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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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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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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10.01 02:01
조회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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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Episode125_더 깊은 내부에서(14)

DUMMY

사라의 창이 내뿜은 강렬한 충격파는, 그 무지막지한 척력과 파괴력으로 인간이고 돌가죽이고 저 멀리 밀쳐내서 포위망을 완전히 해체시켜버렸다. 날아간 병졸들은 그 뒤의 돌더미와 함께 인간더미가 되어 맥없이 쌓여갔다.


한번에 수십의 적들을 무력화시켜 눈 앞이 완전히 뻥 뚫려버렸으니, 사라는 그대로 수월히 군사 무리를 돌파해 전쟁터 밖으로 질주했다. 그런 황당한 짓을 했으니, 그녀에게 덤벼드는 간 큰 병졸도 더는 없었다.


그 이후에는, 더이상의 위협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전쟁은 이것으로 끝났으며, 남은 것은 넓게 트인 길을 따라 멀리 멀리 달려나가는게 전부였다.


사라의 무지막지한 짓거리를 본 몇몇 암살단원도 뒤늦게 그녀를 추격하러 나섰지만, 타고난 기적적인 힘이 가져온 사라의 각력을 따라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달려라, 멈추지 말고 달려라, 그리고 마침내 무수한 피바다가 흐른 대지를 벗어나, 높이 솟은 저 언덕 위의 땅으로 도달한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성공했음을 알았다.


사라의 등에 매달려있던 하온은 입에서 흐르는 피를 틀어막고 신음을 흘리다, 애써 고통을 억누르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르는 자들은 멀찍이, 더 멀리서는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서로 치고박는 괴수들.


여기서 잠시 멈춰야 했다. 멀미가 나서 그런것 만이 아니다. 하온이 혀 너머로 넘치는 피를 억누르며 애써 입을 열었다.


“사라, 잠깐만 여기서 내려줘.”


그녀는 조금의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하온의 의중을 속속들이 꿰뚫어본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즉시 발을 멈추고 땅을 긁으며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신발 밑창이 지면과 마찰하며 흙을 긁어대서 자욱한 먼지가 풀풀 풍겨댄다.


애써 지면 위에 서서 힘겹게 걷기 시작한 하온은 흙먼지를 걷어내고 그 앞의 전장을 향해 조금씩 걸어갔다. 순간 균형을 잃어 넘어질 뻔 했지만, 옆에서 사라가 이를 붙잡고 부축해준 덕분에 그는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온이 손을 내밀자 사라는 제 품 속에 넣어져있던 주먹만한 물건을 그 안에 쥐여준다. 오른팔에 들려진 무한동력장치가 하늘에도 높이 들어올려진다. 태양빛이 그 위에서 부서지며 개성있는 형상을 사방에 내비춘다.


그를 지탱하는 사라의 어깨에 왼팔을 올리고, 몸을 한껏 뻗어 장치의 소유권을 과시한다. 그리고 하온은 힘껏, 정말 있는 힘껏 외쳤다.


“보아라—!!”


그렇게 모든 이들의 이목이 이 두 남녀에게 집중된다. 전장 위 서로를 죽여대던 두 종족이 가진 모든 눈알이 그 끝을 사라와 하온에게 돌리자, 그들 모두가 반역자들이 가진 그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번쩍 들린 오른팔 위 얹힌 크고 복잡한 장치의 모습을.


“너희가 원했던 것···! 너희가 싸웠던 것···! 너희가 빼앗고자 하고 또한 지키고자 했던 그 모든것이 지금 우리의 손에 있노라!!!”


쉼 없이, 목청이 터져라 외쳐대는 하온의, 이제 거의 발악과도 같은 절규가 모두의 귀에 내리꽂히자, 그들은 이제 상황이 완전히 변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히 느껴진다. 저것이 거짓일리는 없다고.


그렇게 한번 내지르고 나니, 몸에서 힘이 빠지고 가슴에선 뭔가 울컥해서 눈물이 넘칠 것 같았다. 숨을 씩씩대며 두근대는 심장을 억눌러본다. 하늘 높이 뻗은 팔을 천천히 내렸다.


그런 하온의 어깨를 꼬옥 안으며, 사라는 천천히 그를 다독이듯 말했다.


“...잘했어. 이제 가자.”


사라는 다시 뛰었다. 길을 따라 저 멀리로 정처없이 내달리며, 그들은 그대로 전장에서 사라져 그 족적을 감추었다.



