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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확립

[디지몬] 무쌍 시리즈

웹소설 > 자유연재 > 팬픽·패러디, 판타지

완결

유오원후
작품등록일 :
2018.10.18 20:15
최근연재일 :
2021.01.1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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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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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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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무쌍 외전(無雙 外傳) - 끝을 맺는 이야기 上

DUMMY

판데모니움 디멘션(Pandemonium Dimension).

이 세계에는 검은색 머리털에 붉은색 눈동자(黑髮赤眼)를 지닌 마족(魔族)과 황금색 머리털에 푸른색 눈동자(金髮碧眼)를 지닌 천족(天族)만이 존재한다. 다른 세계로 따지자면 악마와 천사로서, 물과 기름처럼 사이가 좋지 않아 나라를 세운 이후부터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아브라함 폰 텔페리온이 황제로 있던 시기에 천족의 황제가 사망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이자 유일한 후계자인 루시아 드 라우렐린(Lucia de Laurelin)이 최초의 여황제로 즉위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5000세이고, 루시아의 나이는 3000세였다. 아브라함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황태자 단테(Dante), 황자 로키(Loki), 조카 이스마엘(Ishmael) 등의 고위 장교와 수만의 마족 병사를 이끌고 천족의 수도인 엔젤릭 시티(Angelic City)를 향해 출격했다. 그러나 방계 황족들, 귀족들,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 정권을 안정시킨 루시아는 천족 제일의 맹장 베르디우스(Berdius)를 선봉으로 삼아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마족의 수도인 데모닉그라드(Demonicgrad)로 향하는 방향으로 진격했다.

그리하여 중간 지점인 거대한 평야에 도달한 두 세력은 전쟁을 개시했다. 선봉장 베르디우스가 판데모니움 디멘션에서 가장 오래 산 천족의 대장장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할버드를 휘두르며 마족 병사들을 도륙하자 단테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의 핵을 꺼내 제련하여 만든 창 「실마리온」으로 맞섰고, 로키는 저 두 개의 무기에 비하면 평범하지만 대량생산이 가능한 단검으로 형을 지원했다.


“그 당시 네 아버지는 2000세이고, 삼촌은 1800세이며, 당숙인 이스마엘도 1800세였어. 베르디우스는 3200세로, 루시아 씨보다 200세 많았지.”


“엄마. 갑자기 과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저 너머에 있는 양반이 이야기를 다룰 능력이 부족하고 의욕 또한 없어서 내가 대신 나서는 거란다.”


제4의 벽을 깨면서 작가를 욕한 아스카는 다시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테와 로키를 동시에 상대하게 된 베르디우스는 지금까지 쌓아온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열세를 극복했다. 세 명은 치열하게 싸우다가 무기를 맞부딪치면서 서로 밀고 밀리는 힘겨루기의 양상을 보였다. 만약 한 줄기의 빛이 하늘에서 내리꽂히지 않았다면 어느 한 쪽이 버티지 못할 때까지 지속되었을 것이다.

단테, 로키, 베르디우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뒤로 물러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마족이든 천족이든 가리지 않고 일시적으로 전쟁을 멈췄다. 곧이어 빛이 사라지더니 열두세 살의 어린 소녀로 보이는 170세의 아스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는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갈색이고, 피닉스 포스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전쟁터 한복판이며 마족과 천족 사이에 위치하게 된 아스카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디지털 월드를 시작으로 여러 차원을 떠돌아다니면서 쌓은 경험을 살려 침착하게 자기소개를 하고는 전쟁터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천족 병사 한 명이 무의식적으로 아스카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힘은 제대로 실려 있지 않고 속도는 어중간해서 얼마든지 막거나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어.”


“고의로 부상을 입은 겁니까?”


“기껏해야 생채기가 난 목에서 피 한 방울을 흘렸을 뿐이야.”


