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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님의 서재입니다.

폐하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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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작품등록일 :
2021.02.14 17:49
최근연재일 :
2021.08.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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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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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1.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6)

DUMMY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마고의 말은 아마 옳을 것이다. 도시 바깥은 여전히 인류를 거부하고 있었고, 더 많은 세월을 요구한다. 현재 도시는 인내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대의를 위해 받아들이고 소멸하라는 말은, 그러나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신들이 무슨 말로 변명하든, 살육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그건 저항할 이유죠. 아무도 멍하니 앉아 살해당하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 저항이 인류를 위협해도 말이니.”

“······네?”


마고의 말은 의외였다. 쏘아붙일 준비를 하던 나리아의 맥이 빠졌다. 위협은 오히려 마고가 하고 있다. 나리아는 인류의 관리자를 자칭하는 그들의 부당함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주장은 예상외였다.


“너는 상상도 하지 못할 기나긴 세월, 원본 인류의 유전자는 손상되고 있다. 오염된 세상 탓이지. 유전자에 축적되는 독은 어찌할 수가 없더구나. 수복할 수 있는 수단은 없고, 할 수 있는 건 손상이 심각해지기 전에 온전한 유전자를 회수하는 방법뿐이다. 네가, 이 도시의 복제품들이 저항할수록 기존 인류의 멸종이 가속할 뿐이란다. 이미 수명이 다해가는 도시가 홀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마고가 하는 말은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긍정하기에는 이기적이었고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했다. 도시에 속한 사람들이 발버둥을 칠수록 양측 인류는 소멸할 뿐이라는 의미에, 나리아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을 것이다.


마고는 나리아의 갈등을 느꼈는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옳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좋다고 옳은 것이 아니란다, 얘야. 현재를 잃기 두려워 미래마저 포기할 셈이더냐.”


마치 나무라는 듯, 위로하는 듯한 말에 나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나리아가 감히 맞서려던 것은 한낱 악당이 아니었다. 상대는 도시의 이치이자 한때 존재했던 거대한 의지가 정한 섭리였다.


“그런데도 저항하겠다는 것이 네 선택이라면, 그리 해라. 어차피 우리는 관찰하고 수집할 뿐이다. 도시 역시 제 일을 할 따름이겠지.”


마고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생각에 잠긴 나리아는 그 움직임을 깨닫지 못했다. 베니가 나리아의 손을 끌어 구석으로 이끌었다. 나리아가 미처 대꾸하기도 전이었다. 나리아를 벽에 붙이고 그 앞을 가로막은 베니는 어쩐지 긴장한 기색이었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군대가 오고 있습니다.”

“군대라고요?”


2구역에서 군대라고 부를 만한 집단은 하나밖에 없다. 나리아는 마고의 시선을 따라 어느 지붕 위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또 다른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법우.”


묘하게도 달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리아는 베니의 뒤에서 고개를 내민 채 두 노인의 교차하는 시선을 바라보았다. 마고는 그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잠시 찌푸렸을 뿐이지만, 법우의 눈길은 증오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도다, 마고.”

“장막을 거두자마자 찾아오다니, 마치 굶주린 들개 같구나, 법우.”


법우가 이를 드러냈다. 그 어느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을 것 같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아이야, 너는 옳다!”


지붕 위에서, 법우는 마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나리아에게 외쳤다.


“저 가증스러운 것들은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은 권한을 주장하며 도시를 지배하려 들고 있다. 그것이 옳은 일이더냐? 저들을 묵과한다면, 이 도시를 지켜야만 하는 기사단으로써 용납할 수 있겠느냐? 용납할 수 없고말고! 그 누구도 도시를 멸할 수는 없다! 황제는 물론이고, 옛 인류조차 말이다!”


법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지붕 위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기사단 후보생이었다. 그리고 나리아는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무수한 발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군대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무질서하고 거친 발걸음은 어딘가 익숙했다. 지금은 알고 싶지 않은 흉포한 기척이었다.


