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94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6)
지금 이 리더라는 작자가 입으로 술술 불고있는 것은 분명 선을 넘은 정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료들은 구태여 그의 입을 막으려 들지는 않았다. 벼랑 끝에 몰린 적을 자극시키는 것보다, 진실 섞인 이간질을 듣게 해 서로를 조금이라도 혼란시키는게 나은 판단이 아니겠는가.
허나 지금 그가 말하는 것들은 하나하나 올바른 근거와 합리성으로 빚어낸 사실이다··· 그러니 듣는 이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너희들 모두 잘 들어라! 네놈들은 이용당한다는 것에 내 주머니 안의 동전 전부를 건다, 이 자는 제 형에게 못다한 복수를 한답시고 아무것도 모르던 너희를 끌어들였다고!”
암살단 리더의 논리는 한 층 더 나아간다. 그가 이토록 자신만만한 이유는 간단하다. 울이 반역의 중추라고 가정한다면 너무나 많은 것이 꼭 들어맞기 때문이다.
“제 아들까지 집 안에 꽁꽁 가둬놓고 사육한 것도 그것때문이지? 네 말만 오냐오냐 따르는 꼭두각시처럼 기르려고 말이야. 내 말이 틀리냐, 울! 아니면 어디 설명을 해봐라!”
울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고있지 않는다.
"어이, 사라. 이걸로 그 자가 믿지 못할 작자인건 알았겠지? 이정도로 분명한 정황증거가 있는데 말이야."
사라에게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린다. 적의 눈썰미는 결코 이를 놓치지 않는다. 어쩌면 최선의 시나리오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계속 협상을 유도해낸다.
"우리 쪽에 협조해라. 저항은 관두고 울과 함께 투항해. 그러면 네 목숨은 보장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너 정도의 인재는 우리 입장에서도 그냥 내버리기엔 아까워!"
사라 뿐이 아니다. 말이 통할 것 같은 놈들은 일단 모조리 다 찔러본다. 괜시리 일을 복잡하게 할 것 없이 이쯤에서 적당히 서로 타협하자는 것이다.
"하온, 너도 마찬가지다! 그딴 애비가 하는 말 들을 필요 없어! 그 자가 네게 한 만행을 생각해봐라! 우리가 필요한건 단지 정보와 협조 뿐이다, 대가리인 울만 우리에게 넘기면 너희 죄는 면해줄 수 있어!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단 말이다!"
하온에게도 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납덩이보다 무거운 침묵이 절벽을 가득 맴돈다. 그런 가운데 사라만은 여전히 기색이 좋지 않다. 마치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것만 같다.
"속지 마라, 사라. 협상에 쓰이는 감언이설 치고 진실인 것은 없어."
참다못한 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혹시모를 바보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신경쓰는 척 해봤자 암살단은 단지 그들이 귀중한 무한동력장치를 들고 투신이라도 할까봐 겁을 내고있을 뿐, 협조고 나발이고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곧장 반역자들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헌데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울에게 눈을 돌린다. 그리고 계속 응시한다. 마치 처음부터 용건은 그에게 있었던 것마냥.
"아직··· 나한테 숨긴 것 있죠?"
그녀가 내뱉은 말 역시 마찬가지다. 협상이고 나발이고, 암살단 따위의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울에게 묻고있다.
"왜 쭉 말 안해주는건가요? 뭘 숨기길래 내게···."
이제껏 많은 시간과 역경을 함께한, 그럼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이 사람에게.
울은 입을 꾸욱 닫았다.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반복한다, 울을 제압하고 투항해라! 대가리만 넘기면 밑은 풀어준다!"
여전히 곱게 항복할 것을 재촉하는 적의 외침이 둘 사이의 기묘한 기류를 뚫고 들어온다.
“...사라. 수영은 잘 하더냐.”
헌데 뜬금없이 울이 물었다. 이전의 대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헛소리같은 질문에 사라도 얼떨결에 순순히 대답했다.
“예? 저··· 잘 못하는데요.”
참으로 의아한 말. 설마 절벽에 뛰어내려 살아날 생각이라면 한참 잘못되었다. 저 밑으로 떨어지면 암만 수영을 잘하는 인간이라도 잠시 버티는게 전부, 몸을 의탁할 땅조각 하나 없이 파도에 휩쓸려 죽어버릴게 분명한 것을.
사라의 답변을 들은 울은, 짙은 한숨을 한번 푹 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의 몸을 밀쳐 절벽 아래로 떠밀었다. 아군이라 생각한 남자의 갑작스런 돌발행동에, 사라는 미처 저항할 새도 없이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서 올려다본 울의 얼굴에는, 죽음을 각오한 자의 비정한 표정만이 깃들어있을 뿐.
“아버지..?!”
하온 역시 크게 당황해 무슨 짓이냐며 따지려 들었지만, 그럴 새도 없이 울의 팔뚝이 아들의 목을 죄었다. 중년의 몸으로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하온은 무력하기 그지없다.
컥컥대며 울의 속박을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써댔지만, 이미 관절이 나가고 뼈가 부서진 팔로 용을 써봐야 할 수 있는 건 없다. 되려 애처로움만 강조될 뿐이었다.
“야! 너 이새끼 지금···!!”
당황한 암살단이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제지하려 했지만, 울은 이에 대항해 재빨리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어 하온의 목에 겨누었다.
“닥쳐라!!!”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가려던 암살단 전원이 그대로 발을 멈추고 울을 진정시킨다. 자기 아들을 데리고 인질극을 벌이는 희대의 패륜 앞에서 넋을 놓지 않는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래, 내 죄를 인정하마! 그리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겠다!”
울은 이제껏 없던 목청으로 크게 외친다. 그가 이토록 시끄럽고 천박하게 소리지를 수 있는 위인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형님을 제외하면 아무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최소한 그놈 탓에 죽을 수는 없어···! 지금 내 자리에서 뻗대고 있는 형님의 손아귀에 빠져 죽지는 않겠다!”
이어지는 것은 나랏님에 대한 아주 통속적인 증오의 표출이었고, 그의 다음 파격적인 발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이어졌다.
“차라리 내 아들의 심장을 찌르고, 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주마!!”
모두가 설마 했다. 설마 그정도까지 미친 짓을 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 중심에 있는 하온은 오죽하겠는가. 설마 제 아비가 진짜 자신을 죽이려들지는 않으리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헌데 울은 그대로 단검을 치켜들더니, 있는 힘껏 휘둘러 하온의 가슴팍에 칼날을 찔러넣는 것이 아닌가. 심장 부위에서 뜨겁고 새빨간 피가 솟구치며 상의 전체를 붉게 물들인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암살단 일동조차 말을 잃었다. 단순한 도발행위, 혼란을 주기 위한 블러핑이라 생각했는데 곧바로 진짜 찔러버리다니, 제 아들을 저토록 망설임없이 살해하는 아비라니!
하온의 눈이 감긴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무게가 온전히 울에게 기대어진다. 비정하게 칼날을 뽑자 바닥에 피가 흩뿌려진다.
이제 울은 자신의 숨통을 끊어야만 했다. 그래서 자식의 몸뚱이를 안아들고, 그 무게를 느끼며, 서서히 뒷걸음질 치다가, 마침내 벼랑의 끝에 도달했을 때. 울은 허공을 향해 최후의 한 발짝을 내딛는다.
그렇게 두 구의 육체가 함께 기울어지며 추락했다.
-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