“어째서 위험을 무릅쓴 건지 알려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예요. 그 당시의 저는 다른 차원에서 온 인간(필멸자)이었고 밀레니엄몬과의 싸움에서 입은 내상이 회복되지 않아 염동력과 텔레파시는 사용할 수가 없었어요. 물론 마법과 무공 같은 기술을 익히긴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스카는 자신을 공격한 천족 병사에게 나긋나긋한 어조로 「제3자를 이 전쟁에 끌어들일 생각입니까?」 또는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차별하는 겁니까?」라고 말하며 압박을 가했다. 같은 편인 천족들이나 도와줄 의리가 없는 마족들조차도 급변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결국 천족 병사는 정신이 반쯤 붕괴되어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판데모니움 디멘션의 원주민 한 명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다른 이들을 압박한 아스카는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는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지를 고민했다. 그 때 단테가 「실마리온」을 거꾸로 들어 싸울 의사가 없음을 드러내고는 아스카에게 다가갔다. 로키는 경악하며 형을 말리려고 했으나 이미 거리가 멀어졌고, 아스카는 자기보다 키가 큰 단테를 올려다보면서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 쌍의 남녀는 대화를 시작했다. 서로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그런지 금방 분위기가 완화되었고, 천족 병사 두 명은 상관(장군 베르디우스)의 상관(황제 루시아)이 내린 명령을 받들어 기절한 병사를 데리고 후방으로 이동했다. 아스카는 자신을 공격한 천족 병사가 이송되고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애써 무시하며 단테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스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전쟁을 계속할 뻔했지.”


“처음과는 달리 생각이 바뀐 거로군.”


“내가 루시아 드 라우렐린을 너무 얕잡아봤어. 그렇다고 목적을 이루치 못한 채 퇴각한다면 자존심이 상하는 건 둘째치더라도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게 되니까.”


“판데모니움 디멘션에서의 황위 계승은 적자적손(嫡者嫡孫)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다만 마족의 경우에는 원자(元子)가 불초하면 차자(次子)에게 전하여 주고, 차자마저 불초하면 그 형제 중에서 인망이 높은 자가 대통을 계승하게 되어 있지. 황후 소생의 둘째 아들은 선천적으로 병약해서 결국 요절했고, 셋째 아들은 황족으로서의 생활을 누리는 데 만족해서, 후궁 소생의 맏아들인 아버님께서 황제에 오르신 거야.”


참고로 이스마엘은 선제의 셋째 아들의 외아들로, 군부의 2인자가 되어 황제를 보필하는 것을 꿈꿨다. 이스마엘의 아버지는 아들이 권력 다툼에 휘말려 피해를 입을까봐 처음에는 반대를 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설득을 하는 아들 이스마엘과 황제로서 명령을 내려 군인이 되는 것을 허락한 이복형 아브라함 때문에 반대를 철회하였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단테와 대화를 나누면서 현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아스카는 우선 왼손을 들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오른손을 집어넣고 막사처럼 생긴 조그마한 모형물을 꺼내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어서 손가락을 튕기자 모형물이 커지더니 진짜 막사가 되었다. 사실 다른 차원의 마법으로 막사를 축소시켜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 것이었다.

아스카가 막사에 먼저 들어가서 들어오라고 권유하자 아브라함과 루시아는 각각 단테, 로키, 이스마엘과 베르디우스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치하면서도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노력하는 양 세력의 병사들처럼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앉거나 서 있었고, 아스카는 두 황제의 사이에 위치한 지점에서 의자를 놓고 털썩 앉았다.

그렇게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마족이든 천족이든 자신에게 유리하고 상대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시했다. 본래라면 고집을 부리다가 역정을 내며 협상이 결렬되었겠지만, 지금은 아스카가 중립을 지키며 공정하게 판단하고 있어서 협상은 계속 진행되었다. 양 세력이 모두 만족할 만한 최선책은 사실상 무리라서 대신 차선책을 택한 아스카는 절충안을 종이에 적어 모두에게 보여줬다.


“내가 제시한 제안이 거부당하더라도 상관없었어. 그저 막사에서 며칠, 몇 달, 1년 이상 지내면 되니까.”


“하지만 제 기억에 의하면 할아버지하고 루시아 씨는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는데요?”


“맞아. 생각보다 빠르게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거든.”


1시간도 채 안 돼서 아브라함과 루시아는 서류로 정리한 아스카의 절충안에 서명을 했다. 이로서 1000년 동안 전쟁을 멈추게 되었고, 장교들이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은 행장을 수습하고 철수할 준비를 하였다. 한편 텅 빈 막사를 다시 축소시켜 가방에 집어넣은 아스카는 데모닉그라드나 엔젤릭 시티 중 한 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 모든 마족과 천족이 행동을 멈추고 아스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비록 휴전 협정을 체결하는데 도움을 받았지만 동행을 허락하기에는 아스카의 존재가 살짝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거절하기에는 미안함과 두려움이 공존해서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스카는 초능력(염동력과 텔레파시)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백 년 이상 살아오면서 눈치가 훨씬 더 빨라졌기에 그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해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아니므로 섭섭한 마음을 갖지는 않았다.

