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75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10.15 19:17
조회
52
추천
5
글자
10쪽

Episode131_변화와 유지, 그리고 반복(1)

DUMMY

투르나의 국왕 파부 4세와 나라님, 둘만이 가진 비밀스러운 회담은 파부 4세의 ‘놀랍도록 협조적인’ 태도에 힘입어 매우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투르나 국왕은 새파래진 얼굴로 벌벌 떨며 시키신 일을 하러 달려나갔고, 원하는 바를 이룬 나라님도 무사히 궁궐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떤 간 큰 자가 정보를 새어낸건지는 몰라도, 나라님이 두문불출한동안 미리 주문해둔 명령이 알음알음 궁 내에 퍼져나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늘 일어날 그의 폭로 역시 이로 인한 것이다.



***



세상의 중앙, 모든 것의 위에 계신 나라님의 궁전. 그분이 계신 알현실의 문 앞에 두 사람이 서있다.


그들 정도의 위치면 누가 막는 것도 아니고, 알현실은 본디 나라님을 만나기 위해 있는 곳이라지만, 그럼에도 둘은 그 앞에서 꾸물대며 차마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있다. 문을 지키는 병사들만 골치다. 이것들을 쫓아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나의 이름은 다칼, 하나의 이름은 산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처음 듣는 이름이겠지만, 사실 우리는 이들을 이전에도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첫 화에서 사라가 등장했을 때, 그녀를 데리러 깊고 험한 산중으로 갔던. 그리고 등에 통나무를 잔뜩 진 빨간머리 처녀를 보고 기절초풍했던 두 가신을 기억하는가?


기억하나? 그럼 되었다. 이 둘이 바로 그 가신이다.


그리고 둘 모두 최근 일어난 불미스런 사건들에 이어, 갑작스레 들려온 소문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해 마음졸이며 걱정하고 있었다. 오늘 알현실로 온 것은 이에 대해 묻기 위함이다


허나 이에 대해 캐내다 자칫하면 미움을 사는 것 아닐지, 그래서 크나큰 벌이 떨어지진 않을지 겁이 나는 것이라, 둘은 섣불리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자네가 좀 남자답게 들어가봐, 좀 깡 좀 기르면 어디 덧나나?”


“그대는 레이디 퍼스트란 말을 모르는가보지? 내가 시도때도 없이 들이대는 인간이었으면 내 목 위엔 관모가 아니라 꼬챙이가 올려져있었을걸!”


그 때 갑작스레 알현실의 문이 열린다. 끼익 하는 소리에 둘은 화들짝 놀라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당연히 나라님이 불손한 그들을 잡으러 직접 밖으로 나왔을리가 없다. 문 사이로 나온건 그저 다른 일로 나라님을 찾아뵌 또다른 신하일 뿐이었다.


그러나 안도한 것도 잠시, 벌어진 문 틈 사이로 그들은 그만 나라님의 눈에 띄이고 말았다. 그들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나라님은 짐짓 피곤하다는 듯 신하들을 물렸다.


바깥으로 몰려드는 관모들을 피해 가신들이 등을 돌리려던 순간, 알현실 안에서 중후한 목소리 하나가 울리며 그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다칼, 산시. 그대들이 찾아온 것을 보면 무언가 할 말이 있을터인데, 어디 들어와서 부족한 짐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겠나?”


이런, 망할. 정말 그들의 주인이 자신을 부르자 기다리던 상황임에도 막상 정신은 아득해진다. 덜덜 떨리는 손을 다른 한쪽으로 부여잡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괜찮아. 나라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지혜로운 분이시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분이시다. 긴장할 것 없어, 아무 일도 없을거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라님은 다칼과 산시가 무슨 말을 하던 어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제 목이 떨어질만한 언행을 일삼지 않는 이들이기에 이정도 직책까지 올라선 거니까.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을 존중하기에 신하들을 물리면서까지 말할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사태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이들의 견해를 듣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인데, 그들처럼 명석한 자들의 의견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과연, 무슨 말을 하기위해 이곳까지 찾아온걸까. 그리고 얼마나 발칙한 소리기에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들어오길 겁냈던 것일까.


