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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54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09.24 23:51
조회
55
추천
4
글자
9쪽

Episode122_더 깊은 내부에서(11)

DUMMY

사라는 지금 꿈 속에 있다.


...아니, 꿈은 아니었다. 꿈일지도 모르지만, 아닐 가능성도 커보인다. 뭣보다 이상하게 낮익고 야릇한 공간이다.


혼란스런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의 모든 것이 꽤나 명확히 보인다. 그 경계면도 뚜렷하고 실제로 만질 수도 있는걸 보면 실존하는 공간이란 설에 더 무게가 쏠렸다.


다만 그 사물 하나하나의 생김새는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기하학적인 것과 생물적인 것이 뒤섞여 뭔지도 모를 모양을 형성한 것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가끔은 꿈틀거리기까지 해서 방심하던 사라를 깜짝 놀래켜주기도 했다.


그래, 사실 이런 것도 다 양반이었다. 지금 사라의 눈에는 그보다도 더 이상하고 현실감 없는 생김새의 것들이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 그건 심지어 살아있기까지 했다.


수십? 수백? 수만? 어째선지 전혀 감이 안잡히는 숫자의 이 생물들은 정말, 뭐랄까··· 대충 생겼다. 꼭 남는 찰흙이 제멋대로 붙어 생긴 불의의 결과물처럼, 일관된 것 하나 없이 모두 이것저것 잡탕이 되어 기괴한 혼합물의 형상을 띈다.


누군가는 검은색 몸체에 군데군데 어울리지 않게 털이 나있었고, 입은 세 개에 다리인지 팔인지가 애매한 위치에 여럿 달렸으며, 단단하고 부드러운 부위가 이곳저곳 혼합되어 있었다.


다른 누군가는 좁살만한 눈이 가운데 딱 하나 박혀있고 그 주변에 뭉툭한 이빨이 장식처럼 둘러싸있으며, 하부에는 수십개의 발이 달려있는데 그 각각의 발가락에 또 손바닥이 달려서 몸을 지탱하고 있다.


이렇듯 하나같이 제각각 다 다르게 생겼으면서도, 저마다 불규칙성이라는 규칙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이 동족이라는 사실은 유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라는 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아무렴, 만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데다 그토록 강렬한 첫인상을 받았는데. 기억 못할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을 모른다는 투로 말을 걸었을 때,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넌 누구냐?”


“무슨 소리야··· 어젠가 그제에도 한번 만났었잖아? 내가 잠들어있을때. 그러고보니 지금도 내가 잠들어있던가?”


“우리가 널 만난 적이 있다고?”


“그래, 내 꿈에 나왔잖아! 나보고 피를 묻혔다느니 밉다느니 막 몰아붙이곤 아무 설명도 안해주고 내보냈지? 맞아, 그리고 아까 연구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때 잠깐 정신이 나갔을 때도 너희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어! 무한동력장치가 어느 쪽에 있는지 알려준 게 너희들이구나?”


흥분하여 말을 내뱉던 사라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또 물었다.


“가만. 근데 너흰 실존하기는 하는거야? 아니면 나는 지금 꿈에서 나오는 환영을 보고 넋두릴 하는건가?”


그 생물체들은 대답을 하려는지 괴한 소리—소리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를 내더니, 곧 아까보단 그나마 호의적인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특이하게도 그 많은 수의 동족 중에서 대답을 한 것은 서너마리였는데, 전부 동시에 말이 겹치며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 아하, 그래. 그렇군. 이제야 알겠다. 그 시끄럽고 귀찮던 꼬마녀석이었군. 이전과는 너무 다르게 보여서 말이야.”


사라는 이전에도 지금에도 똑같이 빨간머리 처녀인데 뭐가 그리 달라졌다는 건지. 좀 부루퉁하여 그 괴물들을 쳐다보다가 곧 깨달았다.


그녀 역시 저들이 다르게 보였다. 정확히는 못알아볼 정도로 다르진 않았지만, 분명히 큰 차이가 있었다. 이전에는 이 공간도 저 생물체도 전부 뿌옇고 흐리멍텅해 뵈었는데, 지금은 매우 명확하고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고 보니 그 땐 이런 생명체가 기껏해야 둘 정도만 제대로 보였는데, 지금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은 수가 늘어나 커다란 군체를 이루고 있다.


“...너희는 누구지?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뭘 물어보려 해도 호칭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는 걸 깨달은 사라는, 다른 모든 질문은 우선 제쳐두고 그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를 먼저 물었다. 암만 그래도 보이는대로 잡탕 괴물이라 부르기엔 좀 심하게 실례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야 이전에는 마귀라 불렸고 이후에는 이름을 잃은 불쌍한 생명체지. 전부 너희 인간들 탓에 말이야.”