마고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디나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디나야, 움직일 수 있겠느냐.”

“응, 움직일 수 있어.”


디나가 마고의 곁에서 주먹을 쥐며 흘깃 나리아를 돌아보았다. 나리아는 베니를 제치고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또 그런 살육을 벌이게 둘 수는 없다. 오직 나리아만이 막을 수 있으므로 나서야만 했다.


“안 됩니다, 나리아님.”

“하지만, 베니!”

“뭔가 이상합니다. 아군의 소리가 아닙니다.”


이상한 기척을 느낀 것은 나리아뿐만이 아니었다. 베니는 나리아를 뒤로 물리며 칼을 고쳐 쥐었다. 마치 지금 몰려드는 것들이 적이라도 되는 듯한 경계태세였다.


나리아를 노려보던 디나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몰려드는 기척의 머리가 막 모습을 드러내려는 참이었다.


“할매, 다 죽여도 되는 거지.”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겠구나.”


마고가 담배 한 개비를 다시 뽑아 입에 물었다. 이번에는 여유의 증거가 아니라, 불쾌함을 드러내는 듯한 몸짓이었다.


“죽일 수가 없는 것들이다.”


그 순간 비명과도 소리가 골목길을 가득 메웠다. 나리아는 곧이어 불길함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도대체······.”


달려드는 사람들은 2구역의 병사들이 아니었다. 이성을 잃은 괴물들이었다. 나이아는 저러한 괴물들을 표현하는 현상을 단 하나밖에 알지 못했다.


“어째서 법우가 카얄란을?”


나리아의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베니가 나리아를 붙잡고 한 층 더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들의 야수성은 베니도 익히 알고 있다. 만에 하나 나리아에게 달려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해야만 했다.


“베니, 알고 있었어요?”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베니의 말에서는 거짓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 역시 진심으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법우 어르신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지붕 위에 있는 기사단 후보생들도 두려운 눈빛으로 법우를 힐끔거렸다. 그들이 얼마나 가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광경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은 명백했다.


“저것이 그가 택한 저항의 방법이다.”


광인들이 몰려드는데도 마고는 느긋해 보였다. 위기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마고는 저들을 죽이지 못한다고 했다. 법우의 노림수는 거기에 있었다.


“오염된 정보를 몸에 새기는 것이지. 저 마약은 이제까지 이 땅에 없던 물건이다. 우리에게는 관찰하고 수집할 의무가 있어. 혹여 도시가 그 체액을 흡수한다면 곤란하고 말이다. 사각의 허점을 찌르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구나.”


마고는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 배양기를 오염시킬 수만 있다면, 도시는 할 수 없이 현재 도시를 존속하려 할 테지. 흐음, 해볼 법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군.”

“저기, 마고 할매? 난 어떻게 해야 해?”


중독자들이 지척에 이르렀다. 디나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마고에게 따지고 들었다. 긴급상황에 메인 유닛이 홀로 중얼대고만 있으니 디나도 대응 강도를 망설였다.


“지극히 법우다운 일이로구나. 사람이 다 되었어. 한때는 동료였지만, 폐기물로서 저렇듯 발악할 수밖에 없는 절실함에 경의를 표한다.”

“할매!”


디나가 하는 수 없이 중독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리아는 등골이 섬찟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저 행위를 말려야 하는지 망설였다.


“아서라, 디나. 오차율을 발생시킬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할 수는 없지. 다나에게 가보자꾸나. 그 아이가 분석을 끝내기 전까지는 죽이지 마라.”

“알았어.”


그 순간 디나를 향해 달려들던 중독자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일부는 짓눌리듯 벽에 밀쳐졌다.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망치에 얻어맞은 듯 부러지거나 찌그러질 정도였다. 그러나 힘의 가감으로 절묘하리만치 피를 보지 않고 있었다. 세자릿수는 족히 될 법한 중독자들은 디나와 마고를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하고 몰려들고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다.


마고는 그런 광경에서 평온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럼 또 보자꾸나. 꼬마야.”

