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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638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0.12.01 11:32
조회
57
추천
5
글자
10쪽

[ 시즌 1 ] 10회 덫-2

DUMMY

오늘은 승냥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날이다.


한때 돈 많고 시간도 많은 우리 귀하신 분들이 풍기는 역겨운 술냄새로 가득했던 태화루도 어느덧 새로이 생긴 수많은 기방들에 밀려 퇴물이 되어갈 즈음, 중전의 아비이자, 임금의 최측근, 조정의 중심 씩이나 되시는 분이 그를 찾아 왔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요즘 점점 그를 찾는 손님이 줄어드는 것만 같아 불안했는데, 잘된 일이다. 한번 유명 인사와 인맥을 쌓게 되면, 치맛바람 넓은 돈주머니가 절로 따라붙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게 완벽할 줄로만 알았던 오늘 또한, 넘어야 할 큰 장애물이 있었다.

해수, 그 아이 말이다. 언젠가부터 평화롭던 그의 삶에 쳐들어와 하려는 모든 일에 흙탕물을 튀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정확한 이름과 정체는 모르지만, 태화루 기녀들의 말에 따르면,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사내아이의 시중이 아니면 받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기방에서 가장 어리고, 어찌 보면 뛰어난 외모를 가진 해수에게 맡기려 했었다.


그런데 나무를 하러 간다던 이 놈이 두시진 째 나타나지 않는다. 예법 이며 뭐며 가르칠 게 많은데, 그저 초조할 뿐이다.


그러던 와중, 마땅히 어깨 가득 지고 있어야 할 땔감은 어쩌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채, 절뚝거리고 있었다.


보통의 어른이라면, 열살 남짓한 어린 아이가 그런 몰골을 하고 있으면 걱정부터 하고 나설 것이다. 허나, 승냥은 아니었다. 동정, 이해보다는 일단 완벽해만 보였던 자신의 하루를 망친 것에 대한 분노가 앞섰다.


“네놈이 드디어 제대로 미친 게로구나. 오늘이 어떤 날인줄 알고..!”


승냥은 힘없이 축 쳐진 아이의 멱살을 쥐고 천지를 울릴법한 성량으로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수는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


승냥은 해수의 그 눈빛이 싫었다. 제 아비를 꼭 닮은 솟아오른 가는 눈매, 강인하면서도 한편은 거만한 듯한 그 눈빛이 늘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어떠한 협박에도, 폭력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상대를 아래로 깔고 무시하는 듯한, 반쯤 섞여있는 왕족의 피를 오롯이 나타내는 듯 했다. 그 아이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귀족에 홀린듯 열등감이 밀려들어왔으니 말이다.


“이 자식이..또..! 눈 안깔아?”


어김없이 나타난 기분 나쁜 표정을 보다못한 승냥은 해수에게 손찌검을 날린다.


여전히 그 비굴한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해수에게 또다시 주먹을 내지르려는 그 순간, 누군가 그의 손을 휘어잡았다. 강손이었다. 해수와의 또다른 마찰을 막기 위해서였다.


9년전 그날부터 강손은 줄곧 해수의 보호자역할이 되어 주었다. 제 어미를 물어죽인 그 아이를 달래고 어르며, 매일 충분한 양의 소나 돼지의 피를 공급해 그 사나운 성질을 잠재웠다. 또한 소통이 가능해진 때부터는 더이상 살아있는 짐승의 피를 갈망하지 않도록 점차 사람의 음식을 적응시키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보호했다. 그 결과 비로소 9년이 지난 지금이 되서야 녀석은 점차 사람의 형상을 띄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손은 유난히 해수의 일에 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손찌검을 하는 것부터 욕설을 내뱉는 것 까지. 마치 제가 어미라도 되는 양, 아이를 보호하고 나섰다.


물론, 지금 승냥이 해수와 같은 아이를 아래에 두고 부릴 수 있는 것은 강손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 그냥 제가 갈게요. 다쳤잖아요, 해수.”


자식이기는 아비 없다고. 승냥은 강손의 날선 한마디에, 그저 아이의 멱살을 쥔 그 손을 놓는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방 노비들로부터 손님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둘러 약속장소로 향하며, 그저 이번 만남이 자신과 강손에게 좋은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할 뿐이다.


*


“오랜만이군, 자네를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네, 차마 상상치도 못했는데 말일세.”


약속장소에 말을 딛자마자 마주친, 익숙하지만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얼굴에, 승냥은 경악하고 만다.


강승희 대감이었다.


현재 중전의 아비로써,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현 조정의 실세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계속되는 가뭄과 신분제도의 구멍 그리고 끊기지 않는 도적떼 때문에 이 땅, 인현국에서 피와 공포의 그림자가 닿지 않는 곳은 없다 하나, 그중 제일 잔인하고 매서운 곳은 다름없이 정치판이다.


있는 놈들이 더 성내는 법이라고, 잃을 것이 많은 이들끼리 모여, 물어뜯고 싸우며 동무도 모자라 제 자식과 부모까지 배반하는 판이다.


그래서 승냥은 아무리 조방꾼으로써 귀족들과 붙어 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지만, 정치판에는 절대로 끼어 들지 않기로 결심했더랬다. 주희처럼 괜한 바람이 불어 그러한 죽음을 맞이하고픈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으니 말이다.


허나, 강승희 대감이라면. 기방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그가 능력있는 조방꾼을 찾으려 전국을 돌아다닌 것을 보면, 보통일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저는 대감과 더이상 할 말이 없을 듯 합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더 깊게 들어가면 해를 입을 것 같은 마음에, 승냥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선다.


