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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디 님의 서재입니다.

가장 빛나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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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디
작품등록일 :
2017.02.06 11:59
최근연재일 :
2017.02.15 14:36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25,669
추천수 :
535
글자수 :
120,145

작성
17.02.06 12:22
조회
852
추천
18
글자
7쪽

<2>

DUMMY

"그 백팩 뭐냐? 어디가?"


"응. 오늘 제주도 갔다가 월요일 새벽 비행기로 올라오려고."


"웬 제주도? 여행 가는 건 아니... 응? 아! 너 상진 이가 했던 것처럼 그쪽 다녀와 보려고?"


"오~ 말 안 해도 잘 아는데~ 직접 가서 보고 느껴보려고. 경험만큼 확실한 게 또 없다~"


"잘 다녀와~ 다녀와서 어땠는지 이야기 좀 자세히 해줘. 네 이야기 들으면 좀 더 이미지 그리기 편할 테니까."


"오야~ 다녀와서 보자."


김포공항 도착 후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한 바퀴 휙 둘러본 후 주변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이미지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상진이는... 28살, 취업준비생, 취업이 잘 안 풀려 무력감과 우울함, 이러한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인지, 이를 탈피하기 위한 여행, 오랜만의 여행이라 설렘, 혼자 하는 여행은 처음이라 걱정 약간.'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잡힌 후 하나씩 하나씩 나에게 입히기 시작했다. 마치 상진이라는 옷을 하나씩 입는 느낌으로.


후.. 우선 여행을 출발하는 상진은 이 정도려나...


수속을 끝내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기분,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전 시동을 걸고 활주로를 향해 갈 때의 기분, 제주도에 도착 후 공항을 나왔을 때 느껴지는 바닷냄새. 이런 모든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과 느낌 등을 계속해서 적어나갔다. 느껴지는 순간 적지 않으면 휘발성이 굉장히 강한 느낌이기에 날아가기 전에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해서 적어야 했다.


뛰어난 쉐프 일수록 맛을 느낄 때 그 정도를 굉장히 세밀하게 세분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동해의 소금과 서해의 소금은 같은 맛일까? 우리가 느낄 때는 다 같은 소금이겠지만 쉐프는 느껴지는 짠 정도와 바다의 맛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뛰어난 연기자들은 자신이 느껴지는 감정들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쁨을 예로 들면 시험에 합격했을 때 느끼는 기쁨, 좋아하는 여자를 만날 때 느끼는 기쁨,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기쁨 등등 수많은 기쁨에 대해서 세분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글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처음 연기를 배우고 공부하며 실력을 키울 때 느끼는 감정을 이 글로 표현하는 게 정말 쉽지가 않았다. 이 간질간질한 느낌들을 막상 글로 쓰려고 하니 도대체 이게 글로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어떤 의태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감이 안 왔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란 말처럼 옹알옹알의 느낌과 웅얼웅얼의 느낌은 다르지 않은가...


지금이야 그래도 계속 느껴지는 감정들을 쓰다 보니 좀 익숙해져서 휙휙 쓴다지만 첨엔 얼마나 막막했는지 어휴...


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을 향해 갔다. 직접 렌터카를 빌려서 운전을 해보고도 싶었지만, 아직 운전면허증이 없는 관계로... 그건 패스.


여기가... 제주시 버스터미널인가?


상진은 여기 오기 전 모든 계획을 자동차가 꼭 필요한 여행이었어. 근데 자동차가 사라졌으니 답이 안 보이는 상황이겠지... 게스트하우스는 미리 예약을 한 상태였으니 우선은 그리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겠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대중교통을 통해 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그 버스 번호와 노선을 찾아봤을 거야...


상진이 여기 버스터미널에 들어왔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지금 상진이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흠... 머리속에 사고 생각이 떠나지가 않네. 자책하고 또 자책하고. 그래도 밥은 먹으려고 국밥집에 들어가서 한술 뜨기는 하는데 계속 사고의 순간이 생각나니 밥이 넘어가지 않았을 거다. 먹히지도 않은 국밥을 한가득 남기고 계산 후 나와서 저기쯤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겠네.


지금 기분을 표현하자면 '가슴이 타들어 가는 답답함, 스스로 뺨을 한 대 치고 싶은 기분,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다' 이 정도 느낌인데


크게 숨을 한번 들이 내뱉고서는 이 기분들을 나에게 덮어쓰기 시작했다.


아... 지금 이런 기분들을 곱씹고 있을 때


"학생. 괜찮은가?"


할머니 한 분이 내 옆에서 날 쳐다보시며 걱정이 되는 표정으로 말을 이으셨다.


"가만 보니 표정이 안 좋아 봬서 먼 일 있는가 해서... 어디가 아픈가?"


"아... 아니에요. 할머니. 여기 오는 도중에 사고가 조금 있었는데... 그 사고가 계속 생각나다 보니 그렇게 보였나 봐요."


"어이쿠, 어디 다치진 않았는가?"


"네. 다치진 않았습니다. 그저 기분이 조금 울적해서 그런 거니 걱정 안 하셔도 되요."


"안 다쳤다니 다행이구만 다행이여."


할머니의 걱정어린 마음이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 지는 게 느껴졌다.


대본에는 없었지만, 만약 상진이도 이런 어르신을 만났으면 조금 마음의 진정을 얻었을 텐데...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와 타고 가야 했다.


"할머니 저 이제 저 버스 타고 가야 할 거 같아요. 할머니랑 이야기 하다 보니 마음이 진정된 거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휴~ 아니여... 학생이 딱 내 손자 같아서 마음이 계속 신경 쓰였는데 괜찮아진 거 보니까 나도 마음이 놓여."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버스에 탔는데 아무래도 할머니에게 뭔가를 해드리고 싶어서 버스 기사분에게 사정을 설명해 드리며 3분만 있다 출발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터미널 안에 있는 슈퍼에서 양갱 2개와 따뜻한 쌍화차 하나 그리고 버스 기사분에게 드릴 커피 하나를 샀다.


양갱과 쌍화차를 가지고 할머니에게 다가갔더니 할머니는 놀라시며 물으셨다.


"버스 타고 간다 하지 않았는가? 버스가 아직 안 온 거여?"


"아니요 할머니. 이거... 할머니 드리고 싶어서 잠깐 온 거예요. 저희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이 양갱을 참 좋아하시더라구요. 이 양갱 입 궁금하실 때 하나씩 드셨으면 해서요. 그리고 아직 3월이라 날씨 추우시니 요 따뜻한 쌍화차 하나 드시면 좀 나으실 거예요. 할머니 저 진짜 이제 버스 타러 가야 할 것 같아요. 아까 저에게 건네준 말씀 정말 감사했습니다."


뒤에서 할머님이 "어이쿠 학생!" 하시며 날 부르는 걸 재빨리 버스로 달려가면서 꾸벅 크게 인사를 드렸다.


버스에 올라타 버스 기사분에게 캔커피 하나를 드리며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할머님에게 작지만 좋은 선물 해드리고 가는 거 같아서 기분 좋네요. 그리고 요건 제가 기사님에게 드리는 선물이요."


"뭘 이런 걸 다. 잘 마실게 고맙네. 버스 이제 출발해도 되겠는가?"


"네~"


달리는 버스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거... 감정선이 상진이와는 좀 달라졌네. 상진 이의 여행에는 저런 착한 할머니의 등장이 없었으니 아까 그 감정을 다시 잡아야 하는데...


이 따뜻한 감정을 내보내기 아쉬워 그저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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