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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400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4.30 19:31
조회
59
추천
4
글자
9쪽

Episode180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8)

DUMMY

때는 현재로부터 6년 전. 장소는 크고 으리으리한 대저택. 날씨는 맑음.


검은 옷을 입고 잠입한 수십의 괴한들이 뚜벅뚜벅 복도를 걸어들어갔다. 가로막는 경비와 경호원은 모조리 참살하며 온 저택 안을 뒤지고, 그들을 본 사람이며 목표의 가족, 수하, 아무튼 필요한 이들은 전부 죽여댄다.


그들이 찾는 자는 이 나라의 충신이요, 학자로 유명한 고위관직의 신하였다. 애쉬는 그 사람을 안다. 몇 년 전, 애쉬를 발탁하여 암살단에 넣도록 권유한 것이 바로 이 자였다.


그리고 그를 죽이러 온 괴한의 정체 역시 애쉬는 안다. 애쉬 역시 그 자리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암살단이다. 그리고 지금 국가의 명을 받아 국가의 신하를 하나 살해하러 왔다. 당연히, 애쉬가 여기서 검은 옷을 입은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몇 년 전, 애쉬와 아직 인연이 닿았을 때만 해도 충신대접을 받으며 나름의 흠모를 받아왔던 이 어르신은, 국왕과의 지속적인 마찰과 오랜 반항으로 인해 이제 불온분자로 단단히 낙인이 찍혀있었다.


그것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끝내 제거대상으로까지 전락하여, 이렇게 줄지은 암살단에게 참살되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문제의 타깃은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그의 이불더미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꿈틀대는 기미가 보이자마자 더미째로 쇠막대가 마구 내리꽃혔고, 비단 사이사이로 비명과 함께 선혈이 새어나왔다.


곧 네다섯개의 팔이 그를 이불 사이에서 끌어내 얼굴을 내보였다. 그리고 제거대상인 대신 본인임이 확인되자마자 암살단들은 가차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껏 잘 버텨온 애쉬마저도, 확인사살을 위해 뇌를 터트리는 이 순간만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떠오른 것은 툭하면 제 딸의 낙서를 들이밀며 명필이라 주책을 부렸던 그 대신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 잔혹한 운명의 짐을 지는 것은 그 하나만이 아니다. 모든 숙청에는 항상 따라붙는 법칙이 있다. 일말의 후환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그의 아내, 형제, 부모, 어린 자식들까지, 그의 핏줄이 달라붙은 것 하나하나를 지워버리는 업무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제작전에 일말의 동정심도 남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 상부의 조언이었다. 그들은 불온분자, 반동분자의 가족이다. 혈통 자체가 불순한 자들이니, 살아봤자 세상에 이득 될 일이 없는 의미 없는 벌레들이다. 죽이는 편이 세상에 이득이리라.


그 명령에 따라, 암살단 모두 눈빛 한번씩 교환한 후 곧장 다음 타깃으로 발을 옮긴다. 온 사방으로 산개하여 집 안 구석구석 숨어있을 식구들을 모조리 청소하는게 그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애쉬는 그러기 싫었다. 하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난조여서일지도 모른다. 어제 먹은 닭고기가 조금 상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다른 때와 다르게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럽다. 핏방울만 봐도 메슥거려서 구토가 나올 것 같다.


그래서 애쉬는 거의 도망치듯이 내달려, 눈에 보이는 아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눈을 감고, 가쁘게 숨을 골랐다. 오늘따라 왜 이럴까. 사람을 죽인 것이 처음도 아니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괴로워할까? 분명 이럴 필요 없는데.


이번에도 국가의 판단이 끝내는 옳을지언데. 저들은 쓸모없는 혈통이며, 죽이는 것이 사회에 이득일지언데.


그저 타깃이 예전에 몇 번 본 얼굴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여태껏 애쉬가 겨우 유지해온 정의관이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상상조차 하지 못한 죽음을 맞으며 내지르는 단말마들이 벽을 뚫고 울린다. 울며 흐느끼는 여자와 아이들. 더는 듣기 싫어져 애쉬는 귀를 꽉 눌렀다. 그리고 충혈된 눈을 마침내 크게 뜨고 울부짖었다.


“그만해!!!”


그와 동시에 헉헉대던 그의 숨결이, 순간 얼어붙은듯 멈췄다.


지금 선명히 뜬 애쉬의 눈동자 앞에는 잔뜩 겁에 질려 움직이지조차 못하는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애쉬와 그리 차이나지도 않는 나이대의, 기껏해야 대여섯살 차이일까, 그런 어리고 여린 아이가 그의 앞에 마찬가지로 얼어붙었다.


그녀의 눈은 단 한순간도 깜빡이지 않았다. 곧 죽음을 맞이할 자신의 생을 한순간이라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듯, 공포로 그렁거리는 눈가로 애쉬를 시종일관 바라보는 것이다. 제발 살려주세요. 난 죽기 싫어요.


