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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99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6.21 20:25
조회
34
추천
4
글자
7쪽

Episode195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6)

DUMMY

울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이유는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그는 자신의 숨통을 끊기 위함과 동시에, 모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렸다.


물론 이 절벽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저 드센 파도 속에서는 헤엄쳐 빠져나가긴 커녕 숨쉬며 버티는 것도 불가능하다. 주변에는 해안가 하나 없어 몸을 의탁할 곳도 없다. 무엇보다 저기 뾰족히 솟아오른 암초에 부딪쳤다간 기회도 없이 곧장 즉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울은 이 길을 선택했다. 아주 자그맣고 불확실한 희망이지만, 최소한 벼랑 위보다는 생존할 길이 딱 하나라도 있어보였던 탓이다.


저 암초로부터 살아남기만 한다면, 정말 운 좋게 즉사만 면한다면 분명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 그 증거를 아까 울이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그 때, 단숨에 울을 찔러서 죽을 지경까지 몰고갔던 은강. 분명 이 절벽에 떨어져 죽었다고 들었던 은강이,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그 얼굴을 치켜들고 모두의 눈 앞에 똑똑히 나타났다.


하온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울이 객점에서 본 그 얼굴도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결국 하나다.


보기만 해도 까마득한 이 절벽,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여겨지는 이 절벽 아래에서도 살아나올 방법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울은 그 희박한 확률에 모든 것을 걸었다.


드높은 위치에서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는다. 먼 거리를 가로지르며 한참을 추락한다. 공기가 스치는 소리마저 섬뜩해질 정도로 속도가 붙어, 이대로는 수면에만 부딪쳐도 장기가 다 박살날 것이다.


그 순간 이제껏 멀쩡히 깨어있던 하온이 다시 눈을 뜨며 정지의 기적을 발현한다.


아주 잠깐 이루어진 일이고, 일시적으로 추락 속도를 늦추기만 했을 뿐. 뒤늦게 위에서 절벽을 내려다보는 암살단들은 미처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내 반역자들의 육신이 매정한 바다 아래 첨벙 빠지고, 물기둥이 사그라들며 그들의 모습도 안으로 스며들자, 방금 있었던 자그마한 행위에 대한 증거는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암살단은 닭 쫓던 개마냥 절벽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꼴이 되었다. 허나 속담과 달리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는 꼴이 되었다는게 아이러니다. 더군다나 쫓던 사냥감은 이제 다 썩어서 주워먹지도 못하게 생겼으니, 굶주린 사냥개들은 비상이 걸렸다.


하도 당황스러운 전개라 혹시 속임수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어떻게든 그들의 생존을 증명해내려는 시도는 곧 이어지는 추가조사에 곧바로 반박당하고 만다. 당장 하온이 제 아비에게 찔리며 흘린 핏자국만 봐도 그렇다.


“몇번이고 확인했어. 이 온기에, 점성에, 흩뿌려진 형태. 거기에 특유의 냄새와 응고되는 시간까지. 확실하다. 진짜 갓 찔린 상처에서 나온 피가 분명해. 피주머니 덧대서 적당히 눈속임할 수 있는 것이 아냐.”


리더는 직접 핏자국을 손으로 문질러본다. 금세 알아챌 수 있는 이 익숙한 감촉에 결국 그마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렇군.”


“당연하지, 우리 전부 질리도록 본게 피인데 진짜 가짜도 구별 못하겠냐?”


옆에서는 다른 동료들의 웅성거림이 하나둘씩 말참견이 되어 조사에 끼어든다. 켜켜이 쌓여가는 추측은 곧 하나의 의견으로 형성되어갔고,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이미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그 상태에서 심장부위를 정확하게 꿰뚫었어. 하온은 보나마나 즉사다. 울 그 미친 놈, 역적이래도 인륜이란게 있지. 제 아들을 직접 참살하는 짐승은 또 오랜만에 보는군.”


“새끼, 네가 인륜을 논할 때가 다있냐? 너도 짐승같기로는 순위권이잖아.”


“닥쳐, 금수새끼야. 그렇게따지면 지난 임무때—”


곧 말참견은 말싸움으로 변해 유치한 농담거리가 되어가고, 한심한 동료들의 작태를 뒤로한 한 대원은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 끊임없는 의문을 던진다.


“정말 속임수일 확률은 없는건가? 혹시 기적을 가지고 어떻게든...”


“이제껏 없던 기적이 이럴때만 편리하게 발현되서 눈속임을 한다고?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으면 진작에 써먹었겠지.”


허나 그마저도 곧 억지이론임이 명백해진다. 거의 모두가 이것이 반역자와의 영원한 작별이란 현실에 동의할 즈음, 리더는 재빠르게 그들의 성급한 결론을 불식시키며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도록 종용한다.


