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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622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1.01.07 08:42
조회
22
추천
3
글자
10쪽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DUMMY

타닥 타닥.


매서운 불길이 마치 세상 전부를 태워버릴듯 위협적으로 감겨 올라간다.


이곳은 뒷산 오두막.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괴물로 변해버린 왕자가 무고한 아이들을 뜯어먹었던 이곳이, 어느새 사나운 불꽃에 휩싸여 검은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옥을 연상하는 끔찍한 그 풍경 앞에서 강승희는 입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자 못하고 하늘을 항해 폭소를 터뜨린다.


강성휘 이 멍청한 자식.


사건 장소이자, 엄청난 증거가 되는 이 오두막을 보호하기는 커녕 방치해 두다니.


아니면 애초에 여기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정녕 해수, 그 아이가 풀려났다고 마치 모든 일이 끝난것 마냥 생각되는 걸까.


대체 무슨 생각 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조차 포기했던 세자가 보위까지 포기할 만큼 간절해 졌으니, 뭔가, 강승희 자신이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동시에 왠지 모르게 그의 속셈에 놀아나고 있는 듯한 기분 또한 들었다.


이번 사건은 그저 표면적으로 자신을 협박하기 위함이고, 혹시 승냥과 연합해 그를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물론 이번 사건 또한 승희에게는 9년만에 찾아온 강력한 위기였지만, 대군이 흡혈귀로 변한 것은 그의 뜻이 아니었던 것 뿐더러, 왕손을 지키려 했다 어찌 둘러대면, 비난은 피할 수 없겠지만,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허나, 지금까지 평생을 정치판에서 정상을 유지하며 살아온 승희에게 비리란 단지 이번뿐이 아니었다.


간단한 뇌물, 세금을 빼돌리는 것 부터 하여, 학당 부당 입학 관련과 역적 모의까지. 게다가 대군 또한 진짜 임금의 자식이 아닌, 딸 대신 다른 집의 자식과 바꿔치기 하였다는 사실이 혹시나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세자가 일단 자신을 안심시킨 후, 정치계 정보판인 승냥을 이용해 숨겨진 진실들을 캐낼 속셈이라면 큰일이었다.


그렇기에 일단 지금은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흡혈귀와 관련된 모든 증거를 인멸하는 것이다.


이곳에 찾아와 불을 지른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혹시나 세자가 미리 눈치를 채고 보초를 세워 두었을까 걱정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치밀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다음은 승냥, 그리고 흡혈귀에게 바쳐졌던 모든 아이들을 포함해, 그 존재를 직접적으로 본 모든 이들을 제거해 나갈 생각이다.


한꺼번에 쓸어내리면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크니, 하나씩 하나씩, 진실의 가지를 끊어낼 생각이다.


이젠 다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위치를 넘볼 수 없게.


그래서 다시는 이번처럼 실패의 쓴잔을 맛볼 수 없게.


자신과 반하는 자들은 모두 처참한 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적이란, 타협하는 대신 가차 없이 제거해 나가는 존재이니까.


그리고, 그래야지만 이 거친 정치판에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행복했다.


여러 가지로 대체 무슨 속셈일지 의심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지만, 알고보면 연호 형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가까히 지내던 노비를 살려주었다는 이유로, 그저 빈민가의 평범한 꼬마일 뿐인 해수에게 비단옷도 입혀주고 쌀밥도 나눠주는 것을 보면, 자신의 사람이라 여기는 자들에게 참으로 극진한 모양이었다.


상대가 어떤 계급을 가졌던지 상관치 않고 소중히 여기는. 어쩌면 해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소중한 인연일지 몰랐다.


그토록 읽고 싶었던 책도 마음껏 읽고, 그동안 늘 보기만 했던 값비싼 완호지물들도 가지고 놀아볼 수 있었다.


연호 형에게는 아주 가까운 동무가 하나 있었는데, 무려 세자 저하의 숙부인 양결현 숙부의 아들, 양형선이라는 자였다.


그날 하루를 함께 보내며 그와도 제법 친해질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해수가 지금까지 봐온 귀족은 모두 무례한 데다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화를 내기 일쑤였는데,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모두가 해수에게 친절하고 또 부드러웠다.


마치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이 과연 이런 느낌일까?


하여튼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하루가 제법 바빴다.


하루종일 이것 저것에 감탄하고 함박 웃음을 터뜨리느라, 인내와 눈물로 가득찼던 과거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저녁 식사를 할때쯤이 되서야 강손이 형 생각이 났다.


지금쯤 자신에 대해 적잖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연호 형의 말에 따르면 해수는 아직까지 대군의 목숨에 미련을 가진 수많은 권력자들에게 쫓기는

상황이었다.


허니 해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연호 형과 형선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의 상태를 알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물론 승냥과 강손을 포함하는 것일 테고.


