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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디 님의 서재입니다.

가장 빛나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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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디
작품등록일 :
2017.02.06 11:59
최근연재일 :
2017.02.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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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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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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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
글자수 :
120,145

작성
17.02.0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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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3쪽

<2>

DUMMY

술자리가 꽤 오래되었는데 자리에서 뜰 생각을 안 한다. 벌써 20병 좀 넘게 마신 거 같은데... 특히 나와 문지영 작가가 많이 마셨는데 둘 다 술로는 어디에 내놓아도 안 빠질 만큼 센 주량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대화가 잘 통하다 보니 서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교류 시간이 길어 그만큼 술을 계속 마시는 시간 역시 길어졌고 어느덧 그 많던 소주가 몇 병 안 남고야 말았다.


"크으~ 좋다. 이 한라산 제주도에서만 나오는 소주죠? 요즘 나오는 소주보다 좀 독하긴 하네요. 요즘은 알코올 도수 내리는 게 추세라 빨간 두꺼비 말고는 다 순하던데 요건 좀 찌릿한 맛이 있어서 좋네요."


"오~ 너 술 좀 마셔봤구나? 요즘 나오는 술들은 영 맹숭맹숭해. 소주가 적당히 쓰면서 찌릿 해줘야 마시는 느낌이 나는 건데 요즘 애들은 그런 걸 모르더라고."


"여성분들이 마시기엔 도수 낮은 소주가 목 넘김이 좋긴 하죠. 그러니 다들 더 순한 소주를 내놓는 거기도 하는 거구요."


"그렇지... 요즘 시대의 흐름이 독하고 찌릿한 소주보다는 순하고 목 넘김 좋은 소주로 바뀌고 있으니...

그런데 난 예전 소주가 더 좋다. 꼭 인생과 같다고 느껴져서... 이 소주가 참 신기한 게 항상 똑같은 맛이 아니야. 내 컨디션과 기분 등에 따라 마실 때마다 다르단 말이지. 어떨 때는 입에 착 달라붙듯이 달달하게 넘어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독한 알코올 향과 맛에 한 모금도 못 마실 때도 있거든. 우리 인생도 이처럼 어떨 때는 달달하기도 또 어떨 때는 독하디 독할만큼 세상의 쓴맛을 느끼기도 하자나. 난 이 소주를 마실 때마다 인생을 느끼는 거 같아 좋아. 우리 인생을 음미하는 거 같아서 좋다. 이게 내가 소주를 좋아하는 이유지."


"전 뭐 술을 마시는 이유가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서 말이죠. 사실... 전 소주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아니 술 자체라고 해야 맞겠네요. 근데 술자리를 가지면서 가지는 지금과 같은 순간이 좋아요.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 술을 마시면 이 이야기들이 꽤 진솔해질 때가 많거든요. 그 이야기들을 듣는 게 좋아 술을 마시는 거 같아요."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보시더니 피식 웃으신다.


"술을 별로 안 좋아하는 놈치고는 너무 잘 마신단 생각은 안 하냐? 너랑 내가 비운 소주병이 저만큼이야. 어휴 오늘 많이 마시긴 했네..."


내가 생각해도 술을 안 좋아한다는 놈이 마신 술이 너무 많기는 많다고 생각해 웃음이 났다.


"니가 생각해도 웃기지? 아무튼 이제 슬슬 정리하고 들어가자."


"제가 정리할게요. 다른 분들이랑 얼른 들어가세요."


잠시 고민하던 문지영 작가는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여자 숙소로 들어갔다.


술자리 정리를 하다 보니 나도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와 정리를 끝내고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제주도 삼다(三多) 여자, 돌, 바람이라 하더니만... 그중 제주도 바람은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바람이 아니라 태풍처럼 느껴질 정도의 강풍이다.

괜히 나왔나 싶기도 했지만, 정신이 또렷해지는 효과는 확실해서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해변을 걷기 위해 바다 쪽으로 향했다.


어후... 3월 바람은 겨울 바닷바람이구나... 해변에 나와 바다를 보니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찰싹찰싹 파도 소리만 들려 조금 으스스한 느낌은 들었지만, 저 검은 바다를 보다 보니 생각의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검은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오늘 문지영 작가와의 대화는 연기에 대한 초심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거로 회귀한 이후부터 나는 조금 연기에 대해 자만했었다.


