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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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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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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글자수 :
17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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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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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DUMMY

느닷없이 뛰기 시작한 해수를 따라 형선이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이곳, 뒷산 오두막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린 아이들의 피가 곳곳에 낭자하던 이곳에는 어느덧 회갈빛 잿가루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얼떨결한 마음에 자세를 낮춰 잿가루를 한움큼 쥐어본다.


속절없이 모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뿐이다.


정체 모를 매캐한 향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 진다.


아마 오두막을 둘러싸는 이 자욱한 검은 안개 때문일 테다.


마치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진실들을 순식간에 삼켜버리기라도 할듯, 위협적인 모양새를 자랑했다.


해수를 빼내온 후부터는, 이 오두막은 물론이고, 증인과 벽서를 비롯한 모든 증거에 관해서,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저 해수가 목적이었으니, 더이상 관련하여 고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막상 이렇게 속절없이 사라져 버리니 불안한 낌새가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 빼내온거 말이에요, 강승희 대감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의미심장하게 묻는 해수에게 형선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 그럼. 연호가 강승희 대감의 밑에서 일하니까.”


“거짓말.”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해수에, 그저 소름이 돋을 뿐이다.


영민하다더니, 천인으로 태어나 머리 하나는 빼어난 모양이다.


“협박했잖아요. 그러니까, 증거를 없애 버렸지.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강대감이 이곳을 태울 이유가 없거든. 애초에 신경도 안쓸껄?”


일리 있는 말이었다.


만약 그저 청탁일 뿐이었다면, 그가 직접 나서 불을 지를 정도의 불안감은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마을 사람들도, 조방꾼 나리도, 하여튼 모두 강대감에 의해 끌려간 것일지도 몰라요. 흡혈귀 사건과 관련된 모두를 제거해야 했을 테니까요.”


해수는 느닷없이 말을 흐리더니, 잠시간의 정적 후,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그런데, 대체 왜, 연호 형은 절 자신의 직속 상관을 협박하면서까지 절 빼내려고 했을까요?”


형선은 괜히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댈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금방 거짓말이 들통나고 말텐데, 어린 아이에게 이리 뒷통수를 맞은 적은 오랜만인 것 같다.

“그...그야 협박이란 걸 한게 아니니까 그렇지.어린 놈이 어찌 그리 의심이 많아,”


하지만, 형선의 변명에는 아랑곳하지도 않은채, 해수는 사나운 눈초리를 흘길 뿐이었다.


마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그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그러곤 말을 돌려 제 추측을 이어나갔다.


“만약 제 예상이 맞다면, 연호 형은 제가 아닌 다른 곳에 목적을 두고 있었을 것이 분명해요. 이를 테면 세자라든가. 제가 굴복했다면 그 분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세자를 지키기 위한 이 중요한 증거를, 그냥 놔두었을 리는 없잖아요.. 도저히 앞뒤가 안맞아요.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게 분명하다구요.”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자신이 세자의 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아직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한 중요한 증거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증거가 사라졌으니, 세자의 목숨이 위험하기라도 한다는 의미 일까?


“그게 무슨 말이야? 중요한 증거라니? 이미 흡혈귀 사건들은 끝났는걸. 그걸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해수는 또다시 날카로운 눈초리를 흘리며 답했다.


마치 자신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형선을 답답해 하는 듯 했다.


“만약 제가 목적이었다면 그렇죠. 하지만 세자를 지키기 위해서 였다면....이번 사건이 끝났다고 대감의 공격 또한 멈추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에서야 증거를 제거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그쪽에서는 이미 칼을 갈고 있는 거 잖아요. 오두막도 그렇고, 조방꾼 나리도, 마을 사람들도 보초 하나 없이 이리 허무하게 잃어버린 것은 스스로를 보호할 방패막을 제 손으로 부셔버린 건데..”


그런 해수의 판단에 형선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쨌거나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그 조방꾼이라는 사람은 내가 한번 찾아볼게. 걱정 마.”


