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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57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09.12 07:05
조회
58
추천
5
글자
9쪽

Episode117_더 깊은 내부에서(6)

DUMMY

이대로라면 버틴다! 똑같은 생각이 게스의 머리에도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망설임 없이 발을 옮겼다. 물론 게스가 하온이 계획하고 있는 반격을 알아챘을리는 만무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너절하고 쓸데없는 사투에 긴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거리로 따지자면 고작 몇 걸음.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사라에게 다가가는데는 정말 짧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직후 게스가 한 행동에도 지극히 짧은 시간이 소요된다.


간단히 표현해, 게스는 사라에게 몇 걸음 걸어간 뒤 곧바로 복부에 발차기를 한방 강하게 날렸다. 온 힘과 무게를 다 실어 후린 일격에 사라의 내장이 강한 압박을 받았고, 반사적으로 그녀는 턱에 온통 집중했던 의식을 잠시 놓고 말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창은 그녀의 억압을 벗어나 도로 해방되었다. 어이없을 정도로 쉽고 신속하게 되찾은 자유, 아까까지 그리도 닫고자 했던 사라의 입이 떡 벌어져 이 막막한 상황에 대한 감정을 대변했다.


그리고 돌진하는 창, 이번에야말로 사라는 더 피할곳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창은 다시 작은 막대기로 쪼그라들고, 사라는 몸을 움직인다.


쥐고있던 두 검으로부터 손을 놓는다. 이래서야 미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나마 가뿐해진 몸을 힘껏 틀어 다가오는 습격을 피하려 시도했다.


다른 한 편에선 또다른 육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죽은 체 하고있던, 그리고 실제로 절반은 죽어있었던 하온의 몸이 다급한 자가 응급처치를 통해 도로 활기를 되찾았다.


곧장 다리를 튕겨 게스를 향해 뛰었다. 망할, 사라가 당하기 전에 해치워야 했는데! 한 시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급히 적을 저지하기 위해, 하온은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끽해야 몇 미터, 그러나 아직까지도 상처가 헐겁게 이어져있는 하온의 몸으로는 큰 부담이 가는 거리다. 너덜거리는 신체가 다시 찢어지는 감각을 쓰게 맛보며, 팔을 뻗어 저 암살단원에게 가져다댔다.


게스가 하온의 움직임을 감지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장 뒤를 돌아보며 주먹을 쥐었다. 바퀴벌레같은 놈이라며 욕지거리를 퍼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주의를 돌렸다고 해서 사라를 향한 공격에 빈틈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창은 여전히 곧게 날아가며 그녀를 노리고 있다.


하온 역시 주먹을 쥐었다. 그것이 점차 가까워진다. 게스에게 가까워진다. 주먹 안에 쥔 것은, 아까 적을 공격한 뒤 부러져버렸던 화살대. 남은 거리 10센티. 5센티.


그러나 하온의 바램이 닿기 직전, 바라지 않던 것은 사라의 몸에 닿았다. 본래 사라의 것이었던 은막대는 이제 그녀를 노리는 적의 수족이 되어 사라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피가 터지고 몸에 구멍이 뚫려, 사라의 의식이 흐려진다. 가뜩이나 만신창이인 몸을 이끌고 버텨온 것이 그 한방으로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다리도 무너지고, 눈이 풀린다. 사라는 이내 의식을 잃고 쓰러져간다.


그 직후에야, 한발 늦은 하온의 반격이 마침내 도달한다. 아까 전 화살촉이 꿰뚫고 선명히 남은 게스의 상처에 하온이 주먹을 뻗는다. 그 안에 쥐인 화살대가 상처에 꽃힌다. 동시에 치유의 기적이 발동한다.


당연히, 게스를 치유해준다는 멍청이 짓을 하려는 게 아니다. 치유의 기적이 복구시키는 것은 바로 반으로 부러졌던 화살조각. 하나는 하온이 들고있는 화살대요, 다른 하나는 게스의 상처 안에 박혀있던 화살촉이다.


하온의 주먹과 게스의 상처가 맞닿으면서, 쪼개졌던 둘도 다시금 가까워진다. 그 순간 치유의 기적이 촉과 대를 다시 이어 하나로 만드니, 이제 그것은 게스의 몸에 박혀있던 채로 온전한 화살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렇게 결합된 화살을, 하온은 온 힘을 다해 힘껏 밀어냈다. 게스의 허리에 꽂힌 화살이 그대로 움직이며 내장을 헤집고 비틀어놓는다.


배가 갈라지며 피를 내뿜고 막대한 고통을 온 몸에 전달한다. 게스는 예기치 못한 적의 허를 찌른 공격에 무지막지한 피해를 입고 말았던 것이다.