'지금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겠어?'란 생각.


물론 배우로서 프라이드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배우로서의 프라이드가 깨지면 더는 연기를 하기 힘들다. 스스로가 자신이 하는 연기에 자신이 없는데 그런 연기는 다른 누가 보아도 별로일 테니까. 그만큼 모든 배우는 자신이 하는 연기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프라이드 즉 자존감이 자만심으로 변했을 때다. 나는 회귀 전에 프라이드가 자만심으로 변한 배우들이 얼마나 편협해지고 독선적이게 되었는지 많이 보았다.


'연기에 대해서 너희들이 뭘 알아?'


'내 연기는 잘못되지 않았는데 상대 배우가 내 집중을 계속 깨게 만들어. 이건 내 탓이 아니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이런 배우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후... 항상 연기에 대해서 부족함을 느끼고 더 잘하려고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나는 현재의 내 연기에 만족하며 '이 나잇대에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자만했었다.


술을 마셔 얼굴이 달아오르는지... 아니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는지... 바닷바람을 맞으며 얼굴에 올라오는 열을 식혔다.


이제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느껴서 다행이었다.


최고의 연기를 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몰입하여 빠져나갈 수 없는 그런 연기를.


최고의 배우가 되고 싶다.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에서 나를 보기 위해 스크린을 찾을 수 있는.


자만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눈이 어둠에 익숙해 져서인지 검은 바다가 이제야 잘 보인다. 자만심으로 내 눈 앞을 가려진 것들이 사라져 저 검은 바다가 잘 보이게 된 거라 생각된 건 내 착각이겠지만... 마치 내 모습과 같은 느낌이 계속 든다.. 앞으로의 내 미래도 지금의 바다처럼 어두워 잘 안 보일 테지만 그 시간을 이겨낸다면 언젠가는 아침이 밝아와 검은 바다가... 푸른 바다로 바뀔 것이다.




아... 속이 쓰리다. 웬만큼 술을 마셔도 별 끄떡없던 내 위장이었는데 어제는 진짜 많이 마시긴 했나 보다.


쓰린 속을 붙잡고 물 한 잔 마시기 위해 부엌에 갔는데 주인장께서 북엇국을 끓이고 있으셨다.


"일찍 일어났네?"


"습관이란 게 무섭더라구요. 아침 이 시간대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그냥 알람처럼 눈이 떠져요. 근데 북엇국 하시나 봐요?"


"어제 다들 그렇게 술들을 마셨는데 속이 남아나겠어? 이거라도 먹여야지. 아직 밥이 안 돼서 한 30분 정도쯤 있다가 밥 같이 먹자."


"30분이요? 네~ 그럼 가볍게 여기 근처 구경하고 오면 얼추 맞겠네요."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물 한 통을 쭉 들이켰더니 살 것 같았다.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어젠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바다도 볼 겸 산책하러 나갔다. 바닷바람은 어제와 같이 강풍처럼 불어왔지만, 바다는 다른 모습이었다.


너무나 맑고 푸르른 바다. 같은 바다지만 어젯밤과는 정말 느낌이 다르네...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눈과 가슴에 담으며 해변을 걸었다. 푸른 바다의 매력에 취해 시간이 가는 줄 모르다가 30분이 다 되어간 것을 보고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음? 왜 밖에서 와?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눈이 일찍 떠져서 산책 겸해서 여기 앞 해변에 다녀왔어요."


"니가 젊긴 젊구나. 어제 그렇게 마시고 돌아다닐 정신이 있다니... 저기에 북엇국 있으니까 적당히 먹을 만큼 떠와서 먹어."


그릇에 북엇국을 먹을 만큼 적당히 담은 후 식탁에 앉았다. 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해 먹을수록 술로 괴롭혀진 속이 풀어지는 거 같아 좋았다. 쓰린 속을 북엇국으로 다스리며 밥을 먹고 있을 때 문지영 작가가 오늘 일정에 관해 물어보았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돼?"


"음... 천지연 폭포 구경 좀 하고 산굼부리 들렸다가 성산 일출봉으로 갈 생각이에요. 숙소는 제주시 쪽으로 가서 그쪽 근처에서 잡으려구요. 내일 아침 일찍 가는 비행기라 미리 제주시에 가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요."


