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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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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629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1.01.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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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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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DUMMY

“ 네가 나의 첩이 되어 줘야 겠어. 그래서 모두에게 널리 널리 퍼뜨릴 생각이다. 그것만이 지금으로서는 네 아비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야.”


강승희의, 어쩌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 제안을, 강손은 차마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대감의 말에 따르면, 바로 오늘, 해수가 세손으로 책봉되었다고 한다.


이제부터 궁에서 살아가게 될 터이니, 강손과의 인연은 끊어진 셈이다.


게다가 남아 있는 어머니마저 지난 며칠간 폭풍우 처럼 쏟아진 사건들에 몸져 누우셨고, 의원의 말대로라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대로 아버지 마저 가버린 다면, 강손은 정말이지, 혼자가 되고 만다.


두려웠다.


만약 해수라면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내심 고민해 보았다.


그라면 분명 거뜬이 외로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겠지.


해수는 강인한 아이니까.


그 무섭다는 철해관 고신도 거뜬히 이겨냈으니, 분명 살벌한 궁 생활 또한 어떻게든 적응해 나갈 것이다.

그 머리와 타고난 재능과 함께 라면, 강손이 채 눈치채기도 전에 어느새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


하늘을 향해 발돋음을 하고 있는 아이를 앞에 두고, 강손은 여전히 지저분한 진흙탕을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한때 순수했던 이 몸뚱아리는 욕망이란 어둠에 가득차, 그 빛을 잃어가고, 어느새 현실과 타협하기로 결정한 강손은 하루가 멀다하고 추락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마을의 외톨이였을 뿐인 해수가 부러웠다.


만약 자신 또한 신의 핏줄이라는 기회를 가졌더라면, 조금만 어렸더라면, 어여쁜 외모를 타고나지 않았더라면, 혹은, 강승회와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허나, 이제와 이 모든 것을 탓해 봐야 무엇하리.


강손은 그저 자신의 운명을 체념하곤, 자신의 선에서 할 수 있는 한, 강력하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 칠 뿐이다.


그것이 더한 비극을 낳지 않기를 바라면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역겨웠던 강대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


한편, 그날밤 해수와 성휘, 그리고 형선.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들 사이에서 뭐랄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오직 형선만이 둘 사이에 껴서 어떻게든 이 미묘한 분위기를 전환시켜보려 제잘거릴 뿐이었다.


세자, 그리고 해수는 평소와는 다르게 서로에게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으며 그저 저녁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선마저 지쳐 시무룩해질 때 즈음,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를 뚫고 해수가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왜, 말 안하셨어요? 뭐, 천민촌 출신 보잘것 없는 꼬맹이를 아들로 삼기에는 창피하기라도 하셨나 보죠?”


확인하고 싶었다.


성휘의 마음을.


대체 어째서 그동안 자신에게 이렇게 큰 비밀을 감춰 온건지.


하루 종일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고.


그래서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날카롭게 튀어나와 버린듯 했다.


가시돋힌 해수의 질문에 형선은 그저 안절부절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그동안 봐온 해수는 마냥 얌전하고 생각이 깊은, 착한 아이인줄만 알았는데,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하긴, 왕족을 시해한 죄로 검거되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오늘 사건도 그렇고, 임금과 대신들 앞에서 전혀 겁을 먹지 않는 것을 보면, 살짝 불안한 감도 없지않아 있다.


젊은 날의 성휘 조차도 그렇게 무모하지만은 않았는데.


어린 애의 패기로 겁없이 나섰다가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바로 이 왕궁이다.


부디 성휘가 소중한 사람을 힘없이 잃는 악몽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니, 해수야, 아니야...세자께서는 그저.”


형선의 말을 끊은 성휘는 피식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내가 널 너무 높게 평가했나 보구나. 너처럼 영민한 아이라면 아비의 의도 정도는 쉽게 파악하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여전히 해수는 잔뜩 토라진 채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길 뿐이었다.


“알아요. 저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 궁은 무서운 곳이니까, 절 지키고 싶으셨던 거잖아요.”


그러곤 고개를 들어 날카롭게 덧붙였다.


“그게 절 그저 모자라고 한심한 녀석으로 생각했다는 증거죠..전 지금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자그마치 9년 동안이나 놓친 셈이잖아요. 궁이 뭐, 저승도 아니고, 마땅히 사람 사는 곳인데, 세손으로 태어난 제가 그곳을 견디지 못할 것이란 이유라도 있나요?”



그래, 해수의 딴에서는 억울하겠지.


왕족이 되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한두가지가 아니니까.


음식부터 시작해서, 옷, 서책, 장신구들까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제약없이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잃을 것 또한 많다.


몸 자체는 인현국에 있는 누구보다 평안하겠지, 허나 정신적으로는 아니다.


답답한 담벽에 갇혀 하루 하루를 피폐해져만 간다.


매일을 그저 살얼음판 걷듯 조심해야 하는 운명을 가히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궁에서는 동무는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들까지 믿어서는 안되니까.


그만큼 무서운 것이니까.


허나 천민촌 출신 아이가 이 많은 어려움등을 이해하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마냥 화려한 삶을 물려주지 않은 제 아비가 원망스러운 것이겠지.


해수라면, 적어도 누구보다 똑똑한 그 아이라면, 모두 이해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이젠, 네가 대답해 봐. 대체 왜 세손이 되고 싶었던 건데? 사치심? 허영심? 비단옷이라도 입고 옥패를 들이밀면 삶이 더 나아질줄 알았어?”


해수는 성휘의 말에 빈정이 상했는지 그를 빤히 노려보며 덧붙였다.


