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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蘭亭)서재입니다~

비밀 낙서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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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蘭亭)
그림/삽화
nanjung
작품등록일 :
2015.06.21 08:53
최근연재일 :
2017.04.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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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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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쪽

시조론 | 아픔이라는 변주곡 이야기

DUMMY

시조론

아픔이라는 변주곡 이야기






❀들어가면서


한국의 정형시, 시조(時調)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구태의연’하다거나 ‘고리타분’하다는 거다. 심지어는 이미 흘러가버린 문화유산이라거나 낡은 시 형식이라고 인식되기도 하는데, 고시조만 시조인 줄로 알기 아니면 고시조풍의 시어로 짜여져야만 시조인 줄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5보격 14행으로 이루어진 서양의 정형시 ‘소네트’나, 5‧7‧5 구(句) 17음(音)으로 된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에 비하여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시 형식이 ‘시조’이며, 또한 시조는 우리가 흔히 시(詩)라고 통칭하는 서양시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자유시 못지않은 우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조나 마찬가지로 우리 전통문화의 한 장르에 속하는 민화(民畵) 월간미술 엮음,《미술용어사전》, 1999, 169면을 예로 들어보자.

의례(依例) 도서(圖署)가 없기 마련인 민화는 주로 인정받은 화가가 아닌 민간인의 그림이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신화의 원형이 녹아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민화가 전통문화로서의 진정한 자리매김을 하려면 이 시대를 사는 무명화가가 그린 일련의 작품도 민화라 불려져야만 하고, 그래서 오늘날의 민화 역시 전승되고 계승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피카소가 우리 민화 <까치호랑이>의 문양과 해학성을 격찬하였다고 전해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시대에 한정된 그림이다. 만약 오늘날의 화가가 까치호랑이를 그렸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방이요 재현이며, 아무리 피카소가 격찬한다 치더라도 그 그림은 모조품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문인(文人)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문인화(文人畵)(앞의 책, 151면) 화가라는 자기 명함을 내밀면서 단지 문인화의 화풍만을 본뜬 그림 일색으로 전시회를 여는 형국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인화 등의 중국 시발점 문화가 아닌 우리만의 전통문화라 할 수 있는 민화는, 엄밀히 말해 전통적으로 이어지며 흐르는 게 아니라 과거의 우물에 고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 미술사조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장르로만 국한되어버린 것이다.


역시 우리 전통문화의 한 장르인 전통적인 현대시조는 단일한 시조군(時調群)이 아니라 다양한 시조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크게 둘로 나누자면 ‘평시조’와 ‘사설시조’를 들 수가 있다. 그리고 시조는 고시조도 시조이고 현대시조도 시조이며, 우리의 정신적 전통 속에서 유일하게 과거로부터 흘러내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함유한 시(詩) 형식이다.


현대문학에 있어서의 현대시조는 그 개념이 타 장르와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것과는 별도로, 시조는 본래부터 그 시를 짓는 시점을 기준하여 가장 현대적인 가락이어야 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만 시조가 시조다워진다. 시조의 본질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조건으로써, 때 시(時), 고를 조(調), 즉 바로 이 시절을 노래한 것만이 시조 본연의 모습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또한 고시조가 그 시대상을 반영했듯이, 현대시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바로 오늘 일상이 반영되는 우리 고유의 문학이며, 고시조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음악성(부르는 음악에서 읽는 음악으로 변환시킨)이 내재 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된 작품으로 보일 수가 있다.

현대시조 짓기의 기본이 7‧7(초장). 7‧7(중장). 8(9)‧7(종장)이건 간에, 우리의 호흡이 3‧4 구조식이거나 5‧7 구조식이거나 간에, 현대에 와서 정립되고 있는 시조 짓기는 자수(字數)를 따르기보다는 걸음을 적용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므로 평시조에서 예를 들면 [초장:4걸음―중장:4걸음―종장:3, 5를 지킨 4걸음]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들어가서


1) 형식적인 차원의 변주곡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는 전통 시조로서 평시조이며 고시조이다. 여기에 대해 김만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시조의 종장을 생략해보면 시의 느낌과 긴장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이미 ‘오백년 도읍지’의 웅장함과 ‘필마’의 초라함이 대비되어 있고, ‘의구한 산천’과 없어진‘인걸’이 대비되어 있다. ···(중략)··· 아마 현대의 시인들은 사족과도 같은 종장을 생략함으로써, 시적인 긴장과 함축을 얻어내려고 할지 모른다. ···(중략)···‘태평연월의 꿈’이라는 금언이 추가되어있고 ···(중략)··· 종장은 얼마든지 생략 가능하다. 그러나 시조의 세계는 이러한 엄격한 감정의 절제보다, 대상과 함께 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을 함께 제시하는 편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조는 감정의 절제와 고도의 압축미에 입각하기보다는, 자연과 자아의 일체감을 종장에 제시함으로써 균형을 획득하는 장치에 입각하고 있다. (김제현‧이지엽 외,《한국현대시조 작가론》, 태학사, 2002, 301~302면)


그럴지도 모른다. 초장 4걸음, 중장 4걸음을 천천히 걷고 쉬었다가 몸을 일으키며 종장에 가서 우선 “어즈버”하고 불현듯 바튼 호흡을 한 후에 ‘어즈버, 라고 했던 이유 묘사하기’가 고도의 압축미와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대 시인들이 종장을 사족이라고 인식한 나머지 생략해버림으로써 시적인 긴장과 함축을 얻어내려고 시도할는지도 모른다.

시조의 종장은 율격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통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어즈버’ ‘아이야’, ‘두어라’ ‘아마도’ ‘어찌타’ 등 단순 감탄사나 호격 감탄사형, 그리고 부사형 감탄사들이 평시조 종장 첫걸음에 많이 쓰이고 있는 환개(換介)사다. 그리고 ‘진실로’ ‘참으로’ 등 부사형 환개사는 사설시조에 많이 쓰였다(김제현, 《시조문학론》, 예전사, 1992, 35~36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시조는 생략이 아닌 압축과 함축 속에서 여유를 보이게 되는 느림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일쑤 축소하기 식을 지향하는 일본식의 시 하이쿠 작법과는 그 기본 틀부터가 다르다.