그래서 양 세력과 헤어져 발 닿는 대로 떠돌아다니기로 생각을 바꿨다. 이것을 말하려고 입을 여는 그 순간, 단테가 다시 한 번 아스카에게 다가가더니 데모닉그라드로 돌아가는데 동행을 하자고 권유했다. 이 자리에 있는 마천(魔天) 양 종족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단테는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그들을 설득했다. 여기서 유일하게 로키가 반대를 했지만 단테가 황태자가 아닌 형으로서 타이르자 어쩔 수 없이 주장을 철회하였다.


“어쩌면 그때부터 난 그이에게 반했던 것 같아.”


“응? 아, 하하하···.”


“낯 뜨거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건 그렇고, 데모닉그라드라는 곳에서 잘 지내셨나요?”


노조무의 여섯 파트너 디지몬 중 하나인 루도몬이 질문을 하자 아스카는 ‘오’ 소리를 내며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스카는 단테와 함께 말을 나란히 하여 움직였고, 말동무가 되어 자신이 다른 차원에서 겪은 일들을 들려줬다. 그 중에는 도가(道家)의 지식이 포함되어 있어서 먼 훗날 단테가 소요파(逍遙派)의 무공을 배우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무튼 간에 아브라함이 이끄는 수만의 마족 대군과 아스카는 며칠을 행군하여 수도인 데모닉그라드에 도착했다. 전령을 미리 보내 소식을 알렸기 때문인지 수없이 많은 백성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특히 아스카는 천족과의 전쟁에서 희생될 장병들을 무사히 돌아오게 해줬으니 그 가족으로부터 환호를 받게 되었다.

이에 아스카는 당당하지만 오만하지 않게,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대응했다. 백성들의 호감을 얻으면서 황족 및 문무 관료와 함께 황궁으로 들어갔고, 객실에 머물면서 오직 판데모니움 디멘션의 지식과 기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천족에 대해서는 「그녀」가 선물로 준 노트북에 내장되어 있는 세바스찬의 도움을 받아 알아냈다.


“그러다 가끔 몸을 풀기 위해 그이는 물론이고, 로키나 이스마엘과도 대련을 했지.”


“로키와 대련했을 때에는 진짜 목숨을 걸고 싸웠을 거 같은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로키에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로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날 지켜볼 뿐이었어.”


“결정적으로 내가 아스카에게 호감을 품었지만 그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하기 전이라서 로키의 브라더 콤플렉스를 자극하지 않은 것도 있지.”


그러한 이유로 아스카와 로키의 대련은 치열했으나 서로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학문을 논하면서 로키는 아스카를 인재로서 인정하게 되었고, 단테는 아스카에 대한 호의가 사랑으로 깊어지게 되었다. 아스카 역시 단테에게 마음을 가지게 되었지만 고백은 하지 못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세 번째이자 가장 비중이 낮은 것이 로키의 브라더 콤플렉스이고, 두 번째이자 외적인 것이 종족의 차이이고, 첫 번째이자 내적인 것이 언젠가 판데모니움 디멘션을 떠나면서 단테와 이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사랑과 우정 사이,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사이··· 이른바 썸을 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러한 관계는 반년 = 6개월까지 지속되었다. 큰 사건을 겪고 나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아스카와 단테가 사랑을 고백함으로서 연인이 되었고 날을 잡아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그 일』이로군.”


“무슨 일이기에 표정이 그리 어두운 겁니까?”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가족 문제지.”


“선황의 둘째 아들이 요절하기 전에 유복자를 남겨뒀어. 그이와 로키, 이스마엘과는 사촌간이야. 적손이라는 위치와 시아버님이 자기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생각 때문에 반란을 일으켰거든.”


“제정신이 아닌가 보군.”


“그래도 머리는 잘 썼어. 시아버님과 그이, 로키, 이스마엘을 영지로 초대한 다음에 가병과 용병으로 포위하고, 만약을 대비해서 음식에 독을 타고 해독제를 미끼로 내세워 조종하려고 했으니까.”


