
111 110.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5) 21.07.20 26 1 12쪽
110 109.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4) 21.07.16 49 1 13쪽
109 108.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3) 21.07.15 2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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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0. 폐기물 (5) 21.07.01 2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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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7. 폐기물 (2) 21.06.29 24 2 11쪽
97 96. 폐기물 (1) 21.06.25 2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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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 2구역 (2) 21.06.22 28 2 11쪽
94 93. 2구역 (1) 21.06.22 3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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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89. 탑 (5) 21.06.15 25 2 11쪽
89 88. 탑 (4) 21.06.14 5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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