“자, 잠깐만요, 마고.”


작별인사를 건네려는 마고를 나리아가 붙잡았다. 그녀의 행동원리는 지극히 기계적이었다. 그래서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합리가 따를 만한 것인지 나리아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왜 저한테 그 모든 걸 알려주고 있는 거죠?”


마고는 나리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마치 가까이 있었더라면, 디나에게 그러했듯 머리를 쓰다듬어줄 것만 같은 미소였다.


“도서관의 노력이 기어코 열매를 맺었구나.”

“네? 도서관을 알아요?”

“네가 할 일을 행하거라.”


마고는 그 말만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렸다. 길은 디나가 열어두고 있었다. 마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마고의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있었다. 법우와 그의 사병들이 지붕 위에서 일제히 뛰어내리고 있었다. 여전히 쓸데없는 짓이다. 마고는 무감정한 눈으로 쏟아지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디나의 반응은 신속했다. 그들이 언어라고 부르는 힘은 마고 역시 보호의 범주에 설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찰나에 불과한 몇 가지 사소한 변수가 발생했다.


“앗.”


디나는 짧은소리를 냈다. 마고도 그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법우의 눈은 붉은 핏발이 곤두섰다. 카얄란이었다. 법우가 카얄란을 복용했다는 놀라움도 잠시, 디나는 명령에 따라 행동을 수정했다. 보이지 않는 무기가 변형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경로를 기다렸다는 듯 후보생들이 벽을 박차고 궤도를 틀어 막아섰다. 스스로 방패가 된 그들은 곧 뼈들이 망가진 채 벽에 처박혔다.


그야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법우의 칼날이 마고의 몸을 꿰뚫기에는 충분했다.


“어리석은 짓.”


마고는 자신의 몸을 꿰뚫은 칼날을 온전히 느꼈다. 법우의 눈이 코앞이었다. 그러나 마고는 그 눈빛을 응시하면서도 태연했다.


“나는 이 도시에서는 죽지 않는다. 너와 같은 일개 단말기와는 다르다는 것까지 잊고 말았느냐.”

“아니,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내 역할도 잊지 않았지!”


디나가 법우를 공격했다. 그러나 법우와 마찬가지로 카얄란을 복용한 그들이 디나와 법우 사이를 가로막았다. 살인이 허가된 상황이었다면 디나는 순식간에 그들을 모조리 꿰뚫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디나는 일일이 그들을 쳐내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했다. 그 시간 동안, 법우는 허리춤에서 짧은 단검 한 자루를 꺼내 자신의 목을 찔렀다.


갑작스러운 자해에 나리아와 베니는 물론, 마고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법우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이 마고를 적셨다. 마고는 그 의도를 깨달았다.


디나가 간신히 법우를 쳐냈다. 법우는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마고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녀의 몸이 흐르는 피를 되돌려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법우의 피가 조금이나마 마고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의 몸에 흐르는 법우의 피를 느끼자 마고가 상처를 쥐고 비틀거렸다. 미처 태우지 못한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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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7.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2) 21.07.14 31 2 12쪽
107 106.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1) 21.07.13 47 1 11쪽
106 105. 마고 (3) 21.07.10 25 2 12쪽
105 104. 마고 (2) 21.07.08 32 2 10쪽
104 103. 마고 (1) 21.07.07 34 2 11쪽
103 102. 폐기물 (7) 21.07.06 30 2 12쪽
102 101. 폐기물 (6) 21.07.02 20 2 11쪽
101 100. 폐기물 (5) 21.07.01 26 2 11쪽
100 99. 폐기물 (4) 21.06.30 25 2 10쪽
99 98. 폐기물 (3) 21.06.29 26 2 12쪽
98 97. 폐기물 (2) 21.06.29 25 2 11쪽
97 96. 폐기물 (1) 21.06.25 26 2 10쪽
96 95. 2구역 (3) 21.06.23 24 2 11쪽
95 94. 2구역 (2) 21.06.22 2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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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89. 탑 (5) 21.06.15 2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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