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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90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10.05 00:25
조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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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0쪽

Episode127_파장(1)

DUMMY

고작 수십여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무기의 위력 시연은 무척이나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협곡 안에 펼쳐진 평야는 무수한 상처를 입고 처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땅에 패인 흉터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그 소리가 귀를 찢듯이 몰아쳐서, 마치 불구덩이의 고통에 찬 신음과 같이 들려온다.


그 거대한 크레이터를 나라님은 지극히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압도적인 파괴력과 쓸 곳이 넘치는 범용성, 그에 더해 사방을 누비는 기동력까지. 이 신무기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그에게 압도적인 권력과 행동력을 선사해줄 최고의 선물이다.


이번 실험에 쓰인 동력원 역시 흑광석으로 만든 것이긴 했지만, 이에 깃든 원한있는 혼은 투르나의 것과 비교하자면 턱없이 부족했기에 출력도 지극히 불완전했다. 그럼에도 저 엄청난 위력, 이제 동력원만 완전히 개발되면 무적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동력원도 곧 탑재될 것이다. 투르나에서 개발중이라는 바로 그 무한동력장치, 막대한 힘과 원한을 품은 흑광석이 이곳에 도착한다면 필시 나라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는 것도 간단하다.


돌가죽이라는 잠재적 위험요소를,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절시켜 뿌리뽑는 것! 그동안 인간이 짊어져온 멸망의 업을 모두 그들에게 떠넘기고 그대로 소멸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였다.


그리고 그 미래는 지극히 밝다.


...아니, 밝아보였다. 나라님이 자신의 황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나라님이 참관을 마치고 다시 돌아갔을 때, 그에게 투르나로부터 전해져온 급보가 도착해있었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무릎꿇은 용운과 함께. 그 즉시 나라님은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믿기지가 않아서, 그는 급보를 낚아채서 난폭하게 펼쳐 읽었다. 조금씩 구겨진 종이 위에 줄지어 늘어놓은 슬픈 글자들.



—가장 낮은 곳에 엎드린 저 용운이, 모든 곳의 위에서 굽어살피시는 나라님께 슬픈 소식을 전합니다.


나라님의 예측대로 투르나 왕은 이전부터 전령의 포획에 실패했음에도 이 사실을 숨긴 채 비밀리에 그들을 처리하고 일을 무마하려 했습니다.


그 소극적인 대처에 의해 전령들은 반역을 꾀하며 성공적으로 도주했고, 끝내는 무한동력장치를 탈취하는데까지 성공해 그대로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저 대장군 용운은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당신께서 파견한 안전장치였습니다.


저는 분명히 밝히겠습니다. 지혜로우신 나라님의 판단은 분명 틀리지 않았습니다. 황실의 대처는 완벽했고 저는 분명 그들을 처분한 뒤 임무 성공을 보고하며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저 혼자 독단적으로 내린 오판으로 인해 망쳐진 것입니다. 대장군 용운은 그 날, 반역자들을 도와 이들 목숨을 살리기 위해 손속에 자비를 두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을 망쳤음도 역시 고백합니다.


모두 저의 과실이며 변명할 생각 하나 없습니다. 존경하는 나라님의 판결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라님은 손으로 종이를 꽉 쥐어 구겨버렸다. 고개숙인 대장군은 제 죄를 알기에 침묵할 뿐이다. 그토록 굳건하던 둘 사이의 신뢰관계가 이렇게나 한순간에 어긋나리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



나라님은 온 세상과 온 국가, 그들을 지배하는 모든 왕의 위에 서계신 하늘의 통치자.


그에게 있어 인간들이란 저마다가 체스판 위의 말이었고, 각기의 직책과 능력에 따라 그들을 올바른 위치로 배치하고 또한 움직이는 것이 나라님의 일이자 또한 즐거움이었다.


그의 타고난 통찰력과 결단을 앞세워 이 게임은 지금껏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국가의 질서를 바로세우고, 불행의 싹을 과감히 잘라내었다. 모두가 두려움 없이 안심하며 잠들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만민과 그 개인의 목표였다.


징벌과 보상에 차등을 두지 않았고, 때론 엄격히 때론 자비롭게 사람을 다뤘으며, 빈자와 약자를 보호했다. 모든 백성이 그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하지만, 가끔씩은—이를테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약간의 어긋남만으로 연쇄되는 비틀림이 커다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인간의 통찰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미지의 영역은 예측할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초면이자 알려진 바가 없던 사라와 하온의 잠재력이 그러했고, 눈 앞의 이 자도 그랬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뤄 그동안 가려져있었던, 용운의 공허하던 내면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던게 문제였다.


나라님은 그가 안타까웠다.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대장군의 내면에 있는 연약한 순수성을 그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님이 이제껏 용운을 더욱 총애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마음에 그토록 걸리는 것이 있음에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더 나은 내일을 추구하는 그 모습이 퍽 아름다워뵌 것이다. 그저 제 말에 충성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의심 한번 하지 않는 평범한 충신과는 격이 달랐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나라님은 그 생각을 재고해봐야 했다. 대체 무엇이 그를 이리도 타락시켰는지 몰라도(그래, 분명한 타락이었다), 그 순수성이 이런 커다란 결함으로 발현되는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이럴바엔 차라리 맹목적인 광신도가 백번 더 낫다.