‘하이쿠’는 한국의 ‘시조’에 비해 3분의 1 길이 밖에 되지 않는다. 겨우 17글자로 드넓은 우주 공간과 사계절의 시간을 표현한 하이쿠는 축소지향의 일본문화에서 텍스트 구실을 한다. 일본문학의 수식에는 몽둥이를 바늘로 축소하는 표현이 많다. “모기가 흘린 눈물의 바다 위에, 배를 띄우고 노 젓는 사공의 가는 팔이여!”와 같은 광가(狂歌) 한 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형식도 짧지만 그 내용에 담긴 세계 역시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다.

미즈하라 슈오시(다이쇼(大正) 말부터 쇼와에 걸쳐 일본의 원로시인)는 “유리 늪에 폭포 떨어져 유리가 되다”라고 읊었다고 한다.

폭포를 소리로 표현하지 않고 그 흰 폭포가 늪에 떨어져 유리색으로 변하는 시각적 변화를 묘사한 것이다.

수십 가지 의성어를 써서 ‘우르르 꽝꽝’이라고 요란스레 표현한 한국의 유산가(遊山歌 경기 잡가의 하나. 화려한 산천의 경치와 새들의 노래를 의성어‧의태어를 써서 기묘하게 나타내었음)와 달리 조용하기만 한데, 이 시인은 폭포를 듣는 게 아니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를 색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을 눈으로 나타낸다는 얘기만이 아니다. 일본인은 애당초 언어와 같은 관념의 세계, 추상적인 그 이념까지도 시각적으로 바꿔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언어와 같은 관념의 세계, 추상적인 그 이념까지도 시각적으로 바꿔서 표현하는 경향’은 비단 일본 시인의 감성에만 국한된 표현법이 아니다. 소리를 색으로 나타낸다든지 하는 관념의 세계, 그 추상적인 이념까지도 시각적인 표현으로 바꿔 시 짓기를 하는 자세는 ‘시조’에도 얼마든지 나타나 있거나 나타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시 짓기의 기본이 그 어떤 것이든 형상화하기 작업이다. 소리를 색깔로 묘사하기, 색깔을 사물의 형상으로 표출하기 등은 ‘관념’과는 별개의 자리에서 시어 전달에 이바지한다.

어쨌든 관념이나 이념의 세계를 하나의 가시적인 사물 형태로 응결시켜 파악하려는 또 하나의 축소지향 형태로 본 다쿠보쿠의 단가인 시를 한글로 보자.


동해의 작은 섬 갯벌 흰 모래밭에

내 눈물에 젖어 게와 노닐다.


한국에도 동해가 있으니 한국의 동해 어디쯤에다 심상을 갖다놓고 이 시를 음미해본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바닷가는 모래밭이 희게 펼쳐져 있고, 화자(읽는 이)는 무언가 슬픈 일이 생겨 이 해변에 자기 몸을 놓는다. 더 상상하여 들어가면 동해의 작은 섬 바닷가에서 혼자 울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썰물 진 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과 만난다. 거기에 게들이 무수히 기어 나와 작은 구멍을 들락거리며 평화롭게 놀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시적 성과는 ‘내 눈물’이 ‘게의 거품’과 중첩되어 떠오르는 영상처리를 유도한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이것은 한 폭의 그림이면서 꽤 낭만적이고 의미심장한 영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다음 장면은 어찌 되었다는 말인가? 시 짓기의 핵심이 스냅사진 한 장을 정밀 묘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영상 한 장면의 효과를 성취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인가? 아니다. 위 단가의 시 형식 자체는 압축이지만 다른 서사적인 것은 일체 생략해버린 상태이다. ‘시조’의 관점으로는 생략은 어디까지나 생략일 뿐이지, 그 자체가 완성품은 아니다. 시조로 치자면 종장이 빠져버린 여기에서는 아름다운 동해의 작은 섬에서 눈물지으며 고물고물한 게들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 외의 그 무엇도 유추해낼 수가 없다. 팔다리를 생략해버린 고케시 인형이나 마찬가지의 연상만을 불러올 뿐이다.

한편 일본의 이 정형시는 짧고 길고를 떠나서 작고 크고의 ‘크다’에 해당한다.

아주 짧은 글 속에 담긴 큰 의미(이야기가 아닌), 그것이 일본의 정형시이다.


그런데 ‘시조’의 형식은 인간의 모습에서 팔다리를 생략해버린 고케시 인형을 만든 일본식 개성이 아니라, 팔다리와 신발까지도 신긴 인형을 만든 한국식 개성이다. 항간에는 한국인의 성격이 대체적으로 급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본래의 우리 국민성에는 모종의 아픔까지도 외마디(악!) 비명이 아닌 가락을 동반한 세 마디(아이고···)로 푸는 느긋함이 있다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다. 우리 민족의 방대한 한(恨)의 정체(正體)가 단 세 음절로 압축되어 있는 ‘아‧리‧랑’에서도 인식하다시피, 일쑤 외마디로 나와도 감탄사가 굳이 3자의 영탄조로 되어 나온다는 그것이 바로 여유로움(느릿느릿함) 속에다 함축과 압축을 아우른 것이라는 증명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현대시조의 종장 첫 걸음은 되도록이면 영탄사‧감탄사를 붙여야만 비로소 타 자유시와의 변별력을 획득하게 되기도 한다.


흔히 ‘결핍’이란 것이 예술작품을 낳는다고들 한다. 그런 시각으로서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생활이 여유로우니 예술가 되기는 애당초 틀렸어’ 라고 상대방의 겉만 보고 그의 예술인으로서의 소질을 저울질하는 섣부른 단정을 내리기도 한다. 결핍이 있으면 그 결핍을 채우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이 정한 이치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보다는 쓸 건더기가 모자랄 것이다. 사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픔에 대한 자기 작품을 형상화시키기 위하여서는, 아픈 사람의 입장이 되어 간접경험을 하느라고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 작품이 살아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태중의 생명에게 양수가 기본인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작품 탄생의 기본에 속하게 된다.