그런데 그 순간, 하필, 이런 시점에 강손이 따뜻한 차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하여튼, 눈치도 없는 것. 대화가 오가는 상황을 보고 살펴야지, 이러면 그냥 물러서기가 어렵게 되었다.


“차까지 대접해 주는 겐가, 그런데 이렇게 먼저 가버리면 서운하지.”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몇분이라도 이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온몸이 마치 석상과 같이 굳어 가는 것만 같아 참을 수 없는데, 그저 한숨이 쉬어질 뿐이다.


그런 아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손은 녹평국에서 들여온 엄청난 가격의 차를 조심스레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인지, 강승희 대감의 시선이 차가 아닌 강손에 가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언뜻 어디선가, 돈도 시간도 많으신 귀한 분들 중에서 계집대신 사내의 수청을 원하는 부류가 있다고는 들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 참 별난 종자들도 다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그게 대감이 , 될줄은 몰랐다.


“이 아이 말일세, 참 마음에 들구만. 자네만 괜찮다면 데려갈까, 하는데.”


“제 아들놈입니다.”


그러자, 강승희 대감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언짢다는 듯 마시던 차를 세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강손은 태어났을 때부터 유난히 별난 아이였다.


사내 주제에 유난히 얌전해 제 어미를 편하게 해주려나 보다, 효자 로구나, 그저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유난히 조심스럽고 여성스러운 몸짓. 스무살이 지난지 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날 생각도 않는 수염, 왜소한 몸집과 어린 시절 그대로의 여린 목소리. 게다가 교방 기생들보다도 곱고 흰 피부와 마치 연지를 바른듯 붉은 입술과, 사람을 홀리듯 미묘하게 매력적인 눈매까지 가지고 있으니, 자칫 치마라도 입혀 놓았다간 계집으로 착각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아이의 본성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무술 학원에도 보내고, 사냥터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혼도 내보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소용 없었다.


강손은 그저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천생 광대이자, 사내와 계집 그 경계 어디엔가 위치한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비로써, 아들을 위해, 이 거친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바로, 이 강승희 대감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우리와 같이 천한 인간들을 그저 자신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그러다 쓸모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리는 사람들. 강손의 인생이 그런 자들에 의해 망가지지 않기를 바랬었다.


승냥은 내심 다시는 강손과 강승희 대감이 함께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자네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댓가나 보고 가게나. 위험한 일이니, 어디서도 구할 수 없을 귀한 것이라네.”


댓가라.

일반적인 돈이나 귀금속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리 강조하는 것을 보면, 심상치 않은 물건임은 분명했다.


흔들리는 승냥의 눈빛을 눈치챈 강승희 대감은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무심하게 던졌다.


승냥은 재빨리 종이를 집어 들곤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이리 강조까지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면천···? 작위 하사..”


작위 하사라니.

그럼 귀족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들놈은 귀한 사규삼에 복건을 씌워놓고 귀한집 도련님처럼 글공부를 하고, 또 잘나가는 집안 아씨와 짝도 맺어주고, 부인은 더이상 그 거친 손 비단옷을 두르는 대만 쓰게 만들 수 있었다. 노비와 땅을 소유하고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더이상 지긋지긋한 기방에 나오지 않아도 되고, 산천을 돌아다니며 풍류를 즐길 것이다.


상상만 해도 좋았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상관 없었다. 그게 설령 늘 의지하고 기대었던 이웃들의 목에 들어오는 칼날이 된다 하여도, 우리 가족만 행복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승냥은 알지 못했다. 정치판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원래 자신의 선택이 백번 만번 옳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달콤한 유혹에 한번, 딱 한번 흔들린 댓가는 참혹했고, 허나 그렇다고 해서 뒤늦게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작가의말

소제목 ‘덫’은 해수 뿐만 아니라 승냥, 그리고 나아가 강손에게까지 해당되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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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99 다오랑
    작성일
    20.12.01 17:35
    No. 1

    ^^ 작가님 재있게 잘 읽고 갑니다. 추천!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보엠
    작성일
    20.12.02 08:02
    No. 2

    새 회차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엠새휜
    작성일
    20.12.10 10:05
    No. 3

    오옹 재밌네여ㅕ~~^^ 소제목의 의미를 보니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보엠
    작성일
    20.12.10 10:17
    No. 4

    소제목 나름 신경써서 지었는데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레츄
    작성일
    20.12.22 23:03
    No. 5

    허허... 덫에 걸려버린 것인가요ㅠㅠ정치가 참 생활에 가장 밀접히 엮여있는 것이라 ... 원만히 해결되길 바랍니다(?) ^^ ㅋㅋ재밌게 읽었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보엠
    작성일
    20.12.23 21:10
    No. 6

    승냥은 물론이고 해수까지 자꾸만 복잡한 일과 연루되는 ㅋㅋ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전봇대고양
    작성일
    21.01.06 10:19
    No. 7

    이런 덫이란 소제목은 승냥이 해수 둘다 해당되는거였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보엠
    작성일
    21.01.06 10:27
    No. 8

    넵^^ 맞아요 ㅎ 앞으로 승냥 해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포괄적으로 이용되는 중의적인 의미의 소제목이 될 예정입니당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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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0회 수정했습니다! 20.12.09 18 0 -
공지 세계관 정리 +2 20.12.09 37 0 -
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9 3 10쪽
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3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7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8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20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9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8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4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20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4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3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9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3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8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6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3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9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2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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