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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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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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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1.02.0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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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DUMMY

수업이 끝난 후, 잠시 쉬는 시간.


학선당 훈장들은 한데 모여 담뱃대를 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나같이 다들 고지식한 외모의 50대 이상의 늙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인현국에서 예순이 넘으면 강승희 대감 처럼 엄청난 권력이나 힘이 없는 한, 그만 정계로부터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니 당연히 후임의 양성은 은퇴한 그들이 맡는 수밖에.


다 늙어서 산천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즐기거나, 발랑 까진 젊은이들과 기방에서 어울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신이 소유한 땅을 돌보는 것 이외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교육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대대로 학선당의 교육은 보수적인 색채를 띄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라나는 새싹들이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인현의 정부가 날이 가면 갈 수록 유착되어 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간에, 오늘 훈장들의 대화 주제는 다름 아닌 학도들이었다.


제자가 스승에 관한 뒷 이야기를 즐기듯, 스승 또한 마찬가지인 법이다.


“새로이 책봉된 세손이 자네의 수업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어떻던가, 천인 출신이라 모르는 것이 많을 터인데.”


그러자, 해수의 스승이자, 강승희의 막내 동생 되는, 강승천은 혀를 차며 답했다.


“말도 마시게. 아무리 왕족이래도 천한 피는 다 통하는 것이야.”


“왜 그러나? 혹, 체벌이라도 한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세손인데, 나중에 큰 일이 생기지 않겠어?”

걱정하는 다른 동료들에게, 승천은 요란하게 손사래를 친다.


“어차피 그 아이가 왕위에 오를 일은 없을 텐데, 뭘 걱정하는 겐가. 멍청하기만 하면 그래도 그렇다만..”


말을 흐리는 그에게 동료들은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사실 그들 모두는 해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천민촌에서 유난히 배척되는 꼬마가 하나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양반들에게까지 해를 가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지.


게다가 위아래도 몰라 건방지기 까지 하여 그 어떤 어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허나 그뿐인가.


왕족을 시해한 것으로도 모자라, 매섭기로 소문난 철해관에서조차 그 기를 굽히지 앉고, 이젠 왕과 세자를 유혹해 지위를 빼앗기까지.


귀족들 사이에서 해수의 평판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진흙탕을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소문대로 끔찍하기 그지없어. 스승이 앞에서 말을 하든 말든 들을 생각도 않고, 아홉살이 넘도록 글을 익히기는 커녕, 말은 제대로 하는지 의심스러울 뿐더러 그 눈빛! 하여튼 그 눈빛이 마음에 안드네. 아주 상대방을 내리 까는듯한 태도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으니. 제가 비단옷이라도 걸치니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만 같은게지.”



다른 훈장들 또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딱 하나, 구석에 홀로 앉아 그저 그의 말을 엿듣고 있는 이가 하나 있었다.


결현 이었다.


형선의 아비이자, 9년 전 지위와 영광을 모두 잃고 반백수로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쩌면 세손이 기회인지도 몰랐다.


성휘는 너무 사람 자체가 연약하다.


흔히 말하는 제왕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이다.


왕위에 올라봤자, 수많은 관리들에게 둘러쌓여 휘둘리다가 요절하고 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을 지도 몰랐다.


현재 결현에게는 강승희를 물리칠 만큼 강력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필요했다.


해수라면.


철해관에서조차 굽히지 않는 끈기와 자신감이라니, 휘둘리기는 커녕 독재자가 되기에 완벽한 성향을 가진 셈이 아닌가.


게다가, 형님의 딸아이, 주희의 자식이기도 하니, 결현과는 이미 한편인 셈이고.


물론, 천인 출신이라는 것이 약간의 흠이었지만.


상관 없었다.


더욱 떨어질 곳도 없는 지금으로서는 어떻게든 기회를 잡는 것이 우선이니까.


언젠가 해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반드시 제 꼭두각시로 만들고야 말것이다.


강승희가 우두머리인 정계는 이젠 지긋지긋하니까.


형님의 복수 또한 언젠간 꾸며야 되지 않겠는가.


*


모든 수업을 끝난 늦은 오후.


해수는 여러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진 채, 다시 세자전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을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딱 두가지 였다.


첫번째로는 학선당의 교육이 생각보다 바보같다는 것.


사실 첫번째 수업만 그러한 줄 알았다.


당연히 법을 가르치는 데에는 보수적인 측면과 암기를 강조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그리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름 다음 수업을 기다렸는데.


역사도, 경제도, 정치도 심지어는 무예까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선생들은 하나같이 늙어빠진 노인네들 뿐이고.


하여튼 마음에 안든다.


앞으로 그의 호기심은 또 어떤것으로 충족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의술이나 수학과 같이, 다른 귀족들은 무시하고는 하는 잡학들에나 관심을 가져볼까, 고민이 되는 참이었고.


두번째는 바로 조방꾼 나라와 강손이 형,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었다.


벌써 세손이 된지도 꼬박 하루가 지났다.


이렇게 매일을 학선당에서 보내게 된다면 그들을 구할 기회는 또 어느 시점에 잡아야 할까 걱정이 되었다.


