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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12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09.02 00:06
조회
65
추천
6
글자
11쪽

Episode112_더 깊은 내부에서(1)

DUMMY

눈부신 빛이 사방에 뻗어나간다. 그토록 희고 밝은 빛에 모두의 시야가 끝없이 검게 암전된 것은 역설적이기도 했다.


무수한 이들의 눈이 빛을 잃은 가운데, 유일하게 멀쩡했던 것은 눈을 감고있던 사라와 하온 뿐이었다.


반역자들은 눈을 떴다. 단단히 감고 있었음에도 섬광이 눈꺼풀을 뚫고 새빨갛게 빛난 탓에, 다시 보이기 시작한 주변은 이전보다 훨씬 어둡고 불안정해보였다.


섬광이 직격한 암살단들은 안구의 빛 수용체가 모조리 활성화됨에 따라 시각이 정지되었다. 그저 직전의 영상이 잔상으로 남은 채 다른 모든 정보를 거부한다.


갑작스런 실명현상은 그들의 균형감각을 앗아갔고, 어지럼증을 느끼며 적은 날아오는 반격에 대한 대처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사라는 창을 봉처럼 돌려잡고 자신의 사정거리 내에 있는 암살단원 몇 명을 그 자루로 후려쳤다. 순서대로 목, 허리, 다리, 명치가 가격당한 그들은


허락되는 공격은 여기까지. 다른 이들은 일단 제쳐두고, 하온의 즉석 섬광탄의 효과가 다하기 전에 사라는 재빨리 눈 앞의 문짝을 향했다.


연구소까지 남은 거리 0 미터, 사라는 창을 휘둘렀다.


그와 함께 건물에 붙어있던 문이 큰 충격을 받고 뒤로 물러났다. 이 역시 황금시대의 기술력으로 만든 단단한 문이었지만, 벽을 부수는 것보다 벽을 고정한 고정쇠만 파괴하는 것이 훨씬 쉬움은 자명한 이치.


자물쇠가 쪼개져선 나가떨어지니, 막혀있던 입구가 활짝 열려 반역자들을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렇게 하온과 사라는 마지막 문턱을 지났다.


문 안에 들어오자마자 하온은 곧장 이를 도로 닫고 조각난 부품을 갖다대더니 치유의 기적을 발동했다. 부러져 덜렁거리던 걸쇠며 자물쇠가 도로 원상태로 돌아가 고쳐졌고, 이제 본래의 목적대로 외부로부터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나 길게는 버텨주지 못할 터. 한시바삐 목표물을 탈취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하온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건물 내부의 모습에 그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고 말았다.


“...이게 뭐야?”


그 내부는 사라와 하온이 예측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네모낳고 규칙적인 방 구조와는 차원이 달랐다.


여러개로 쪼개져 문도 벽도 구멍도 제멋대로 나있는 기이한 구조. 어찌나 정교하게 혼란스러운지, 이토록 흥미로운 미궁은 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이곳··· 이 연구소 안 전체가 마치 미로와도 같이 얼기설기 얽혀져 있었다.



***



“또 아니네...”


이번에도 헛발질이었다. 하온은 사라를 데리고 이곳저곳 문을 드나들며 무한동력장치가 있는 곳을 찾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도 아까 왔던 길과 이어지거나 같은 곳을 빙빙 돌게 하는 등 그들을 어지럽혔다. 처음 들어온 이들을 곯려주는데 아주 제격인 건물이었다.


연구소 안의 개발자나 연구원은 모두 무사히 피난에 성공했는지, 사람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 텅 빈 건물. 하온은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없어 막막했다. 물어본다고 대답해줄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 덕분에 암살단도 길을 찾기는 힘드리라 예상되어 추격의 위험에서 한시름 놓은 건 다행이나, 그 이전에 하온이 장치를 찾아내지 못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짱 도루묵 아닌가.


이전에 심문했던 암살단원—게스의 말로는 무한동력장치가 있는 곳은 건물의 정확한 중심부라는데, 이래서야 정보가 있건 없건 찾기는 글러보인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중심이 어딘지 알아낼리 만무하다.


게다가 아까부터 사라의 상태까지 이상하다. 아무런 말이 없고 뭘 생각하는지 몰라도 멍하니 정신을 못차린다. 손을 잡고 이끌며 가고는 있으나 꼭 시체가 움직이는 마냥 제 주관이 하나도 없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뒤를 돌아봤다. 사라의 얼굴이 완전히 얼이 빠진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요 모양이라니, 사라가 그정도로 긴장 없는 성격이 아닐텐데. 이상하게 여긴 하온이 그녀의 몸을 몇차례 흔들었다.


그러자 사라가 문득 정신을 차린듯 시선을 돌려 하온을 빤히 바라본다. 여전히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상태라 하온이 의혹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혼자 뭘 중얼댄다.


사라가 팔을 들어 제 손에 들린 막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은창이 접혀져 줄어든 상태인 그 막대를 잠시 응시하더니 갑자기 도로 펼쳐 길고 날카로운 서슬을 뻗어냈다. 하온은 깜짝 놀라 순간 그녀의 손을 놓았다.


“......”


“왜··· 왜그래, 사라. 머리가 어지러워?”


사라는 대답 대신 팔을 앞으로 들어 창을 눈 앞에 겨눴다. 하온은 잠시 자신을 향해 겨눈 줄 알고 세뇌 계열 기적에라도 당한건가 싶어 식겁했다. 그러건 말건 이제 사라는 그 창끝을 이리저리 횡으로 옮겨가며 뭔가의 방향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계속 오른쪽으로 옮겨가던 창끝이 순간 멈췄다. 사라는 뭔갈 깨달은 듯 숨을 멈추더니 하온을 제치고 선두에 선다. 그리고 그의 손목을 잡아채고 앞으로 이끄는 것 아닌가.


