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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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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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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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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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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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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DUMMY

그날 밤, 강손은 뒤늦게 태화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따라 달빛이 옅은 것만 같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니, 겨울 하늘에 구름이 가득 껴 있었다. 하루종일 날씨가 유난히 찼던 것도 모두 저 때문일까.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고요한 거리를 걷는 것 만큼이나, 강손의 힘들었던 하루를 위로해 주는 것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침울해 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참 긴 하루 였다. 손에 꼽을 만큼 많은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이 숨 쉴 틈도 없이 휘몰아 쳤기 때문이었다.


무슨일인지 입은 열지도 않으면서 피투성이의 처참한 몰골을 하고 돌아온 해수 하며, 왠지 모르게 비밀스러운 강승희 대감, 그리고 아버지의 대화까지.


보통 조방꾼과의 거래는 적어도 같은 기방 사람들에게까지는 공개하기 마련인데, 아버지가 거래를 받아 들인 후에는, 심지어는 시중을 들기로 되어있었던 강손 마저, 모두 쫓겨나고 말았으니, 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평소에 강손 같으면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을 지도 모른다. 강승희 대감과 같은 고위 관직 귀족께서 자신의 은밀한 취미 따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허나 강승희 대감에게는 그 야비한 인상에서 오는 불길한 예감이란게 있었다. 게다가 작위 하사라니, 죽음도 불사하는 엄청난 임무가 아니라면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 아닌가. 어쩌면 아버지는 이번 거래에 목숨까지 내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 마자 아버지에게 부탁할 참이었다. 부디 그 거래, 무르시라고. 제발 달콤한 유혹 대신 마음이 가는 쪽을 선택하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너도 다른 귀한 댁 도련님들 처럼 비단옷도 입고, 과거 시험도 보고 하면 얼마나 좋니. 언제까지 이렇게 다른 귀족놈들 등꼴이나 빨아먹으며 살 수도 없는 일이고.”


어렸을때부터 봐온 아버지는 늘 이랬다.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홀리 듯 마냥 유혹적인 껍데기에 현혹되어 감춰진 진실을 무시하는 것 말이다.


해수만 해도 그렇다. 그 아이가 제 어미를 물어죽인 일은 분명, 반복되지 말아야 할 비극이었지만, 이미 9년도 지난 일이다. 그때의 해수는 간난아이였고, 다른 간난아이가 그렇듯이, 옳고 그름은 커녕 제 어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무려 9년전에 일어난 그 사건과, 그것과 관련하여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대는 동네 사람들의 소문에 현혹되어,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고작 9살 소년, 마음도 감정도 여린 그 어린 아이를 진짜 짐승 새끼라도 되는냥 대하고 있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보이는, 해수의 특별한 천재성과 감수성 그리고 공감능력은 무시하고 말이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분명, 작위를 하사한다는 것은 마냥 매력적인 제안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인현에 살고 있는 수만명의 백성들이 그 작위 하나 때문에 매일을 고통 받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어쩌면 운이 아주 좋은 사람들 일 지도 모르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진짜 그들 가족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허나, 그것으로 인해 더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단옷을 입는다고 하여 귀족이 되지는 않듯. 그저 종이 한 장으로 인해 천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이가 고귀해 지지는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그리고 가치관. 또한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 이것들만 가지고 있으면 그 삶은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귀족이란 껍데기를 쓰고 그들 행세를 하며 속은 곪아가는, 그런 삶이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풍족할 지 몰라도 그 허망함과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좋지 못한 선택을 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 어차피 천민 출신은 다른 귀족들이 상대도 안해 줄 텐데요. 그저 천민과 귀족 그 중간 어디엔가 위치한 애매한 존재가 되고 마는 거죠. 그럴 바엔 그저 지금 삶에 만족할래요, 전.”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천한 이 꼬리표 때문에 얼마나 서러운 일을 많이 겪어야 했니. 자존심 따위에 빼앗길 일이 아니야.”


역시 아버지는 확고했다. 어렸을때부터 이놈의 신분제도에 수없는 한을 쌓아온 탓이겠지.


