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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98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0.10.15 03:39
조회
53
추천
5
글자
10쪽

Episode130_이런 정신나간 것을 보았나(2)

DUMMY

수나가 묻는다.


“왜 그딴 짓을 한거야?”


그딴 짓이란 그날 용운의 행동을 말한 것이다. 제 발로 면책특권을 차날리고 그대로 감옥으로 처박히길 자청한, 어찌보면 만행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어리석음의 이유를 묻는다.


수나는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면허가 허가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조차 좀쑤셔 그녀 나름대로 조사를 해본 결과, 그날 나라님과 함께 있던 극히 일부의 신하들 간에 암암리로 돌던 소문을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서 왔군. 그 시뻘건 얼굴을 볼때부터 알아봤지.”


“대답이나 해라. 왜 그런거야?”


때문에 괜한 인사에 허비될 일분 일초도 아까워진 수나가 용운의 말을 끊고 재촉한다. 그녀는 알아야만 했다. 대체 왜, 하필 용운이라는 인간이 그런 어리석은 판단을 내렸는지.


용운은 철장 앞에 털썩 주저앉더니, 손으로 턱을 괴고는 잠깐 생각하다가 금세 답을 내렸다.


“나도 몰라.”


수나는 입술을 깨물고 자신도 똑같이 바닥에 앉아 그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용운도 별 수 없이 말을 이어간다.


“ ···하지만 그 때는 정말 이러고 싶었어.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는게 정의롭다고 믿었는데, 정작 정의를 위해 벌을 째자니 이번엔 이상하게 속이 뒤틀리더군.”


그러나 이는 혹여 무슨 깊은 뜻이 있나 고민한 것과 달리 너무나도 일차원적이고 실망스러운 대답이어서, 이제 수나까지 팔을 괴고는 삐죽 튀어나온 입으로 그에 대꾸한다.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네가 지금껏 살아온게 그런 삶이었잖아. 그깟 걸 이유로 면책될 수 있는 형벌을 굳이 받았다는건 헛소리밖에 더 돼?”


용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슨 비난이든 다 감내하겠다는 쓴웃음 띤 무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이제 참아주는 것도 여기까지, 수나도 지쳤다. 화를 참는 것에 지쳤다는 것이다. 턱을 괸 손을 얼굴에 가져다대고 부여잡다가, 이내 주먹 꽉 쥐고 더 못들어주겠다는 듯 번쩍 일어나 용운을 마구 다그쳤다.


“뭐? 정의? 까고있네! 망할, 내가 이런 소리까지 해야겠어? 내가 널 내심 존경했던 건 말야! 네가 나와는 다르게 일찌감치 현실을 알아챘기 때문이었어! 이제 너도 솔직히 좀 말해봐라. 혹시 뭐 잠복근무라도 하고있는거냐? 정적을 속이기 위한 정치적 쇼라도 하는거 아냐?! 그게 사실이면 무지 멍청해보이는데!”


그 침튀기는 감정의 폭발을 전부 받아내고 나니 용운의 머리 위가 축축해진 것도 같지만, 기분탓이라고 단정하고 그녀에게 답해주기로 한다.


“어떤 반역자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배운거야.”


수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철창을 한번 더 쾅 치더니 잔뜩 당황한 얼굴을 들이밀고 다그쳤다. 목소리는 훨씬 낮춰졌지만, 열이 받은 말투는 아까보다도 더했다.


“내 말 취소다, 넌 그냥 멍청한 놈이야! 목소리 안 낮춰? 만일 빈말이라도 반역자를 옹호하는 요지의 언행이 알려졌다간, 이제 출셋길이 문제가 아니야!”


그러나 용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전과 똑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치 자신은 거리낄 게 없다는 그 표정이 수나의 속을 더욱 뒤틀리게 한다.


“...그들은 너무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있었어. 욕심이 많았지. 단 한번의 살생도 저지르지 않고 나라에 대항하더니, 그 이유란게 자신과 다른 종족인 돌가죽을 구하기 위해서라잖아. 근데 왠지 죽기엔 아까운 이들이라 느꼈어. 이대론 죽을게 뻔하니까 악을 써서 쫓아갔었지.”


“······.”


“그런데 정말 해내고 만거야. 그 포화 속을 뚫고 장치를 들고 도망친데다, 전쟁까지 막아 더 큰 희생을 막아냈지. 그래, 말 그대로··· 희생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그렇게까지 불가능한 일을 만들어냈어.”


용운은 뭐가 그리도 기쁜지, 이상하게도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감동? 아니면 실망, 체념. 누구에게, 그들에게? 스스로에게.


“···결국 내 약한 본성 탓이란 거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해냈듯이, 나도 원칙을 저버리지 않고 더 큰 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난 그걸 어떻게든 증명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에 내 발로 들어온거야.”


“그 증명이란게 꼭 이런 감옥에서 이뤄져야했나? 제 목을 남에게 맡긴채, 쇠사슬에 묶이는 것도 증명이라고 치던가?”


“난 지금 누구보다 자유로워. 내가 바라던대로 행동했는걸. 죄를 지은 자가 그에 맞는 벌을 받는 것만큼 이상적인 정의가 뭐가 있겠어? 이 나라는 대장군도 죄를 지으면 잡혀갈 수 있는 나라가 된 셈이지. 안그래?”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구별하기 힘든 괴상한 말에 수나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되도 않는 궤변이다.


