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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79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2.21 17:51
조회
86
추천
6
글자
11쪽

Episode166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7)

DUMMY

울이 세번째 길을 넘어 피난간 그곳은, 국경을 넘고 열흘을 굶으며 겨우내 도달할 수 있었던 자그마한 오두막이었다.


오두막 주인인 아비의 따뜻한 환대 덕에 죽어가던 아기는 살아날 수 있었고, 참으로 다행히도 산골짜기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이곳이었기에 누군가 자신을 찾아내리란 염려도 덜했다.


밤에는 잠들지도 못했고, 음식을 씹어봤자 삼키지도 못해 게워내기 일쑤인 나날이었지만, 그것이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몇년간이었다.


아비는 좋은 친구였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렇게 만난 것이 그라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와 그가 만들어낸 신비한 발명품 내지 장난감을 보고있노라면, 마치 내게 임박한 죽음따위는 꿈에서나 본듯도 하면서 희미해지고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채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하온은 그런 가운데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몰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어미의 젖 한번 먹어보지 못했음에도 훌륭하게 몸집을 키워 제 발로 선 하온은 이제 연구소 한복판을 자유로이 뛰어다니고 있다.


왕실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활. 처음에는 귀족티 풀풀 내며 허둥대기 일쑤인 울이었지만 이제는 촌티가 몸에 배었다. 남은 밥을 긁어먹고 흙바닥에서 구르며 먼지를 들이마신다.


그러나 함께 들이마시는 공기는 분명히 맑고 자유로웠다. 울은 그렇게 생각하고 점차 현실에 순응해갔다.


세계가 무너지는 것은 자신이 알고있던 그 푸근한 분위기가 완전히 착각이었음을 알게되는 때이다. 외진 곳이라 유난히, 유난히 소식 하나가 늦게 그곳에 도달한 탓이다.


아비의 발명에 쓸 아교가 부족해, 별 생각 없이 아들을 데리고 심부름을 갔다. 마을에 도착한 뒤 눈에 비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심장이 철렁했다. 믿지 못할 정도로 놀라서, 공포에 온 사방이 하얗게 착색되었다.


벽보에 걸린 것은 울의 젊은 모습, 그 반역자의 행방을 찾는 나라님의 현상수배지. 소식은 몇년이나 늦게 전해졌다···.


울은 그날 그 길 그대로 도망쳤다. 아비는 친구가 야교 가득 든 병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밤이 되고 낮이 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별을 깨닫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했지만, 재회가 찾아온 것은 이후 머나먼 날까지, 십 년의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다시금 이루어졌다.



***



믿을 수 있을리가 없다. 믿을리가 없지,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는 것이 진리인데, 피를 나눈 형님에게 살해위협을 받는 울이 퍽도 사람을 믿겠다!


그토록 안달나 도망치려는 핏발선 눈은 모두의 눈을 잡아끌기 충분했지만, 울에게 더이상 그런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했다. 그냥 달렸다. 그곳에 매몰되어 아무런 생각 하나 없다.


이제사 겨우 걷기 시작한 하온의 팔을 잡아끌며 걸음을 재촉했지만, 그 어리고 자그마한 몸뚱이가 그런 힘을 버텨낼리가 없다. 첫 발을 내딛자마자 아기는 앞으로 고꾸라져 울음을 터트린다.


달랠 틈도 없다. 바로 아이를 끌어안고 내달렸다. 하지만 아기는 이전과는 달랐다. 더 성장했고, 자랐고, 그래서 무거웠다. 들고 뛰는 것이 이전과 달리 확연히 버거웠다.