***



반역자들의 성공은 눈에서 눈으로, 입에서 입으로 순식간에 전쟁터의 모든 곳곳에 전해졌다. 졸병이고 정예병이고 지휘관이고 가리지 않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들의 보루인, 용운이라는 대장군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그 역시, 심지어 호적수가 바로 앞에서 칼날을 들이대는데도, 하온과 사라에게 눈이 팔려서 그들의 승리 선언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며, 조용히 읇조린다.


“저들이... 정말 해냈단 말인가?”


이를 빈틈으로 여겨, 혁명군의 두령 마크의 대검이 그에게 날아든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용운이 애수에 찬 눈빛을 거두고 다시 적을 돌아본다. 용운의 목에 내리친 대검은 그러나 상처를 내지는 못했다.


제 목 위에 지극히 가벼워진 대검을 놓아둔 채 용운은 마크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러나 마크도 이를 예상했다는 듯, 곧장 난전을 벌이긴 커녕 똑같이 가만히 서서 용운에게 말한다.


“저거냐?”


저게 너희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연구소 안의 보석이냐? 라는 질문에 용운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대신 곧 입을 열어 지금 당장 필요한 말을 꺼낸다. 사방의 상황을 파악하면 이제 모든 것이 끝냈음은 명백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을 잘 봉합해야 할 차례다.


“이대로 싸운다면 너희 혁명군에겐 분명 손해다. 이긴단 보장도 없고, 설령 큰 희생을 치뤄 이긴다 한들 연구소 안에 돌가죽이 이득을 볼만한 것은 이제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용운의 지적은 합당하다. 분명 이제 돌가죽이 재미 좀 볼만한 여지는 모조리 사라졌다. 그러나 마크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는다. 씨익 웃음지으며 똑같이 상대 진영에 대한 통찰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너희도, 이대로 정예병력을 소진하며 연구소를 지켜보았자 그렇게 큰 이득이 없겠지. 저 악동 두 명을 추격하는 것을 우선시하기도 해야하고 말이야. 안 그런가?”


마크의 지적 역시 합당하다. 인간측도 반역자들이 워낙 헤집어놓은 탓에 남은 돌가죽을 상대로 이긴다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전멸의 위기를 굳이 이런 중요성을 잃은 곳에서, 그것도 더 중요한 일을 미뤄두면서까지 무릅쓸 이유는 없다.


“이제보니 퍽 두령다운 통찰력이군.”


“너도 지금보니 참 인간다운 얄미움이 있어.”


또 한번 각자 똑같은 말을 늘어놓는다. 서로를 향한 짖궂은 비꼼을 주고받고는, 마크는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용운을 재촉했다.


“그럼 네놈이 하고싶은 말은 아마, 이 손해 뿐인 교전은 그만 때려치우고 여기서 손 흔들며 갈길 가자는 거겠지?”


고개를 끄덕일 필요도 없이 용운은 이에 긍정하며 자신의 거래조건을 상대측에게 제시했다. 전장에서 즉석으로 이뤄지는 휴전협정이었다.


“우리는 남아있는 연구소만 수호하면 족하니, 대신 자네들 돌가죽이 무사히 도망치도록 놔두겠다. 대신 지금 즉시 퇴각하라. 이만하면 어떤가?”


“인간다운 입발림이구나. 너흰 연구소를 지키고 결국 우리만 헛물켜는 셈이군.”


하지만 분명 돌가죽 측에도 그보다 더 나은 선택사항이 없는건 사실. 때문에 마크는 능청을 떨면서 적 장수에게 승낙의 의사를 표했다.


“흠, 좋다. 우리 자애로운 돌가죽이 이번만 넘어가주겠다. 뭐 악수라도 해야하나?”


아주 잠깐동안 용운은 정말 악수를 청할까도 고민했지만, 눈 앞의 돌가죽과 자신은 엄연한 적이라는 것을 곧 깨닫고 관두기로 했다. 이것이 공식 휴전협정인 것도 아니잖는가. 대신 용운은 무기를 거두며 말 한마디로 경의를 대신하기로 했다.


“...자네의 용력과 지휘는 훌륭했네. 적만 아니었다면 널리 칭송할 수 있었을 것을.”


마크도 마찬가지였다. 용운의 목에서 칼을 거둔 뒤 말 한마디로 적에게 경의를 대신했다.


“그대도 퍽 훌륭했다. 인간만 아니었다면 바둑이라도 둬서 승패를 겨루고 싶었는데.”