“저 다칼이 자애로우신 나라님을 뵈옵니다.”


“저 산시가 자비로우신 나라님을 뵈옵니다.”


괜한 인사치례에 나라님은 되려 질색했다는듯 조용히 손을 휘젓는다.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뜻이다.


여전히 근엄하고도 사람 속을 다 꿰뚫어볼듯한 매서운 눈매, 힐끔 쳐다본 것 뿐임에도 오금이 저린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놓고 겁먹어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문 뒤, 목소리를 쥐어짜내서 힘겹게 다칼이 운을 떼었다.


“...얼마 전에,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나라님의 직속명령으로, 당장 온 세계에 수배지를 뿌린다는 말이었습니다. 사라라는 아이를 함께...”


예상치 못한 이름이 들려와 나라님의 눈썹이 꿈틀댄다. 여기서 왜 그 반역자의 얘기가 나오는걸까?


“그 아이를 알고 있습니다. 산골짜기에서 소박하게 살며, 아무것도 모르던 사라를, 당신의 명을 받고 왕실로 데려온 것이 저희들이었습니다.”


그래,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제 생각난다. 예언자 노파의 말을 듣고, 그녀가 이른대로 산골짜기 네번째 노란 지붕으로 사람을 보냈었지. 그게 바로 자신의 가신이었던 다칼과 산시였다.


“그 소녀는 처음 만난 우리네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착하고 순박한 아이라, 저희 둘 모두 신분과 출신을 떠나 진심으로 호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나라님도 저희들의 사람 보는 눈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 덕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고요.”


조금 허세를 부렸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들은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이 탁월했다. 처신을 할때도 고용을 할때도, 누군가에게 말을 전할때도 올바른 간언을 할때도 그 재능이 얼마나 큰일을 해주었던지.


또한 그 눈으로 꿰뚫어본 이는 사라 하나가 아니었다.


“그리고 울 대신도, 그의 아들 하온도 이전엔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울은 되려 언제나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당신의 가장 충실한 신하였습니다.”


울이 이 나라에 끼친 영향은 아무리 나라님이라 해도, 아니, 나라님이기에 더욱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권의 토대 자체가 그를 반석으로 세워진 것과 마찬가지니까.


한때는 그의 출신 탓에 숙청을 요구하는 자들도 알음알음 있었다고 하나, 이후 보여준 눈부신 공적과 역량으로 지금은 충분히 신임받는, 국가 최고권력자중 하나로써 합당한 능력을 검증받은 상태였다.


지지층도 단단하던 그가 갑작스레 아들을 따라 떠난 것은 분명 큰 충격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를 반역의 효시라고 보는 이들은 멍청이 취급당했다. 그의 지지기반이 모두 궁 안에 있는데, 여길 떠난다고 그를 도울 자가 또 어디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 그래서 누군가는 언젠가 물어야만 했다.


“저희는 그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나라님의 명을 받고 떠난 그들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어느새 잡아죽여야 할 역적이 되었는지가 의문입니다. 그러니 부디 말해주십시오. 반역자들이 지은 죄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건 기밀인데 말일세.”


원래라면 기밀이라는 말에 그들은 곧바로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범적인 가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오늘만은 그럴 수 없다. 다칼은 이를 악물고 굳게 결심했다.


“말씀해주신다면,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겠습니다.”


한걸음 더 내딛은 용기, 나라님은 조금 감명을 받은 모양인지 슬쩍 웃어보인다.


“...어쩌면 죄는 없을지도 모르지.”


“...예?”


“아니면 이 세상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중죄거나.”


기이한 선문답. 이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가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문득 그는 생각했다. 이들에게는 조금 더 말해줘야겠다고.


자신의 결정을 확인받고 싶어서일수도 있고, 혼자 모든 일을 결정해내는데 조금 지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진실의 파편을 조금만 보여주기로 했다.


“저지른 죄는 간단하네. 같이 있던 돌가죽에게 감화를 받았는지 세뇌를 당했는지는 몰라도, 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돌가죽에 대한 나의 판단에 큰 실망을 한 모양이야. 그 뒤 용운이 내민 구호책에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내 일을 방해하려 하니 말일세.”