생물체—지금부턴 그들 말에 따라 마귀라고 부르겠다—들은 그녀의 의문에 꽤나 짖궂게 대답했는데, 이전과 같이 밑도끝도 없는 구박은 아닌 것 같았다. 이번 대답엔 아까와는 다른 개체 서너마리가 나섰는데, 역시나 전부 동시에 똑같은 말을 겹쳐서 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땐 뭔 말을 하려 해도 화내고 되게 날서있더니, 오늘은 생각보다 대화가 통하는 것 같네요. 어··· 마귀씨?”


“이전에 우리가 뭘 했는지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그 때와 지금의 우리는 상당히 다르단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아까의 접촉에 의해 우리는 모두 만년의 기다림에서 완전히 깨어나버렸으니까.”


마귀들은 사라의 다소 격식을 놓은 문장에도 여전히 이전과 같은 톤의 대답을 유지했고, 이는 사라에게 꽤 희망적인 징조였다. 최소한 저번처럼 맥없이 내쫒진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으흠, 저··· 그럼 이제 말해주시지 않을래요? 우선 여기는 어디고—꿈은 아닐 것 아니에요? 그쵸?—나한테 길 안내는 어떻게 해준건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서 인간을 그리 미워하는지 같은거요. 참. 근데 내가 어쩌다가 여기에 왔죠? 저번엔 자다가 온 것 같은데, 이번에는...”


우선 뒤늦게서라도 조금 더 공손한 태도의 존댓말을 갖춘 사라는 그동안 밀린 질문들을 한번에 쏟아부었다. 저번에 꿈에서 만난 이래 영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서 생각해둔 말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귀들은 그저 말투가 더 점잖아졌을 뿐,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지난번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허튼 생각은 마라. 너희가 밉다는 것은 변하지 않아.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도 전부 네놈들의 탓이고, 영원한 고통에 빠트린 것도 너희 인간이 한 짓이다. 그런 우리가 왜 인간만 좋을 일을 해야하지? 네놈들에게 도움 될 일은 절대로 하고싶지 않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사라의 말을 끊으며 제 본위의 말만을 내세웠고, 어차피 그정도는 예상한 사라 역시 곧바로 존댓말 따위는 그만두고 혀를 찼다.


“에이, 칫. 그럼 딱 하나만 물어볼테니까 대답해주라.”


이제 예의고 뭐고 신경쓸 필요도 없고, 어차피 대답도 안해줄 걸 알지만서도 그냥 막 내질러보는 것이다. 혹시나 알아? 내 놀라운 깡과 자신감에 감명받아 좀 더 진지하게 대답해줄지.


“아까 날 목적지까지 인도할 때도 그렇고, 무한동력장치를 부수려니까 갑자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도 그렇고, 도대체 그 무한동력 장치란게...”


그런데 문득 그런 말이 제 입에서 나오자, 사라는 그 뒤에 하려던 말은 하얗게 잊어버렸다. 내가 지금 뭐라고 말했지? 충격을 받아 기절했다고?


“잠깐. 내가 기절한 상태였나? 어디서···?”


그 무언가를 자각한 순간, 사라의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공중의 대기가 떨리며 천장은 요란스럽게 모습을 바꾼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꿰뚫는다. 아주 미약하면서도 동시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소리가 온 몸을 진동시킨다.


되려 그렇기에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먹지를 못한 사라는 잔뜩 눈을 찌푸린 채 뇌 속에서 그 괴음을 분석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뭐라고?”


그러나 한가지 명확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들려온 말이 아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레 온 몸이 쑤시고 특히 다리 관절이 고통을 호소했으며, 머리는 점점 아파진다. 하지만 이는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과는 사뭇 다르다.


그보다는 마치 타인의 아픈 마음에 내 마음이 동조하듯이, 누군가의 아픈 몸에 내 몸도 동조하는 느낌이라 할까. 그 아프다는 감정이 사라의 심장을 멋대로 침범하여 물밀듯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할 수록 거세지는 소리. 사라는 이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주체가 느끼는 고통과 간절함, 그 애타는 감정은 너무나 선명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이게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구별할 수 있었다.


“하온···?”


그와 동시에 마귀들의 눈동자도 꿈틀댔다.


작가의말

깨어나세요 용사여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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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Episode125_더 깊은 내부에서(14) +2 20.10.01 66 5 11쪽
124 Episode124_더 깊은 내부에서(13) +2 20.09.27 62 4 12쪽
123 Episode123_더 깊은 내부에서(12) +2 20.09.25 56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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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Episode121_더 깊은 내부에서(10) +2 20.09.23 60 4 7쪽
120 Episode120_더 깊은 내부에서(9) +3 20.09.20 56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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