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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02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09.06 08:58
조회
55
추천
5
글자
11쪽

Episode114_더 깊은 내부에서(3)

DUMMY

“사라, 당장 돌진—!!!”


그가 사라에게 다급히 외친 이 짧은 문장 안에는, 하온이 백색 칼을 잡고 버티는 동안, 그녀는 저 멀리서 무기만 깔짝대며 안전히 뻗대는 게스를 향해 달리라는 의미가 전부 함축되어 있었다.


본부대로!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사라가 앞으로 발을 뻗는다. 일단 칼 한쪽을 하온이 막고있다면 나머진 간단하다. 사라 본인이 창을 휘둘러 무기를 쳐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이곳은 좁은 복도 안. 사라가 발을 디딜 곳이 말 그대로 사방에 널렸다.


화려한 기세로 달려나가는 사라에 대응해 게스 역시 집중한다. 마침 하온이 멈춰놓은 그의 무기가 이제 그 주박에서 풀려나 자유가 되었으니 말이다.


정지에서 풀려난 흑빛의 대검은 먼저 가까이에 있는 하온에게 돌진하지만, 보호의 기적이 그의 몸을 감싼 탓에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게스 자신도 여기서 하온을 처치하리라곤 기대치 않았고, 더 미련 가질 것 없이 곧장 사라를 향해 검을 움직였다.


사라는 벽과 벽을 차고 쏜살같이 위치를 옮기며 피하고 또 쳐냈다. 좁고 긴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내는 것이다. 이리저리 재빨리 움직이는 그녀의 회피기동으로 사라는 순조로이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계속 검 한자루로만 상대하다간 곧 눈 앞까지 다가오고 만다.


그 전에 게스는 즉시 자신이 제어권을 쥐는 대상을 흑색의 검에서 사라가 들고있는 창으로 바꾸었다. 마침 하늘 위에 떠있던 무겁고 육중한 대검은 이제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손 안의 창은 적의 명령을 따르는 변절자라 그녀의 움직임을 있는 힘껏 방해한다.


중력의 힘을 적의 빨간 정수리를 향해 추락하는 대검이었지만, 곧 그 움직임은 어이없게도 막히고 만다. 사라가 제 머리 위로 빈 손을 뻗더니 손가락 끝으로 칼날을 잡았다. 다섯 손가락 전부가 서로를 향해 구부러지며 있는 힘껏 칼날을 꽉 움켜쥔다.


그 두꺼운 날이 부서질 기세로 정말 세게 쥐더니, 이를 그대로 정말 검처럼 휘두른다. 그리 하여 자신한테 달려드는 은창을 그대로 쳐낸 것이다. 창은 잠시 뒤로 튕겨나 바닥에 불렀다.


어마어마한 악력을 선보인 사라는 대검을 제대로 고쳐잡고는 그 상태로 게스에게 내달렸다. 졸지에 무기가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단언컨데, 그녀의 상대적으로 얇은 창보다는 두껍고 무거운 대검이 지금의 사라에게 알맞았다.


게스는 다시 자신의 무기 제어권을 흑색 대검에게로 옮겼다. 사라도 개의치않고 곧장 자유가 된 은창을 향해 손을 뻗어 낚아챈다. 이 좁은 복도에서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는 사라에게 이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놀랍기 그지 없다. 그저 타고난 힘을 무식하게 휘두르는 것이 전부였던 그 꼬맹이 처녀가 이제는 스스로의 신체능력을 모두 살려 과감함과 섬세함을 겸비한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다. 결코 길지 않은 여정이었음에도, 대체 얼마나 많은 사선을 넘어온 것인가.


이에 게스는 두 무기를 전부 멀리 던져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사라가 가까이 붙은 순간에 무기가 없다면 곤란한 것은 게스 자신이니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그렇다고 창과 검은 대검 두개를 전부 조종하자니, 그랬다간 저 멀리 있는 흰색 무기의 제어권을 잃는다. 즉 하온이 자유로워진다. 사라가 이정도까지 성장했다면 하온도 변했을 확률이 높고, 그런 변수덩어리를 굳이 맘놓고 풀어주는건 바보짓처럼 보였다.


