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몬] 무쌍 시리즈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18-

디지털 월드.

“내가··· 사라지는 건가?”

“물론이지. 어머니의 뜻이니까.”

“그렇다면 따를 수밖에. 잘 있어라, 나의 동생이여.”

“안녕히. ······오라버니.”

모든 뿔이 부러지고 일곱 머리 중 하나만 남은 붉은 용에서 사라질 듯 말 듯한 인간의 형태로 변한 케이아스는 피닉스 포스의 화신<아바타>인 아스카와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아스카는 작별을 고하자마자 라이트세이버처럼 에너지 칼날이 생긴 「각혼성」으로 머리를 베어버렸고, 재가 되어 사라진 신체에서 케이아스의 정수가 튀어나오자 지팡이를 양손 망치처럼 휘둘러 박살을 내버리고는 케이아스를 오빠라고 불렀다.

“이걸로 전쟁은 끝났어.”

“뒤처리만 남았네요.”

“탈이 없게 해야지.”

아스카는 초토화된 주변과 우주를 바라보면서 지팡이로 땅바닥을 한 번 내리쳤다. 그러자 시간이 멈춘 듯이 연합군, 디펜더스의 대다수가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피닉스 패밀리, 팀 트리니티 세이비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이들만이 멀쩡한 상태로 아스카와 함께 매트릭스로 이동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멀티버스 전역에 현실 조작을 할 거야.”

“케이아스와 싸우느냐고 지쳤을 텐데, 괜찮겠어?”

“파죽지세라는 고사성어가 있어. 대나무는 처음 두세 마디만 칼날이 들어가면 그 다음에는 저절로 쪼개지는 법이지. 지금 상황이 그와 같아서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뒤탈이 생기게 돼.”

“우리가 도울 일이 있을까?”

“1할의 힘만 보태주세요.”

살짝 피곤해 보이는 아스카에게 단테가 먼저 라이프 포스를 전달했다. 이어서 노조무, 잭, 레이븐, 후마, 아브라함이 각자의 힘을 보탰다. 케이아스와의 전쟁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은밀히 아군에게 힘을 보탠 『반신』들과 여러 디지몬들도 아스카의 말에 따라 1할의 힘을 건넸다. 다만 유키토 쪽 타치바나 일가와 류이치, 유코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탄생과 멸망의 주권자, 사이오닉(사이킥) 에너지의 원천이자 집합체, 모든 현재와 미래 생명체의 의인화인 나 피닉스 포스가 명하노라. 모든 것이 회귀되며 또한 개변되리라.”

세계수의 잔가지를 깎아서 만든 지팡이를 매트릭스의 핵에 꽂아두고 주문을 외우듯이 말을 하는 아스카. 그 순간 피닉스 포스의 사이오닉 플레임이 멀티버스를 휘감았고, 아스카의 검어진 머리가 다시 하얗게 새었다.

“끝났어.”

“아스카. 머리카락이···.”

“원래대로 돌아간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도 검은색이 더 잘 어울리는데.”

“흠,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네. 무엇을 고친 겐가?”

“케이아스로 인해 파괴된 어머니, 유니버스 오브 더 원의 섭리를 복구했어요.”

무슨 뜻이냐 하면 케이아스가 파괴한 차원을 다시 고쳤고, 살해한 생명체들을 되살려냈다는 것이다. 특히 영혼의 실체화를 거친 이들은 육신을 되찾음으로서 평소의 삶을 다시 한 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디펜더스를 해산시키면서 각자의 고향(차원)으로 돌려보냈다.

“한편으로는 기억을 조작했죠.”

“응?”

“어떻게 말이야?”

“필멸자 타치바나 아스카와 우주적 존재 피닉스 포스를 별개의 존재로 인식시켰어. 타치바나 아스카는 62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케이아스와의 전쟁에서 총대를 멘 것은 피닉스 포스가 되었지.”

“오직 이곳에 있는 우리들만 제대로 기억하게 되었군.”

“하지만 비밀로 지켜야 할 거예요. 그 누구도 믿지 않을 테고 또한 믿지 못할 테니까요.”