“말했잖아요. 전,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의 제 자리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더 깊은 구렁에 빠지고 마는데,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저하는 매사에 한심하고, 형선이 형도 곁에서 지켜보는 것 밖에 하는 게 없는데, 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건 나밖에 없는데, 제게 선택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래, 해수는 결국 이런 아이인 것이다.


자신의 미래보다는 타인이 중요한.


그래서 성휘에겐 죽도록 원망스러운, 그런 존재인 것이다.


어쩜 제 어미와 이리 똑닮았는지.


아비를 위해, 백성을 위해 죽음을 자처했던 주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울컥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역사속에서나 나오는 성인이라도 된듯양 행동하는 그들 앞에서 성휘는 언제나 한심하고 바보같으며 이기적인 개새끼일 뿐이다.


목줄에 매여서 버둥 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란게 흘러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해수는 그런 아비를 이해하지 못한채 얼굴을 찡그리기만 할 뿐이었다.


머쓱한 마음에 두 손을 비벼 두 눈 가득 고인 그것들을 순식간에 닦아 낸다.


“눈물로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이랑 마세요. 내 지금 기분은 그게 아니니까. 남 이해해주고 감싸줄만큼, 착한 아이 아니거든요, 저..”


“어째 그리 네 어미와 꼭 닮아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왜 남 부터 챙기는 거야, 왜..어째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는 거냐고.”


성휘는 온 마음을 다해 호소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그들의 틀에 박힌 생각과 행동이 바뀔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야 사람으로 살고, 또 죽고 싶으니까 그러죠. 전 현실과 타협해 목줄 찬 개가 되는 짓은 절대 안해요. 저하 처럼은 안 산다구요. 강대감 따위에 벌벌 떨면서, 한 나라의 국본이 너무 초라하잖아.”


어느덧 거친 숨이 차마 추스를 수 없을 정도로 차오르기 시작한다.


사실 틀린 말이라 할 수는 없었다.


해수를 만나기 전 성휘의 삶은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가 두려워 술로 세상을 잊고, 공허한 공간을 여색으로 채웠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과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아닌 개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살아야 했으니까.


그래야,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샌가 자리잡은 자괴감이라는 감정은 안그래도 서늘했던 그의 삶을 더욱이나 시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늘상 의문을 가지던 부분을, 언젠가 자신의 편이 될 것이라 믿었던 아들이, 공격해 오니 기분이 너무나도 참혹해지는 듯 했다.


“난, 난 널 지키고 싶었다. 너는 너의 사람을 지켜. 나는 나의 사람을 지켜야 겠으니까. 주희에 의해서 너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9년 만에 찾은 소중한 나만의 것인데, 서슬퍼런 정치에 놓아버릴 수는 없었어. 그저 그게 전부야.”


그제서야, 해수의 눈동자가 무언의 감정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역시 버림받으며 자라온 아이라 그런건지, 사랑 이란 감정에 연약해진 걸까.


“일단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개가 되든 뭐가 되든, 살아야 사람들을 지키든 말든 하지. 그러니까, 해수 너도, 한번만 내 말을 좀 들어줘. 많은 건 안바래. 그저 나서지만 마. 무모하게 행동하지 말라고. 그래야 내가 아프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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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시즌 1 ] 38회 짐승의 피 +3 21.02.04 19 3 10쪽
38 [ 시즌 1 ] 37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1 21.02.02 12 1 11쪽
37 [ 시즌 2 ] 36회 저 하늘의 별 +3 21.01.30 17 2 9쪽
» [ 시즌 1 ] 35회 목줄 찬 개 +3 21.01.28 18 2 10쪽
35 [ 시즌 1 ] 34회 나비효과 +1 21.01.27 19 1 10쪽
34 [ 시즌 1 ] 33회 한심한 인간 +2 21.01.27 15 1 13쪽
33 [ 시즌 1 ] 32회 토끼의 탈을 쓴 늑대 +4 21.01.23 17 1 9쪽
32 [ 시즌 1 ] 31회 또다른 모험 +2 21.01.21 17 1 9쪽
31 [ 시즌 1 ] 30회 신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 +4 21.01.16 23 2 11쪽
30 [ 시즌 1 ] 29회 군주의 길 +6 21.01.14 20 2 9쪽
29 [ 시즌 1 ] 28회 평행선 +7 21.01.12 24 2 9쪽
28 [ 시즌 1 ] 27회 전쟁의 서막 +4 21.01.09 23 2 9쪽
27 [ 시즌 1 ] 26회 트라우마 +4 21.01.07 23 3 10쪽
26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4 21.01.05 27 3 9쪽
25 [ 시즌 1 ] 24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6 21.01.02 29 4 11쪽
24 [ 시즌 1 ] 23회 흙속의 진주; 진실 +6 20.12.31 43 4 9쪽
23 [ 시즌 1 ] 22회 목숨 빚-5 +6 20.12.29 27 4 9쪽
22 [ 시즌 1 ] 21회 목숨 빚-4 +6 20.12.26 35 4 9쪽
21 [ 시즌 1 ] 20회 버림받은 아이 +4 20.12.24 26 4 12쪽
20 [ 시즌 1 ] 19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8 20.12.22 31 5 10쪽
19 [ 시즌 1 ] 18회 돌아온 칠성 +6 20.12.19 33 5 11쪽
18 [ 시즌 1 ] 17회 노비 하나의 목숨쯤은 +6 20.12.17 29 5 9쪽
17 [ 시즌 1 ] 16회 덫-4 +9 20.12.15 33 4 11쪽
16 [ 시즌 1 ] 15회 힘의 원천 +6 20.12.12 32 3 10쪽
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13 [ 시즌 1 ] 12회 덫-3 +8 20.12.05 44 5 9쪽
12 [ 시즌 1 ] 11회 새로운 태양 +6 20.12.03 4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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