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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51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10.17 06:28
조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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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Episode132_변화와 유지, 그리고 반복(2)

DUMMY

“...묵시록과 같은 종교 경전에서 이르는 종말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는 믿지 않습니다.”


다칼이 나라님의 말에 답했다. 이제와서 왜 생뚱맞은 소리실까?


“그것보다는 조금 더 역사적인 견해에서 말한 것일세.”


연이은 나라님의 뜬구름 잡기. 물론 다칼과 산시도 황금시대의 몰락이나 이후의 파멸에 대해 들어본 바는 있으나, 그런건 사학에 관심있는 자가 아니고서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 옛날 이야기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건지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잠깐의 틈을 두고 나라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또 생뚱맞고도 뜬금없는 것이다.


“짐은 돌가죽이란 종족을 멸종시킬 계획이다.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 이 땅에서 없애버릴 것이다. 이정도면 자네들도 내가 학살자라는 말에 동의하겠나?”


심지어 이토록 과격한 내용이라면 그들이 받았을 충격은 이루 말할수도 없으리라.


...안다. 그들도 돌가죽을 그리 소중히 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쓸만한 가축, 좀 똑똑한 짐승 정도로 취급하는 이들이 대다수. 그나마 나은 취급도 기껏해야 애완동물 수준일 뿐, 이들을 진지하게 인격체로 대우하는 극소수의 인간은 별종 취급을 받으며 놀림거리가 되었다.


때문에 나라님이 그들에 대항해 해수 구제를 한다던지, 다소 강경하게 대응해 반역의 씨를 말리는 정도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용인될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예 멸종을 시킨다니··· 그것도 다른 짐승도 아니라, 인간과 동일한 지능과 언어를 가진 지성체를 말이다! 그건 분명 두려운 일이다. 암만 그래도 그건 너무 잔혹한 일이다.


게다가 돌가죽은 아직 쓸모가 있었다. 왕실에서야 만일의 안전을 위해 테스트를 통과한 돌가죽까지 죄다 처분해버렸다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고급 가축으로 대우받으며 뭣모르는 이들이 살뜰히 쓰고있는 일꾼이다. 혁명은 노예들의 가격을 떨구는데 그칠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뿌리를 뽑는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과도하며 또한 어려웠다. 대체...


“그러면 자네들은 ‘왜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겠지···.”


왜 굳이 그렇게까지···


“그들도 똑같았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도망치는 것을 넘어, 아예 나의 ‘잔혹한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날뛰더군···. 온 국토에 수배를 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잠시 뜸을 들이고—


“허나 여기서 끝낸다면 자네들도 이상하게 느끼겠지. 어째서 내가 하는 말이란 족족 반역자들 편만 들고있는지 말일세. 그렇다면 과연 짐이 그렇게까지 불합리한 일을 추진할 당위성은 또 무엇일까?”


그들의 심리를 훤히 꿰뚫어보듯, 예상한 때에 예상치 못한 문장을 읊는 나라님은 가신들의 심장을 떨리게 한다. 이 살떨리는 문답을 끝낸 뒤 나라님은 옥좌에서 일어났다. 산시는 혹여 정말 그가 할 말을 다한게 아닐까 생각했다.


“따라오라. ”


그러나 아니었다. 나라님은 오늘 끝까지 그들에게 예상 밖의 행동만 하며 곯려주기를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나라님은 다칼과 산시를 이끌고 궁 깊숙히의 넓고 오래된 창고로 들어섰다. 그곳에 있는 것은 다들 낡고 허름한 책과 물건 투성이였지만 누군가의 출입이 잦았는지 먼지는 별로 쌓여있지 않았다.


한편 두 가신은 나라님이 대체 무엇을 설명하려 여기까지 인도하신건지 좀이 쑤셔 못버틸 지경이었다. 아까부터 그분이 하시는 말은 하나같이 황당해 그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남은 돌가죽을 하나도 남김없이 몰살한다니, 더군다나 이에 방해가 된다면 멀쩡히 전령 임무를 수행하러 간 억울한 인간들도 망설임없이 숙청한다니.


이제 궁금한 것은 한가지로 좁혀진다. 그동안 훌륭하고 안정적인 정치를 펼쳐온 나라님이 어째서 돌가죽에 관련된 것에 한해선 이토록 강경한 태도를 보이시는가.


“그대들은 이전에 있었던 수차례의 종말에 대해 알고있는가?”


“...들어는 보았습니다. 그러나 명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나라님은 마치 그런 대답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이 찬장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쭈욱 펼쳐놓는다.