칭찬을 하면서도 비꼬듯이 말하던 아스카는 그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독이 든 음식은 아브라함의 허락을 받아 기미를 본 아스카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었고, 가병과 용병은 멀쩡한 상태의 단테, 로키, 이스마엘에 의해 토벌되었다. 홀로 남게 된 선황의 적손은 항복하는 척하면서 단테를 향해 암기를 투척하는 최후의 발악을 했다. 허를 찌른 공격에 텔페리온의 남성 네 명은 대처를 하지 못했는데, 그나마 아스카가 단테의 앞에 서더니 「윈디 실드[封氣結界呪]」를 사용했다.

바람의 결계가 둘을 감싸면서 빠르게 날아오는 암기를 벽에 박힌 것처럼 고정시켰다. 그런데 암기에는 마법을 무효화하는 술법이 담겨져 있어서 바람의 결계와 접촉하는 순간 엄청나게 진동하더니 산산조각 나버렸다. 문제는 제일 큰 파편이 아스카의 왼쪽 눈에 박혔다는 것이다. 바람의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터라 회피 자체가 불가능했다. 왼쪽 눈에서 피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균형을 잃고 뒤로 쓰러질 뻔했지만 단테가 재빨리 부축해서 주저앉는 선으로 끝났다.

아스카는 고통을 참으면서 오른손으로 오른쪽 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손바닥에 있는 둥그런 물체를 힘껏 던져 입을 떡 벌리고 있던 반역자··· 미스터 텔페리온이 삼키게 만들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오른쪽 안구가 없어서 외안근이 훤히 드러난 아스카를 보며 충격에 빠졌다. 사실 아스카는 후마와 재회한 160세 때, 적과 싸우다가 오른쪽 눈에 독침이 박혔다. 독이 퍼지기 시작하자 오른손의 세 손가락으로 오른쪽 눈을 뽑아냈고, 지금까지 습득한 지식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여 의안을 제작했다.

인체에 무해한 가는 바늘이 튀어나와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면서 신경과 연결했기에 진짜 안구처럼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스카는 10년 동안 사용하던 의안을 뽑아서 미스터 텔페리온의 위에 들어가게 만들더니 부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 핑거스냅을 했다. 곧이어 미스터 텔페리온은 감전된 것처럼 경련을 일으키더니 두 눈을 뒤집고 입에 거품을 물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아스카는 과다출혈로 인해 단테의 품 안에서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의식을 잃어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폭탄 기능을 사용해서 육편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황족이니 시아버님께서 처벌할 수 있게 전기 충격을 사용했어. 일반적인 전류는 아니라서 죽지는 않지만 마력이 소멸돼서 평민보다도 약한 폐인이 되어버렸을 거야.”


“물리적으로 위험이 되지 않으니 작위를 박탈하고 황궁 안 감옥에 가뒀는데, 얼마 안 가 자결을 해버려서 작위를 한 단계 낮춰 복권시키고 장례를 치렀단다.”


“···아스카. 왼쪽 눈은 어떻게 됐어?”


“손상이 심해서 적출할 수밖에 없었어. 당분간 장님이 된 거지.”


오른쪽 눈을 의안으로 대체했을 때부터 언젠가 왼쪽 눈도 못 쓰게 될 것을 예상한 아스카는 미리 훈련을 한 터라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물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서 몇 가지 일을 처리할 때에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단테는 고민을 하다가 아버지와 동생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마족의 초대 황제가 장기 기증의 일환으로 남긴 두 눈을 아스카에게 이식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태조(太祖) 사후에 두 눈은 부패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다른 마족들은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할 뿐더러 안구 이식을 해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지 않았다. 천족은 마족과는 상극이라 당연히 논외였다.

원래라면 갈등이 일어나겠지만 아스카가 단테를 구하기 위해, 미스터 텔페리온을 제압하기 위해 두 눈을 희생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고민 끝에 허락을 했고, 로키는 어물거리다가 반대는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스카는 부담감을 감추지 않았지만 단테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안구 이식 수술이 시작되었고, 거부 반응을 최소화하고자 단테의 피를 수혈 받았다.


“결과를 말하자면 수술은 성공했어. 이식과 수혈을 하는 과정에서 두 유전자가 섞여 머리카락의 색이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검은색이 섞인 갈색이었어.”


