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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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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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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6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1.01.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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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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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DUMMY

다음날, 해수는 난생 처음으로 세손의 신분으로 학선당이라는 곳에 갔다.


학선당은 인현의 유일한 교육기관이자, 왕친, 혹은 귀족의 신분 없이는 입학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늘 오며가며 글을 읽는 아이들의 소리에 부러워만 했었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그래서 그런지, 며칠동안 구름만 가득하던 하늘도 어느새 맑게 개이고, 어느새 성큼 다가온 봄기운은 이 산 저 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참새조차 찌르르- 기분좋은 울음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거리의 진달래꽃과 흩날리는 벚잎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 했다.


오늘 아침, 아버지에 의해 새로운 동무를 만났다.


아직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안내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름은 장희령.


해수 보다 딱 1살 많은 소년이었다.


아버지의 막내 동생이기도 하고.


손에 물이라고는 생전 한번도 안 묻혀 봤을 만큼, 뽀얀 피부와 쌍꺼풀이 깊게 진 눈, 동그란 코와

조막만한 입술까지.


그리 좋은 인상이라 할 수는 없었다.


물론 객관적인 인물로 따지자면 3-4년만 지나도 제법 많은 계집을 애태우게 할 만큼 준수했지만, 해수는 그저 은연중에 풍기는 책상물림 깍쟁이의 분위기가 싫었다.


하지만, 학선당으로 향하는 길을 함께 걸으며, 해수는 자신의 그 섣부른 판단이 틀린 것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쉽게 마음을 열고, 천인 출신인 해수에게 위아래를 따지지 않는 것이,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다만, 주변에 사소한 것들에조차 정신이 팔려 산만한 데다가, 열살 씩이나 먹어선 말을 더듬고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대놓고 코딱지를 판다는 점 등이 가끔, 아주 가끔 거슬렸을 뿐이다.


“넌 뭐하고 노는 거 좋아해? 전쟁 놀이? 무사 놀이? 아니면 탐정 놀이도 제법 재밌던데. 오늘 수업 끝나고 아이들하고 다같이 놀면 좋겠다.”


해맑게 재잘대는 희령에게 해수는 나지막히 중얼댈 뿐이었다.


“놀지 않아.”


“응?”


“난, 놀지 않는다고. 그런 생산성도 없고 의미도 없는 짓을 왜 해?”


물론 해수 또한 마을 아이들과 어울린 적이 아예 없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저번날 마을 아이들과의 전쟁놀이도 그렇고.


아주 가끔, 필요가 있을 때만 함께 하는 척, 연기를 할 뿐이다.


물론 덕분에 나름 즐겁기는 했지만, 더이상 마을 사람들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없었더라면, 한심한 놀이 따위에는 끼지 않았을 거다.


단순 즐거움만을 쫓기엔 버거운 삶이었다.


이번에도, 어서 빨리 마을 사람들과 조방꾼 나리를 구해낼 방도를 생각해 내야만 하는데, 그런 와중에 또 친구를 사귀고 그들에게 잘 보일 생각을 하자니 머리가 지끈 거릴 따름이다.


희령은 친인척 사이이니, 그렇다 치고, 다른 깍쟁이 귀족놈들이 천민촌 출신의 그를 좋게 볼 리도 없고.


그저 후에 함께 일을 하게 되었을 적 서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그리고 정치에 있어 도움을 받고 인맥을 쌓을 수 있을 정도만 친해지려 한다.


진정한 친구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허나 희령은 그런 해수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재밌잖아! 그거 하나면 충분한거 아니야?”


해수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모두가 형처럼 삶을 재미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해수에 희령은 살짝 빈정이 상했는지 고개를 휙 돌릴 뿐이었다.


“너 괜히 나 골탕먹이려고 말 그렇게 하는 거지? 애늙은이 같애.”


애늙은이라니.


일찍 철이 든 것 뿐이라고 해두자.


어린 아이 특유의 순수함을 느낄 수는 없기에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일찍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그러지 말고 같이 놀자! 저하께서 너 잘 챙겨주라고 특별히 부탁했단 말이야! 같이 놀자, 응? 그럴 수 있지?”



투정 부리듯 조르는 희령에게 마지못한 해수는 피식 웃어 보일 뿐이었다.


해수와 희령.


