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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87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1.03.08 20:27
조회
38
추천
3
글자
8쪽

Episode169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0)

DUMMY

허나 울의 충격이고 나발이고 리체에겐 별 상관도 없는 일이다. 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선 도무지 맨정신으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벌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울은 눈 앞을 구름같이 가린 벌떼들에게 온 몸과 목구멍 구석구석까지 쏘이는듯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작은 아우님, 지금 저 서쪽의 파리발 평원이 어떤 꼴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리체가 먼저 운을 띄운 주제는 이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은 국제정세 이야기. 여기서부터가 이미 맨정신이긴 글른 것이다.


한가로이 정치얘기로 꽃을 피우자는 것도 아닐테고, 무슨 의중으로 꺼내는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대의 형님께서··· 메로스 폐하가, 그 땅의 무법자들을 상대로 꽤나 분전을 치르고 계시지요. 뭐, 지금쯤 전황이 역전되고 일이 잘 풀리고 하셔서 아주 들뜨셨겠지요. 아마 제정신이 아닐겁니다. 승리를 확신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야, 무법자들의 단결력도 예전만 못하고 전략의 예리함도 떨어졌다니 당연하겠지. 어차피 근본이 무법자에 유목민들 아니었나.”


울이 그동안 미친 척을 해오면서도 내심 이러한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리체는 슬쩍 눈을 번득이며 미소를 지어온다.


“무법자들이 밀리고 있는 것이 정말 그 이유 탓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이냐?”


“당연히 그렇지요. 그들의 지휘관인 거인왕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가진 전술이라곤 그 지휘관이 떠나기 전 남긴 메모에 불과하니 점차 힘이 떨어질수밖에요.”


자신있게 말하는 리체. 그런 깊숙한 정보까지 퍽도 잘 안다 싶어, 울은 조금 비아냥을 섞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 엄청난 정보라면 새어나가는 순간 군대는 괴멸한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 말을 전해들었으며 또한 그게 틀림없는 진실인마냥 맹신할 수 있나?”


“그야, 제가 바로 그 지휘관이자 거인왕이라고 불리우는 이방인 본인이니까요. 형님을 만나기 위해 이 멀고 먼 곳까지 빙 둘러서 왔답니다.”


그 대답은 미치도록 합리적이고 또한 말이 안된다.


리체가 내놓은 이 엉뚱한 농담에 울은 잠시 그가 농담이라고 말을 얼버무릴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눈 앞의 이 인간은 아무런 동요도 없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는-파리발 평원의 패자, 거인왕은 당당하다.



***



부자간의 싸늘함으로 가득했던 황궁의 공기 아래, 리채는 언제나 혼자였다.


최고대신 주노와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누구도 이 자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것은 홀대이며 또한 자유였고, 그렇기에 고삐풀린 맹수는 그러나 결코 섣불리 이빨을 세우지 않고 얌전히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렇게 왕궁 안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리체는 보았다. 모든 것을 보고 파악하며 또한 예측했다. 그러니 메로스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파악해, 일찍이 몸을 피해 살해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에서 그칠 수는 없었다. 리체에게는 더욱 크고 원대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던 탓이다.


서쪽으로 건너가, 파리발 평원에서 명성을 얻으면서도 리체는 잊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 기다리고 있는 그 예언의 참상을.


보이는 것은 나라님이 되어있는 자신, 그리고 자신을 죽인 채 사방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돌가죽의 모습. 모든 인류를 절멸시킬 때까지 복수를 계속하는 이 괴물의 형상을, 자신이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인내하고 미래를 보았다. 언젠가 자신이 그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그리고 이를 바꾸어내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위에 군림하는 하늘이 될 수 있도록.


겨우내 얻어낸 무법자들 사이에서의 명성과 찬양을 홀가분히 내려놓고 떠난 것도 이를 위해서였다. 그에겐 이따위 것에 얽메일 시간은 없다. 그의 목표는 저기 세상의 중심, 자신이 떠나온 황궁 꼭대기였다.


하지만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닌 빙 둘러 가는 길. 그래서 고작 수십의 수하를 이끌고 떠나고선, 그들은 황궁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대신 외곽을 돌아 들키지 않도록 말을 몰고는 사람 하나를 데리러 찾아왔다.


그것이 바로 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울을 데리러 가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리체 본인이어야 했다.


그렇게 설명하며 리체는 울에게 묶인 주박을 풀어준다. 밧줄을 풀어 바닥에 떨구면서 아주 위험천만한 말을 손쉽게 내뱉는다.