심지어는 수업 시간에조차 모두가 그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 했으니, 인맥을 만들어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고.


권력을 가지면 모든 것이 술술 풀어질 줄 알았는데 또 그런 것만은 아니다.


너무 적극적이게 행동하면 강승희의 심기를 거스르는 꼴이 될 테니, 또 그것은 피해야 할 텐데.


계속해서 조급해지는 마음에 불안해져만 갔다.


그렇게 여러가지 생각으로 가득차, 고민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어지러운 머리에 차마 주변을 보지 못한 것이다.


평소 마을 아이들이 덫을 놓을 때는 대부분 의식하여 놀라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귀족 아이들이 놓은 덫에, 정말 실수로, 바보같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넘어지고 만것이었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고 한심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그에게, 아이들은 손살같이 달려오더니, 해수를 차고, 밟고, 때리기 시작했다.


하여튼 아이들이란 어딜 가든 똑같은 것 같다.


귀족이나 천인이나 자신들과 조금만 다르면 배척하기 일쑤니.


이래선 어디서도 편안할 수 없을 듯 했다.


“천한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아까 봤냐? 바보같은 것. 역시 종놈들은 하나같이 멍청한게 종특이라니까. 이렇게 대놓고 걸어놓은 덫도 아무 생각 없이 걸려들고. 아주 재미가 없네, 없어.”


낄낄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천민촌의 아이들에게 당했을때는 이렇게까지 화가 난 적은 딱히 없었다.


해수 그 자체도 비루한 인생임은 틀림 없지만,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귀족에게서 착취당하며 받은 아픔과 수모를 모두 해수에게 푸는 것이니 그러려니 했었다.


그들 또한 불쌍한 아이들이었고, 교육받지 못했으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테니까.


허나 이번에는 달랐다.


잘나게 태어나 잘나게 자란 이들이.


운이 조금 좋지 못한 사람을 짓밟으면서 재미를 느끼는 꼴이라니.


역겨웠다.


당장이라도 저 고운 얼굴에 주먹을 박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배울만큼 배운 이들이 더하다는 사실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하지만 참아야 했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강승희에게 제대로 복수를 먹여줄 후일을 위해서라면, 현재 표정을 내비쳐서는 안되었다.


안그래도 불안한 지위, 문제를 만들었다간 큰일이었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맞은 곳을 계속하여 맞으니, 상처가 치유되다가도 또 깊게 새겨져 숨이 턱 막힐듯 고통스러웠다.


일반 사람들과는 두세배의 고통이 계속하여 끊이지 않으니, 정신이 혼미해, 차라리 기절하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몸의 몸뚱아리는 쓸데없이 튼튼하여 피한방울 나지 않으니, 그들에게는 완벽한 장난감이나 다름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해수를 더욱이나 아프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희령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그와 함께 어울리겠다 약속한 그가, 멀리서 그를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저자거리에 묶여있을적 생각이 났다.


해수는 그렇게 매일 주기만 하고 돌려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달래도, 세자도 그가 목숨 걸고 지켜준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정작 해수가 아파할때 손을 건네주기는 커녕 거리를 두기만 하니.


씁쓸했다.


언제까지 이 쓰라린 과정을 반복해야만 할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게 순식간에 우울해지기 직전, 아픈 해수를 위해 감히 한발짝 나서주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야! 니들 뭐하냐?!”


건장한 체격에 꼭 장군감인데, 고운 외모까지 가진 또래의 소녀였다.


가지런히 땋은 머리에 휘날리는 붉은 댕기. 분홍빛 저고리와 녹색 치마. 하늘거리며 뛰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꼭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연상시켰다.


게다가 햇빛이 잔뜩 그을려진 구릿빛 피부 부터 자두색 입술, 깊게 쌍꺼풀이 진 큰 눈과 둥근 코. 얼굴 전체에 가득한 주근깨와 흔치 않은 곱슬머리까지.


언뜻 보면 길바닥에서 뒹군 장난스러운 사내애의 분위기를 풍겼지만, 예뻤다.


정말, 예뻤다.


옷차림이 검소하여 처음에는 학선당에서 일하는 관원으로 착각했는데 아니었다.


옥빛 명패를 들고 있었다.


왕족이었다.


주먹을 들어보이며, 그녀는 아이들에게 위협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죽을래?! 내가 저번에 분명 내앞에서 누군가 다치면 니들 다 죽는다고 했지!”


아이들은 왜인지 다들 어깨를 구부리며 고개를 숙이고 잔뜩 겁을 먹은 듯 보였다.


“야! 그리고 장희령! 넌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저하가 분명 잘 챙겨주라고 했을 텐데. 왜 가만히 있었던 건데!”


희령은 말을 더듬으며 당황할 뿐이었다.


고소했다.


꼭 지금 해수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속이 뻥 뚫려 꽉 막힌 목에 비로소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해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자, 무릎 털고 일어나.”


그러곤 세상 환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난 채경이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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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9 3 10쪽
»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7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8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20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3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9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3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8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6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3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9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2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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