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621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1.01.02 13:23
조회
28
추천
4
글자
11쪽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DUMMY

믿을 수 없었다.


해수, 그 당돌한 꼬마가 저하의 핏줄이라니.


어쩐지, 그 이목구비가 심상치 않게 닮아있다는 생각을 언뜻 하기는 했으나, 그것 뿐이었다. 세상엔 닮은 자들이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저 우연이라 생각했었다.


그날 아침, 아주 오래간 만에 세자는 관복을 차려입고 입궐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형선은 자연스럽게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세자는 9년전 그 사건 이후로 정치판에 발을 들인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왕실혼과 같은 중요한 국가 행사를 제외하고는 입궐하는 일이 드물게 되었고, 성휘가 새벽 일찍 일어나 뭔가를 위해 준비한다는 것은 아주 이상한 것이었다.


형선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성휘의 대답은 아주 뜻밖이었다.


숨겨져 있던 자신의 아들을 구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해수는 주희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며, 현재 강승희에 의해 옥사에서 죽어가고 있는 그를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뭐가 되었든 세자가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아주 잘된 일이었다. 지난 9년동안 기방을 제외하고는 집밖에 나간 적 또한 없으며 글은 물론, 그토록 뛰어났던 활에게조차 손을 놓아 내심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세자가 해수,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현재 재판이 돌아가는 상황하며, 강승희 대감의 내막까지 모든게 그 꼬마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의 유일한 핏줄이자, 간절하다 하여도 안되는 일은 안되는 것이 확실한 셈이니까.


혹시나, 세자가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되었다.


허나, 그는 생각보다 치밀한 그림을 그려두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부터 하여,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하여튼 아이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왕족시해사건은 단순 해수 하나의 실수가 아닌 더 크고 복잡한 정치적 사건이 관련되어 있었다.


세자 또한 이 사실 만큼은 뒤늦게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진작에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하여튼, 강승희 그 자,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고 또 잔인한 자였다. 흡혈귀로 변한 대군을 살리기 위해 마을 아이들을 바치다니. 이 사건이 훗날 어떤 비극, 혹은 더한 위험을 낳을 줄 알고. 어쩌면 대군이 해수, 그 아이의 손에 죽은 것이 천만 다행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모든 전말이 밝혀진데다가, 벽서까지 합하여 백성들 또한 더는 보고만 있지는 않을 터.


제대로된 증거만 하나 잡으면, 강승희를 무너뜨리는 것 정도는 식은죽 먹기였다. 아무리 귀족이라 하여도 나라의 재앙이 될 수 있는 역병을 무시하고,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을 희생시킨 죄는 쉬이 용서받지 못할 테니까.


물론 충분히 지금 이 상황만으로도 그가 위협을 느낄 이유는 충분했다. 협박을 이용해 해수 하나 꺼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제 남은 일은 형선에게 달려 있었다. 오늘, 아침 조회 시간에 해수와 관련된 안건을 임금 앞에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절대 강승희 대감을 포함한 고위 대신들에게 휘둘려서는 안되었다. 잘못하다간 순식간에 모든 계획과 노력들이 전부 물거품이 되는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형선은 오랜만에 말끔한 관복을 차려입곤, 최대한 어깨를 활짝 피고 당당해 보이려 노력하며 이미 여러 관리들로 꽉 차 있는 정전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해 집중되었다.


형선은 임금의 앞에 무릎을 꿇고 목청을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백성들 사이에서 이번 왕족 시해사건에 대하여 음흉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 합니다. 신하로서 전하에게 알려드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오랜만에 저하와 함께 입궁하게 된 것이옵니다.”


그 순간, 강승희의 눈빛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형선은 고소하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사건 당시, 녹평국에서 들어온 간악한 역병에 대군마마가 이미 감염되어 있었는데, 역병에 눈이 멀어 사람의 피를 탐하고 마치 짐승처럼 행동하는 그를 누군가가 살리기 위해 가둬두며 천민 아이들을 바쳤다 하옵니다. 해수, 그 아이는 동무들을 살리기 위해 마마를 음해하려 한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임금은 화가 났는지 용상을 세게 내리치며 말했다.


“어찌 나라의 관리가 되어 그런 터무니없는 소문에 귀를 기울인단 말이냐? 네가 진정 왕족 모욕죄로 죽고 싶은 게지?”


옆에 잠자코 서 있던 성휘는 아비의 진노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채 더욱 당당하게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문이 아니옵니다, 전하. 제게 증좌가 있사옵니다. 만약 제대로 조사할 계획을 주신다면···”


그때 강승희가 갑작스럽게 그의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섰다.


“전하, 조사는 제가 담당하게 해주십시오. 대군마마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할애비로써, 어떻게든 막고 싶사옵니다.”


방법이 먹혔다.


강승희, 이놈이 제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이다.


세자는 괜히 기쁜 마음에 홀로 소리없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제 손으로 뭔가를 이루는 감격적인 날이 찾아왔다.


그동안의 눈물과 수모 따위는 깨끗하게 잊혀지는 느낌이었다.