앵앵 울어대는 아기의 고음. 괴성. 그것을 보고 사방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 다리관절에 가해지는 가혹한 피로와 숨차오는 허파. 그 가운데서 끊이지 않는 울음, 울음소리! 앵앵대는 울음소리! 울은 처음으로 제 품에 안긴 이 아이를 땅에 내던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렇게 애타게 발걸음을 옮긴 울이었지만, 갈수록 늘어지는 속도는 어쩔 수 없었다. 무게추는 지나치게 그의 발목을 잡아댄다. 여행은 더욱 고되졌고, 멈추지 않으려 밤잠을 새며 걷다가 쓰러져 정신을 잃고, 그러다 하온의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도로 정신이 들어 움직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배도 고파온다. 하지만 품에 안은 이 무게추를 먹이기 위해서는 제 먹을 것의 반쪽을 떼주어야 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징징댄다. 가증스런 것!


길을 내달려가는 도중에 그의 귀를 스쳐지나가는 소문들이 있었다. 새로운 나라님에 대해서. 그의 뻔뻔함에 대해서. 돌가죽에 대해서. 그들의 배반에 대해서.


반역자에 대해서. 그 의문에 대해서. 울 자신을 칭하는 그 소문이 들려올 땐 그는 애써 얼굴을 숙이고 모르는 척 하느라 바빴다.


그 후에는 전쟁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나라님 직할령의 한 귀퉁이에 맞닿은 파리발 평원은 지금 전투의 핏물에 잔디가 푹 적셔져있으며, 새로운 나라님이란 작자는 전쟁의 영광에 미쳐 그의 백성은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그가 산골짜기에 처박혀있을동안 세계는 혼란 속에 빠져 온갖 것이 뒤섞이고 분간할 수 없는 걸쭉한 곳으로 변해있었다. 아니, 그동안 지나치게 모든 것이 명료한 산골에서 살아왔기에, 인간의 욕망이 엉킨 이 사회가 가혹해보이는 걸지도···.


사방에 예민하게 감각을 집중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를 판명하면서,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며 또한 움직였다. 그의 내부는 갈수록 날카로운 감각으로 벼려졌다.


울이 그렇게 개고생을 하면서 세상을 떠돌아야 할동안, 하온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배고프다고, 힘들다고 괴롭다고 계속 울며 징징대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애새끼. 울은 이제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는 황야를 그런 식으로 건너며 도망치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렀다. 허나 이번의 방랑 역시 종착점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작 일 년 될까 말까. 한 인간이 한계에 도달하는건 그토록 쉽고 간단하다.



***



제 1차 파리발 원정이 시작된지 고작 1,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허나 벌써부터 전쟁은 그 기세가 절정에 달한 후 서서히 늘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칼과 창이 번쩍이고, 폭약이 터지며 말과 돌가죽이 죽어나간다. 서로에게 쏟아붓는 엄청난 공방과 기적의 힘. 그리고 무수한 피와 돈이 평야에 흩뿌려졌다. 점차 소모되어가는 국력은 그러나 이제 그 가치를 증명해보이고 있다.


몇 달 전부터 파리발 평원의 무법자들은 그 힘이 다한 듯 보였다. 보급은 여의치 않았고 전략의 예리함은 눈에 띄게 떨어졌으며, 교전에서의 패배가 잦아지고 사기 역시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압박을 지속한다면 무법자들은 그대로 모두 박멸당할 것이 분명해보인다.


메로스는 자만심에 빠졌다. 그리고 그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이번 원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한 판단이었다. 저 넓은 평야의 무법자들을 평정하기만 한다면! 그렇게만 되면 곧 엄청난 명예가 승리와 함께 그에게 되돌아올 것이고, 그 때 비로소 메로스는 진정한 나라님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 누구도 메로스를 반역자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 때 투르나에서는 계속 나라님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있었다. 북쪽에서 항전하는 돌가죽들의 세력이 예기치 못할 정도로 커져 큰 위협이었던 탓이다. 끌끌 혀를 찼다. 하필 이런 순간에!


암만 다른 땅조각 일이라곤 해도, 나라님의 권위란 명색이 온 땅의 지배자다. 권력만큼의 책임도 져야만 인정받는다. 별 수가 없어 지원군을 조금씩 보내긴 했지만, 지금 당장 힘을 집중해야할 때에 병력이 여기저기로 새나간다는 점은 영 껄끄럽다. 결국 통치자의 행위란 그런 것이다.