孔夫子께서는 詩를 ‘思無邪’라고 評을 하셨거니와, 이 女流詩人들의 詩를 보면 士大夫집 아낙네들의 노래에는 어째 그런지 일부러 感情을 눌러버리고 점잖은 체 꾸민 感이 있습니다. 그러고 小室과 詩妓의 것에는 조금도 감정을 거즛한 흔적이 없으니, 만일 ‘思無邪’가 옳은 말씀이라면 이點에서 아낙네들의 노래는 落第외다. 그러고 小室이니 詩妓니 하는 이들의 것이 되려 及第니 대단히 재미있는 對照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기는 그 중에도 蘭雪軒같은 例外의 분도 없지는 아니하외다.


― 김안서 역편, 한국여류문학 시선집,《꽃다발》(신구문화사, 1961. 4면. 역자 ‘김안서’의 권두언)


시 짓기의 핵심이 사무사(思無邪), 즉 마음속에 간사스러움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서두를 뗀 김안서는 사대부집 아낙네들의 노래에는 감정을 눌러버려 점잖은 체 꾸민 감이 있어 읽을만한 시가 못된다고 하면서, 그러나 난설헌의 시는 예외라고 부언을 달았다. 그런데「시형의 음률과 호흡(조선문예1919, 2)」에서 ―운율은 생리현상인 호흡에 기초한다, 는 말을 한 김안서는, 바로 거기서 예술의 내용과 형식의 이원구조성을 ‘심령과 육체의 조화’로 표현하여 예술의 기본개념을 밝히고 있다.

위 예문에서는 난설헌의 시편들이 유독 김안서의 눈길을 끌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가 있다. 운율이 생리현상인 호흡에 기초한다는 면에서 ‘시조’ 생성 근원을 밝힘과는 별도로 ‘심령과 육체의 조화’에 입각하여 예술의 기본개념을 밝혔다는 점에서 그것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렇다면 김안서가 예술의 기본개념을 심령과 육체의 조화에 두면서 주목했을 난설헌의 시 몇 편을 시조 형식으로 여겨지는 것만 찾아보자.


‣ 난(鸞)새를 넌지시 타고 구중성(九重城)에 날아 내려오네(초장)

붉은 비단 깃발 무지개 깃폭 휘날리며 태청(太淸) 하늘을 이별했네. 주령왕(周靈王) 태자(太子)님을 찾아가 만나 뵈니(중장)

벽도화(碧桃花) 그늘 속에서 밤에 피리를 불더이다.(종장)


‣ 손으로 오색 비단 펼쳐 아름다운 붓으로(초장)

구슬 옥(玉)자 쓰는 솜씨 취하신 그 얼굴은 옛날 당(唐)나라 궁전에서(중장)

청평조(淸平調) 지어 바치던 그 모습을 닮았어라.(종장)



사실 현실인식이나 시대정신이 투철하게 반영된 시조일수록 이미지보다는 관념을 중시한 경향이 있지만, 예외가 있기도 하다. 그 중 하나가 난설헌의 시편들인 셈이다.

난설헌의 시편들을 현대시 작법에 준하여 들여다보면 태반이 관념시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김안서가 예술의 기본 개념이라는 명제 아래 심령과 육체의 조화라고 변호하여 놓았고, 그럼으로써 학자들이 난설헌의 관념시 운운에 대하여는 함구해버렸을 것 같다.


그러면 과연 난설헌의 시가 관념 일색인가?

그녀의 시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아무래도 단순한 관념시가 아닌 것 같다. 난설헌은 27세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였다. 그리고 동생 허균에 의해서 우리나라보다 중국에 먼저 알려졌고, 일본에서도 동양의 천재시인이라는 칭송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시편들 도처엔 전생의 천형(天刑)에서 도망쳐온 가녀린 천녀의 애소가 넘실거리고 있다. 이 역시 억측이겠으나, 그냥 잊기엔 지나치게 큰 아픔들이 그녀로 하여금 심령적인 시를 쓰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아픔이다. 아픔을 승화시켜 노래로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 우리 가락 시조이다.

허난설헌 전집을 읽고 일련의 아픔을 조명하고자 시적 화자가 시적 대상으로 걸어가 지은 시조 한 편을 옮기자면 이러하다.



사시나무 소소리바람

두 무덤에 불어대고

숲 속 도깨비불도 구슬피 반짝일 때

비단 발

걷어 올리면

은 침상이 비었던 걸

딸 잃고 아들 잃고 오빠마저 갑산 보내고

갈가마귀, 먼동에 놀라

까악까악 울적엔

불처럼

피어오르며

꽃처럼 웃음치던 걸


저녁해에 불 질러 산등성에

구름이 타고 불사조,

구름수레 몰아

쫓겨 가듯이

이십칠 꽃다운 여인 무등 태워

들던 걸.


―「난설헌」전문



심령이든 육체이든 눈에 보이고 안 보이고 간에, 사대부집 아낙네이든 기녀이든 간에, 결핍은 아픔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아픔의 색깔은 슬픔이다. 기쁨은 침묵해도 아무 지장이 없지만 아픔이란 것은, 특히 형체도 없는 모종의 아픔이란 것은 침묵하게 되면 그 육체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과연 아픔이란 것이 무슨 색깔로든 반드시 슬픔만은 아닌 무형상이 되어 몸을 빠져나가고, 그것이 이윽고 형상성 있는 노래로 재생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한(恨)이며 한풀이다. 그리고 시조로써, 비단 양반 내지는 선비 계층에서만 우러나는 게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감성을 적시며 굽이쳐 흘러온 한풀이 노래다.