서로를 향해 쓴웃음을 지으며, 먼저 등을 돌린 것은 혁명군의 두령이었다. 온 전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땅 위의 모든 돌가죽에게 명령한다.


“전원, 퇴각하라—!!!”


그 말을 받들어 모든 돌가죽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부상자를 부축하고 전우의 시신을 수습해 등을 돌리고 도망친다. 치욕스럽지만 감수해야 한다. 두령의 명이기 때문이다. 마크가 원한다면 불 속에라도 걸어들어가는 그들에게 있어 굴욕을 참아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갑작스런 적들의 철수에 동요하는 인간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 용운이 먼저 소리높여 선수를 친다. 누군가가 다시 싸움을 걸기 전에 빠르게 새 명령을 내려야 했다.


“누구보다 높으신 나라님의 대리인으로써, 나 용운이 지금만은 그대들에게 명한다!!”


한번 더 나라님의 이름을 빌어 모두에게 당장 해야할 일을 전한다. 그러자 그들중 누구도 이에 반박하려는 자는 없었다. 그 대장군 용운이 나라님의 권한을 대행한다는데, 대체 누가 거역하겠는가.


“우선해야할 것은 붉은 머리와 검은 머리, 두 반역자를 뒤쫓는 일이다! 아직 발이 빠른 자들은 모두 그 둘을 쫓아라! 나머지는 뒤로 물러나 연구소를 지키도록 한다! 그러나 돌가죽의 등을 쫓는데 힘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잡아야 할 것은 오로지 보물을 탈취한 자들 뿐, 그게 아니라면 연구소를 지키는데만 온 힘을 다해라!!”


더이상의 싸움의 여지를 완전히 끊어내고, 인간도 돌가죽도 납득할만한 명령을 내리고서야, 비로소 이 갑작스러운 교전의 끝은 명확한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돌가죽들을 보았다. 제 동료들을 지키며, 전장에서 마지막으로 등을 돌린 것은 다름아닌 마크였다. 그리고 최후에 떠나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용운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또 보지.”


언젠가 또다른 전장에서. 그리고 혁명군의 두령은 그의 군대를 이끌고 저 너머로 사라진다.


점차 시끄러운 비명과 소음이 사그라들고 부산한 발소리만이 평야를 채운다. 피바람과 살육을 끝맺은 전쟁터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휴식과 안도가 가득했다. 끝났다. 끝이다.


그러고 나니 문득 용운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마치 자석처럼 이끌려 사라와 하온이 떠난 곳으로 향했다. 저항할 수 없는, 아니, 저항하고 싶지도 않은 강한 이끌림이었다.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리석을 정도로 과욕을 부린, 이상을 버릴 줄 모르는 어린 자들. 나는 그런줄로만 알고 있었다.


해냈구나. 너희가 정말 해냈구나.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들이 당연히 실패하리라 생각하고 가로막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이 반역자들은 그런 용운에게 보란듯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뭘 모르는 것은 용운이었다.


베베 꼬인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자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지도 잊을 정도로 전부 다 엉켜버렸다. 어쩐지 자신의 모든 삶이 바보짓같이 느껴졌다. 그게 정말이야? 그게, 가능했던 일이었나?


그래서 용운은 해가 질 때까지 반역자들이 달아난 방향을 계속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가만히 서서, 주욱 그 끝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갔다. 목표는 명확하고, 갈 곳도 자유로이 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이제······.






—<하늘을 등지고> 제 2부, '바람길 뚫기' 완—


작가의말

드디어 길고도 길었던 전쟁은 막을 내리고, 다음 화에서는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


역사의 전개도, 등장인물의 행방도, 이제 모두 큰 변혁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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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6 sj란
    작성일
    20.10.01 19:08
    No. 1

    이제 곧 1화의 성문 뚫는 장면이 나오는 것인가.... 잘보고 갑니다! 재밌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방구석4평
    작성일
    20.10.02 02:55
    No. 2

    어어어어... 사실 1화의 성문 뚫는 장면은 1부 마지막에 투르나 왕궁을 탈출할 때를 묘사한거였어요, 24화에서... 제가 잘 알기 힘들게 써놨나봐요

    늘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짜루...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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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Episode127_파장(1) +5 20.10.05 60 4 10쪽
126 Episode126_시험기동 +2 20.10.02 5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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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Episode117_더 깊은 내부에서(6) +4 20.09.12 59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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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Episode115_더 깊은 내부에서(4) +4 20.09.09 75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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