어리둥절한 하온이 뭐라 할 말도 찾지 못한 채 끌려가는 동안, 사라는 앞이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하며 첫번째 문을 통과했다. 그 후 오른쪽으로 네번 돌아 길을 지나니 아까와 반대편 방향을 향하게 되었고, 그녀는 만족스럽게 직진했다.


하온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반면 사라는 알 수 있었다. 아니, 사라가 아는 게 아니다. 그녀는 다만 간접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그 대략적인 감 만으로도 그녀의 앞길은 인도되었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내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창을 높이 치켜들은 사라의 인도에 따라, 반역자 일행은 연구소 구석구석을 지나며 목표를 향해 걸어갔다. 그동안 하온은 이 기기묘묘한 건물 내부를 보며 경악과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저 어지러이 꼬여진 미궁형 방은 양반이었다. 어떤 방은 한쪽 벽면 전체가 돌아가며 새로운 출구를 만들었다. 다음 장소에선 계단을 내려갔는데, 분명 내려갔다고 생각했음에도 이후 계단을 벗어난 뒤의 그들의 위치는 이전보다 높았다.


회전문같이 생긴 것을 세바퀴 도니 반대편에 없던 출입구가 생겨나기도 했고, 어느 방에서는 중력은 분명 밑으로 작용하는데도 벽면에 서서 가로로 걸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제껏 그들이 걷고 돌아다닌 거리와 위치를 떠올려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건물의 내부는 바깥에서 본 것보다 더욱 크고 광대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솔직히 길을 찾아 지나가는 사라마저도 연구소의 이런 모습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라라고 해서 이 곳의 내부구조를 알고 길을 찾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하온은 사라에게 인도받고, 사라는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에게 인도받으며, 둘은 마침내 하나의 좁고 길다란 통로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라는 확신했다. 이곳이다. 이곳이 건물 안의 가장 깊은 중심부, 이 복도의 끝에 보이는 저것이 바로 그들이 찾던 것임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알 수 있었을까? 사라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생각을 읽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의 생각을? 글쎄,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아까 잠시 정신이 나갔을 때 무척이나 기괴한 형상이 보였던 듯도 한데...


“어? 저기에...”


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려던 사라의 의식이 하온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곧바로 깨졌다. 그는 복도의 반대편 끝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곳엔 강철로 만들어진 문이 하나 있다. 분명 그 안에 들어서면 그들이 찾아 마지않던 무한동력장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에 사라는 감격에 겨워 벅찬 감정을 느꼈고, 하온의 중얼거림도 그로 인해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 조금만 더 그 부근을 관찰하자, 그것이 착각임을 금방 깨달았다.


문 앞에는 벽에 몸을 기대고 조용히 기다리는 자가 하나 있다. 기다리는 대상은 당연히 반역자들. 이 희열에 가득 찬 남자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마치 영겁의 세월을 기다린듯 하온과 사라를 반겼다.


가뜩이나 어두운 조명에 얼굴은 긴 앞머리에 가리다시피 해서, 처음에는 누구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잡으러 암살단원이 하나 미리 기다렸구나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잠시 후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어떠한 기시감, 미묘한 익숙함은 반역자들을 의문에 빠지게 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모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정체를 알아본 순간, 반역자들은 놀랐다. 정체를 알아봐서가 아니다. 여지껏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에 놀란 것이다.


남자의 이름은 게스, 이전에 그들이 함정을 파서 사로잡았던, 그리고 거짓 심문으로 정보를 얻어낸 말하자면 반역자들이 연구소에 도달하게 해준 일등공신.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볼은 움푹 페이고 눈은 퀭하나 한가득 미움을 품은데다, 몸 구석구석에 끔찍할 정도의 흉이 한가득 더해져있다.


표정에 생기란 없고 몸짓은 지나치게 기계적이어서 섬뜩할 지경. 내보이는 입엔 이빨이 아닌 억지로 덧댄 철조각이 대신 들어서있다.


이 끔찍한 몰골은 무엇인가. 그들이 게스를 기절시켜 심문할 적에도 이런 시체꼴은 아니었다. 하온과 사라가 알리는 없었지만, 그들이 떠난 이후 게스는 쏟아지는 400번의 구타와 함께 암살단 대장 주윤에게 사형선고를 받았음을 우리는 안다.


그 날 이래 게스는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주윤은 반역자들이 죽는 날이 그가 죽는 날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 때까지 남은 목숨을 적들을 향해 불태우라며 말이다.


그래서 죽을만큼 수련하고, 단련하고, 훈련했다. 그 어떤 위험한 방식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찌나 몸에 부담이 가던지 수명이 깎일 정도로 근시안적이고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반역자들을 제 손으로 족쳐, 마침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을 자격을 얻기 위함이었다. 게스는 그것만을 위해 제 목숨도 미래도 다 내팽개칠 수 있는 국가의 광신도였고, 그렇기에 암살단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오직 지금만큼은 게스는 결코 신입 수준이라 볼 수 없다. 일순간 몸을 태우고 밝게 빛났다가 이내 사그라들어 소멸하는 섬광처럼, 그는 이 짧은 순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이런 젊은 나이의 청년이, 마치 세상풍파 다 겪으며 극도로 힘을 쌓아올린 베테랑과 같은 칼날을 가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사라에게 패배한 이래의 짧은 기간동안 이뤄졌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믿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불행한 자의 최후를 잘 보아라.


바로 지금이 필시 일생에서 가장 강한 순간일, 섬광같이 아름답고도 어리석게 반짝이는 남자를.


작가의말

반가운 얼굴이 총출동하는 이번 에피소드.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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