이는 얼핏 보면 그들의 의문을 속시원히 해결해줄만한 답변이었으나, 새로 생긴 의문에는 답해주지 못했기에 다칼과 산시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상태다. 그렇게나 명확한 죄라면, 죄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왜 했느냐, 그리 묻는 눈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죄를 짓는다고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네. 이유는 두가지.”


그건 어느 시대건 쉽게 용서받을 수 없는, 자신마저도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충분한 동기.


“첫째, 내가 먼저 그들을 죽이려 했다. 그리고 둘째, 나는 그들의 눈에 잔혹하기 그지없는 학살자로 비춰질 것이다.”


가신들은 당황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대립의 정당성은 되려 반역자 측에게 있는 셈이다. 뭣보다 그들이 아는 나라님과는 사뭇 다른 묘사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학살자라니, 나라님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아니, 십년 전까지는 납득할 수 있었겠지만,,, 설마 이분이 지금의 자리에 오를 때의 그 피바람을 이제와서 갚겠다는 것일까?


그러나 나라님도 이제와서 그때 그 일을 꺼낼 생각은 없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어차피··· 곧 모두가 알아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미리 보여준 뒤에 그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겠지.


“자네들은 종말론을 믿는 성격인가? 아니면 헛소리라 치부하고 넘기는 편인가?”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늘을 등지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5 Episode135_변화와 유실, 그리고 전진(3) 20.10.23 44 4 11쪽
134 Episode134_변화와 유실, 그리고 전진(2) 20.10.22 42 4 11쪽
133 Episode133_변화와 유실, 그리고 전진(1) +4 20.10.19 48 4 17쪽
132 Episode132_변화와 유지, 그리고 반복(2) +2 20.10.17 50 5 12쪽
» Episode131_변화와 유지, 그리고 반복(1) +2 20.10.15 53 5 10쪽
130 Episode130_이런 정신나간 것을 보았나(2) +2 20.10.15 53 5 10쪽
129 Episode129_이런 정신나간 것을 보았나(1) +4 20.10.12 62 5 13쪽
128 Episode128_파장(2) +3 20.10.09 44 3 12쪽
127 Episode127_파장(1) +5 20.10.05 59 4 10쪽
126 Episode126_시험기동 +2 20.10.02 52 5 10쪽
125 Episode125_더 깊은 내부에서(14) +2 20.10.01 66 5 11쪽
124 Episode124_더 깊은 내부에서(13) +2 20.09.27 63 4 12쪽
123 Episode123_더 깊은 내부에서(12) +2 20.09.25 57 5 8쪽
122 Episode122_더 깊은 내부에서(11) 20.09.24 56 4 9쪽
121 Episode121_더 깊은 내부에서(10) +2 20.09.23 61 4 7쪽
120 Episode120_더 깊은 내부에서(9) +3 20.09.20 56 5 14쪽
119 Episode119_더 깊은 내부에서(8) +3 20.09.17 67 5 16쪽
118 Episode118_더 깊은 내부에서(7) +2 20.09.15 61 5 13쪽
117 Episode117_더 깊은 내부에서(6) +4 20.09.12 59 5 9쪽
116 Episode116_더 깊은 내부에서(5) 20.09.11 96 5 8쪽
115 Episode115_더 깊은 내부에서(4) +4 20.09.09 74 5 9쪽
114 Episode114_더 깊은 내부에서(3) 20.09.06 55 5 11쪽
113 Episode113_더 깊은 내부에서(2) +2 20.09.04 64 6 7쪽
112 Episode112_더 깊은 내부에서(1) +4 20.09.02 65 6 11쪽
111 Episode111_대전투(19) +2 20.08.31 71 6 12쪽
110 Episode110_대전투(18) +4 20.08.29 61 6 8쪽
109 Episode109_대전투(17) +4 20.08.27 76 6 12쪽
108 Episode108_대전투(16) +4 20.08.23 64 5 8쪽
107 Episode107_대전투(15) +2 20.08.21 63 4 10쪽
106 Episode106_대전투(14) +4 20.08.18 95 4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