이젠, 해수와, 둘이 행복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언젠가 단둘이 마주앉아 약주를 나누며 주희에 대해 그런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


9년만에 처음으로, 내심 소박한 꿈을 꾸어본다.


*


“이번 기회로 절 어떻게 해보시려는 모양인데, 아무 소용 없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만족한 듯이 웃으며 정전을 떠나는 성휘, 그리고 형선에게 강대감이 발을 세게 구르며 다가온다.


분한듯, 어느새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벌게져 있었다.


그는 태어났을때부터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다.


철해부 1품 관리의 외동아들으로 태어나, 일찍이 관직에 오르기 위한 철저한 교육을 받아왔고, 그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는 그 길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다. 물론, 9년전 자리가 위태롭던 세자의 마지막 발악은 제법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그때 철저히 눌러 주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가 새로이 일어설 결심을 할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그동안 그저 기방에 쳐박혀 헛짓거리나 하고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름 흑심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아무리 보잘것 없는 날벌레 따위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이건가?


애초에 세자가 흡혈귀 사건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게 다가왔다.


이 모든 전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강승희, 자신을 제외하면 승냥 뿐인데.


그가 모르는 무슨 관계로 인한 비밀 스러운 거래가 있었던 걸까?


허면, 세자 또한 범죄가 일어났던 창고 하며, 관련 증거들을 이미 손에 넣은 상태인걸까?


어찌 됐든 마냥 두고 볼수는 없다는 사실 만은 분명했다.


비록 마음이 살짝 아프기는 하지만 또다시 뭔가를 하려 든다면 저주를 퍼부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가장 가까운 동무, 형선의 목숨인가? 스승에 이어서 동무까지 잃어버려야만 세자가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될까?


어떻게든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대며 경고해 본다. 이제서라도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질 친다면, 따라가 주먹을 쥐어박을 의도 따위는 없다.


하지만 왜인지, 그들은 승희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옅은 미소를 띈 여유로운 표정을 잃지 않은채, 나지막히 답했다.


“저희의 목적은 그게 아닙니다. 대감이 이번 일로 나락으로 떨어지던 말든, 전 아무 관심 없어요. 저, 남을 해치려 이러한 일에 나설 만큼 대담하지는 못하다는 거, 대감이야 말로 알고 계실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의 세자와는 눈빛이 사뭇 다르다.


뭐랄까, 간절해 보인 달까?


그가 알고 있던 술주정뱅이 망나니가 아니었다.


마치 9년전에, 스스로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지키려 몸부림치던 덫에 걸린 망둥어의 모습이랄까?


간만에 오래전 생각도 나고, 흥미진진하다.


너무나도 편안한 삶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는데, 가끔씩 이런 위기가 한번씩 닥쳐오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


“허면, 뭘 원하십니까. 소인이 뭘 해드려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저와 적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각오는 되어 있으시겠죠.”


최대한 여유로운 표정을 내비치며 묻는 승희에게, 세자는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였다.


마치 꼬박 며칠동안이나 그 요구를 곱씹으며 연습한 모양이다.


가끔은 이런 세자의 집착이 소름돋고는 한다.


9년전이나, 지금이나.


“해수, 그 아이면 됩니다. 그 아이만 살려주시면, 전 어찌 되든 상관 없어요. 폐위가 되든, 설령 왕위에 오른다 하여도 대감의 뜻에 따를 테니, 아무 걱정 마십시오. 그러면 다시 이렇게 치고 들어오는 일 또한 없을 겁니다.”


해수라니..?


대군을 죽였다는 그 아이 아닌가.


대체 그 맹랑한 꼬마가 세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혹시라도 진짜 세자의 자객이라도 되었던 걸까? 정말 의도적으로 대군을 죽인 걸까?


하긴, 조사 과정부터 심상치 않아 보이기는 했다. 상처를 입지 않는 거 하며, 붉은 눈동자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기운과 거센 성향이, 천하의 강승희 조차 겁먹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어찌 되든 상관 없었다.


그가 자객이든, 아니면 그냥 천한 짐승새끼일 뿐이든. 그는 상관 없었다.


세자가 자신의 꼭두각시가 된다면야, 감히 그 무거운 자리를 제 손으로 포기하기라도 한다면야, 더 원하는 것 따위는 없었다.


그저 천년만년 대를 이어 권력을 누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렇게 강승희는 해수를 풀어주기로 결심했다.


왕족 시해 혐의 따위는 어떻게든 얼버무리면 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에 의해서 기소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의 강승희가 간과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8년 후에, 어쩌면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한 미래에, 그는 그때 해수를 어찌 하지 못하고 풀어준 사실을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이 놓아주었던 그 늑대에 의해 목덜미가 물려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가의말

이제야 뭔가 풀리기 시작하네요 ㅎㅎ 앞으로 해수의 행보도 기대해 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이 된 아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0회 수정했습니다! 20.12.09 17 0 -
공지 세계관 정리 +2 20.12.09 37 0 -
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9 3 10쪽
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6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7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19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2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9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2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7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6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2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9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1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