조선조 중종시대 사람으로서 오래오래 우리의 가슴을 점령하고 있는 정한의 시인 황진이. 원초적 본능을 잘 갈무리하여 원도 한도 없는 현세의 사랑을 추구하였던 황진이. 그녀의 타임머신이 필요 없는 불세출의 평시조 한 편을 구상 시인의 희곡집 구상 희곡집《황진이》에서 보자면 이러하다.


죽어 잊어야 하랴? 살아 그리워해야 하랴?/ 죽어 잊기도 어렵고 살아 그리기도 어려워라./ 저 임아 한 말씀 해다오 사생결단 하리라.//


황진이의 시는 몇 편 남겨진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시 한 편 한 편에 세기를 넘나드는 철학적인 사유가 깃들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연 그의 시는 흥타령이 절로 나는 우리의 유전인자적인 호흡, 또는 전통가락에 충실하다.「꿈」은 우리 가곡((1)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2)꿈길 따라 그 임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그 임은 나를 찾으려/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 양이면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으로까지 애창되고 있기도 하다.


꿈길 밖에 길 없는 우리의 身勢

님 찾으니 그 님은 날 찾앗고야

이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路中서 만나를 지고


님 찾아 꿈길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밤마다 오가는 길 언제나 어긋나네

이 后란 같이 떠나서 路中逢을 하과저


― 황진이의 시조「꿈」 김안서 역편, 앞의 책, 146면.



그 시대 대부분의 시가 그렇듯이 황진이의 이 시는 본래 한시(漢詩)이다. 김안서는 그가 엮은《꽃다발》에 4마디의 한시를 가운데 두고 각각 자유시 형과 시조 형으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형식을 통합하여 단지 “시조” 형식으로만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위 시조 첫 수는 언뜻 보면 평시조의 정형을 벗어나 엇시조 형식인 듯하고 둘째 수는 확연한 평시조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첫째 수의 행배치를 “꿈길 밖에 길 없는 우리의 身勢(신세)/ 님 찾으니 그 님은 날 찾앗고야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路中서 만나를 지고”로 바꾸면「꿈」은 2수의 평시조일 수도 있다.

그래서 2절의 노래가 나오기 용이하였다고 짐작되지만, 또 한편 유심히 들여다보고 2수를 한데 묶으면 초장 “꿈길 밖에/ 길 없는/ 우리의/ 身勢//”가 평시조의 형식 그대로 4걸음, 중장 격인 “님 찾으니 그 님은 날 찾앗고야/ 이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같이 떠나 路中서 만나를 지고/ 님 찾아 꿈길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밤마다 오가는 길 언제나 어긋나네// ”가 5걸음으로 길어진 형태, 종장 격인 “이 后란/ 같이 떠나서/ 路中逢을/ 하과저”가 3‧5‧4‧3을 확연히 지킨 형태로서, 사설시조에 해당한다.

내친 김에 허난설헌의 시 한 편을 이왕이면 현대 사설시조 작법으로 행배치 해보자면 이러하다.


밤 깊도록 베짜는 외론 이 心思(초장)

뉘 옷감을 이 몸은 이리 짜는가 팔벼개 수우잠(수잠 : 깊이 들지 않는 잠. 풋잠)도 맛볼길 없이 텅 텅 텅 북 울리며 베짜는 몸엔 겨울의 긴긴 밤이 그저 치울 뿐 뉘 옷감을 이 몸은 이리 짜는가 팔베개 수우잠도 모도다 그림의 떡 긴 겨울밤을 새며 텅 텅 텅 짜는 이 베(중장)

그 뉘가 입을 것인고, 心思설어 하노라(종장)


― 허난설헌의 시조「貧女의 노래 1」 앞의 책, 69면.



위 시조는 중장 격인 반복부분의 내용을 현대 표기법 “뉘 옷감을 짜는가, 팔베개 수잠도 없이 4‧3‧3‧5”로 줄여보면 전체 글이 사설시조 한 수가 된다. 그리고 한편 이 시의 제목에서 나타났다시피 이것은 노래이다.


모름지기 그 속에 아픔이 깃들어 있을수록 흥겹게 노래해야만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 수가 있다. 그리고 흥을 타는 노래일수록 반복과 후렴으로 리듬, 즉 운율을 지니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평시조 형식보다는 사설시조 형식이 더 노래성에 접근한다는 의미를 증명한다. 그런데 황진이‧허난설헌의 노래(詩)는 아무리 현대여성들의 감성과도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그냥 시조가 아니라 고시조라고 해야 마땅하다. 갑오경장 이전의 시여서이기보다는, 위 예문에서 보다시피 약 사백오십 년 전 그 시대의 어법이나 글자체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2) 내용적인 차원의 사설시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평시조가 느릿느릿하면서도 균형감을 주는 가락이라면, 사설시조는 주로 ‘랩’에 해당하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다.

난해한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틀을 지니고 있는 흥미로운 기법, 풍자와 해학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이 정형시의 내면을 살피면 우선, 초장과 종장은 16자 안팎의 4걸음을 그대로 취하되, 중장만 길게 나타내는 형식을 내재한다.

초장, 즉 도입부에서는 한 걸음(쉬고), 두 걸음(쉬고), 세 걸음(쉬고), 네 걸음(쉬고), 간 다음에 중장에 들면서는 불현듯이 10자 안팎의 첫걸음(쉬고), 10자 안팎의 둘째걸음(쉬고), 10자 안팎의 셋째걸음(쉬고), 10자 안팎의 넷째걸음(쉬고), 10자 안팎의 다섯째걸음(쉬고)······ 이라는 꽤 긴 호흡의 숨 가쁜 걸음들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종장(사설시조일수록 종장에서 첫걸음 3, 둘째걸음 5(6, 7,)는 맞춰주어야 타 운율과의 경쟁력을 가진다)에 임하며, 이 종장에서는 시치미를 떼거나 숨을 고르듯이 또박또박 걸음을 마무리하는 식이 바람직하다.


