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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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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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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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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프롤로그

DUMMY

하늘을 찌르는 어마 무시한 첨탑과 단단한 벽돌로 두텁게 쌓아 올린 굳건한 성벽까지. 화려한 조각상과 아리따운 정원까지 합세하여, 마치 하늘의 신전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냥 아름다운 껍데기를 자랑하는 이곳은, 천하의 주인, 레브론 황제의 보금자리이다.


고작 30여년 전 까지만 해도, 변방의 조그만 왕국에 불과했던 레브론은 불멸에, 모두를 능가하는 막강한 능력을 가진 신의 아들을 군주로 맞아 세상 전체를 평정하고, 또 굶주리는 백성 하나 없이 모두가 평화로운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백성의 그 누구도 은혜로운 이 번성이 그저 껍데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하늘의 군주, 리암 해리슨이 인간의 피로 연명하는 짐승에 불과하다는 진실 말이다.


소용돌이 속의 바다도, 겉으로 보면 멀쩡한 법이다. 마치 여름 오후의 시골 마을처럼 고요한 황궁 안에는 마침, 엄청난 피바람이 휩쓸고 난 후였다.


피비린내와 고통에 찬 포효가 공허한 공간을 채운다.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어린 아이부터, 수십년의 경험을 품고 있는 노인네들까지. 수십, 아니 수백의 사체가 끈임없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에는 여전히 피에 굶주려 거친 숨을 내쉬는 황제가 있었다. 홀로 높은 황좌를 차지하고 올라 스스로가 걸어온 피의 길을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그 눈빛은 마치 오랜 과거를 회상하듯 애달픈 동시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통에 차 있었다. 조심스레 올라간 입꼬리는 그 처절함을 더해주는 듯했다.


유독 불편하고 어색한 고요를 깨고, 청아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한다.


황제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고통이 가득했던 눈빛이 갑자기 사그라진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바랜 눈동자 사이로 고인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결국 너도 괴물이 되 버린 거네.”


굳게 닫혀 있었던 문을 벌컥 열고, 30대 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들어온다. 대부분 흰 피부와 푸른 눈동자를 가진 사체들과는 다르게, 황제와 마찬가지로 옅은 살구색 피부에 붉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색을 띄고 있었다. 쌍꺼풀이 짙게 진 동그란 눈과는 대비되는 날카로운 턱 선과 코, 황제와 묘하게 다르면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부드럽게 내뱉는 한마디에는 꾹꾹 눌러 담은 분노가 내포되어 있었다.


사내의 말에 황제는 피식 웃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난 황제야. 천하를 다스리는 군주이자, 모든 백성의 짐을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라고. 괴물이 되지 않고 서는 감당하기 힘든 자리 란 거, 너도 아주 잘 알고 있잖아.”


“너는 지금 백성을 책임지거나, 다스리고 있자 않아,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지. 이제는 나도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한테는 그들이 전부였는데, 모든 걸 가진 네가 어찌 욕심내는 건데.”


떨리는 목소리로 내지르는 사내에게 황제는 바로 맞받아 친다. 마치 스스로의 울분을 해소하는 듯.


“내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천만에. 이제 내가 가진 것은 어깨 위에 놓인 이 무거운 짐 뿐이야. 난 너의 것을 욕심 내는게 아냐, 두려워 하는 거지. 나야 말로 유일한 나의 것을 빼앗길까 노심초사 하는 거, 모르겠어?”


“어찌 됐든, 내 모든 게 너로 인해 파괴 되었다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아. 허니, 나 또한 이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사내는 품 안에 쥔 푸른 단도를 꺼내 든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는 황제의 표정에 두려움이 드리운다. 하지만 애써 가벼운 미소를 유지한다. 마치 내면의 진실을 애써 숨기는 어린 소년의 모습처럼.


황제는 천천히 일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푸른빛의 커다란 검을 꺼내 든다. 바들거리며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숨을 고른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황제의 검을 발로 가볍게 차 떨쳐낸다. 무기를 잃은 황제는 오히려 전보다 편안해 진 표정으로 사내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푸른 단도가 이미 썩을 대로 썩어 들어간 황제의 빛 바랜 심장에 꽂히며 주변의 살점들을 고약한 냄새와 함께 태운다.


“많이 약해졌네. 한때는 상대도 안됐는데.”


“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 두고 대결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지, 털썩 쓰러진 황제는 여전히 여유롭게 농담을 던졌다. 그에,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알잖아. 너는 나를 절대 이길 수 없어. 나를 죽어 없애든, 직접 세운 이 나라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든, 어찌 해도 나의 승리야. 넌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너 자신조차, 난 아니야.”


사내는 어느덧 일그러진 얼굴 사이로 처절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황제의 말이 가슴 깊은 곳을 찌르며, 마치 미친듯이 마구 웃기 시작한다. 다시 태어난 다 해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 해도, 그가 황제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을 거스르는 방법이 없듯이,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한다. 황자가 병사를 이끌고 궁의 침입자를 쫓은 것이었다.


어느덧 온몸이 검붉게 변해 있는 아비와 마주한 황자는 당황스러운 지,얼굴을 찡그렸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또다시 누군가가 소란스럽게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는 황제의 가장 측근, 강손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황자를 쫓더니, 마찬가지로 황제의 피와 마주하곤 멈춰 선다. 이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듯,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강손을 보고, 황제는 피식 웃는다. 마치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자를 곁에 둔 사실을 행복해 하는듯 했다.