그렇게 애쉬의 정의관은 산산조각났다.


“너··· 이름이 뭐냐.”


“타, 타나···.”


그 날 건넨 질문은 비록 아무 의미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았어도, 그가 입에 담을 수 있었던 유일한 한마디였다. 허나 단지 이름을 물었음에도 꼭 협박을 들은듯 잔뜩 겁에 질려 답하는 아이의 울먹임을 듣고 나니, 애쉬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눈을 꾹 감았다.


거의 무의식에 가깝게 애쉬는 제 뒤의 방문을 열고 여자아이에게 손짓했다. 아이는 잠시 상황파악도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지만, 넋이 나가서 손만 휘적이는 애쉬의 표정을 보고 용기를 얻어 문 밖으로 발을 뻗었다.


그리고 애쉬는 멍하니 서있었다.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조차 바라보지 못하고, 임무를 저버린 스스로에게 겁이 나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직후 같은 방향으로 돌진하는 또다른 암살단 한 명. 여자아이를 추격하며 그대로 애쉬를 지나치고 간다.


저 너머 여자아이가 사라진 곳에서 들리는 커다란 폭발음. 애쉬는 계속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다.


깨지고 부서지는 울림. 한 소녀의 참혹한 비명이 들리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겁에 질려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애쉬는 더이상 천재가 아니었다. 부서진 정의의 잔해 사이에서 애쉬는 주변의 모든 것이 날카로운 유리조각으로 보여 맨발로는 앞으로 내딛을 수가 없었다.


명예라고 생각했던 암살단의 직무는 이제 징그러운 금수들의 행위로 보였고, 이 기지 전체가 하나의 감옥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미 정부의 극비 임무에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애쉬가 이 철창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갑갑한 마음은 도피처를 찾아 헤맸고, 지친 정신이 찾아낸 탈출로는 광인행세 뿐이었다. 괴이한 망토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허옇게 분장을 하며 웃기는 제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었다.


당연히 임무에도 제대로 참여할 수 있을리가 없다. 툭하면 헛발질에 참여도도 저조하고, 완전히 얼빠진 그의 모습에 동료들은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그 똘똘하던 친구가 어디 머리라도 세게 맞아버린건가?


깨끗하던 애쉬의 마음은 이제 복잡해져 불투명해졌다. 곧고 단단하던 정신은 현실과의 충돌로 찌그러져버렸다. 그의 힘은 그렇게 날이 갈수록 약해져만 갔다.



***



애쉬는 가쁜 숨을 토해내며, 이곳저곳 쓸려서 상처 가득한 몸을 이끌고 숲 여기저기를 누볐다.


눈이 멀어서 깜깜한 앞을 손으로 더듬는다. 어떻게든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네아를 찾아보지만, 워낙 멀고 또한 변화무쌍한 움직임에 그마저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완전히 무의미한 짓거리지만 그래도 애쉬는 끝까지 검은 세상을 헤메고 있었다.


“그래선 안된다···.”


허파의 공기를 끌어내 억지로 중얼대는 그 말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한인 동시에 지금 죄악을 저지르려는 제자에 대한 안타까운 만류였다.


“난··· 네가 그런 삶을 살게 둘 수는 없어···!”


지금까지 그가 얼마나. 얼마나 많고 긴 하루하루를 후회와 고통에 젖어 보내왔던가!


네아마저 그런 삶을 살게 하고싶지 않았다. 때문에 이젠 닿지 않게 된 마음의 목소리지만 애타게 네아를 불러보았다. 제발, 제발 멈춰라. 네아! 지금이라면 그럴 수 있잖니. 마음껏 허공을 날 수 있잖아. 마음대로 도망쳐서 얼마든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잖아! 그런데 어째서···?


싸움을 멈춰라···! 살인을 강요당하는 삶에 굴복해서는 안돼, 너만은, 네아. 제발···!





그러나 이 목소리는 결코 네아에게는 닿지 않았다. 네아는 이미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고, 흑광석은 더이상은 둘의 마음을 이어주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를 찾으려는 애쉬의 몸부림 또한 완전히 방향을 잃은 채 같은 방향을 돌고있을 뿐이었다.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4 Jy2315
    작성일
    21.05.02 16:08
    No. 1

    임무를 잘못 준거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방구석4평
    작성일
    21.05.03 20:20
    No. 2

    사실 암살단은 정규군도 아닌데다, 비밀의 정예집단 특성상 인재 풀이 많지가 않답니다. 게다가 분위기도 거칠어서 스쳐지나간 인연 하나까지 헤아려줄 정도로 무른 곳도 아니고요. 암살단의 방식은 기본적으로 못해먹겠으면 죽어야지 식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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