양반이 시작하여 서민에게로 전파되었다는 평시조와는 달리 서민이 시작하여 양반으로 전파되었다고 하는 사설시조는, 일반적인 자유시와 비교하면 산문시의 틀 안에 이야기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화(음악성을 함유한)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현대의 시조 짓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어느 시기까지 무관심한 상태에 놓여져 있던 새로운 인식, 사설시조를 향한 애정이다. 그리고 이 사설시조는 본질적으로 서민의식에 입각한 휴머니즘의 시이며, 서민생활의 애환을 노래하면서도 세태나 인간에 대한 비판정신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사설시조에는 평시조 틀에서는 좀체 풀길 없는 한의 가락을 배합시킬 수 있는 넓은 품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중장이 길어지는 형태의 사설시조 형식을 선호하는데, 아래의 글이 그러하다.


삼대구년만의 내조도 할 겸 페인트 깡통을 든다.

놀 속에 후두두둑 빠져드는 참새 떼를 구름바다에 너울지는 백로를 백로의 그림자를, 기암절벽에서 곤두박질하는 폭포를, 어디선가 본 듯싶은 돌담을 빽빽이 이끼를 달아, 빗방울 깜박 조는 새벽

장마철 웃어넘기며 미친년인양 붓을 놀린다.


《시조시학-봄호》20004, 25면. ―「이곳에도 어처구니가 산다」부분


“삼대구년만의 내조”는 풍자의 기법을 써본 글이다. 시적 화자는 삼대를 거친 세월에 구년을 더 보탠 시공간에서의 ‘내조’가 이미 한 지아비와 한 지어미의 문제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적인 한풀이의 시어는 뜻밖의 공감대를 이루게 되며, 벽화 그리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짐짓 환상적으로 읽혀지게끔(시적 화자가 화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독자는 이 대목에 지나친 상상과 상징성이 내포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장치하여 시적 미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삼대구년만은 아닐지라도 결혼생활 내내 내조할 일이 한번도 없었을 정도로 평생 출근 한번 안 한 남편이 어디 흔하겠는가마는 아무튼 시적 화자인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일종의 한국병이라는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식으로 그 상황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내조할 일이 생겼다고 짐짓 호들갑을 떨며 페인트 깡통을 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30년을 눌러 다독여온 아픔이 존재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의 저서《자기만의 방》에서 강한 호소력으로 내보인 관점이 있다.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남편과 함께 방을 쓰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월이 많이 변하기는 했어도 그의 이 주장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그 관점과는 좀 다르다. ‘남편과 방을 같이 쓰면서는 작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결혼을 했더라도 별거하는 상태여야 여성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는 뜻과 상충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나는 남편과 방을 같이 썼던 때에만 장편소설 몇 권을 썼다. 같은 방을 쓰는 남편에게 방해될까보아 남편과 거꾸로 누워서 스탠드를 최대한 내려놓고 밤새 글 속에 함몰되어가곤 했던 것이다.

사대육신 멀쩡하지만 무능한 남편, 아니,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있고 싶은 나머지 생계비 마련할 궁리조차 않은 채 한시반시도 아내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남편, 나는 그 남편에게서 탈출하느라 마치 종신형 죄수가 숟가락으로 감방의 땅굴을 파듯이 원고지를 칸칸이 채워갔었다. 남편과는 별개의 세계에서 놀고 싶어 감히 작가가 되기 위한 꿈까지 꾸었다고 하는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거듭 피력하는 나의 주장은, 아무런 장애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예술작품을 해내겠는가? 남편에게서 해방되어 훨훨 날아다닐 수 있다면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글을 쓰겠는가? 춤이라도 추지, 그냥 훨훨 날아다니면 되는 거지.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방구석(아무리 자기만의 방일지라도)에 틀어박혀 모종의 예술작품을 해내는가. 그것은 혹 부자가 천국 가는 일과 맞먹는 일이 아닌가? 하는 거다.

그렇다. 나는 늘 아팠지만 그 아픔을 도구로 하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러고서야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았다.


우리가 진정한 의미로서의 세계적인 문학예술임을 조명할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시, 시조를 지음에 있어서, 단지 대한민국 한 나라 안에서의 인간 일상만을 소재로 삼는다는 것, 또한 자기 일상만을 시제로 삼는다는 것은, 오히려 시조가 ‘세계적인 문학작품이기를 원치 않음’이나 마찬가지다.

비단 그런 사념(思念)을 가지고 시(시조)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논문 첨부작품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고흐를 모티브로 삼은 시조가 몇 점 있다. 겉으로 보기엔 광적이고 안으로 보기엔 예수의 현신인 것 같이 점철된 그의 일생이 너무 충격적으로 와 닿았던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고흐가 처음 눈길을 준 하숙집 딸 우르술라에게서 배신당한 이후로 사촌동생 케이에게서도 외면당하는데, 바로 그녀들의 시각을 빌려 고흐의 자학적인 고통 연속의 예술생애를 엿볼 수 있을 정도로, 고흐는 여자들에게서 외면당할 때마다 더욱 열렬하였다.


‘보리나쥬’에서 실습목사로 일하면서 “슬픔은 기쁨보다 낫다. 뛰어오를 듯한 환희 가운데서도 서러움은 있는 법.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 왜냐면 슬픔을 통해 마음의 모습이 더욱 어여뻐지기 때문이다.” 라는 설교로 광부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고흐는 유달리 “고뇌로부터 아름다움이 온다”는 옛말을 신봉하고 실천하였다.


그런 그가 거리의 여인 ‘크리스틴’과 동거한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건으로서, 그것은 가히 아가페적 사랑에 해당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고흐가 크리스틴을 모델로 그린「슬픔」(고흐가 1882년 헤이그에서 크리스틴을 모델로 그린 드로잉)은 ‘예쁘게 그려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신조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늘어진 허벅지에 닿을락말락한 서러움

바람 빠져가는 풍선, 풍선 같은 젖가슴 아래 헐수할수없던 풀씨가 뿌리내려 날로 달로 자라나는 삭막한 자궁동산을 슬쩍 적시고


입맞춤, 볼썽사나운 발등의 심줄을 덮다가


말라빠진 어깨를 쓰다듬다 놓아버린 맥

등뼈 조금 아래에 나릿나릿 흘러내린 몇 가닥 머릿결을 두고 뼈마디 앙상한 손으로나마 가리려던 얼굴, 얼굴이 용인민속촌 무명화가의 손에서 도려지고 지져졌구나.


