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616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0.12.26 09:40
조회
34
추천
4
글자
9쪽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DUMMY

한편 그날밤 철해부 옥사 앞.


죽어가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한 섬뜩한 분위기에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차림의 성휘가 벌써 몇 시진 째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한 사흘 전쯤이었나.


처음 대군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때. 강승희 대감 때문에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을 그 시점이었을 거다.


성휘는 고신에 시달리는 해수라는 이름의 그 아이에게 주희를 떠올렸더랬다.


특유의 곱슬머리와 눈빛을 꼭 빼다 박은 듯 닮아 있는 바람에, 어느새 그가 처한, 자칫하면 그 아이 때문에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원래 계획은, 해수 그 아이가 강대감의 꼬임에 넘어가기 전에 아이를 일찍이 제거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차마 그럴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아이가 고신을 당하고, 아파하는 매 순간에 가슴이 저려오고, 불편해 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며칠을 꼬박 고민한 결과, 지울 수 없는 궁금증을 향해 정면 돌파 하기로 마음먹었다.


성휘의 이 황당하고도 뜬금 없는 질문, 혹시 당돌한 저 자객 꼬마가 자신의 핏줄이 아닐까 하는 예감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었으니 말이다.


직접 물어 보는 것 말이다.


혹시 어미의 이름이 이주희가 아니냐고, 아비 없이 홀로 자라지는 않았냐고, 꼭 알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만약 그 아이가 진짜 자신의 밑에서 나온 것이 맞다면.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 하던 주희와 다시 만나게 해줄 인연이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구해야 했다.


그 방법만이 9년전, 자신이 주희와 스승님에게 저지른 과오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말이다.


비록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만약 그 아이와 주희가 관련이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바람에 며칠을 고민하며 같은 곳을 벵벵 머물고 있지만, 이젠 더이상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주춤거리다가 소중한 것을 잃는 일에는 이제 진저리가 날 뿐이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들이 새록 새록 피어 오른다.


젊고, 희망찼으며, 또 열정적이었던 자신이, 이젠 다시 되돌릴 수 없을 그리운 과거가 자꾸만 떠올라, 비참한 지금의 성휘를 괴롭히는 것만 같다.


*


성휘와 주희는 사실 간난이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다.


성휘의 막내 아우인 희령, 그리고 주희의 막내 아우인 채경은 태어나기 전부터 맺어진 혼인 관계였으며 주희, 그리고 채경의 아비인 이재현 대감은 아버지의 죽마고우이자, 성휘의 첫 글스승이기도 했다. 게다가 성희와 희령의 어미인 현성왕후 또한 이재현 대감과 형제 사이었으니, 두 집안은 마치 한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고 할 수 있다.


주희는 어렸을때부터 정말이지, 별난 아이였다.


양갓집 규수로 태어나, 좋은 집에서 고운 것만 보고 호강하며 자랐을 수도 있었는데, 그녀는 다른 삶의 방식을 택했다.


승냥이라는 이름 모를 조방꾼과 어울리지 않나,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책을 팔고 나아가 언젠가 인현국을 벗어나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를 꿈꿨었다.


매일을 숨막히는 궐에서 단 한발짝도 나서지 못한채 억압당한채 살아온 성휘는 그런 주희가 마냥 부러웠다.


그는 주희를 통해 세상을, 그리고 백성을 배웠고, 한 나라의 국본으로서 이 나라를 어찌 꾸려 갈 것인지에 관한 신념도 키워나갔다.


어린 성휘에게 세상은 참 무서운 곳이었다.


사방에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치고 올라오고, 왕위를 노리는 수십명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그는 연약하기만 했다.


그래서 였을 것이다. 9년전, 성휘는 감히 반역을 꿈꿨었다.


힘 없는 아버지를 몰아내고 하루빨리 왕위를 차지하고 싶었다. 그것만이 유력한 경쟁자인 대군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인것 같았다.


그리고 절대 권력을 갈망했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정상에 올라, 주희로부터 언뜻 들은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원하고 싶었다.


그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처참했지만 말이다.


그저 말없이 성휘를 지지해 주는 세력들이었던 이재현 스승님과 어머니께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국본이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성휘가 그들을 희생양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서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다.


