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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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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630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0.12.29 15:37
조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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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9쪽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DUMMY

어찌 생각하면 참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알면서도,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 걱정이나 하느라 망설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면 바보같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9년 전에도, 지금도. 이기적이지 못했던 종자들은 늘 끝이 좋지 않은 법이다.


승냥은 우연히 옆집 아주머니로부터 해수가 저자 한가운데에 내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강손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곤, 강승희 대감과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 태화루 조방꾼, 승냥, 이 사람은 알지? 이 사람과 네 죄가 어찌 연관되어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니?”


강승희 대감의 질문을 들은 승냥은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해수가 체포된 후부터 계속 우려했던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강대감은 해수를 통해 승냥을 잡고, 또 그를 이용해 세자를 치는 형식의 전략을 생각하고 있었다.


꼴에 누군가 누명을 쓰지는 않을까 걱정한 해수가 관하여는 묵인 하더라도, 사건의 진범인 승냥의 이름을 꺼내지 않을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곳은 저자의 한복판이었으니, 소문이 어떻게 퍼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안했다.


그 아이가 또다시 승냥, 자신의 모든 것을 파괴 하려 할까봐.


불운은 마치 역병처럼 자신도 모르는 새에 주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법이니까.


해수와 같은 종자와는 진작에 거리를 두었어야 했다.


허나, 왜인지 해수는 또다시 냉랭할 따름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열거하는 대신, 도리어 강대감을 쫓아낸 것이었다.


결국, 또다시 승냥은 비겁하게나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내가 그랬잖아. 해수는 늘 아버지 생각했다고.”


똥 씹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덧붙이는 강손의 말에, 승냥은 잔뜩 분개하고 말았다.

그 멍청한 꼬마놈이 감히 자신을 동정했겠다. 괜히 짜증이 났다.


제 어미를 물어죽인 짐승 새끼가 이제와 사람 노릇을 하겠다니. 어이없었다. 자신은 평생동안이나 그를 원망해 왔는데, 괴롭혀 왔는데 제 따위가 넓은 아량이라도 가지고 있는 양 행동하는 것이 마냥 꼴보기 싫었다.


그래서 그날밤.


승냥은 계속해서 꿍얼대는 아들놈을 애써 잡아 끌고는 철해부 옥사로 향했다.


대체 무슨 속셈이냐고. 어째서 내 이름을 불지 않은 것이냐고 따질 생각이었다.


그렇게나마 놈이 숨켜 두었던 검은 속내를 파헤쳐내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만 이렇게 비겁하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고 증명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의 답은 더욱 가관이었다.


“나리를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암만 그래도 절 키워주신 분이잖아요. 형님의 아버지이시기도 하고. 나리, 좋은 사람이잖아요. 잠시의 나쁜 선택 때문에 무거운 대가를 치루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세자에 대하여도 덧붙이는 말본새가, 마치 자신이 백성들을 대변하는 영웅이라도 된 양 행동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고작 아홉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도 이렇게 남을 생각하여 희생할 줄 아는데. 대체 승냥 그는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서 살아온 걸까?


가족?


아니다. 정말 그가 가족이 행복하기를, 안전하기를 원했다면, 애초에 강승희 대감의 꼬임에 넘어가지도 않았을 테다. 분명 누군가는 위험에 빠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몸을 던진 이유는 틀림없이 그 간악했던 욕망 때문이겠지.


귀족이 되고 싶다는. 그래서 한번 떵떵거리고 살아보고 싶다는, 그 유혹에 빠져 사리분별에 실패한 것이었다.


이제서야 강손이 자신을 향해 쏘아붙였던 일침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어른들의 가득한 악의 속에서 유일한 사람은 해수 뿐이었단걸.


지금까지 승냥은 그저 주희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괜한 상대에 화풀이하며 어리광을 부려왔던 걸.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애써 무시해왔던걸 이젠 알겠다.


‘나리, 나리는 좋은 사람이잖아요.”


해수의 이 한마디가 계속하여 머릿속에 맴돌았다.


정말, 승냥 자신은 좋은 사람이 맞는 걸까? 그 바보같은 꼬마 아이가 진정 사람은 제대로 볼줄 아는 걸까?


하지만, 그거 하나만은 분명했다.


이렇게 된 이상, 승냥은 해수에게 좋은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빚진 목숨을 어떻게든 갚아 나갈 수 있는 거라고.