그러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그리고 세자 저하께서는, 정치적 욕심을 지니신 분이 아니야. 강대감과의 싸움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하는 분이시라고. 그러니 제 스스로 방패막을 포기하신 것이겠지. 한쪽이라도 욕심을 버리면 전쟁은 피할 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런 형선의 앞에서 해수는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세자 말이에요. 참 바보같은 사람이에요.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욕심에 눈이 먼 강승희에게 죄 없이 죽어나가는데, 기회를 가졌음에도 제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니. 참, 무책임한 사람이에요.”


그런 해수에게 형선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군주가 정사를 포기해 버리면, 그 누구가 불쌍한 백성들을 구원해 줄 수 있겠는가.


허나, 한편으로는 이미 이리저리 치여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버린 저하의 마음 또한 이해가 되었다.


역시, 진정한 군주가 되려면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되는 지도 모른다.


철저히 신으로써, 수만명의 피땀눈물을 딛고 일어선 칠성장군 처럼, 백성들과는 분리된 삶을 살아가며 서서히 괴물로 변해가야만 한다. 그것이 군주의 유일한 숙명이자, 운명이었다.


형선은 감히 친구로서, 누구보다도 여린 마음을 지닌 동무에게 그러한 길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인데, 거기에 더한 짐을 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설령 그것이 더한 미래의 파멸을 의미한다 해도 상관 없었다.


백성들의 안위든, 기울어져 가는 나라든, 사실 모두 남 얘기 아닌가. 그저 그 또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일 뿐인데, 제 삶조차 감당하지 못한 마당에 어찌 더한 것을 짊어져야 하는 가. 신 또한 나약함을 가지고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그저 성휘가, 세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행복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또한, 이루어 질 수 없는 헛된 희망일 뿐이었다.


사람은 하늘이 정한 운명을 바꾸지 못하니까.


사람이란 존재는 원래 신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니까.


*


어여쁜 꽃이 수놓아진 비단 이불. 갖가지의 아름다운 나전칠기들이 눈에 띄였다.


난생 처음 보는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에 탄성이 절로 나올 따름 이었다.


지금도 길바닥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백성이 천지에 널렸는데 강대감은 적에게조차 대접할 따뜻한 방과 악세사리가 넘쳐나는 꼴이라니. 하여튼 마음에 안든다.


어찌 보면 천국과도 같은 이곳에, 강손은 감금되어 있었다.


게다가 꼼짝없이 무거운 추에 의해 묶여 있는 두 손과 발까지.


안락하지만 그야말로 감옥이 따로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반나절쯤 전 강승희에 의해 이곳으로 끌려오고 난 후,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얽매여 있었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에 답답하기만 하다.


저번부터 강승희 대감과 자꾸만 꼬이는 상황이 불안하기도 하고, 아버지도, 해수도 모두 없어진 판에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할 따름이다.


그때, 고요했던 방 너머로 투벅 투벅 분명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물쇠로 꽁꽁 잠겨 있던 방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절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 강승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은 마음에 드나?”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는 그가 너무나도 역겨웠다.


강손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강손을 향해 한발짝 다가왔다. 그러곤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마치 강손의 반항적인 투 조차 반기는듯, 변태적인 태도였다.


“나에게 잘 보여야 할 텐데. 내가 네 아비 놈을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 않니.”


저번과 정확히 같은 상황이다.


또다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덫에 걸려버린 것만 같다.


왠지 모르게 또다시 착취 당하다 힘없이 버려질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내가 그 딴 꾀에 또 속을 것 같아?”


하지만 강대감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저번과 살짝 상황이 달라. 난 그 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거든. 물론 언젠가는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누가 먼저 선수를 쳤지 뭐야?”


그러곤 나지막히 덧붙였다.


“네가 나의 첩이 되어 줘야 겠어. 그래서 모두에게 널리 널리 퍼뜨릴 생각이다. 언젠가 그 소식에 네 놈 아비에게 닿으면, 어디에 있던 내 앞에 나타나려 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비 인데 딱 봐도 자신 때문에 팔려간 아들을 무시하지만은 않을 거다. 물론, 이미 누군가에 의해 처리 되었다면 아무 소용 없는 작전이겠지만 말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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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9 3 10쪽
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6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7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20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3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9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3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7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6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3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9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1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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