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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요~ 썽우~ 어디 갔다 이제 와썹?"
"영화사 수업 이제 끝났다. 후발대는 저녁 6시 출발이던가? 여기서 속초까지 거의 3시간 더 걸린다고 치면 넉넉잡아 10시쯤 도착인데.. 출발 전에 간단하게 뭐 챙겨 먹고 가자. 가는 중에 배고프다 징징대지 말고."
"오키도키 맨~. 애들한테 과방으로 오라고 문자 보내 놔썹~"
"...... 너 그 말투 계속 쓸 거냐?"
"요 맨~ 이 말투가 어때서? 난 좋기만 한데."
"응. 그래. 네가 좋다는데 뭐... 창피하니까 이제부터 나 아는 척 안 했으면 좋겠어. 훠이~ 훠이~"
"아~ 왜~ 어디가! 같이 가!"
과방에서 뛰어다니며 놀던 우리가 03학번 선배들 눈에는 조금 거슬렸는지 한소리 하셨다.
"니들 안방이냐 여기가. 뛰어놀 거면 밖에서 놀아. 먼지 날리잖아!"
"넵! 죄송합니다~"
민우와 내가 선배들에게 빠르게 사과하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03학번 김대범 선배가 벌떡 일어나 우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 니들 지금 뭐 하냐? 선배 알기를 개똥으로 아네. 고개만 까닥까닥... 이것들이 확 그냥 빠져가지고."
"선배님 그런 게 아니.."
"야. 누가 말대꾸하랬냐? 어? 누가 말대꾸하랬냐고."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죄송할 일을 왜! 만들어 왜! 잘 좀 하자 어?"
손가락으로 민우의 머리를 툭툭 밀며 말하는 모습에 내 표정 역시 그 손가락에 맞춰 싸늘하게 변해갔다.
"네.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민우가 내 얼굴에 있던 싸늘함을 보았는지 얼른 꾸벅 인사를 드리고 나를 끌고 나왔다.
굳은 내 표정을 보던 민우는 순간 내게 헤드록을 시전했다.
"화를 내도 내가 화를 낼 상황이었는데 왜 네가 화를 내냐? 인마~ 표정 풀어. 저거 다 찌질해서 그래. 03학번 선배 중 성훈 선배나 하나 선배 빼고는 다 죽 쓰잖아. 실력으로는 밀려서 비중 있는 역할은 못 맡는데 자존심은 상하니 우리한테 푸는 거지."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것 좀 풀지?"
"음... 내가 미쳐 말 못했는데... 나도 좀 찌질함! 그러니... 너한테 풀어야지~ 후우우웅"
"야! 아파! 야아!!! 내 목!!"
한바탕 민우와 푸닥거리를 하고 있을 때 우리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다가온 대용, 수정, 동이는 한심한 표정으로 나와 민우를 쳐다보았다.
"하아... 니들이 애냐 아직도 그러고 놀게?"
"어? 언제 왔어? 왔으면 왔다고 얼른 이야기하지. 매점에서 간단히 뭐 먹으러 가자. 꼬우 꼬우~"
아... 목에 담 걸리겠네. 하여튼 저놈의 넉살은...
매점에서 다 같이 간단하게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문득 애들이 버스를 타다가 멀미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중에야 터널도 뚫리고 고속도로도 나고 할 테지만 지금은 그 험한 미시령 고개를 버스로 넘어가야 했으니까.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뭐? 지금? 야 곧 6시야. 이제 슬슬 운동장 쪽으로 가야 돼."
"얼마 안 걸리니 걱정 말고 먼저들 가 있어. 금방 갈게."
얼른 학교 앞 약국에 가서 멀미 방지 스티커 10개가 들어있는 멀미약을 사서 운동장으로 향했다.
"갑자기 어디를 다녀온다고 간 거냐?"
"요거 때문에 얼른 다녀왔다."
버스에 타 있던 애들에게 내가 사 온 멀미약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응? 멀미약? 오~ 우리 생각해서 사 온 거야? 기특해 기특해. 이 누나가 토닥토닥해 줄게."
"가는 길이 좀 험하냐? 난 너희가 먹은 라면, 만두, 음료수 그 혼합물을 다시 상봉하고 싶진 않다. 그러니 그거 잘 붙여서 너희 위장에서 다시 나오지 않도록 잘 봉인 시켜놔. 괜히 다른 애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마침 지현이도 버스를 타고 올라와 자리를 찾고 있길래 남은 멀미약을 건네주었다.