조급한 맘으로 문서 앞에 모여 그 내용을 읽어나가던 다칼과 산시는, 그러나 한줄씩 읽어나갈수록 기대감이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 길쭉한 종이 위에 그려진 띠는 그 간략한 역사를 수식처럼 정리하고 있었는데, 적혀있는 글귀란 대략 이렇다—




첫번째 멸망. 황금시대의 종말을 일으킨 대전쟁. 같은 동족끼리 초래한 무수한 파괴로 대부분의 인간과 문명이 파괴되다.


두번째 멸망. 마귀라 불리는 괴수들이 나타나 인간을 죽이고 먹으며 그들의 터전을 파괴하다. 이때 인류를 구한 것이 대영웅이자 역사상 첫 나라님으로 임명되는 투르나의 패왕 가루. 허나 이미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또다시 인구와 문명수준이 급락하다.


세번째 멸망. 대부분의 기록이 유실되어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마귀의 출현에 대한 기록이 급증한 것을 보아 그들이 다시 멸망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마귀라는 생물이 단순 전설이나 구전이 아닌 실존하던 생명체임이 명확해진다.




...그래, 다 좋다. 종말이고 뭐고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긴 하지만, 이게 지금껏 이야기하던 주제와 무슨 상관인가? 암만 봐도 여기에 돌가죽에 관한 내용은 코빼기도 적혀있지 않은 것을.


아리송한 그들의 표정을 보고, 나라님은 그들에게 정답을 맞출 기회를 주기보다는 자신이 해답을 알려주기로 했다.


“자네들이 봐야 할 것은 내용이 아닐세. 그 시기지.”


그제서야 가신들의 눈에 글자 위 빼곡히 적힌 예상 연도나 시기 추정의 숫자들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거기서도 어떤 정보를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었으나, 꾸준한 관찰 끝에 그들도 이것이 의미하는 모종의 패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셋 모두가, 각각 20세기 정도의 틈을 걸쳐서 일어났다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0세기. 우연 치고는 너무나 균일하지. 그리고 마지막 멸망이 일어난 것은 대략 20세기 전. 이번에도 같네. 더도 말고 더도 말고, 대략 20세기.”


나라님이 이른, 역사적인 견해로써의 종말론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껏 알려진 적도 없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재해경보에 가신들은 되려 크나큰 비현실성을 느낄 정도로 황당했다. 그러나 이는 분명 그만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의 흐름을 바꾸어, 나라님은 그네들의 질문 안으로 이를 끌어들인다.


“자. 이제, 생각해보게. 만일, 만일 이 가설대로 인류의 멸망이 찾아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무엇이 인간을 파멸시킬텐가?


인간이 인간을 죽여 자멸시킬까? 아니! 짐의 통치 아래 모든 국가와 인간은 지금 유사이래 가장 안정된 상태다.


그렇다면 마귀가 인간을 습격할까? 우리는 그 모습도 모르고, 심지어 실존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데 그들을 대비해야하는가? 아니, 할 수는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이것일세. 우리의 지혜가 뻗는 아래, 인간을 지상에서 뿌리뽑을만큼 강하고 집요한 의지는 하나 뿐!


나는 안다. 그건 돌가죽일세. 그들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가. 어떠한 고문에도 꺾이지 않는 무적의 정신력이, 금강석보다 단단한 신체에 싸여서, 고작 인간의 두배만한 작은 몸집으로도 못해낼 것이 없는 기적과도 같은 생명체들. 그들의 잠재력을 나는 아네.


그리고 장담하지. 돌가죽의 각성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에게 대항하는 돌가죽은 점점 많아질테고 그들 하나하나가 혁명군의 새 일원이 될 것이니, 혁명의 의지는 꺾을 수 없어. 지상에 단 하나의 돌가죽이라도 남겨두는 한 위협은 끝나지 않아!"


굳건한 확신 아래 나라님은 열변을 토한다. 어째서 자신이 학살자를 자청했는지, 어째서 단 한 명의 방해도 남겨질 수 있는지, 어째서 이토록 급진적이고 과격한 수단을 택했는지, 그 모든 불만과 두려움을 단 하나의 절대적인 명제로 정당화시킨다.


“그래서 나는 그들 전부를 멸절시키겠노라 결정한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



다칼과 산시는 보고 들은 모든 것에 대해 철저히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제서야 그들은 비로소 나라님께 고개를 숙인 후 물러날 수 있었다. 정말 살떨리고 피곤한 날이었다.


복도를 걸어가며 왕궁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둘은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고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완전히 박살난 그동안의 지식과 고정관념을 수습하는데만도 머리가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의문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의문을 계속 붙들고 있기에는 오늘 새로이 안 사실이 너무나 강렬했다.