주희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가족들이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것을 목도하는 것으로 모자라, 신분을 잃어버리고 가까웠던 승냥과 함께 빈민가로 모습을 감췄다.


그것이 성휘가 기억하는 주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지만, 만약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녀와 다시 마주해 진정으로 사과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휘에게 남은 기회는 단 하나. 해수라는 저, 기이한 소년 뿐이었다.


과연 비극 인줄 만 알았던 애절한 첫사랑을, 아픈 과거를 되돌리고, 아름다웠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젠 성휘 또한 맘 놓고 행복해 질 수 있을까?


*

비로소 마음을 굳게 먹은 성휘는 옥사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얼굴에, 순식간에 굳어버려, 또다시 그 자리에 멈춰버리고 말았다.


승냥이었다.


주희를 짝사랑하던, 말이 거칠고, 보잘것 없으며, 이기적이고..하여튼 마음에 안들었던 그 남자. 하지만 주희가 좋아하기에, 행복해하기에 늘 함께 어울렸던 사람이었다.


주희와 스승님이 그리된 후로는 아마 왕래를 끊었더랬지.


그는 왜인지 거친 숨을 내쉬며 아주 가쁘게 옥사로 향했다. 그를 따르는 앳되어 보이는 청년 하나도 눈에 띈다.


강손...이었나?


승냥의 외동아들 말이다.


고작 반토막도 안되던 꼬맹이가 저렇게 나이를 먹었다니.


의미없이 흘러보낸 새월이 내심 온몸으로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이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모든 것이 확실해진 셈이다.


주희와 자신을 꼭 반반 섞은것만 같은 생김새에, 승냥 그리고 강손과 가까운 사이라니. 주희의 아이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우연아닌가.


하지만 느닷없이 떠오른 궁금증에, 살금 살금 옥사로 다가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로 결심한다.


대체 왜 주희의 아이가 왕족 시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그들과 강승희 대감의 속셈이 대체 뭔지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 구할 수 있었고, 그래야 움직일 수 있었다.


“나리를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암만 그래도 절 키워주신 분이잖아요. 형님의 아버지이시기도 하고. 나리, 좋은 사람이잖아요. 잠시의 나쁜 선택 때문에 무거운 대가를 치루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언뜻 아이의 말을 희미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쁜 선택이라니···?


승냥이 시해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 일까?


“그리고..그 세자라는 사람, 불쌍하잖아요. 제가 보기엔 사건과 아무 관련 없어 보이던데, 이렇게 계속 언급 되는게, 저같으면 불안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도 꾹 참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동안 많이 당했나봐요. 그 강승희 대감이라는 사람에게. 그래서, 지켜주고 싶었어요. 아프고 힘든 건 저 하나로 충분하잖아요.”


이어서 들리는 아이의 조근조근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성휘는 내심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꼭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사흘전, 추국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주희와 닮은 외모에 너무 매료되어 모두 잊고 있었지만, 해수란 아이의 말투, 표정, 그리고 왜인지 상처를 입지 않는 능력까지, 특이했다.


갑자기 들려오던 늑대 울음 소리와 박쥐 떼까지. 묘한 형상의 북두칠성 모양의 흉터까지 합세하여 왠지 모르게 칠성 대왕을 연상시켰다.


게다가 아직 9살밖에 되지 않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리고,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까지, 제 고집을 지킨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따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그게 전부 성휘를 위해서였다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성휘의 목숨을 자신을 바쳐 구해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그는 또다시 주희에게 무거운 빚을 지고 말았다.


9년 전처럼, 바보같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꼬마의 동정이나 받는 한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 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자, 자신을 구해준 인연인 해수, 이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려야 했다.


그렇게라도, 아버지 역할을 해야지만, 조금이라도 부족한 자신을 메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희야, 만약 이번 기회에 네 빚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말이야, 다시 날 받아줄 수 있겠니? 우리,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


성휘는 이룰 수 없는 희망을 가슴에 품으며, 9년만에 진정한 행복을 담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곤 하늘을 바라본다.


제발, 더이상은 아픔, 그리고 고난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이 된 아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0회 수정했습니다! 20.12.09 17 0 -
공지 세계관 정리 +2 20.12.09 37 0 -
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8 3 10쪽
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6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7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19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2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8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2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7 4 9쪽
»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5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2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8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1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7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