"그거 붙이고 가. 가는 길 험해서 멀미할 수도 있어. 남은 건 너희 동기 중에 멀미 심하게 하는 친구들 있으면 그 친구들한테 나눠줘."
"헤헤.. 감사합니다~ 선배 센스쟁이!"
혹시나 해서 방비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속초까지 가는 4시간.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좌우로 흔들리는 버스와 어두컴컴해 무엇하나 보이지 않는 바깥풍경,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미시령 고개까지.. 다들 속초 숙소에 내릴 때는 녹초가 돼서 내렸다.
"어우! 온몸이 다 찌뿌둥하네. 성우 너 멀미약 아니었으면 장난 아니었을 뻔했다. 그나마 우린 좀 나아 보이는데 저기 뒷자리 앉은 선배들 얼굴 봐라. 다 죽어가네 다 죽어가."
다들 스트레칭을 하며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후발대를 인솔했던 03학번 성훈 선배가 소리쳤다.
"자자! 다들 주목! 다들 힘든 거 아는데 우선 숙소부터 알려줄 테니 숙소에서 짐들 풀고 쉬자."
방마다 들어갈 사람들을 불러줬는데 대범 선배, 나, 상준, 지현이 같은 방이었다.
아.. 저 선배랑 또 부딪치고 싶지 않은데...
민우는 살짝 내 옆에 오더니 작게 속삭였다.
"괜히 문제 만들지 말고 혹시 또 지 랄떨면 그냥 똥이 말한다 생각해."
"애냐? 걱정 말고 너나 잘해. 술 먹고 후배들한테 꼬장 부리지 말고. 후배들이 널 보면서 저거 똥이 술 먹고 꼬장부린다~ 생각할 수도 있다? 적어도 같은 똥은 되지 말라고."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찌푸려진 민우는 고개를 휙휙 젓더니 빠르게 숙소로 올라갔다.
하기야... 저 03학번들의 꼬장 아닌 꼬장을 견디며 지금까지 허허 웃으며 넘겼을 텐데 저놈 속도 속은 아닐 테지.
숙소에 올라갔더니 널브러진 술병들이 꽤 보였는데 선발대로 먼저 온 사람들이 얼마나 술을 달렸는지 알 수 있었다.
다들 꽤 취해 있었지만 다들 우릴 격하게 반겨주며 술자리를 계속 이어갔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란 마음으로 일부로라도 대범 선배와는 떨어져 앉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선배 대접을 해 주길 바랐나 보다.
"신성우. 여기 와서 술 한잔 따라봐."
괜히 문제 일으키는 게 싫어 아무 말 없이 대범 선배 옆으로 가 술 한잔을 따랐다.
내가 따라준 술을 쭉 들이켠 후 내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신성우. 잘하자. 알겠냐? 잘 좀 해. 나 담배 하나 피고 올 테니까 저 방에 이불 좀 펴줘. 갔다 와서 좀 눕게."
허? 어이가 없어 대범 선배를 쳐다보자 분위기가 순간 싸해졌다. 이를 보다 못한 03학번 다른 선배가 대범 선배를 이끌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고 상준이는 방에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 놓은 후 내게 다가와 위로해주었다.
"성우 형. 형이 좀 참아요. 저 선배 저런 게 한 두 번이 아니라..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넘겨요."
"알아 나도. 그냥 조금 어이가 없어서 그랬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나 잠깐 쉬었다 올게."
바람이나 쐬면 술도 좀 깨고 화도 가라앉을까 싶어 나가려고 하는데 내가 걱정되었는지 지현이가 따라왔다.
"선배. 아까 보니까 1층에 따듯한 캔커피 뽑아서 마실 수 있던데 특별히 제가 쏠 테니 그거 하나씩 마시면서 바람 쐬러 가요~"
"오~ 지현이가 쏘는 캔커피를 마실 수 있는 영광을 마다할 수 없지!"
그렇게 지현이와 1층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고르고 있을 때 대범 선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너도 봤지? 내가 말하니까 두 눈 똑바로 나 쳐다보는 거. 이거 무서워서 후배한테 뭐 부탁이나 하겠냐? 이번에 상진 역할 맡았다고 위아래도 없는 건지.. 아니 그리고 오디션도 자신 있는 한 씬만 죽어라 파서 운 좋게 붙은 주제에..."
이 뒤로 뭐라고 더 말했는데 우리와 점점 멀어져 잘 들리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어떤 말을 했는지는 유추할 수 있었다.
저런 선배도 있구나 싶어서 피식 웃고는 지현이가 뽑은 캔커피를 들고 일어서는데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 곧 울 것 같은 지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 지현아! 너 왜 그래?"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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