"그래. 어제 웬만한 말은 다 했으니 다른 이야기는 할 필요 없겠고... 잘 보고, 잘 느끼고, 잘 배우고 가.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거야. 그리고 나중에 서울 가서 술 마실 때 종종 연락할게. 칼 같이 튀어나와."


"하하.. 불러만 주세요."


"밥 다 먹고 그릇들은 저기에다 놓아둬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어제 뒷정리하느라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내가 해야지."


아침을 다 먹고 나서 따뜻한 유자차 한잔을 들고 거실에 앉았다. 곧 떠나야 할 시간이었지만 이 게스트하우스의 명물인 이 수많은 책을 어제 술만 마시느라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한 게 아쉬워서 차 한잔 마실 동안만이라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분위기를 느낀 주인장께서 옆에 다가와 말씀하셨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와서 편안히 쉬었다 가야 하는데 어제 내 동생과 함께하느라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해요."


"아... 아니에요. 어제 큰 누님과 함께 한 시간 역시 저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단지 오늘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 여기서 하루 더 있다 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서 그렇죠. 혹 다음에 또 오게 되면 그때에는 이 책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 보려구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열려 있으니 시간 날 때 자주 찾아와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벨리 게스트하우스를 떠났다.


천지연 폭포는 명성 그대로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단체 관람을 온 사람들이 많아 북적북적 소란스러운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이 저 아름다운 폭포의 모습을 가리진 못했다. 가까이서 본 천지연 폭포의 모습도 멋졌지만, 산책로쯤으로 보이는 언덕 위쪽에서 보는 천지연 폭포의 모습은 나무들 사이 사이로 살짝 볼 수 있었는데 마치 비밀스러운 성역과 같은 느낌이라 신비스러움까지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천지연 폭포의 감동을 뒤로하고 두 번째 장소인 갈대숲으로 유명한 산굼부리로 향했다. 지금은 3월인 관계로 연극 속 주인공이 보았던 멋진 갈대숲을 볼 수는 없었지만 3월의 산굼부리 역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멋진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산굼부리 언덕을 걸으면서 비서인 윤선과 함께 걷고 싶었을 이 길을 얄미운 영어 강사 제헌과 걸었을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런 멋진 곳을 걸었으니 누구와 걸었어도 좋았을 테지...


마지막 세 번째 장소인 성산 일출봉은 큰 바위산 하나가 있는 모습이었다. 올라 갈 때는 생각보다 힘들었는데 가장 꼭대기까지 올랐을 때 그 모든 생각이 쏙 사라졌다. 자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세상에... 이런 멋진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니...


아래에서 바라보던 성산 일출봉은 그저 큰 바위산일 뿐이었지만 가장 꼭대기에서 보는 성산 일출봉은 앞쪽으로는 넓은 바다가 보이며 성산 일출봉의 분화구는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게스트하우스는 그동안 지냈던 게스트하우스와 조금 달랐다. 같은 방에 있던 분들이 모두 피곤해하며 쉬고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가 궁금해 살짝 물어보았더니 다들 한라산에 다녀와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나도 이 분위기에 편승해 조용히 내 침대에서 쉬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번 여행의 느낀 점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적어나갔다.


3박 4일 동안 만났던 사람들...


첫째 날에 만났던 친절한 할머니부터 문지영 작가까지...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만남의 순간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나의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었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이래서 다들 여행을 다니는구나.


상진을 알기 위해서 떠났던 제주도 여행이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후후... 이 모든 것들을 대용이와 민우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살짝 걱정이 들었지만 내가 느낀 감정들을 이야기하며 함께 공유할 생각을 하니 벌써 신이 나는 게 이게 내 천성인가 싶었다.


내 3박 4일의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나지만... 상진이 시작하는 3박 4일의 여행은 이제 시작이었다. 앞으로 남은 5개월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습하고 서로에게 날이 바짝 설만큼 감정들이 부딪치고 또 서로 어우러지고...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멋진 공연을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수첩의 제일 마지막에 소망을 담아 한 줄을 적어본다.


'상진의 여행 역시 나의 여행처럼 기분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라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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