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618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0.12.08 13:22
조회
37
추천
5
글자
9쪽

[ 시즌 1 ] 13회 평판

DUMMY

피···?


다음날 이른 아침, 해수는 일어나자마자 밀려 있는 빨래 소쿠리를 두손가득 들곤 빨래터로 향했다. 평소에도 조방꾼 나리네 댁 집안일은 모두 해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조금도 아니고, 전쟁터라도 갔다 온듯 이리 많은 양의 피가, 조방꾼 나리의 저고리에 마구 흩뿌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누가봐도 수상하다 말할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이 들고 냄새를 맡아 보니, 틀림 없이 사람의 것이었다. 짐승의 피에서는 이리 달큰한 향이 나지 않는다. 그것도 열살 남짓한 남자 아이. 신선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아 누군가에게 산채로 갈기갈기 찢긴 것이 분명했다.


해수는 어렸을때부터 유난히 후각이 예민했다. 특히 피냄새만 맡으면 그 주인과, 나이, 생김새부터 사인까지 추측할 수 있었다. 이것이 마을사람들이 그를 따돌린 또다른 이유일까, 가끔 궁금해하곤 했지만, 지금은 그저 자신의 이 유별한 능력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실수로 파헤쳐 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대체 조방꾼 나리께서 어떤 일에 휘말리셨기에 어린 소년의 끔찍한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비밀로 감추어야 할 사실임에는 분명했다. 그저 우연일 뿐이었다면 사건이 벌어진 직후에 관군들과 주변의 모든 이웃들에게 동네 방네 떠들어 대야 옳은 것일 테니 말이다.


친 자식도 아니면서 9살까지 키워주신 그분께 도움은 되어 드리지 못하더라도, 해가 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닐 테니까. 해수는 뭔가 가슴 한 쪽에 쿡쿡 찔리는 듯한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 눈을 감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순간, 피 묻은 저고리를 손에 쥐고 빤히 바라보고 있던 해수를 이상하게 여긴 옆집 아주머니가 말을 더듬으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이놈이네, 사과 나무 집 끗쇠 말이여. 이놈이 죽인 모양이야.”


사과 나무집, 끗쇠라고?


끗쇠는 천민촌의 골목대장이라 말할 수 있는, 꽤나 장난끼 많고 사나운 아이였다. 평소에 해수를 쫓아다니며 괴롭힌 전력이 있기도 하고, 하여튼 좋은 인연은 아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었다고?

분명 어제 까지만 해도 자신을 나무 꼭대기에 매달아 웃고 배꼽 빠지게 웃었던 그 아이가, 죽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허면, 조방꾼 나리 또한 그 아이의 죽음과 어떻게든 관련이 있다는 의미겠지. 이것이 모두 우연일 리, 만무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닥쳐온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오지랖 넓은 마을 아주머니 덕에 해수가 또다시 의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 말이다.


늘 그랬다.


무슨일이 있던지. 누군가 산에서 굴러 넘어졌다 한들, 도둑이 들었다 한들, 산짐승에게 당해 크게 다쳤다고 한들 모두 해수를 탓했다. 이유는 몰랐다.


그때, 바로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젊은 새댁 또한 옆집 아주머니의 말을 거들기 시작했다.


“맞아, 끗쇠가 평소에 이 놈에게 좀 장난스럽기는 했지. 앙심을 품은 것이 틀림없어. 암, 그렇고 말고.”


늘 이런식이다.


해수의 입장은 들어보지도 않은채, 다들 그저 소문과 추측으로 마음대로 떠들어댈 뿐이다.


하지만, 해수는 그것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을 불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을 하든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어렸을때부터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경험들에 의해 쌓여진 슬픈 지혜였다.


해수는 그저 잠자코 앉아 하던 빨래를 계속할 뿐이다. 그저 이 상황이 빨리 정리 되기를 기도하며, 더 큰 사건과 엮이지 않기를 염원하며.


허나, 사람들은 그런 해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전도시킬 타깃이 필요했고, 그 역할에는 아무래도 해수가 제격이었다. 별나고, 재수없으며, 유난히 무덤덤한 그 아이를 어느새 사람들은 악의적으로 이용해 먹고 있었다.


사과나무집 아저씨는 소문을 듣고 해수에게로 달려와 멱살을 잡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숨이 턱하고 막혀 온몸이 저려 왔다.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해수는 밀려들어오는 이유 모를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곤, 어제 오후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그 자리에 마구, 주먹을 내리치기 시작한다.