“수다는 그만 멈추고 움직여라, 여기서 말로만 떠들어봤자 전부 섣부른 판단이다! 우선 수색대 편성해서 이 근방을 샅샅이 뒤져, 놈들이 죽었다는 확증은 반드시 필요해! 살았던 죽었던 그 몸뚱이를 여기 데려다 놔야만 한다! 너희는 이 근방 마을에 연락을 돌려서 관문을 지나는 젊은 남녀와 중년 남성은 전부 조사하라고 공문이라도 붙여! 넌 상부에 이 일 보고하고, 나머지는 날 따라와라!”


노련하게 다음 목표를 설정하고 각자에게 임무를 하달한 뒤, 리더는 모두에게 크게 외치며 다시한번 강조한다.


“명심해라, 방심은 금물이다! 진상이 완벽하게 확인되기 전까진 셋 모두를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일 대충대충 했다간 뼈도 못추릴줄 알아!”


말이 떨어진 즉시 암살단 전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동안, 리더는 한번 더 절벽 밑을 유심히 본다. 아까 반역자들이 떨어졌던 지점으로부터 붉은 피가 몽글몽글 솟아오른다. 이 어스름진 황혼에서도 새빨간 거품이 눈에 띄일 정도로 엄청난 출혈이었다. 밑에서 암초나 산호 따위에 부딪친 모양이다.


혀를 쯧 차며 눈을 돌린다. 혼란스럽던 머리가 잠잠해지며 곧 극도의 공허감에 잠식된다. 이 허무한 결말에 권태를 느끼며 그는 독백한다.


‘역시 속임수가 아냐. 그럼 정말 저들 멋대로 죽어버린건가? 제기랄, 통쾌한 복수를 위해 이를 갈았더니··· 이게 뭐야?’


...하지만 반역자들은 살아있었다.



***



추락한 반역자들이 마침내 바다에 빠져들었을 때, 그들은 절벽 밑 매서운 파도 아래로 잠수한 채 어떻게든 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의 진동이 자아내는 극도의 수압에 평범한 육체의 남정네 둘은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떠밀리고만 있다.


깊은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하온의 팔을 누군가가 잡아 이끈다. 울이 밀쳐서 먼저 떨어져내린 사라다. 아깐 독에 취해 골골대더니, 갑자기 찬물 세례를 맞아서 정신이 퍼뜩 든 모양이다.


그녀의 괴력에 인도받으며 반역자들은 더 깊이 잠수해 몸을 숨긴다. 수류를 거스르며 가까스로 몸을 움직일 때마다 하온의 가슴에서 피가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누가봐도 굉장히 위독한 상황일텐데, 정작 하온은 파도에 정신이 팔려서 아픈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는다.


혈액이 물에 녹아들며 바다에 붉은 빛을 풀어넣었다. 하지만 이정도의 양으론 부족하다. 적들을 속이기 위해선 더 확실한 위증이 필요하다. 눈으로 단번에 알 수 있는 그런 증거가.


울은 그것을 ‘만들어낼’ 방법을 알고있었다.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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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Episode189_운수가 지독히도 나쁜 날(1) +2 21.06.04 36 4 8쪽
188 Episode188_잠시만 평화롭게(2) +2 21.05.30 46 4 9쪽
187 Episode187_잠시만 평화롭게(1) +2 21.05.25 47 4 11쪽
186 Episode18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4) +2 21.05.21 56 4 14쪽
185 Episode18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3) +2 21.05.19 47 4 13쪽
184 Episode18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2) +2 21.05.14 68 4 11쪽
183 Episode18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1) +2 21.05.08 55 4 8쪽
182 Episode182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0) +4 21.05.05 45 3 8쪽
181 Episode181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9) 21.05.03 37 4 12쪽
180 Episode180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8) +2 21.04.30 59 4 9쪽
179 Episode179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7) +2 21.04.26 61 4 7쪽
178 Episode178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6) +4 21.04.21 48 4 8쪽
177 Episode177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5) +2 21.04.18 45 4 10쪽
176 Episode17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4) +2 21.04.12 57 2 10쪽
175 Episode17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3) +2 21.04.07 59 3 8쪽
174 Episode17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2) +4 21.04.04 49 4 8쪽
173 Episode17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 21.03.31 50 4 8쪽
172 Episode172_짤막한 이야기 +4 21.03.29 58 4 10쪽
171 Episode171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2) +5 21.03.19 61 2 11쪽
170 Episode170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1) +4 21.03.12 55 2 7쪽
169 Episode169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0) +2 21.03.08 39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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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Episode167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8) +2 21.03.01 63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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