모서리 벗겨져버린 한 쪼가리 피나무



미슐레의 말을 곱씹고 되씹으면서도 그냥

가난은 남의 일이고 슬픔은 아름다움의 사촌이라고 여물게 위장하였던 그의 배짱을 빌려 나도 당신에게 파란나비라는 닉네임을 지어드렸고 당신도 크리스틴이 고흐 대하듯 기뻐할


원수의 카드결재일 사흘이나 남은 날


―「고백」부분



이 시는 고흐의 그림에 이 시기 결핍 계층의 현실을 접목하였다고 볼 수 있는 사설시조 형식을 취하였다. 평시조로 풀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고흐의 이미지가 단아한 평시조와는 거리가 있어서였다.

고흐의 그림이 용인민속촌 화가의 손에서 한 쪼가리 피나무에 재현된 것을 들여다보노라면, 고흐가 그린 원래의 그림보다는 곱게 그려져 있다. 고흐는 임신 중인 ‘크리스틴’의 볼품없는 몸을 아름답다고 고집하면서 거짓 없이 묘사하였다. 그리고 크리스틴의 힘줄 툭툭 불거진 발까지도 그대로 묘사하고는 좌대에 ‘미슐레’의 말도 적어 넣었는데, 이러하다.


“어찌하여 여기 다만 절망에 빠진 여자가 혼자 있는가.”


그런데 용인민속촌 화가는 미슐레의 말이 적혀 있는 좌대는 생략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설마 하여서인지 쭈그러진 젖가슴을 좀은 우아하게, 숱 적은 머리칼을 좀더 풍성하게 그려놓았다.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던 나는, 고흐 전기를 읽으면서 고흐가 헤이그에서 크리스틴과 동거하던 시절로 파고들었다.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묘사된, 백년도 넘은 그 일을 현 시점의 일에 대입시키고자 함이었다.

시조의 특성이 바로 그 시절을 쓰라는 것이므로, 100년 전의 일을 100년 전 일만으로 백 년 전의 시점으로만 처리하게 되면 그것은 진정한 뜻의 시조가 아니게 된다. 그래서 참 오래(3년간) 방치하였던 미완성의 시를 지난봄 느닷없이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 시는 신작시《시조시학-봄호》2005. 로서 발표되었는데, 그것은 ‘파란나비’ 덕분이었다.


그 여인 파란나비는 절대로 크리스틴 같은 창부는 아니지만, 40대 초반의 소아마비 장애인으로서 방안에서조차 의족을 끼고, 반드시 무엇인가를 짚어야만 몸을 움직일 수가 있다. 그러면서도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키우고, 그 남편이 무능하여서인지 어째서인지 고생고생 하다가 십여 년 후에는 이혼을 하고 새로운 연하 남자를 만났다. 거기서 또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는 그녀는, 그런데 툭하면 카드빚에 쪼들리다가 기어이 파산선고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의 사업자금을 융통해주던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녀를 인터넷상의 카페에 초대하고는 파란나비라는 닉네임을 지어주게 되었고, 그러고 나자 별안간 오래 고민하던 내 시조 한편의 종장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혹 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몸으로 운전을 배우고 있는데, “열심히 운전 배워 2종도 따고 특수면허 중장비도 따서 제가 낳은 아이들 어떻게든 입히고 먹이고 교육시킬 겁니다.”라고 한다.

파란나비가 내게 보낸 이메일을 일부 인용하여 사설시조로 꾸며보자면 아래와 같다.


한 번은 섹스 일회 제공하는데 십 만원 달라니께,

아 저 인간 한다는 소리가 날더러 보건증 가져오라네유. 보건증도 없지만 보건증 가져온다고 지 넘이 마누라한테 줄 거금 십만 원이 워디 있것시유, 먹고 죽을래두 없지. 워찌 조로코롬 인간이 게을러터졌는지 기네스북 감이랑께유. 요러다가 저 인간이 자꾸 미워질까봐 하늘에 계신 최고로 높으신 분께 기도하는구만이라. 이 상황에서도 사랑하게 해주시오, 이쁘게 보이게 해주시오, 감사하게 해주시요 하고 말이우. 감사는 항암제고, 불평불만은 발암물질이라고 혀서 가급적이면 굶어도 감사, 허벌나게 배고파도 감사, 겁나게 추워도 감사, 무조건 감사하려고 맴 먹고 있지라우.

하나님 저 인간을 제게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카로스의 날개 2」부분



참담하고도 처절한 삶의 현장에 있는 화자는 이 시가 자진모리와 휘몰이 장단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읽혀지기를 유도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 저 인간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마음이다. 아무리 비참한 환경에 처해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그 삶을 윤택하게 한다. 시 또한 헤어날 길 없는 어둠에서 미세하나마 한 가닥 빛을 맞이함과 같은 성과를 거두게 된다.

‘파란나비’의 저러한 억척스럽기 짝이 없는 삶을 보면서, 나는 고흐의 아내 격이었던 ‘크리스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고흐에 집착하였던 이유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고흐가 크리스틴을 그리면서 느낀 감정과 내가 파란나비를 소재로 글을 쓰는 감정에 동병상련의 끈이 이어졌던 것이고, 나는 고흐에게서 한국인의 그것과 비슷한 호흡구조를 발견했다.

그리고 고흐의 단숨에 그리기, 또는 기운생동의 그림 그리기에서까지 일종의 공감대를 느끼기도 하였다.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함으로써 오르가즘을 느낀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학설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나는 예술가들의 쾌락탐닉이라는 것이 그 작품에서만 가능하다는 견해를 50% 정도는 인정한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의 예술가가 바로 고흐이기도 하다.