인현 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뒤흔든 우정의 불씨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탄생했다.


이 만남이 서로의 인생에 있어서 긍정적이었는지, 아님 부정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것 한가지 만은 확실하다.


해수는, 그리고 희령은 서로가 있어서 성장할수 있었다는 것 말이다.


*


‘백성이란 천성적으로 천박하고, 또 변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수시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허니, 인현국의 지도자로서 진실로 그들을 위한다면, 영원불변한 칠성의 법도를 따라, 오직 옳고 그름에 따라 정치를 행해야 할 것이다. 사사로운 백성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라와 백성의 운명은 오직 신께 달린 일이니, 답은 늘 경전에 있기 마련이다.’


학선당에서는 정치, 경제, 법, 역사, 문학 그리고 무예까지. 이렇게 다섯 과목을 배운다.


물론, 모두 초대 군주이신 칠성 대왕께서 이루고, 또 가르친 내용을 옮겨 적어 집필한 것들 뿐이지만.


귀족으로 태어나 과거 시험을 합격하고 정치를 위해서라면 필요할 모든 내용들을 배우는 셈이다.


물론, 해수가 지금까지 딱히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허나, 그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엄청난 암기력, 그리고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전이 이미 태화루에서 오며가며 접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내용조차 남들은 눈 깜빡할 새에 전부를 외워버렸으니, 수업 자체는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진짜 교육이란 걸 받아 보는 구나, 하고 잔뜩 기대했었는데, 선생이란 작자가 하는 일이라고는 아이들 보고 경전 문장을 여러번 반복해 읽게 한 뒤 외우게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 경전 내용이란 것들이 전부 한심하지 그지 없었다.


벌써 이 나라가 개국한지도 600년이 넘어가는데 여태 구닥다리 전설이나 따르고 있으니, 나라가 발전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랐다.


시대가 변하기에, 사람들의 요구 또한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일터, 헌데 그것을 가지고 변덕스럽다, 천박하다 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 불변한 것이 더욱 저급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정부가 백성들의 아픔을 헤아릴 생각은 않고 눈앞에 보이는 해답을 먼곳에서만 찾으려 하기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숨이 나올 따름 이었다.


만약 자신이 왕좌에 오른다면 당장 이 쓸모없는 교육 체제나 개혁해야 겠다고 다짐하곤, 수업 내내 꾸벅 꾸벅 졸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그런 해수를 유심히 지켜본 선생이 위태로울 정도로 얄상한 회초리를 바닥에 탁탁 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거기 뒤, 책 덮고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문장 외워봐.”


감히 선생질이나 하는 주제에 왕손에게 반말을?


뭔가 괘씸했지만 자신있게 답하기로 했다.


이미 모든 내용을 줄줄 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적어도 골탕먹일 수 있을 테니까.


허나, 그 순간,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절대 나서려고도, 튀려고도 하지마. 아비를 진정 위한다면.’


그래, 그 말이 이런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천민촌 출신 아이라면 분명 글을 모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허나,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온 이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그것이야말로 많은 이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것이 아닌가.


"널 지키고 싶었다"

탐탁치는 않지만 그래도 아들을 위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들으로서 그 정도는 해주는 것이 도리 겠지.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한숨을 쉬며 시선을 돌렸다.


입이 근질거려 미칠 것만 같았지만, 참기로 했다.


물론, 아버지의 요구는 한심하지 그지 없었지만, 적어도 정치에 대해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는 해수가 아닌 바로 그였으니까.


일단은 말을 들어보기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덕분에, 해수는 앞으로 불려나와 회초리를 맞고 말았다.


여전히 반항적인 눈빛, 그리고 태도를 거두지 않은채, 여느 때처럼 그저 무표정으로 참아낼 뿐이었다.

남들은 재수없다고 하는 그 기운 마저 저버리면 차마 자존심에 얼굴을 필 수 조차 없을 것만 같아서, 그저 마지막으로 남은 실오라기마냥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선생은 분노하여 더욱 세게 매를 내리치고, 처음에는 배꼽 빠질듯 웃던 아이들의 얼굴도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수는 또다시 의도치 않게 눈에 띄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만히 있어도 반짝반짝 빛을 내는 저 하늘의 별처럼, 해수 또한 그런 존재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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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7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7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20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3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9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3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7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6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3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9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1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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