왜 그가 이 고생을 하고있는가. 온갖 귀족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혁을 하고, 무수한 왕의 암살위협을 이겨내며, 돌가죽과의 전쟁에서 그들의 완전한 말살을 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깜깜한 암흑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모두가 안심하고 잠드는 밤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단 하나의 불안요소도 남겨두어선 안되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공포의 가장 큰 근원이다.


그래서 용운을 보낸 것이다. 그라면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그리고 분명 해낼 것이라는 신용이 있었으니까.


그는 나라님을 배신했다. 제멋대로 심신의 나약함에 휘말려 일을 그르쳤다. 그것도 대장군이라는 중책을 짊어진 자가 말이다. 미워질 정도로 지독한 배신이었다. 왕좌 위가 아니었다면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라님은 그런 마음 속 울분과 배신감은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 되려 표정에는 여유가 넘치고 늘 그랬듯 근엄하다.


고개를 숙인 용운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의 두려움도 엿보이지 않고, 무슨 벌이든 달개 받겠다는듯 순종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이제와서 이런 모습을 보인들 나라님에겐 가증스런 위선으로 보일 뿐이다.


“내 명령을 수행하기는 커녕 반역자의 행위를 옹호했으며, 그들의 탈출을 방조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는 단순한 임무 실패가 아니다. 부하들에게 거짓된 정보를 줘 다른 곳을 수색시켰다는 점에서 그대의 의도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변명할 말이 있는가?”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심지어 그 일탈로 인해 발생한 크나큰 손실을 생각하면, 자네를 당장 감옥에 처넣어야 마땅하다! 반박할 말이 있는가!”


“...반박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 끝도없이 무거워지는 짙고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서, 용운이 곧 다가올 처벌을 예상하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을 때.


정말 의외로, 나라님은 죄인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주겠다는듯 쓴웃음을 살짝 띄웠다. 그러고는 훨씬 누그러진 투로 그를 달래는 것처럼 조곤조곤 말한다.


비록 이런 사고를 쳤다곤 해도 용운은 여전히 훌륭한 인재다. 그를 적이나 버리는 패로 여길 생각은 없었다.


“걱정 말게. 그대와 같은 인재를 감옥에서 썩힐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네. 잠깐의 근신만 치르면 다시 복직할 수 있을게야. 짐이 직접 뒷수습을 해둘터이니, 이후 출세에는 영향이 없을걸세.”


물론 여기엔 거짓이 섞여있다. 나라님은 더이상 그를 자신의 후계자감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분명 유능한 자이고, 꽤나 높은 직책까지 올라올테지만, 그 이상은 허가하지 않을 것이다.


용운이란 인재가 완벽함에서 고꾸라져 일을 그르칠 수 있는 변수가 되어버린 이상, 그는 어디까지나 쓸만한 체스말일 뿐. 나라님에게 있어 최고의 기물이 되어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후 용운이 대꾸한 말, 그 대답은 나라님의 예상마저도 훌쩍 뛰어넘는 변수였다.


“아니요. 벌을 받겠습니다.”


나라님은 제 귀를 의심했다. 벌을 받겠다고 한다. 벌을 받는다니?


“국가의 벌을 받는다는 것은 그 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커다란 흠결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 자네의 출세길도 그대로 꽉 막히는 것과 다름이 없네. 못들은 걸로 하지.”


순전히 용운을 위해 나라님은 자비를 베풀었다. 이런 헛소리를 들어야할 이유는 없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 한들 여기에 꼬투리를 잡고 정말 실형을 내릴 정도로 그는 냉혈한은 아니었다.


“똑같은 불복종을 저질렀음에도 저만이 처벌 없이 끝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올바른 재판에 따라 벌을 주십시오.”


나라님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해서 얼굴을 들여다봤지만 역시나 평온하다. 결코 홧김에 내뱉은 생각없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용운은 늘 그랬듯 지극히 진지하다는 점이 나라님을 더 경악시켰다.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없어도 상관 없다는 겐가?”


“...”


“자네··· 언제 그렇게나 변한겐가?”


변했다.


무언가가 그의 가치관을 뿌리채 뒤흔들어 인간의 구성요소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리고 용운이 이제 그의 게임판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린 이상, 그는 더이상 쓸만한 체스말로도 써먹을 수가 없었다.


“...바라는 대로, 벌을 주지.”


나라님은 자신의 안에 있던 용운을 향한 기대감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더는 얼굴도 보고싶지 않다. 이제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 자를 유치장으로 끌고가라! 곧 처벌을 위한 재판이 있을 것이다!”


용운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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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127_파장(1) +5 20.10.05 60 4 10쪽
126 Episode126_시험기동 +2 20.10.02 53 5 10쪽
125 Episode125_더 깊은 내부에서(14) +2 20.10.01 66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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