그 때, 달빛만이 가득하던 그의 서재 안에 인공적인 불빛이 한줄기 들어선다. 문이 열리고 그로부터 한 사내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다름아닌 이전에 메로스가 울을 죽이라고 보낸 수색자들의 대장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계속되는 나라님의 닥달에 그는 아직까지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뺑이를 치던 차였다.


“무슨 일인가, 혹시 그 놈을 찾기라도 했나?”


“...아닙니다, 이전에 명하신 구역에서의 수사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울의 소재는 커녕, 그에 대한 소문 하나 찾을 수 없습니다.”


필시 이미 죽은게 틀림없습니다. 라고 말하려던 차에, 곧장 나라님의 호통이 들려오며 수색자의 입은 꾹 닫히고 말았다.


“잡든 말든 어쨌든, 최소한 놈의 흔적이라도 하나 가져올 수는 없겠나? 어디로 튀었는지 쯤은 알아와야 돈 값을 할 게 아닌가!”


“하, 하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온 세상에 수배지가 뿌려진 이상 제깟 놈이 안주할 곳도 없을테고, 이미 객사했거나 칼을 맞고 죽었을게 필경 틀림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더 이상의 수색은 무의미하...”


그 대꾸는 부하 입장에서는 어지간히 답답하여 나온 말이겠지만, 나라님 앞에서 하기에는 꽤나 발칙한 말이다. 본인도 곧 이를 알아채고 순간 식겁할 정도였다. 이크, 가뜩이나 오락가락하는 사이코 앞인데, 잘못 걸렸다간···!


“멍청한 놈.”


하지만 오늘의 메로스는 그나마 정신이 멀쩡하다. 부하의 반항을 작은 질책 정도로 잠재웠으니 말이다. 더 이상의 말대꾸는 용서치 않겠다는 듯 날선 소리가 그의 입으로부터 울려퍼진다.


“울은 살아있다, 나는 알 수 있어. 형제인 나는 알 수 있단 말이다! 찾지 못한 것은 네놈이 무능한 탓이다. 그러니 닥치고 일이나 똑바로 해라!”


“......”


“뭘 꾸물거리나, 당장 나가! 가서 이번엔 수염털 하나라도 잡아채와라!”


허나 질책도 이 정도면 거의 앙탈 수준, 수색자는 비록 머리는 조아렸어도 속으로는 불만에 가득 차 궁시렁댄다. 이 허무한 짓거리를 몇년은 더해야 성에 찰런지.


지 멋대로 칼부림을 벌여 이 지경을 만들어놓은 주제에, 망할 놈! 그렇게 제 동생을 죽게 하려고 발악을 한건 본인이 아닌가. 울이 살아있다고 여기는건지, 아니면 살아있기를 바라는건지 도통 모를 노릇이다.


곧 수색자가 떠나고 문이 닫힌다. 서재에는 다시 메로스만이 혼자 남았다. 이제 그 커다란 공간을 채우는 숨소리는 오직 하나 뿐이었다.


그곳에 달린 커다란 창문, 그로부터 쏟아지는 달빛을 맞아 길고 어두운 그림자가 방을 가로지른다. 단 하나뿐인 선. 그림자의 외로운 주인은 그 빛에 홀린듯 달을 바라보며 읊조린다.


“울은 살아있다. 그래, 분명히...”


거의 애절하다 싶은 그 눈빛. 하지만 곧이어 찾아오는 의무적인 증오심에, 메로스는 갑자기 화가 사무쳐 커튼을 잡고 세게 창문을 가렸다. 빛이 사그라들며 그의 검은 선도 커튼의 어두움에 감싸인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그림자는 아니다.


작가의말

다음주는 최소 주말이 되기 전까지는 업로드가 힘들 듯 합니다.
이유는 군사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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