이런 선례가 다른 대장군을 잡아넣게 해준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용운의 처벌이 면책되려던 이유는 그만한 공공의 이익이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그가 제 발로 감방에 기어들어가봤자 세상은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더 나아질 일은 없다.


수나는 혹시나 이어지는 말이 더 없을까 싶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그렇게 용운은 여전히 바보였고 그 멍청이로써의 결의 역시 굳건함을 알아챘다.


이제 수나도 도로 땅바닥에 앉았다. 둘의 눈높이가 다시 맞추어졌다. 그러나 같은 시점에서 서로의 눈을 맞춘들, 둘이 바라보는 방향은 각기 정반대였다.


이제 수나의 말투도 조용히 누그러졌다. 결코 화가 풀려서가 아니다. 포기해서다. 이제 그에게 남은 희망이 더는 없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군사학교 졸업식 날, 네가 말했잖아? 자신 혼자 살생을 멀리한들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채워질 뿐. 그렇게 될 바엔 자신이 죄를 짊어지고, 또한 그 자리에서 출세해 희생을 줄이는 데 노력할거라고. 그것이야말로 진정 살생을 줄일 수 있다고 네가 말 했잖아.”


과거를 늘어놓는 것은 감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녀의 설득이 마지막에 다다른 것은 결국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먹힐거란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는, 말 그대로 최후의 발악이다.


”그때의 너는 정말 이상적인 군인이였는데, 어쩌다가 지금은 이런 꼴이 된거냐?”


용운 역시 최후의 변론을 한다. 서로의 감성을 자극하는 어리던 때의 이야기. 둘이 함께 붙어다니며 열띠게 서로를 비난했던 그 시절의 둘의 모습을 다시금 입으로 옮긴다.


”그러는 너는 정반대 아니냐. 그 시절엔 진지하게 내 말을 반박하며, 네가 위에 올라가면 모든 부정부패를 끊어내고 원칙을 세우리라 자신하더니. 이제는 현실을 깨달았다며 비정하게 굴고있지. 예전에는 너야말로 군인답지 않게 낭만을 꿈꾸던 로맨티스트였잖아.”


수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 시절의 우리들이란! 군사학교를 다니던 내내 함께 친하게 지내면서도 정작 서로의 감성은 정반대라, 어쩌다 물과 기름을 한 병에 담았나 싶었다.


“맞아. 처음에는 몰랐어. 대놓고 전쟁판에 끼어든 주제에 살생이 싫다니, 위선자놈이라 느꼈지. 게다가 출세를 위해 아양떨며 윗놈에게 꼬리를 살랑대지 않나, 실망하기도 했었다. 나라면 정정당당히 싸워 정의를 쟁취하리라 생각했지.”


그 시절의 수나는 마치 옛 기사문학의 주인공과 같았다. 명예와 도의에 목숨을 바치고, 약자를 보호하며, 악인은 망설임 없이 쳐부순다. 그리고 정의를 향한 신념은 대쪽과 같아서 이를 방해하는 것은 설령 국가라도 맞서 싸워야만 하는, 그런 수나의 어릴적 모습은 분명 그 옛날의 이야기 속 돈키호테였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아무것도 잃지 않고 세상이 더 나아질리가 없어. 내가 낡은 명예를 붙들고 있어봤자 남는건 처량한 자기만족 뿐이고, 네가 값싼 동정심으로 죽임을 거부한들 살생은 변함없이 일어나지. 그래서 아부하고, 충성하고, 죽이고. 너나 나나 그걸 희생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돈키호테. 멍청하고 어리석고 우스운 돈키호테. 그런 자신을 자각하자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용운이 그 어릴적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짊어지고 희생했는지를.


“내가 널 존경한건 그래서야. 난 네 덕분에 변했던거라고. 그런데 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울컥하는 감정이 일어나 억제하기 위함이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감정이 덜 메말랐다면 눈물이라도 보였을런지.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 모습이지만 말이다.


“···너는.”


끓어오르는 화를 한숨과 함께 조용히 식혔다. 용운은 마치 그녀를 달래려는듯 낮게 깔린 목소리로 과거를 말한다. 그 역시 수나를 마지막으로 설득하려는 것이다.


“나도 지금 변한거야. 그 시절 너처럼.”


수나는 이에 슬쩍 웃었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는 뜻을 내포한 체념의 쓴웃음이다.


“퇴화로군!”


용운도 조금은 인정했다. 그러나 완전히 인정할 수는 없어, 굳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오답을 고른 아이가 실패를 인정 못하고 변명하듯이 말이다.


“보면 알겠지.”


수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 잠깐의 침묵이 지속되던 도중 갑자기 용운 바로 앞의 철창을 발로 쾅 찼다.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진 그를 내려다보며 콧방귀를 한번 뀐 그녀는, 잔뜩 화난 눈빛을 거둬들이고 감옥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간다.


“멀리 안나가요.”


뒤에서 들려오는 능청스런 용운의 작별에 수나도 화답한다. 이번엔 주머니에서도 꺼내지 않은 즉석 손가락욕을 그대로 들어 뒤쪽을 향해 발사한 것이다.


정말 웃길줄을 모르는 친구야. 용운은 마지막까지 생각했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늘 사랑합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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