3) 소설 작품 변용의 시조


나는 앞장의 고흐 이야기처럼 위인전기나 미술작품이나 소설작품에서도 시조작품의 자료를 찾아내고 있는 편이다.

한번은 김유정 소설「동백꽃」에서 그 소재를 얻었기도 했는데, 아래의 사설시조가 그것이다.


분통터지고 무안스럽고, 걱정도 태산에다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길 판이라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닭의 물찌똥, 울음 놓았네. 놓고 있는데 빠알간 동백꽃인지 점순인지가 다가와, ···(중략)··· 노오란 동백꽃 흐드러진 내 머릿속으로 점순이가 쫑알거리며 걸어오네.

요담에 또 그랬단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첫사랑과 김유정표 동백꽃」부분



동백꽃이란 으레 붉은 색이라고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독자에겐, 김유정 소설 속에 나오는 동백꽃이 ‘노랗다’는 것과 ‘소보록하게 깔리다’라고 묘사한 것이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게 보인다.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힌다는 설정은 가지가 척 휘지 않고 뻣뻣하게 올라가는 동백나무의 성질이 떠오르면서 더더욱 당혹스럽다. 그래서 다시 소설의 본문을 훑어보게 된다.

강원도에는 동백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산에 깔릴 정도의 야생 동백꽃이라면 우리나라 남부, 특히 해안지역에서 겨울에 그 꽃이 만개한다는 상식이 독자의 마음을 가득 메운다. 독자는 ―그러면 이것은 혹시 진달래 철쭉을 참꽃‧개꽃이라 하는 식으로 개동백나무를 말함인가, 하고 사전을 넘기다가 ‘개동백나무(방언)―생강나무’를 발견한다. 이어서 ‘생강나무’를 찾아보면 이렇다.


생강나무:녹나무과의 작은 낙엽 활엽 교목. 키는 3미터 가량. 잎은 어긋맞게 나며 넓은 달걀모양에 3갈래로 얕게 갈라짐. 2월에 노란 꽃이 산형화서로 잎겨드랑이에서 모여 피고 장과(漿果)는 지름 8mm의 둥근 공모양이며 9월에 붉게 여묾. 꽃과 가지를 꺾으면 향기가 나서 생화로 사용하고······


위의 글은 비단 김유정 소설에 나온 동백나무 꽃이 사실은 생강나무 꽃이었다는 것을 입증해보이고자 하는 의도만은 아니다. 이른 봄에 가로변을 노랗게 장식하는 그 나무들은 산수유나무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 산야를 노랗게 물들이는 나무가 바로 산수유 꽃과 흡사한 생강나무 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다만, 시조 자체를 '아픔의 변주곡'이라 보고 시조의 예문이 아닌 소설작품(그러나 시조로 변형시킨)으로 일종의 ‘변증법(辨證法)적 시조론’을 펼치고자 함이다. 노란 동백의 알싸함과 붉은 동백의 황홀함이 순간순간 교차하면서, 또는 모순의 대립물(첫사랑‧농익은 사랑)이 서로 투쟁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변증적 사유(思惟)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김유정은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도, 수시로 각혈을 하면서도, 닭 30마리와 살모사 10마리를 고아먹기 위해, 그것들을 먹고 폐병을 물리쳐보기 위해 탐정소설 번역 일을 하였다. 그리고 시시각각 악몽에 시달리는 한편으로 새빨간 피를 쏟아가며, 샛노란, 마치 고흐의 그 해바라기 빛깔 같은, 일견 빈혈을 연상시키는 색깔의 동백꽃 이야기를 썼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 어떤 형태로든 아픔이 없고서는 훌륭한 예술작품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의 부인할 수 없는 반증이다.


또 한편, 아홉 마리 까치가 꾸지뽕나무의 새 주인이 된 것을 알아챈 전의 ‘아홉 타령’에 귀를 기울여보자. 아니, 소설가 이문구의 사설시조 한편을 요즘 유행하는 랩 템포로 읊어보자.



열은 끝이 있어도 아홉은 끝이 없는 수여(초장)


그래서 열버덤 많은 수가 아홉인겨. 아홉은 가장, 맨, 제일 같은 무한량 무한대 무진장인 것들을 가리킬 때 써먹는, 수가 없는 수니께. 하늘에서 가장 높은 디는 구민(九旻)이구, 땅에서 가장 높은 디는 구인(九仞)이구, 땅에서 가장 짚은 디는 구천(九泉)이구, 넓디넓은 하늘은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이구, 넓디넓은 땅덩이는 구산팔해(九山八海)구, 나라에서 가장 큰 관가는 구중궁궐이구, 또 가장 큰 민가는 구십구간이구, 집구석만 컸지 살림살이가 무진장 쪼들렸으면 구년지수(九年之水)이구, 그래서 수없이 태운 속은 구곡간장(九曲肝腸)이구, 그러면서 수없이 죽다 살었으면 구사일생이구, 그렇게 수없이 넴긴 고비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이구, 그러다가 셈평이 펴이어 두구두구 먹구 살 만치 장만해뒀으면 구년지축(九年之蓄)이구······ 암,(중장)


열버덤 열 배는 더 큰 수가 아홉이구말구.(종장)


―「장이리 개암나무」 이문구,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문학동네, 2000, 119면.



소설 문장의 한 가운데에 터 잡고 있는 이 사설시조 한 편에는 지나치리만치 토속적인 구어체에 편승한 해박함이 있다. 이와 같이 가히 볕꽃(소설가 이문구가 그의 소설작품에서 만들어낸 이름씨)같은 문체를 지닌, 소설가 이문구가 21세기 문턱을 넘자마자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부치는 편지를 평시조 다섯 수로 띄웠는데 그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 농사꾼, 별명 더불어 갈데없는 명천(鳴川)이여

‘행운유수’ 골골이 찰랑이며 누비던 쟁기질

어쩌다 시시껄렁한 글발로 어깃장 놓네.