“이제 곧 메로스가 죽을 것인데, 그럼 이제 선왕의 남은 핏줄은 저와 아우님 뿐. 그마저도 적통은 아우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당신은 본래 선왕의 유지에 따라 나라님의 자리에 올라야했던 진정한 황태자님 아니십니까.”


본디 선왕이 원하던 진짜 차기 나라님은 울이었다. 따지자면 먼저 반역을 저지른 것은 메로스이며, 이미 백성들에게도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이다.


“즉 제 반역에 정통성을 부여해줄 유일한 인간이시지요. 또한 바로 지금이 정통성을 내세울 적기입니다. 메로스의 정신은 온통 파리발 원정에 팔려있고, 대부분의 군세 역시 그리로 보내져 방비가 소홀해졌으니 말입니다.”


모든 것이 그의 시나리오 위에 쓰여있었던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짓거리를 계획해 실천해왔음을 알아챈 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묻는다.


“만일 형님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할 생각이었더냐?”


“...뭐, 그 자 성격에 일을 벌리지 않을 확률은 거의 적었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랬다 치면···.”


리체는 울의 말대로 자신의 전략에 예측에 기댄 막연함이 어느정도 있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남이 듣기에는 더욱 어이가 없다.


“그대로 이 평야의 전사들을 규합시켜, 몇십년 뒤라도 좋으니 이 쪽에서 전쟁을 일으켜 나라님의 깃발을 꺾어버렸겠지요. 내가 여기 온 것은 그저 그 과정을 아주 많이, 그리고 평화롭게 단축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찌 저토록 확신할 수 있는가? 또 어찌 저렇게 두려움 없이 발을 내딛을 수 있는가? 울은 묻는다. 대체 믿는 구석이 어디 있기에. 단순히 그 막대한 재능 하나만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운명이 그대의 편이 되어주리란 증거가 어디있는가?


이에 리체는 꽤나 담담하게 대꾸한다. 운명! 그의 앞에서 운명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나는 내가 죽을 날을 압니다.”


운명은 바로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당사자다. 나라님의 왕관을 쓰고, 가장 높은 곳까지 도달한 리체는 예언 속에서 돌가죽에게 머리가 터진 채 죽어있었다. 언젠가 그에게 올 미래는 지옥으로의 추락을 약속해주고 있다.


“허나 그렇기에 나는 그 날을 제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사방에서 화살이 빗발치던, 칼을 차고 사형대 앞에 앉게되던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니까요. 예언이 성사되기 전까지 나는 무적입니다. 죽도록 고통스럽다 한들 죽지 않을 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리체는 그러나 그 예언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저항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오늘을 살면서 그는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의 삶은 지금 완전히 그의 세계와 일치한다. 그것이 죽음을 앞두고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니 아우님. 어찌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예언의 날만 찾아온다면...”


그 답을 끝으로 리체는 목소리를 낮추고 울에게 시선을 맞춘다. 그 직후 이어지는 언어는 매섭기까지 하다.


“네놈의 살 길을 열어줄 용의도 있네만.”


리체의 말에서 존칭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이제 친절한 답변은 끝났다는듯 말이다.


작가의말

휴가간 선임분의 업무를 이어받고 정신을 못차리는 나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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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Episode187_잠시만 평화롭게(1) +2 21.05.25 4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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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Episode18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3) +2 21.05.19 47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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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Episode18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1) +2 21.05.08 55 4 8쪽
182 Episode182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0) +4 21.05.05 45 3 8쪽
181 Episode181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9) 21.05.03 36 4 12쪽
180 Episode180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8) +2 21.04.30 59 4 9쪽
179 Episode179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7) +2 21.04.26 60 4 7쪽
178 Episode178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6) +4 21.04.21 48 4 8쪽
177 Episode177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5) +2 21.04.18 45 4 10쪽
176 Episode176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4) +2 21.04.12 57 2 10쪽
175 Episode175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3) +2 21.04.07 59 3 8쪽
174 Episode174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2) +4 21.04.04 49 4 8쪽
173 Episode173_비밀요원의 고요한 잠복(1) 21.03.31 50 4 8쪽
172 Episode172_짤막한 이야기 +4 21.03.29 58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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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Episode170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1) +4 21.03.12 55 2 7쪽
» Episode169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10) +2 21.03.08 39 3 8쪽
168 Episode168_울이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가(9) +4 21.03.04 87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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