강손은 아들으로서, 감히, 아비가 그토록 염원하는 소원을 물릴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호랑이 굴에 떨어졌다 해도, 기재를 발휘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이다. 훗날, 언젠가 아버지가 강승희 대감에 의해 궁지에 몰린 다 하여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어차피 저의 의견은 중요한 것도 아니었네요, 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강손은 피곤하다는 듯 뜨끈한 온돌 바닥에 드러 누웠다. 잔뜩 경직되어 있던 온몸의 근육들이 사르르 풀리며 기분이 나른해 진다.


그때, 불현듯 뜬금 없는 생각이 그의 아름다운 휴식을 방해했다.


“아버지, 해수는 아직 안들어왔어요?”


*


하여튼 말썽꾸러기 같으니라구.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그리 당부했건만, 또 다른 길로 센 모양이다.


하지만 뻔했다. 해수가 태화루, 그리고 집에도 없으면 있을 장소는 단 한 곳 뿐이었다.


해수가 한 여섯살쯤이었나. 아무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때가 있었다. 호랑이에게라도 잡아먹혔나, 좋지 않은 생각을 안고, 뒷산으로 향한 결과,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엉성하게 지어놓은 조그만 움막이었다.


해수는 그곳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좋아하는 물건을을 모아놓고, 또 만들기도 하며 오직 스스로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엉성하게 지어졌던 오두막도 구색을 갖춰갔고, 아이의 유별났던 솜씨와 천재성이 어울어져 세상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진기한 물건으로 가득찬 특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강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몸을 웅크리며 오두막 안에 기어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해수는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한때 선물했던 조그만 조각칼과 나무 조각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장난 끼가 발동한 강손은 집중하고 있는 해수를 놀래키기 위해 구부린 채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들어온거 이미 다 알고 있어.”


그런데 이 귀신같은 놈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반대로 강손을 머쓱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런 쓸데 없는 장난 그만해. 이젠 어린 애도 아니고.”


하여튼, 쓸데 없이 어른 행세는.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은 다 이러고 놀던데.


강손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해수에게 가까히 다가갔다. 그러곤 어느덧 형태를 갖춰 가는 나무 조각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며 중얼거린다.


“소?”


해수는 고개를 저으며 강손의 손을 애써 이끌며 어디론가 향했다. 오두막 바로 뒷켠에 만들어 놓은 조그만 지하 공간에 고개를 숙이고 내려가 보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무언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소, 양, 뱀, 토끼를 비롯한 12간지 동물들이 연결되어 있는, 순수 나무로 만들어진 요상한 기계였다.


“이게 뭔데?”


해수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마치 자신에 미치지 않는 형을 희미하게 무시하고 있는 투였다.


“물시계. 녹평국에서 들여온 서책에 그려져 있길래 만들어 본거야.”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해수에게 강손은 어이없는 마음에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자세한 도안도 없이 그림만 보고 외워서 만든 거야? 대단한데.”


강손은 해수에게 서책 따위를 사줄 돈이 없었다. 원망스럽게도 아버지께서는 해수에게 돈을 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그저 가끔 녹평국으로 갓 들여온 서책과 진기한 물건이 가득한 항구에 데려갈 뿐이었다. 그런데 해수는 명석하게도, 그곳에서 슬쩍 훑어본 서책들을 모두 외워 오두막 벽이나 종이 조각에 받아쓰곤 했다. 강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억력이었다.


이번에도, 십초도 채 안되는 시간에 훑어본 서책의 그림과 글들을 기억해 이리 엄청난 기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젠 그 천재성, 기억력 그리고 사고 능력을 어찌 다뤄야 할 지 그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분명, 엄청난 능력인것은 맞았는데, 학당에 다녀본적도, 심지어 글조차 띄엄띄엄, 쉽게 쓰여진 영웅 소설이나 읽는 강손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아이였다.


허나, 그거 하나 만은 확실했다. 이 아이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든, 훗날 어떤 사람이 되든 상관 없이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살펴 주고 보듬어 줄 부모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이놈이, 그런데 형님한테 버릇없이 그 말장난이 뭐니?”


강손은 장난스럽게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곧, 심통이 난 해수는 강손에게 점차 장난을 걸기 시작했고, 둘은 어느새 구름이 걷혀져 환한 달빛 아래 배꼽이 빠질 듯 웃어댈 뿐이었다.


그렇게 다사다난 했던 해수의 하루도 어느덧 끝이 나고,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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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8 3 10쪽
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6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7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19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3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2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6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8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2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7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4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5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0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2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8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1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6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7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2 5 9쪽
»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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