“이놈을, 진작에 죽여 놓았어야 했어. 9년전 그날에, 갈기 갈기 찢어 놓았어야 한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너는 결국 우리 모두를 파괴시킬 거야. 모두 죽게 만들거라고!”


신체적인 아픔은..그저 익숙했다. 이미 수십번도 더 경험해본 일이라서, 해수를 놀라게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이유없이 배척당하고, 저주받고, 또 누군가의 원망을 사는 일은 겪어도 겪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저 매번 더 아프고, 쓰라릴 뿐이다. 꼭 누가 껍질이 벗겨진 심장에 소금을 짓무르는 것 처럼. 이유없이 마른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때, 강손이 형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저, 이 거친 세상에 어떤 상황에도 자신을 믿어줄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는 구나, 싶어서, 기분이 갑작스럽게 좋아졌다.


만약 해수의 삶에 강손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철저히 홀로 고립되어 있었더라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마음을 터놓을 사람도, 어깨에 기댈 순간도 없었다면, 진작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아니면 진짜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모두의 저주가 깃든 존재가 되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어찌 생각하면 참, 불행 중 다행이다. 거친 삶 속에서도 미소가 존재한 다는 것은.


“해수, 해수는 아니에요. 어제 밤, 계속 저와 함께 있었다구요. 그 옷도 아버지 것이구요.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는데, 동료가 크게 다친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다들 그만 하세요. 대체 어린 애한테 무슨···”


그러자 사과나무집 아저씨는 해수를 개울가 쪽으로 세게 내던지더니, 중얼거렸다.


“네놈도 언젠가 후회하게 될거야. 괴물은 사람이 될 수 없는 법이라고. 서로 다른 종자들은 절대 함께할 수 없어, 그저 서로를 파괴시킬 뿐이야.”


해수는 울먹거리며, 잔뜩 젖은 몸을 일으켰다. 강손은,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해수의 손을 이끌 뿐이었다. 부디 그것이 아이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를 기도하며.


*


“그러니까, 네 말은..어린 남자아이의 향이 확실했단 말이야?”


“알잖아. 나 냄새 하나는 틀리는 법이 없다는 거.”


어젯밤 아버지는 분명 옆 마을 상인들과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저고리의 그 피는 오는 길에 만난 호랑이에 동료가 부상을 입은 것이라 했고. 헌데 남자아이라니? 게다가 끗쇠가 죽었다니. 기가 막힌 우연이 아닐 수 가 없다.


강손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고, 또 의심스러웠다. 대체 요즘 뭘 하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작위라는 유혹에 빠져 하지 말아야 할 일에 손을 댄 것은 아닌지, 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버지는 늘, 중요한 일을 앞에 두면 주변이 다른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하니까. 한번에 하나밖에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니까. 그저 늘상 곁에 두고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때 해수가 잠시 고민을 하는듯 싶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제 나리 말이야, 누구 중요한 사람이랑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불현듯 강승희 대감이 떠올랐다.


유난히 수상하기는 했지. 강손을 밖으로 내 보낸 것도 그렇고, 표독스러우면서도 능글맞은 눈빛. 보통 내기는 아닌 듯 싶었다.


“강승희 대감이라고...조정의 큰 대신인데.”


해수는 강손의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덧붙였다.


“중전의 아비이기도 하지. 지금 진정한 실세고, 부정 부패로 가득 찼다, 소문이 자자해.”


강손은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런 것들은 다 어디서 알았데?”

“이곳 저곳. 그냥 주워들은 거야. 하여튼,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갑자기 해수에게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기운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뭐랄까, 비장한 느낌이었다. 안그래도 투명했던 그 눈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빝에 반사되어 반짝 반짝 빛났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한 광채가 그를 둘러싸는 것 처럼.


“알아봐야 겠어. 강승희 대감이란 사람하고, 나리하고 과연 뭘 하고 있는지.”


그러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러면, 사람들도 더이상 날 마냥 의심하지는 못할 거 아니야. 그리고, 언젠가 날 받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이 된 아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0회 수정했습니다! 20.12.09 17 0 -
공지 세계관 정리 +2 20.12.09 37 0 -
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9 3 10쪽
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6 2 9쪽
36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7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19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2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8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2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7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5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2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8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1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