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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님의 서재입니다.

폐하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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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작품등록일 :
2021.02.14 17:49
최근연재일 :
2021.08.31 23:59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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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04
글자수 :
612,952

작성
21.02.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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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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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0. 도시의 말미

DUMMY

0.


도시의 말미에서 추격이 벌어졌다. 제국군 7구역 병장 성희는 칼조차 집어 던지고 골목을 헤집었다.


습격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밤이었지만 기림 제국군의 병영이 보일 만큼 환한 곳이었다. 뒤따르던 병사들에게서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까지 셋의 목이 잘렸다. 황급히 무기를 뽑을 때쯤에는 둘이 더 죽었다.


습격자는 그림자와 같았다. 가로등이 밝힌 환한 길에서 어둠이 꾸물거렸다. 분대원 중 절반을 잃어버린 시점에서 성희는 공포에 얼이 나갔다. 분대원들이 성희에게 지시를 요구하기 시작하자, 그는 무기를 버리고 달렸다.


성희는 병영으로 달려가 살려달라고 외치고자 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그림자가 일렁일 때마다 방향을 틀어야 했다. 병사들이 저항하던 소리가 들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이제 잠잠했다. 목 끝에서 사라지지 않는 살기에 성희는 끊임없이 달렸다.


오늘은 돌아가서 간만에 몸을 씻을 참이었다. 소등시간까지 여유가 나면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 와중에 병영은 자꾸만 멀어졌다.


전깃불 하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성희는 유도당했다고 깨달았다.


벽에 기대 터지려는 심장을 움켜쥐자 공포가 엄습했다. 성희는 칼을 쥐려다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칼집을 빼 들었다. 자신도 그 꼴이 우습다는 것을 알았다.


“누, 누구냐.”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나타났다. 성희는 허공에 칼집을 휘둘렀다. 어둠에 눈이 익자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젊은 청년이었다. 적어도 외견은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가늠하기 힘든 연륜이 감도는 눈을 보자 그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그제야 성희는 도시제국 곳곳에서 제국군이 실종되거나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떠올렸다. 설마 그 일이 자신에게 들이닥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병사들을 살해하고 성희를 쫓아왔음에도 그는 숨을 몰아쉬지도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평온했다.


“몰아넣었다.”


그가 귓가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성희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 다른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이 남자가 맞나. 그렇군. 상관없지. 알았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성희가 칼집을 겨누고 물었다. 남자는 성희를 무시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 대꾸하는 듯했다. 7구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그런 증상은 흔했다. 너무 흔해서 정신병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남자는 성희를 앞에 두고도 혼자서 한참을 중얼거렸다. 실성한 놈에게 자신의 생명줄이 잡혀있다. 성희는 그 사실만으로도 저항할 의지를 잃었다.


“사, 살려주시오.”


문득 성희가 빌자 그제야 남자의 시선이 꽂혔다.


“42번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알고 있나.”

“사, 살인사건.”


성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냈다. 살인사건이라니, 그런 건 7구역 어디서든지 벌어지는 일이다.


그만큼 사소한 일이었다. 황제를 받들어 임무를 수행하는 제국군은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겨우 7구역이었다. 7구역에 사는 제국민은 신민이되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기능하는 노동력일 따름이었다.


“모르는군.”

“어, 어느 사건을 말하는 것이오? 내, 내가 아는 거라면 뭐든지 말하겠소.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


남자의 칼이 어깨에 박혔다. 성희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칼이 비틀리자, 비명은 새어 나오지도 못했다. 입을 벌리자 숨이 새는 소리만 나왔다.


“17번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알고 있나.”

“제발, 제발······.”


칼이 다시 각도를 틀었다. 성희는 꺽꺽대며 고개를 젖혔다.


“모르겠지. 자상을 입은 여자아이가 쓰러져있었다. 너희들의 순찰구역이었다. 그런 상처를 낼 무기는 이곳에서 제국군에게만 허용되었다.”

“겨, 겨우 꼬마애 한 명일 뿐이잖습니까?”


어깨를 뚫은 칼이 벽에 닿아 무릎을 꿇지도 못했다. 칼날을 붙잡은 손이 떨렸다.


“나리께서도 아, 아시지 않습니까요? 겨우 한 명, 따, 딱 한 명만 재미 좀 봤을 뿐이지 않습니까? 나리 같은 높으신 분께서도 분명······.”


성희는 가까스로 비굴한 웃음을 띠고 아첨했다. 상대의 신분이 실제로 어떻든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7구역에서 칼을 지니고 있다면, 그리고 방금과 같은 실력을 지녔다면 자신 같은 말단과는 비교도 안 될 지위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군, 겨우 한 명인가.”


남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성희는 살아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느꼈다.


“그, 그렇습죠, 헤헤, 7구역에 사는 것들은 그렇게 줄여줘야 저희 일도 편해지지 않습니까? 어차피 아랫것들은······.”


성희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시큰한 감각이 목을 스치는가 싶더니 검붉은 것이 치솟았다. 그것이 핏물이라고 깨닫고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막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말이 되지 않는 소음을 흘리며 성희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나 어깨에 박힌 칼이 쓰러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죽음은 느리고 길게 성희를 빨아들였다. 신음하다가, 몸을 떨다가, 이윽고 정지하자 남자는 칼을 뽑아 들었다. 그제야 성희의 몸은 무너져 내렸다.


[웬일이에요, 헌진, 평소답지 않네요.]


오직 헌진의 귀에만 들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의아하게 물었다. 헌진은 귓가를 두들겨서 통신기에 신호를 보냈다.


“나를 경계하라는 명령조차 그들에게 하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가 봐요. 근데 뭐, 어차피 우리한테는 좋은 일 아니에요?]


헌진이 칼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깔끔하게 털어낸 피가 성희의 몸에 뿌려졌다.


“그렇긴 하지만, 이놈은 끝까지 몰랐다. 기림 제국은 하위구역에 있는 한낱 병사들의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하긴, 저놈은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겠지만, 우물 안 개구리이기는 마찬가지죠.]


때때로 소녀는 헌진이 알지 못하는 속담을 인용하고는 했다. 개구리가 무엇인지 헌진은 알지 못했다. 아마 기림 제국의 아무도 모를 것이다. 헌진도 지금까지 몇 번 설명을 청하고도 이해하지 못해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일곱 번째 태양이 떨어지기 전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은, 헌진이 알기로는 그녀가 유일했다.


“제국군에게도 단서는 없군. 복귀하겠다.”

[올 때 피자 한 판, 아니, 두 판만 사와요.]

“영업 중이라면.”


헌진은 발걸음을 돌렸다. 비가 내릴 모양인지 검은 구름이 끼었다. 7구역의 공장이 내뿜는 매연에 하늘은 늘 검었다.


거무스름한 어둠 사이로 헌진이 손에 튄 피를 바라보았다.


“결국 이들도 자신들이 죽인 꼬마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뭐 다를 거 있겠어요?]

“그도 그렇군.”


헌진은 가뿐하게 뛰어올라 건물 한 채의 지붕 위에 섰다. 멀리서 도시를 둘러싼 장벽이 보였다.


도시이자 제국을 품은 장벽 위에서 검은 비가 내렸다. 출구 없는 도시는 검은 비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작가의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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