결국 게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무기의 제어를 이리저리 좌지우지하며 지금처럼 적을 최대한 귀찮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녀와의 대결을 간단히 승리로 이끌어갈 수 있는 시간을.


게스의 계속된 방해공작과 혼란스러운 제어권 쟁탈 앞에서, 사라는 시도때도 없이 무기를 바꿔가며 적의 공세를 막아내었다. 창을 빼앗기면 그 옆의 검을 집고, 그마저 뺏기면 또 창을 되찾아 대신 휘둘렀다.


그 사이사이에 되받아치기 힘든 순간이 오면 몸을 피했고, 정 여의치 않은 순간엔 제 살을 조금씩 내줘야 했다. 무기를 두개나 조종하면서도 적의 검무는 이전보다 훨씬 예리해져 사라로써는 상대하기가 더 까다롭다.


하지만 고행엔 끝이 있는 법, 그들이 있는 복도는 길었지만, 사라가 다가오는 시간을 더 늘려줄 정도로 길고 광대하진 않았다. 칼바람을 뚫고 전진하던 그녀의 위치가 어느새 게스의 바로 앞까지 다다른다.


그러나 이 길고 긴 복도는 게스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은 이미 벌어주었다. 지극히 만족스럽게, 게스는 아까 전부터 계속 한가지 명령을 내려오던 자신의 무기가 자유를 되찾았음을 느꼈다. 저 멀리에서 땅을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써왔던 백색의 칼이 마침내 해방된 것이다.


계속 메꿔지던 지면으로부터 드디어 뽑혀나온 칼날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사라를 향해 직진했다. 이제 되었다. 게스가 여지껏 노렸던 것은 바로 지금의 순간이다. 칼 하나에도 갖은 애를 먹었던 사라가 그의 쾌검까지 합세한 공격에 더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사라의 등을 꿰뚫기 위해 쏜살같이 날아오는 백색의 칼. 그러나 그 얇고 가벼운 몸체는 이전의 날렵함을 잃고 무언가가 둔해지고 말았다. 즉시 이를 포착한 게스가 어리둥절하여 잠시 눈을 사라의 뒤로 돌렸다. 그리로 보인 그의 검에는 아니나 다를까 무거운 짐이 하나 매달려 있다.


하온이다. 하온이 칼자루를 쥔 채 검과 함께 날아오고 있다. 혹여나 놓쳐서 떨어지거나 상처입을까봐 천으로 단단히 손을 동여메기까지 했다.


저 놈은 설마 이 순간을 노린 것인가? 그렇다면 말도 안되는 짓이다. 지금 하온이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올 이유가 없다. 그의 기적은 어느정도 원거리에서도 통하는 종류의 기적이다. 굳이 이런 위험을 무릅써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


몸을 보호하는 힘이라면 방금 전 이미 써버리지 않았던가. 설마 그런 기적을 곧장 연속으로 쓸 수 있을리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적이 모험을 감수했다는 건 그만한 노림수가 있다는 뜻, 결코 방심해서는 안된다. 대체 무엇을 할 생각이냐!


적이 그런 의문을 품게 만든 채, 하온은 날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쥔 칼 끝이 사라의 등으로 향하는 걸 보곤, 있는 힘껏 칼등의 옆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리고 이 백색 서슬은 그 탄성에 의해 흔들린다.


칼의 방향이 흐트러졌고, 궤적은 사라의 오른쪽을 지나는데 그쳤다. 하지만 이는 그저 임시방편일 뿐, 이것만을 위해 게스에게 다가가는 위협을 무릅쓴 것은 아니다.


칼과 함께 그녀 옆으로 스치던 하온이 재빨리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당겼다기보단 쥐어뜯었다 싶을 정도로 다급히 말이다.


이 ‘신호’에 사라가 반사적으로 눈을 꽉 감았다. 이전에 일러준 대로. 그리고 하온은 목걸이에 힘을 가득 부여한다. 아까와 같은 빛의 기적, 섬광을 내뿜어 눈을 멀게 하는 전법!