난생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다짐이 새록 새록 피어올랐다.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옥사를 나서는 순간, 반갑지 않은 얼굴이 나타났다.


성휘였다.


해수의 아비이자, 주희를 비참하게 만든 주요 원인. 권력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포기한, 어찌보면 승냥과 같은 비겁한 인생을 살아온 인간.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져서 더욱 혐오스러웠다.


“해수, 저 아이...내 핏줄 맞지?”


예고도 없이 튀어나온 성휘의 질문에 승냥은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어찌 세자가 해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걸까? 분명 주희는 그가 아기에 대한 사실은 전혀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린 적 없었다. 그가 왕족이라는 사실 또한 이젠 잊어버린 기억 저편의 흔적일 뿐이었다. 의식한 적도, 이용해 보려 한 적도 결코 없었다.


아이의 정체가 알려지면, 해수는 물론이고, 승냥 또한 죽을 목숨이다.


어떻게든 아니라 잡아 떼야 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주희는 아이를 벤 적이 없습니다. 그저 제 슬하의 노비일 뿐입니다.”


승냥은 최대한 제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며 차갑게 답했다.


그런데 눈치없는 아들놈이 그런 그의 말을 끊는 것이 아닌가.


하긴 강손에겐 이 모든것이 혼란스럽기만 하겠지. 세자와 직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을 돌봐온 해수가 귀족의 자식이라니. 게다가 거짓말 하는 아비까지. 자신이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수많은 변수들이었다.


“아버지, 왜 돼도 않는 거짓말이야? 해수, 죽은 누나의 아이 맞잖아. 왜 그래?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승냥은 괜히 원망스러운 마음에 강손을 흘겨볼 뿐이었다.


“해수를 해치려는 게 아니야. 그저 구하고 싶을 뿐일세. 주희에게 진 빚, 이렇게라도 갚아야 하지 않겠나.”


승냥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당신이 해수를 구한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그저 후에 방해가 될까 제거하려는 것이겠지. 주희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까지 인현국에서 평생을 살아오며 뼈저리게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귀족이란 놈들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이다.


살벌한 정치판에서 살아남느라 뒷통수 때리는 데에는 이골이 난 놈들이니까. 고작 기방에서 자리 잡아본 승냥에게는 상대가 안되는 작자들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든 놈들과 엮이는 것은 피해야 했다. 며칠 전 유혹에 현혹되어 실수를 저지른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진심이란 걸 믿어서는 안되었다.


왕궁에서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제 자식에게도 능히 칼을 들이민다고 한다. 세자가 역적의 자식과 놀아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제 자리에 큰 위협이 될 것이 뻔하니, 혹시 몰랐다.


“내가 그렇게도 원망스러운 게냐? 그래, 그럴만도 하지.”


“허면, 반성이나 하고 계십시오. 저는 그 시간에 뭐라도 해야 겠으니까.”


더는 세자와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마음에 돌아서려는 순간, 또다시 그가 승냥을 잡았다.


“이번엔, 이번엔 아닐세. 내가 내 자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겠는가. 그저 주희와 만나 사과하고 싶을 뿐이야. 그럴려면 먼저, 내가 그녀를 위해 뭔가를 해야 겠다, 싶은 거고.”


승냥은 피식 웃으며 나지막히 덧붙였다.


“늦었소. 주희는 사고로 인해 9년전 죽었으니까.”


그러자, 세자는 심히 놀란듯이 입조차 제대로 다물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하기야, 적잖이 충격스럽겠지. 9년전, 승냥 또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버린 사람이 고통스럽게 이 세상으로부터 작별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아마 며칠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할 것이 뻔했다.

성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는 믿기지 않는 듯 연신 거친 숨을 내쉴 뿐이었다.


“..대체...왜?”


갑자기 강손이 성휘를 일으켜 세우더니 답답하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번지르르한 옷을 입으신 분이 해수의 아버지시라니,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녜요. 지금 이 순간도 해수는 아파하고 있고, 9년 간을 방치하신 아비라면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는 거잖아요. 죽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니까요.”


성휘는 고개를 들어 강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강손은 마치 늙은이 처럼 한숨을 푹, 내쉬더니 덧붙였다.


“제게 방법이 있어요. 귀족이신 나리가 도와주신다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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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세계관 정리 +2 20.12.09 37 0 -
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9 3 10쪽
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7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8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20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3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9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3 4 9쪽
»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8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6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3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9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2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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