“본체(피닉스 포스)와 접촉한 이후로는 검은색이었고.”


“지금은 하얀색으로 바뀌었죠.”


레이븐, 후마, 노조무가 차례대로 말을 하자 아스카는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다가 안구 이식 수술을 받고 난 이후를 회상했다. 육체는 붕대로 눈을 가린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정신(영혼)은 자신의 의식에 들어온 누군가와 대면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노년으로 접어드는 중년의 남성으로, 아브라함 삼부자와 이스마엘처럼 검은색 머리털에 붉은색 눈동자를 지녔다. 아스카는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왼쪽 눈이 멀쩡했을 때 봤던 초대 황제의 초상화를 떠올렸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니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하자 그는 초대 황제의 영혼이며 오늘 같은 날을 예상해서 두 눈에 깃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의식 속에서의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과 다르므로 아스카는 초대 황제와 여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일반적인 주제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초대 황제가 힘을 물려주더니 「단테를 부탁한다.」라는 말을 남기며 홀연히 사라졌다. 여담으로 그 힘이 내상을 어느 정도 치유하면서 염동력과 텔레파시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마족의 태조가 장기 기증한 두 눈이 자신에게 이식됐다는 점이 절묘해서 「그녀」의 안배라고 추측했다. 물론 아스카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우리의 혼례는 국가적인 경사라서 준비 기간만 해도 1달이 걸렸지.”


“뜻밖에도 로키가 선두에 서서 지휘하더라고. 그 덕분에 빨리 이루어지긴 했어.”


“설마?”


“응.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야.”


단테와 아스카가 연인이 되는 순간부터 브라더 콤플렉스가 얀데레로 변질되어버린 로키는 예비 형수를 죽일 생각으로 결혼식 준비 담당을 자청한 것이었다. 수십 명의 호위병을 제외하고는 무기를 가질 수가 없는 결혼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직속 부하들과 용병들에 아스카의 종족을 걸고 반대하는 극단적인 당파를 끌어 모아 구성한 수백 명의 자객이 난입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자객들이 아스카를 노리다가 중간에 끼어든 단테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모두가 경악하며 얼어붙은 가운데 아스카는 마법을 사용해서 단테를 치유하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회생이 불가능했고, 단테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로키를 아껴주고 지켜줬으면 해.」 라는 말을 남긴 채 사망해버렸다.

진심으로 사랑한 이가 숨을 거두자 아스카는 시체를 껴안고 통곡을 했다. 투명한 눈물에 피가 섞이기 시작했고, 감정이 격해지다가 폭탄이 터지듯이 염동력과 텔레파시를 한계까지 발휘했다. 육체와 정신을 헤집어놓는 고문에 비명을 지르다가 죽어버리는 자객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로키가 배후에 있음을 밝혔다. 게다가 로키도 텔레파시의 영향을 받아 아스카를 죽이려 했음을 자백하게 되었다.


“로키는 그이의 유언에 따라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지만, 황태자를 살해한 죄인으로서 처벌을 받았어.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저주를 걸어서 석상으로 만든 다음에 「공간전이」로 버리듯이 다른 차원에 옮겨버린 거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로 고통을 받으라는 뜻에서 그리한 거죠?”


“그렇단다. 안타깝게도 로키가 나에 대한 증오와 살의로 버텨낼 줄은 몰랐어.”


“나 때문에 고생을 하게 돼서 정말 미안해.”


“아니에요.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안배이니 피할 수 없었을 거예요.”


단테가 아스카에게 사과를 했고, 아스카가 단테에게 위로를 했다. 이제 판데모니움 디멘션에서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아브라함은 맏아들 단테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선황의 적차남의 아들이자 자신에게는 조카가 되는 이스마엘을 후계자로 삼았다. 태자비가 된 아스카는 세상사에는 신경을 끄고 오로지 단테의 무덤을 관리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흘러 「그녀」가 판데모니움 디멘션에 나타났다. 우선 아스카를 다른 차원으로 보내려 하는데, 아스카가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마족들도 이에 동조하자 「그녀」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설득하고 상담하여 1달하고도 15일 되는 날에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판데모니움 디멘션에 존재하는 저승으로 이동해서 관리자에게 거래를 빙자한 횡포를 부린 끝에 단테의 영혼을 건네받게 되었다.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 「그녀」는 망설임 없이 판데모니움 디멘션을 떠났다. 한편 아브라함은 황위를 미련 없이 이스마엘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이후 태상황(太上皇)이라 불리며 별궁에 머물렀는데, 케이아스가 판데모니움 디멘션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과거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세바스찬. 무슨 일이야?”