옆구리를 가른 화살이 살과 근육을 뚫고 빠져나왔다. 화살이 빠져나오며 찢어놓은 커다란 틈에서 혈액이 고압으로 분출되며 비명을 지르듯 퍼져나갔다.


하지만 하온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은 행동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을 뿐더러, 게스가 그렇게 놔두지도 않았다. 안그래도 방금 게스가 하온의 안면에 팔꿈치를 휘둘러 정타를 날린 덕분에, 하온은 안면이 함몰된 채로 다시 의식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 무수한 일들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바람에,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끝나자 복도는 곧장 상대적인 정적에 휩싸였다.


처음 정적을 깬 것은 사라가 마저 쓰러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고, 그 직후에 하온의 비실대는 몸뚱이가 땅에 구르는 소리가 뒤이어 울렸다. 두 반역자가 마침내 바닥에 납작히 누워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완전히, 쓰러져버렸다. 게스는 그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피를 철철 흘려대는 복부의 상처를 움켜쥔 채 그는 생각했다. 이겼다. 이겼다고?


그래, 그는 복수를 완성했다! 게스가 해낸 것이다! 비록 거센 출혈로 머리는 어지럽고, 극단적인 훈련에 이은 전투로 손발은 덜덜 떨리지만,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게스는 승리했다.


승리···! 이전과는 다르다. 이겼다···! 정신을 못차릴 정도의 환희에 가득 차올라, 게스는 천천히 적에게 다가갔다. 이제 완전히 끝장을 낼 심산이다. 바보같이 다 죽어가는 적을 내버려둬서 괜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줄 생각은 없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한쪽 팔로 감싸쥐었다. 칼을 조종하려 했으나, 세상이 뒤집힌듯이 눈이 돌아가서 적에게 똑바로 걸어가는 것도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기적이고 뭐고 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뇌가 깨질듯이 아프면서도, 이상하게 고통이 옅은 미묘한 느낌. 그런데도 토가 나올듯이 속이 울렁거려서, 어쩔 수 없이 그는 하온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뒤 한쪽 발을 들었다. 이대로 얼굴을 밟아 뭉개줄테다.


그런데 한쪽 다리를 높이 들자마자, 균형감각을 잃은 게스의 몸이 기우뚱거리며 쓰러졌다. 그 뿐만 아니라, 게스가 쓰러진 곳은 하온과는 방향도 거리도 꽤나 다른 곳이었다. 그에게 향하는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버린 것이었다.


일어서려 하자 몰려오는 구역질과 머리가 쪼개질듯한 어지러움, 복부에서 쏟아져나오는 피와 짙게 덩어리진 고통들.


그제서야 게스는 자신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아챘다.


인간의 몸이 갑작스럽게 크고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무척이나 자주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 있다. 특히 그와 같이 복부와 내장이 째이는 심각한 부상이면 더욱 그렇다.


갑작스레 다량의 피를 잃은 인간의 몸은 체액이 부족해지면서 장기로 보급되는 혈류가 부족해지게 된다. 이를 저체액성 쇼크라고 한다. 지나친 고통에 의해 신경전달체계가 교란되어 혈압이 극도로 낮아질 때도 있다. 이를 신경성 쇼크라고 한다.


과연 게스가 그런 전문적 용어까지 떠올리며 알아챘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명확한 사실 하나는 알고있다.


갑작스런 치명상과 출혈, 고통은··· 인간의 몸에 강렬한 충격을 주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실신, 기절에, 최악의 경우 사망...


그러나 게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식이 가느다란 빛을 잃기 전에, 무시무시한 집념으로, 마침내 두 발을 딛고 일어선 것이다. 그래, 아직은 안된다. 저들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 복수를 완성하기 전까진, 나는 절대 죽을 수가 없다!


죽을 수가 없다, 내가 죽기 위해선, 죽기 위해선...


...그리고 그것이 게스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달성한 위업이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반역자 위에서, 우뚝 서서 그들을 내려다본 것을 끝으로, 게스의 몸은 급작스런 쇼크를 이겨내지 못하고 잠시 의식을 잃어 땅바닥에 풀썩 무너져내린 것이다.


그렇게 세 명의 몸뚱아리가 바닥에 쓰러져있다. 주검과도 같이 사이좋게 누워서는, 벽돌 위로 아까운 혈액을 졸졸졸 흘려대고 있다.


침묵 속에서 시간은 흘러간다. 누구 한명 눈을 뜰 기미 없이 얌전하게 쓰러져있으니, 이 피투성이 복도의 처절한 사투는 그 끝장에 와서 아이러니한 평화를 맞이해버린 것이다.


작가의말

째깍... 째깍...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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