아스카는 매트릭스의 핵과 연결된 지팡이를 뽑아 손에 쥐고 피닉스 패밀리 이외의 인간과 디지몬에게 주의를 줬다. 준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 존재이고, 케이아스와는 연관이 없기에 부활시킬 수가 없었다. 대신 저승으로 돌려보내기 전에 부모, 형, 친구들에게 배웅을 받을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

전후 처리의 종결 후.

디지털 월드의 안정을 바라는 자<호메오스타시스>에게 선택을 받았었던 야가미 신이치, 시도 리나, 장유리, 마리아 세인트, 무츠키 카구라는 현실 세계<리얼 월드>로 돌아가면서 원래 나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파트너 디지몬은 고향인 디지털 월드에 머물렀고, 아구몬과 가부몬(파피몬)은 오메가몬을 유지한 상태로 로얄 나이츠의 결번을 메꾸었다.

팀 트리니티 세이비어는 완전히 해산되었으며 진, 류이치, 유코의 크로스로더는 소유주의 허락을 받아 봉인되었다. 준은 저승으로 돌아갔는데 일본 저승의 신들과 거래를 한 아스카 덕분에 환생이 가능해졌다. 그래서인지 유이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진의 동생을 임신하게 되었다.

“제피로스-투에 어쩐 일이세요? 어머니.”

“할 말이 좀 있어서 왔단다.”

피닉스 패밀리와 함께 휴가를 겸해서 정처 없이 떠돌려던 아스카는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맞이하게 됐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머니의 진정한 정체를 알게 된 터라 이전보다 온화한 어조로 말하고 그러한 태도를 보였다.

“나 대신 케이아스를 처리하게 해서 미안해. 케이아스가 주관하던 일을 너에게 넘기는 것도 말이야.”

“진심인가 보네요. 이왕 오셨으니 한 가지 물어볼게요. 케이아스를 아포칼립스처럼 초기화하지 않은 이유가 뭐죠?”

“그러기에는 너무 미쳐버렸어. 초기화해봤자 또 다시 문제를 일으킬 테니까.”

“훗날 제가 케이아스처럼 날뛰게 되면 어쩌시려고요?”

“그 때에는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이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현재 제피로스-투에는 아스카의 가족인 단테(남편), 노조무(아들), 고향인 판데모니움 디멘션으로 돌아가지 않은 아브라함(시아버지)과 동료인 잭, 레이븐, 재계약을 맺은 후마 코타로, 노조무의 여섯 파트너 디지몬··· 레오르몬, 코만드라몬, 즈바몬, 루도몬, 아구몬(흑), 가부몬이 있었다.

아참! 깜박할 뻔했는데, 제피로스-투의 제어를 담당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있었다. 바로 제피로스-원이 파괴되었을 때 같이 사라진 세바스찬이다. 사실 세바스찬은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우주와 인류의 모든 기록을 담은 초차원의 정보 집합체인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의 단말이었다. 아스카는 「그녀」처럼 권능을 발휘하여 또 다른 단말을 가져온 것이다.

“이제 이 차원을 떠나야겠어. 잭, 준비를 해줘.”

“알겠습니다.”

“생전에 못했던 신혼여행을 가는 것 같군.”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아스카와 단테가 애정을 드러내자 애매한 미소를 짓던 노조무는 잭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피로스-투는 차원도약을 통해 리얼 월드와 디지털 월드가 존재하는 이곳을 떠났다. 필멸자 기준으로 당분간은 바깥에 머물면서 쉴 때는 쉬고,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해결한 다음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 完]

작가의말

이것으로 무쌍(無雙)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본편을 마쳤습니다. 원래는 캐릭터 소개를 쓰고 나서 외전을 작성하려고 했습니다.

다만 캐릭터 소개는 쓰다가 골치가 아파서 모아서 정리하던 글을 지워버렸고, 외전은 쓰다가 막히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지막 에피소드로 생각해둔 디지몬 작품 중 하나와의 크로스오버에서 판데모니움 디멘션과 케이아스의 과거라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나레이션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