아마 그들은 사라진 해수를 마을을 샅샅히 뒤지면서까지 찾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을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들은 믿을 만한 사람들이니까.


어미도, 아비도 없는 외로운 해수를 거친 세상으로부터 지켜준 유일한 방패막이었으니까.


어떻게든 만나 말해주어야 했다.


난 지금 괜찮다고.

그리고, 행복하다고.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했다.


해수가 구금되어 있는 동안 그 못지 않게 가장 아파한 사람들일 테니 말이다.


“저 만날 사람이 있어요.”


소심하게 꺼낸 한마디에, 그들은 꽤나 고민하는 듯 했다.


지금 밖에 나갔다 해코지라도 당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일 테고, 애초에 해수를 이곳에 들여놓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해수가 언제까지나 이곳에 갇혀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기존에 삶또한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결국 그들은 해수의 외출을 허락해 주기로 결심했다.


다만, 형선과 함께였다.


그는 꽤나 소문난 무인이었기에, 혹시나 변고가 생긴다 하여도 피할 수 있을 가능성이 컸다.


오랜만에 다시 나온 거리는 참으로 낯설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시비를 걸고 부딪히기라도 했다간 얻어맞기 일쑤였던 과거와는 다르게, 비단옷을 입으니 누구든 알아서 피해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고개를 숙이고 기다려주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미묘하게 좋았다.


또한 한편으로는 귀족이냐, 그렇지 않냐에 따라서 거리를 걷는 것 조차 달라진다는 사실이 부조리하게 다가왔다.


이 나라의 신분제도는 그저 초대 군주인 칠성이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변질 되어 버렸으니.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해 졌다.


또한 하루종일 쌀밥을 먹고 여유롭게 놀이를 즐겼던 자신과는 다르게, 여전히 거리에는 굶어 죽은채, 메말라 방치 되어 있는 송장들과 말똥들이 가득하고, 백성들의 집은 점점 허물어져가는 것이 보였다. 오가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아픔으로 초췌해져 있는 모습을 감히, 보기가 힘들었다.


괜히 하루종일 행복했던 시간 자체가 죄책감이 되어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천민촌에 들어오자마자 그런 생각은 깨끗이 지워졌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미친 도록 뛰며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조여왔기 때문이다.


사실, 해수가 천민촌의 저자를 찾은 것은 무려 3년만이었다.


그동안은 마을 사람들과 괜히 마주쳐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피해왔기 때문이었다.


허나, 형선이 형에게까지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굳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나, 저자에 들어서자마자 밀려오는 트라우마적 두려움은 해수의 생각과 행동을 온전히 마비시켰다.


그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걱정하며 다가오는 형의 모습조차 희미해지고, 3년전, 유난히 아팠던 그날의 기억이 눈앞에서 생생히 펼쳐졌다.


그가 6살쯤 되었을 때였지.


마을 곳곳에서 이유 모를 원인으로 밤새 온몸이 창백하게 변해 죽어버린 변사체들이 떼거지로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어른들은 해수에게로 그 탓을 돌리고 말았다.


물론, 진실은 그저 다함께 나눠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지만.


의학 따윈 배운적이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불운을 몰고 다니는 소년이 꾀어낸 저주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해수는 저자로 심부름을 나왔던 그날, 사과나무집 아저씨에게 발견 돼, 건장한 사내 여섯에게 다구리를 맞았다.


아팠다.


그리고 공포스러웠다.

아픔이 어느정도 익숙해진 지금과는 다르게 그때는 솜털같은, 부서지기 쉬운 존재였을 뿐이니까.


해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잊지 못할 기억이 되고 만 것이었다.


이젠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이젠 더는 상관 없는 줄 알았는데.


저자에 닿자 마자 그날의 기억이 절도 떠오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익숙한 목소리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저기, 해수, 아니니?”


해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사과나무집 아저씨였다.


그 순간,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다.


겉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순식간이 몰려들어왔다.


하지만, 바보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99 다오랑
    작성일
    21.01.08 15:15
    No. 1

    ^^ 무고한 아이들을 뜯어먹는 괴물로 변한 왕자가 넘 불쌍하다. 잼있어서 추천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보엠
    작성일
    21.01.09 13:04
    No. 2

    그렇죠ㅠㅠ 괴물도 결국 같은 사람이었잖아요 ㅎ 병에 걸린 것 뿐이었으니까...추천 감사드립니당!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레츄
    작성일
    21.01.08 17:55
    No. 3

    아이고 트라우마가.... 맘 한구석이 씁쓸하네요. 그래도 해수가 세상을 보는 눈이 성숙하니 긍정적인 기대를 걸어봅니다 ^^ 재밌게 읽었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보엠
    작성일
    21.01.09 13:05
    No. 4

    해수가 어서빨리 트라우마를 딛고 더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하합니당!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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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7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19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3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9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2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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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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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1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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