[그 분께서 케이아스에 관한 정보를 보내셨습니다.]


“어디 보자. ···뒤치다꺼리는 늘 내 몫이로군.”


아카식 레코드의 단말이자 인공지능인 「세바스찬」으로부터 자료를 전해 받은 아스카는 피닉스 포스가 탄생하기 이전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아스는 「그녀」 = 유니버스 오브 더 원이 불필요한 차원, 행성, 현실을 소멸시키기 위해 창조해낸 우주적 존재이다.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실행하다가 인간 여성 한 명을 만나게 되는데,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케이아스를 이용하다가 버릴 생각이었던 극악무도한 악당인지라 안정은커녕 혼란을 야기하는데 한몫을 하게 된다. 결국 미쳐버린 케이아스는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지막에는 증오라는 감정을 알려준 인간 여성을 차원 째로 소멸시켜버렸다.


“그 다음은 모두 알 테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을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뭔지 말해봐.”


[케이아스가 당신에게 신의 암을 주입시킨 것은 로키의 계략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 설마 했는데 사실일 줄은 몰랐어.”


아스카는 묵은 원한을 청산한데다가 피닉스 포스의 화신<아바타>로서 각성했으니 세바스찬의 말을 듣고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이로서 모든 과거 이야기를 마친 아스카는 세바스찬에게 제피로스-투의 자동 운행을 맡기고, 피닉스 패밀리··· 단테, 노조무, 잭, 레이븐, 후마, 레오르몬, 코만드라몬, 즈바몬, 루도몬, 아구몬(흑), 가부몬(파피몬)과 객원에 가까운 아브라함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작가의말

원래는 상하(上下) 구분 없이 통째로 쓰려고 했는데, 용량이 많아지는 건 둘째 치고 올해가 끝나기 전에 글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했습니다.

하편의 배경은 디지몬 관련 작품(애니 또는 게임)과의 크로스오버인데, 일단 게임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이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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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무쌍 시리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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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무쌍 외전(無雙 外傳) - 끝을 맺는 이야기 下 21.01.19 88 1 26쪽
» 무쌍 외전(無雙 外傳) - 끝을 맺는 이야기 上 20.12.30 70 1 24쪽
187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8- 20.10.27 77 1 7쪽
186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7- 20.10.26 70 1 30쪽
185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6- 20.10.17 67 1 9쪽
184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5- 20.10.15 68 1 16쪽
183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4- 20.10.05 65 1 18쪽
182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3- 20.09.27 79 1 14쪽
181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2- 20.09.19 63 1 15쪽
180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1- 20.09.11 71 1 14쪽
179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0- 20.09.02 67 1 12쪽
178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9- 20.08.23 88 1 10쪽
177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8- 20.08.10 66 1 15쪽
176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7- +1 20.07.13 70 2 14쪽
175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6- 20.06.22 68 2 10쪽
174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5- +1 20.06.17 70 2 8쪽
173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4- +1 20.06.08 69 2 9쪽
172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3- 20.06.02 73 1 9쪽
171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20.05.27 67 1 12쪽
170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 20.05.23 82 1 7쪽
169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예고? 20.05.18 70 1 2쪽
168 무쌍(無雙) 외전 - 준 19.04.04 116 1 21쪽
167 무쌍(無雙) 외전 - 아스카 19.04.03 94 1 19쪽
166 무쌍(無雙) 외전 - 가이오몬 2 19.04.02 76 1 7쪽
165 무쌍(無雙) 외전 - 가이오몬 1 19.04.01 103 1 12쪽
164 무쌍(無雙) Phoenix Origin -39- 19.03.31 106 1 34쪽
163 무쌍(無雙) Phoenix Origin -38- 19.03.30 102 1 25쪽
162 무쌍(無雙) Phoenix Origin -37- 19.03.29 90 1 24쪽
161 무쌍(無雙) Phoenix Origin -36- 19.03.28 107 1 23쪽
160 무쌍(無雙) Phoenix Origin -35- 19.03.27 81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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