게스는 그가 이 힘을 쓰는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이를 예측하거나 대응할 방법도 없었다. 저항할 새도 없이 밀려들어오는 압도적인 광량에 그의 안구는 그대로 침묵한다.


그리고 하온이 숨겨둔 또 한가지 비밀무기, 이번엔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물건이다. 아까 전장 한복판에서 날아오던 화살을 낚아챘을 때, 그는 이를 버리지 않고 허리 뒷춤에 꽂아두었다. 만일을 대비한 그의 유일한 날붙이로써 말이다.


하온의 다른 한 손에 들린 것이 예의 그 화살이다. 그리고 마침내 게스의 바로 앞까지 이끌려진 순간, 손과 칼자루를 묶은 천을 파괴의 기적으로 찢어버린다. 자유로이 풀려난 신체가 그 기세를 타고 눈 먼 적에게 돌진한다.


이렇게 날아간 하온의 몸뚱이는 게스의 허리 옆을 지나며 그곳에 쥐고있던 화살을 깊이 박아넣었다. 살을 비집고 들어가는 작은 날붙이가 신경을 긁어대며 고통을 전달한다. 의식이 몸부림치며 몸을 탈출하려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온은 이를 내장 끝까지 밀어넣어 고통에 의한 쇼크를 일으킬 작정이었다.


이와 함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곧장 날아오는 사라의 창날, 두 개의 공격이 한꺼번에 몰아친다. 게스는 도망칠 곳 하나 없는 진퇴양난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이 패배의 위기에 처했다고는 생각치 않았다.


옆구리가 쑤셔지는 고통에도 마다않고 게스는 먼저 하온의 손을 쳐냈다. 그것이 제 허리에 꽃힌 화살을 잡고있다는 사실에도 굴하지 않는 과감한 행동.


화살대가 부러져 두 동강이 나고 하온은 뭘 더 해보지도 못한 채 옆의 바닥으로 밀쳐진다. 그렇게 화살촉은 게스의 상처 안에 그대로 박혀 근육 사이에 묻혔다.


고통에도 아랑곳 않는 그의 지휘 하에 곧장 움직이는 두 개의 검. 하나는 옆을 가르며 하온을 공격하고 하나는 앞을 향하며 사라를 상대한다.


하온을 덮친 칼날이 그의 등을 베어갈랐다. 그가 뒤늦게라도 쓴 보호의 기적이 아니었으면 몸 전체가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차가운 금속이 척추를 훑는 섬뜩한 감각에 하온은 숨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밑에서 나뒹굴었다.


사라에게 파고든 대검은 그녀의 공세를 막아내며 역공을 가했다. 비록 주인의 눈이 보이지 않아도 검의 움직임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라의 창과 옷깃이 바람을 가르며 울리는 소리, 밀어내는 공기의 흐름, 그 하나하나를 느끼고 탐지한다. 게스는 그 감각만으로 적의 행동을 눈보다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어리석은 반역자들을 규탄하듯이 그가 소리친다.


“손 하나 안대고 검을 조종한다는 것은— 내 몸과 이어지지 않은 쇳덩이를, 보이지 않는 곳까지 움직인다는 뜻!”


그렇기에 나는 이런 상황을 수천, 수만, 수억번을 반복하며 수련했다. 내 몸에 새겨진 무수한 흉터는 전부 나 스스로 새긴 것이다. 혼자 수련하며 내 몸을 베고 스스로 동맥을 끊는 모험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암살단에 입단한 이후부터는 스스로의 몸에 피를 낸 적이 없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더냐?


검을 조종하는 것이 특기라 소개하려면, 그 시야와 인지가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감각이 뻗어나가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난 이제껏 그것 하나를 단련하며 여기까지 왔으니.


이깟 일시적인 시각 장애를 핑계로 내가 패배할 수 있겠는가! 이런 섬광따위로 나는 무력해질 수 없다! 더 생각해라! 더 노력해라! 죽을만큼 애를 써서 날 끝까지 몰아넣어 봐라!


“만일 진실로 눈을 뽑아낸다 한들— 내가 무력해질 수는 없다!!!”


그래, 복수란 그런 식으로 이뤄져야 더욱 달콤한 법···!!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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