인류의 또다른 재난예고. 돌가죽의 멸종 선언. 반역자들, 학살자, 사라, 하온, 울, 그 모든것이 뒤섞여 마음을 무겁고 복잡하게 했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다칼과 산시를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단 하나의 남은 의문이 목에 붙은 가래처럼 달라붙어 그들을 찝찝하게 한다. 그것은 오래토록 그의 옆을 보필해온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위화감. 어째서 저토록 확신에 차있으신걸까?


이분의 결단력과 단 하나의 우려에도 신중히 대쳐하는 철저함은 익히 알고있는 바였다. 하지만 그만큼 나라님은 어떤 사소한 결정도 가벼이 여기지 않으시는 분이다.


아무리 멸망주기나 종말이론이 겉보기에 그럴듯해보여도, 결국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리란 확증은 없지 않는가.


‘이제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란 말은, 누군가를 설득할 때 휼륭한 핑계가 될지는 몰라도, 그 자체로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너무 넘겨집기가 심한 근거였다.


그런데 모든 돌가죽을 학살하겠다는 그 발상은, 두려움은 둘째치고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출혈도 클 것이고 많은 손해를 떠안을 것이다. 이런 중대사를 결정한 이유가 한낱 달력에서 나온 종말론이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다칼과 산시는 토를 달지는 않았다. 대신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당신의 판단력에 탄복했다며 물러서기로 했다.


이는 포기한 것이 아니며, 단지 스스로의 얕은 지혜로는 나라님의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그만큼 잘 알기 때문이다.


나라님의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나라님은 안다는 의미인 탓이다.



***



“크음...”


나라님은 짧게 신음했다. 괜한 생각을 한 탓에 기분이 복잡해져서, 갑갑한 가슴을 두들기며 마음을 진정 시켜야 했다.


“...”


떠오르는 기억은 어릴적 그토록 가슴에 박힌 날카로운 예언. 그의 대모이자 예언자였던 바그나가 신신당부하며 묘사해준 두렵기 그지없는 미래.


오늘과 같이 종말에 대해 이야기할때면 늘 그 예언 속의 환상이 자신의 머릿속을 따끔따끔 찌르고는 했다. 불타는 황궁 한복판에서, 피를 뒤집어쓴 섬뜩한 돌가죽. 그 앞에는 피곤죽이 된 나와 무수한 인간들의 시체...


...그 예언에 대해서 말할 필요는 없었겠지. 나라님이란 존재의 죽음을 예고하는 예언이라니, 바깥에 토씨 하나라도 알려졌다간 온 세상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괜한 호위가 붙어서 움직임이 제한되는것도 싫다.


호위따윈 소용없다. 그 순간이 온 것 자체부터 이미 그는 실패한 것이다. 예언이 이뤄진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는 지금 예언을 깨부수려 한다. 운명을 거스르려 한다. 그것을 위해선 조금의 거슬림이나 핑계거리 없이 온 힘을 다해 맞서야만 한다. 그의 뒤에 얼마나 무수한 백성들이 떨고있는가. 중요한 것은 애초부터 패배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등 뒤에서 성공적인 실패를 이루고싶지는 않았다. 나 홀로 살아난들 인간이 패배하면 나라님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예언을 비웃을 수 없게된다면, 그땐 차라리 맨몸으로 최선을 다했노라 당당하게 죽으리라.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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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Episode126_시험기동 +2 20.10.02 52 5 10쪽
125 Episode125_더 깊은 내부에서(14) +2 20.10.01 66 5 11쪽
124 Episode124_더 깊은 내부에서(13) +2 20.09.27 62 4 12쪽
123 Episode123_더 깊은 내부에서(12) +2 20.09.25 56 5 8쪽
122 Episode122_더 깊은 내부에서(11) 20.09.24 55 4 9쪽
121 Episode121_더 깊은 내부에서(10) +2 20.09.23 60 4 7쪽
120 Episode120_더 깊은 내부에서(9) +3 20.09.20 56 5 14쪽
119 Episode119_더 깊은 내부에서(8) +3 20.09.17 67 5 16쪽
118 Episode118_더 깊은 내부에서(7) +2 20.09.15 61 5 13쪽
117 Episode117_더 깊은 내부에서(6) +4 20.09.12 58 5 9쪽
116 Episode116_더 깊은 내부에서(5) 20.09.11 95 5 8쪽
115 Episode115_더 깊은 내부에서(4) +4 20.09.09 74 5 9쪽
114 Episode114_더 깊은 내부에서(3) 20.09.06 55 5 11쪽
113 Episode113_더 깊은 내부에서(2) +2 20.09.04 63 6 7쪽
112 Episode112_더 깊은 내부에서(1) +4 20.09.02 65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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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Episode109_대전투(17) +4 20.08.27 75 6 12쪽
108 Episode108_대전투(16) +4 20.08.23 63 5 8쪽
107 Episode107_대전투(15) +2 20.08.21 63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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