황자는 아비에게 곧장 달려간다. 그러곤 품 안에 아비를 껴안는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슬픔 보다는 훨씬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흐르는 피를 닦는다.


그러자, 사내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쩍, 떠오른다. 이대로는 어떻게 해도 황제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를 영원히 파멸시킬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 백성을 상대로 그는 여전히 영원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한 군주이기 때문이다. 허나, 만약 또다시 황조가 뒤집히게 되면, 새로운 길이 들어서면 상황은 바뀐다.


그는 손안에 쥐고 있던 푸른 단검을 또 한번 황자의 심장을 내리 꽂는다. 그 순간, 천하를 울리는 비명과 함께, 얼음과도 같았던 황제의 평화가 끊긴다. 여유로워 보였던 그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눈물과 고통에 찬 눈빛이 사내를 노려본다.


사내는 그런 황제를 무시하고 되돌아선다. 그리고 그 순간, 영원할 것만 같았던 영웅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고, 느닷없이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사내는 유유히 걸어 황궁을 나선다.


*


“폐하께서는 장군님 한 분은 믿고자 하셨습니다.”


궁을 나서는 사내를, 강손은 쫓는다. 사내는 강손의 다급한 한마디에 기분이 상했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러면 감히 나를 배반하지 말았어야 지.”


“먼저 배반한 것은 나리 십니다. 그리고 그 놈들까지 . 폐하께서는 자신의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세요.”


그러자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내뱉는다.


“자신의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죄 없는 관료, 그리고 그 자식과 그의 자식들까지 전부 학살한단 말이냐. 네가 황제를 위하는 마음은 알고 있다 만, 그런 식으로 놈을 포장하지는 말아줘.”


사실이었다. 어떻게 보면 황제께서는 이 황궁, 어쩌면 나라 전체를 피바다로 만든 장본인 이었으니까.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비록 승리하기는 했지만,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허나, 동시에 전세계를 통일한 위대한 정복자이자, 신분제도를 없애고 모든 이의 평등을 이륙해 낸 전체주의의 창시자, 중앙의 강력한 집권 체계를 만들어낸 첫번째 지도자 이기도 했다. 병약한 아들을 황제로 키우기 위해 황권에 방해되는 적들을 모두 수청하기는 했지만, 모두 나라와 백성을 위함 이었다. 결과적으로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황금기를 이륙해 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황자님 때문이란 거, 아시지 않습니까. 죄 없는 관료라, 했습니까? 단지 이방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허구한날 폐하를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황자님을 암살하려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두가 평화로운 지금의 시대를 깨고 과거처럼 백성을 마구 착취하려 합니다. 이래도 그들이 모두 청렴하다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열변을 토하는 강손에게 사내는 단호할 뿐이다. 그 어떤 이유로든 살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런 정치적인 이유 따위로 그토록 잔혹했던 대량 학살이 묻혀 질 거라 생각하는 게냐? 이유가 어떻든 황제는 독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강손이 봐온 황제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도, 신의 아들 이라는 호칭을 즐기지도 않았다. 평생을 중앙 집권 체제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강력한 군주가 없으면, 나라를 노리는 수많은 하이에나들에 의해 백성들이 죽어가는 상황에 대해 진저리가 난, 개혁가일 뿐이었다.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믿지 못했기에, 인간의 사악함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었기에, 차마 수백만의 고혈을 남에게 맡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시도가 도리어 더한 피바다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새삼 역설적이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폐하께서는 매일을 죄책감과 무게 감 속에서 죽어가고 계셨던 겁니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수백만 백성을 위하는 길이니까, 스스로의 도덕관을 희생시킨 거라구요.”


그러곤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세상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폐하를 욕하든, 배반하든, 나리께서는 그러시면 안되는 거였습니다. 황제께서는 늘 외로우셨습니다. 믿을 사람 없는 이 황궁에서 의지할 곳이라 고는 오랜 동무 이신 나리 뿐인 걸요. 아무리 황좌를 위해 고독을 자청하셨다지만, 나리 만은 폐하가 가는 길을 믿어 주었어야 죠. 곁에 있어 주었어야 합니다. 폐하께서 한때 나리께 그랬던 것처럼.”


강손의 말에 새삼 아무것도 없었고, 또 아무도 아니었지만, 함께 할 수 있었던 과거가 떠오른다. 젊은 청년으로서 아름 다운 세상과 개혁을 꿈꾸었던 그때가, 심장 한 가운데를 쿡, 쿡 찌른다. 변화라는 게 마냥 이상적이었고, 고귀함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고, 희망적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 버린 걸까. 친구여서 행복 했었던 시절은 다 어디 가고 서로를 죽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사이가 되 버린 걸까.


소중한 동무이자, 조카, 그리고 스승이었던 황제에게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다. 부디 다시 태어난다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돌아가, 시골 마을에서 행복하자고. 적이 아닌 동무로, 다시 함께 하자고. 그리웠던 과거를 떠올리며 간절히 소원한다.


작가의말

연재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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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9 3 10쪽
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7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7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20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3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9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3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7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6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3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9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1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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