놀빛 이울만해서야 만났던 전생인연

‘월곡후야’ 도리깨질로 꿈마다 허방치고

오늘도 선잠 깬 눈이 저승 문만 두드리네.


―시조「관촌수필」부분



이 시의 소재는 ‘현상세계’의 산물이 아니다. 이문구 연작소설《관촌수필》안에 있는 소제목들을 따와서 시적 “사유”로 삼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은 현상세계를 모방하든 또는 비판하든 이 현상세계를 바탕으로 하여 창조된다. 이러한 예술작품의 기능은 현상세계가 담고 있거나 숨기고 있는 무언가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나에게 시적 소재가 되었던 예술작품들은 현상세계가 은폐하고 있는 것을 개진하기 위함이며, 나의 시는 예술작품들이 은폐하고 있는 것을 개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가면서


이승하 교수는 그의 저서《이승하 교수의 시 창작 교실》(2004, 74면)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시는 관념의 유희가 아니며, 철학서 수십 장의 내용을 한 편의 시로 압축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당대 현실에 대해 깊은 고뇌가 담겨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다 궁극적인 문제, 즉 우리 문제를 도외시하지 말자 ···(하략)···”


이와 같이 시는 ‘압축’이 필연일 수가 있다. 시 창작 법에 있어서는 의도적이 아닌 ‘중복’을 금기시할 만큼 압축과 긴장은 중요하다. 거기다가 ‘사설시조’에서는 대부분 작품 이면에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알레고리의 시 형식을 함유한다. 독자의 관점에서 사설시조의 형태가 산문시와 같이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시조가 아니라 산문시군요.”라고 하는 판단이 옳을 수는 없다. 그 호흡에 따른 걸음만 잘(리듬감 살려서) 조절한다면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의 이야기도 압축시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사설시조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우리는 문학작품에 이른바 다양한 예술성이 혼재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장 한국적이어서 가장 세계적일 가능성을 지니는 시조는, 바로 여기에서 예술문화의 총체성에 머리를 디밀어 흥겨운 가락과 함께 어떤 첨단성의 걸음을 걷고자 한다.


나는 이런 매력 때문에 정형의 시조를 지으며, 자유시와 견주어 하나 손색이 없는 시적 성취도를 이루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이 소논문의 첨부작품에는 시조의 ‘열린시학적’인 입증의 길을 모색하였는데, 그 첫째는 자연스러운(타 서정시와 다름없는) 장(행)갈이나 장(행)배치를 하는 등, 시 읽기의 호흡이 허락하는 한 다각도의 시 배열 방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둘째는 되도록이면 평시조 형식의 시 짓기를 지향하지만, 치열한 삶과 관련 깊은 소재 등의 장시(長詩)는 평시조와 사설시조를 섞거나 사설시조만으로 이루고 있다. 형식에 있어서 ‘열린시조’의 창작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서정시(抒情詩)‧극시(劇詩)‧서사시(敍事詩)가 시의 3대 부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주로 이야기나 대화를 사설시조 형식으로 차용하는 나의 시는 서사시에 분류되는가? 아니다. 나는 내가 서사시를 쓸 만큼의 역량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조 형식이라는 절제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되, 순간순간 그 원리를 파기하여 보고자 할 뿐이다.

모든 글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어느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이나 또는 신화이거나 간에 그 일부분만 차용하여 시제로 삼아 각별한 율격을 실어내고자 하는 것이 대부분 내 시조 짓기의 목표이다. 또 어찌 보면 나의 사설시조 작법은 시조 형식에서 벗어날 것만 같은 위태위태함도 지닌다. 그러나 나는 단 한편의 시조도 형식화에서 일탈해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곧잘 시조 읽기가 영상읽기와 동격에 놓여지기를 희망한다. 그 실천의 일환으로, 때때로 빠른 호흡의 언어가 시조 형식이란 틀과 마치 싸움이라도 하듯이 긴박하게 전개시키는 방식을 택하며, 그 방식에서 재빨리 돌아와 갑자기 각 수의 종장을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마감하는 묘수를 쓰기도 한다. 아픔이라는 것을 아픔 그대로 두지 않고 노래로 풀고자 하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아픔을 승화시켜 흥타령으로 풀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문학 장르가 시조문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시의 형태나 구조가 어떻든 상관없이, 적어도 아픔의 시원(始原)을 아는 존재라면, 저마다의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그 아픔의 꽃을 공유할 것이고,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노래를 함께 부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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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연암편지]공주 판관 김응지에게 16.07.21 634 2 3쪽
» 시조론 | 아픔이라는 변주곡 이야기 +4 16.07.03 575 3 43쪽
370 사랑한다, 그 말 한마디 +4 16.07.02 756 4 3쪽
369 즉흥시 16.07.02 647 2 1쪽
368 스캔들 16.07.01 533 2 2쪽
367 새 창세기를 위하여 16.07.01 511 3 1쪽
366 멀어지는 너 16.06.30 1,170 2 1쪽
365 춤추는 돌멩이 16.06.29 426 1 2쪽
364 그건 뜬소문 16.06.29 742 1 1쪽
363 이카로스의 날개 2 16.06.28 452 2 3쪽
362 이카로스의 날개 1 16.06.28 962 3 2쪽
361 김장 16.06.28 454 2 2쪽
360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보리밭 +2 16.06.27 1,202 3 2쪽
359 환청 16.06.26 409 3 1쪽
358 오해 16.06.25 437 2 1쪽
357 키스하고 싶은 여자 +4 16.06.24 589 3 1쪽
356 고백 16.06.23 446 2 2쪽
355 모델 16.06.22 545 2 2쪽
354 은니(銀泥)의 발걸음 16.06.21 620 2 1쪽
353 날개 16.06.20 623 2 1쪽
352 이산가족, 샌드위치맨 16.06.19 395 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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